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쟁투 p.426
“1844년 여름과
가을에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기별이 선포되었다.
그 때에 슬기 있는 처녀와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곧 한 부류의 사람들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쁨으로 바라보고 그분을
만나기 위하여 부지런히 준비하는 자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두려운 생각을 가지고 일시적 충동으로 행동하여 **진리의 이론에만 만족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결핍되어 있는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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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재림을 사모한다는 두 부류의 재림교인들 즉, 두 부류의 처녀들의 공통점은 다 등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여분의 기름은 즉 성령인데 어떠한 성령을 말하는가? 바로 은혜의 기간 동안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모두에게 임하시는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실생활에 적용 시켜 개인적 체험을 통한 그리스도의 의로 옷을 짜 입은 자들입니다.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디든 따라 가는 자들인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한 그 습관이 반복되어 그리스도의 품성으로 변화된 자들의 경험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 각자의 등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등불은 은혜의 선물 즉 창세기 3:15절에서 선언하신 우리 각자의 양심을 말합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는 그리스도의 의가 아닌 자기의 의인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의 말입니다.
우리의 의는 모두_ 거짓, 이기심, 탐심, 교만, 모든 악한 것들을 포장하고 있는 변덕스럽고 더러운 옷과
같은 것입니다.
사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고 양심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루하루 순종의 생애를 살아간 자들은 은혜의 시기가 끝나고 성령이 떠나가도 그 생애는 결국 그리스도의 품성으로 인침 받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의 지식만 가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자신의 의를 가지고
살아간 자들은 결국 일생 동안 그들의 양심에 호소하며 붙들어 주시던 성령이 떠나 갈 때에 자신의 더러운 의 곧 악한 것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소멸될 것입니다.
마 22:11~14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부조와 선지자 p.201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중보자로 일하시는 사업이 끝날 무렵
이 환란의 때가 시작될 것이다. 그 때에는 각 영혼의 문제가 결정될 것이며 더 이상 죄에서 정결하게
하는 속죄의 피가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중보자로 봉사하시던 자리를 떠나실
때에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계 22:11)는 엄숙한
선고가 내려진다.
그 때에 억제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은 지상에서 철수하신다”
이 때에 우리가 어느 부류에 속하게 될지는 지금, 현재 매일매일의 삶을 통하여 꼴 지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