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카페에서 어느 친구가 올린 족보에 관한 글인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퍼왔습니다. ◆◆◆◆◆◆◆◆◆◆◆◆◆◆◆◆◆◆◆◆◆◆◆◆◆◆◆◆◆◆◆◆◆◆◆
넉달 전, 올해 발간된 내가 속한 성씨[남양홍씨(당홍) 예사공파]의 새로 발간된 파보 한질을 한국에서 우편으로 받게 되었다. 기다리던 것이였기에 가슴설레이게 받았지만, 무엇이라고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내 안에서 용솟음쳐 오름을 막을 수 없었다.
1974년에 부모님을 따라 조국을 떠났으니까 이제는 강산이 3번 바뀐 시간이 흘렸다. 친구들 얼굴들이 이름과 함께 기억의 저편으로 가물가물해 가고, 이젠 조국에서 지낸 시간보다 이곳 미국에서 지낸 시간이 훨신 더 많아져가고 있나보다. 미국에서의 이민의 삶은 나에겐 무척 긍정적이다. 나는 이곳에서의 삶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민자로 살고 있는 나를 언제나 괴롭히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타국에 와 살기에 때때로 보이지 않게 받아야 하는 인종차별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자주 갖게되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도 아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나와 내 후손은 내가 태어난 민족공동체와 영원히 단절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아픔이다.
중국의 조선족들, 구쏘련연방의 고려인들, 멕시코의 한인이민자들… 수 많은 이민자들이 전세계적으로 조국을 등지고 타지에서 작은 인종의 섬들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경제부국 미국에 살기에 조선족들이나 고려인들처럼 고국을 향한 심정이 그렇게 애절[?]하지는 않다할지라도, 타국에 와 산다는 것 자체가 적어도 나에게는 아픔자체다.
약 10 여년전, 어느 한국신문에서 다음의 기사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이태리의 로마에서 얼마 멀지않은 곳에 현재 코레아라는 성을 가진사람들이 22가구 뫃여사는 마을이 있고, 거기서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분이 자신의 조상을 찾기위해 한국을 방문했다는 기사였다.
임진왜란 당시, 한 한국인 소년이 일본 어느 도시의 노예시장에서 유럽상인에게 넘겨져, 인도를 거처 이탈리아로 팔려가 살게 되었다고 한다. 400년만에 그의 한 후손이, 서양인의 모습을 하고, 뿌리를 찾기위해 조상의 나라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400년전 그 조상이 누구인지 그 자세한 족보상 기록을 찾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기사는 나를 혼미케 만들었다. 아니 나를 울게 만들었다. 조국을 떠나와서, 내가 타고난 민족과 떨어져 살아야한다는 것도 힘든데… 앞으로 나의 후손 중에 자신들의 뿌리를 찾으려 해도 불행히도 찾을 수 없는 애타는 상황이 전개된다면.... 50년후, 100년후, 200년후, 나의 후손 중에 안토니오 코레아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나의 고민은 계속된다. 나의 두 아들 아이가 얼마나 한인공동체의식과 뿌리의식을 갖고 이곳에서 살아가 줄까… 그리고 내 아이들이 얼마나 이 아버지의 고민을 이해해 줄까…. 뿌리의식 없이 살게 될지 모를 이민자 후손인 자신들의 삶의 애환을 그들은 조금이나마 예견하고 있을까…
몇대가 지나가면 아마도 나의 후손의 얼굴모습에선 나와 같은 조선인의 모습은 사라질지도 모를텐데… 누군가 후손중에 하나가, 조상의 나라를 그리워하며, 그의 뿌리를 찾고 싶어하는 열망이 욕구칠때, 누군가가 옆에서 ‘그래 여기 너의 조국이 있다. 너의 뿌리가 여기 있다’하고 소리쳐 줄 수 있을까…
나에게는 내 조부에게서 부터 물려받은 1960대에 발행된 파보 한 질이 있다. 심심하면 들추어 보지만, 한자실력이 따라주지 않아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 족보엔 내 이름이 들어있다. 내가 어릴 때 조부께서 신청해서 올린 것이다.
남양홍씨[당홍] 예사공파 30대 홍기섭. 어릴적 부터 나는 족보에 기입된 내 이름을 보며 내가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있다는 사실에 항상 가슴뿌듯 했었다.
3년전 인터넷을 뒤져서 한국에 있는 남양홍씨 종친회의 전화번호를 찾을 수 있었다. 통화에서, 내가 소속된 예사공파가 파보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귀가 번쩍했다.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두 가지를 실현시키고 싶었다:
첫째는, 나의 두 아들아이의 이름을 새로 나오는 족보에 올리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언제 이곳 미국에 이민와서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족보에 분명히 명시해 두는 일이었다. 나는 곧 예사공파 종친 회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과거에 발행된 족보에 내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즉시 내 이름이 들어있는 족보의 쪽을 카피해서 수수료와 함께 보냈다. 총친회장은 기꺼이 올려 주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오늘도 나는 새로 나온 족보를 들추어 본다. 거기엔 내 이름과 내 밑으로 내 아이들의 이름이 나와있다. 基燮: 子 珍鎬; 子 允鎬 이제 아마도 이곳에선 이곳대로 족보를 이어가며 대대로 기록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조금은 안심이 된다: 적어도 내 후손중엔 안토니오 코레아 같이 조상을 못찾아 애태우는 후손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그래요 공감이 갑니다
오늘 하루도 멋진 시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