여주 신륵사와 세종대왕 왕릉의 시간여행
[한국아트뉴스=어랑]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지난 31일 경기도 여주를 들렀다.
여주 관광지로 유명한 세종대왕 왕릉과 신륵사를 관람하였다.
여주에는 세종대왕릉이 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의 영릉(英陵)
세종대왕, 말이 필요 없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왕이다.
왕 중의 왕, 그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리더십을 가진 왕이다. 한명의 왕이 우리 민족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놀랍다.
세종대왕의 업적은 한두가지로 수렴되지 않는다. 재위 32년 동안 집현전 설치, 6진 개척, 쓰시마 섬 정벌, 측우기 제작 등 정치, 국방, 경제, 문화,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백성에게 글자를 선물했다. ‘대왕’이라는 경칭도 부족한 감이 있는 그야말로 민족의 성군이다
세종의 무덤은 처음엔 지금의 서초구 내곡동 대모산에 있었다.
세종의 왕위를 이어받은 문종이 2년 만에 세상을 뜨고, 그 아들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영월로 유배됐다가 목숨을 잃었다.
결국 이 사건 전후로 세종의 22명이나 되는 자식 가운데 단 한 명, 수양대군(세조)만 남고 모조리 목숨을 잃었다.
이후 1469년 예종이 즉위하자마자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숱한 사연을 남겼다.
◆ 여주신륵사
강원도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정선·영월을 지나 충청도 단양·충주 땅을 적신 뒤 경기도 여주 여강에서 꽃 한송이 피우다
여주 사람들은 남한강을 여강이라고 부른다. 여강둘레길을 한바퀴 돌다보면 사찰이 보이는데 사찰은 보통 산에 자리 잡고 있다. 신륵사는 남한강의 안정을 위해서 강 옆에 지어졌다고 한다.
신륵사의 건립된 정확한 연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지만, 신라 진평왕 시절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조선 예종시대(1469년)에 세종대왕의 무덤인 영릉이 여주로 이장되고, 신륵사는 영릉을 보호하기 위한 원찰의 역할을 했다.
신륵사는 세종대왕의 명복을 비는 사찰이자, 영릉에서 제향이 있을 때 제사 음식을 담당하기 위한 사찰의 역할을 한 셈이다.
조선이 불교를 배척한 성리학 중심의 유교 국가였지만, 조선 왕실 내부에서는 불교에 대한 신앙이 전해내려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륵사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많다. 석등(보물 제180호), 보제존자 석종부도(보물 제228호)는 고려 말 스님이었던 나옹선사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이며,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제229호)는 나옹선사의 연대기를 기록한 비석이다.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제226호)은 벽돌양식의 탑이다. 다층전탑은 남한강을 지나는 배들의 이정표 역할도 하였다고 한다.
많은 뱃사공들이 멀리서 나마 탑을 바라보며 안전한 뱃길을 빌었을 테다. 조사당(보물 제180호)은 나옹선사를 중심으로 나옹선사의 스승인 지공대사, 나옹선사의 제자인 무학대사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그 밖에도 신륵사에는 다층석탁(보물 제225호), 신륵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보물 제1791호), 대장각기비(보물 제23호)가 있다.
신륵사 옆에는 여주박물관이 있다. 신륵사를 관람하기 전후로 여주박물관에 들리면, 여주의 역사와 문화를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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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릉과 신륵사 겨울여행 2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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