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어른 집에 석가산이 있는데 석가산 위에 국화 한 떨기를 심었더니 10월에 꽃이 피어 감상할 만하였다. 대개 이른바 산이란 것이 높이가 몇 자 남짓에 불과하고 작은 분지 가운데 자리한다. 그래서 아울러 침방 곁에 옮겨 두었더니 따뜻한 기운이 가을볕보다 못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천지가 숙살하는 시기에도 화려하게 꽃을 피움이 이와 같으니 또한 조화의 이치이다. 그래서 몇 수 지어서 노래함〔弦齋丈家有石假山 山上種菊一䕺 十月開花可翫 蓋所謂山者高不過數尺許 而安之於小盆池之中 而因幷移置寢傍 煖氣不減秋陽 故能於天地肅殺之時 燁然吐萼如此 亦造化之理也 遂賦若干首以歌之〕
겨울철 자주색 국화가 도리어 밝게 피어나니 / 玄冬紫菊還昭蘇 기이한 향 향기로워 인간 세상에 없는 것이라 / 異香馥馥人間無 뿌리를 석가산에 의탁하여 한 송이 피어나서 / 託根假山開一朶 그림자가 분지에 비치어 꽃이 외롭지 않구나 / 影倒盆池花不孤 산도 물도 푸르고 가지는 더욱 여위었으니 / 山靑水綠枝更瘦 의아하여 봉래 바다의 푸른 산호인가 하였네 / 疑是蓬海靑珊瑚 주인옹이 이를 사랑하여 보기를 싫어 않고 / 主翁愛此不厭看 아침저녁으로 시감 모퉁이에서 마주하네 / 朝暮對之詩龕隅 꽃잎 따서 술잔에 띄우자 봄빛이 흘러넘치니 / 掇英泛罇春盎盎 창밖의 얼음 추위를 누가 부르는 줄 알겠나 / 牕外凍寒知誰呼
북풍에 눈보라 몰아쳐 눈꽃이 휘날리는데 / 朔風吹雪雪花飜 사방 바라봄에 흰 산을 누가 기어오르겠나 / 四望皓峀誰攀援 오직 석가산이 있어 푸르게 우뚝 솟았으니 / 獨有假山靑突屼 둥실 아지랑이가 어른의 정원에 방울지네 / 浮嵐滴滴翁之園 층층의 꼭대기에 자색 국화가 또 빼어나서 / 層巓紫菊復奇絶 한들한들 꽃가지에 한 마리 새가 지저귀네 / 裊裊花枝孤禽喧 자리 모퉁이에 옮겨 놓은 것이 언제였던가 / 移來座隅問何時 단풍잎 지고 언덕에 맑은 서리 내릴 때였네 / 丹楓葉落淸霜原 천연의 향 진솔한 색을 날마다 서로 친하니 / 天香眞色日相親 세한의 외로운 절개를 더욱 잊기 어려워라 / 歲寒孤節尤難諼
[주-D001] 현재(弦齋) : 강세진(姜世晉, 1717~1786)을 가리킨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원(嗣源)이고, 호는 경현재(警弦齋)이다. 1753년(영조29) 식년시(式年試) 3등에 입격하였다. 저서로는 《경현재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