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30일(금) 이삭의 평화
성경말씀 창세기 26:26-33
찬송 410장
이삭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닮은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이삭의 평화 정신은 그가 우물을 판 일화에서 드러납니다. 그랄에 거주할 때 이삭은 종들이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그랄 목자들이 와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바람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이삭은 그 우물을 ‘다툼’이라는 뜻의 ‘에섹’이라 이름 짓고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런데 또 다툼이 생겼습니다. 이삭은 이번에도 ‘대적함’이라는 뜻의 ‘싯나’라는 이름만 남기고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다행히 이번엔 다툼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이삭은 그 우물을 ‘르호봇’이라고 부르며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이처럼 이삭은 빼앗기는 유약함으로 평화를 지켜냅니다.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을 내밀고,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듯 살아갑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유약하지만 그것은 부족해 보이는 성품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양보하는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약속을 믿는 백성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날마다 우물을 빼앗기며 쫓기듯 살아가는 이삭에게 하나님은 나타나 축복하십니다. 실패의 연속인 그에게 축복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삭의 약함이 하나님의 언약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가는 길이 옳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육적인 자아가 죽어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성품과 인격을 장악하고 다스려서 하나님께 봉헌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의 유약함은 진정한 평화입니다.
이삭을 찾아온 사람은 아비멜렉입니다. 이삭은 번영을 방해하고 그를 쫓아냈던 블레셋 왕입니다. 그가 요구한 것은 평화협정입니다. 늘 이삭을 힘으로 굴복시키고 내쫓던 힘 있는 왕이 군의 수장을 이끌고 와서 이삭을 두려워하며 평화조약을 맺자고 합니다.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해치던 사람이 오히려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삭이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오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자신들에게는 없는 신적인 힘입니다. 이렇듯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내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화가 있습니까?
은혜의 하나님, 나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 안에서 믿음으로 오는 평화의 삶을 살도록 이삭의 평화를 우리에게도 주옵소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평화의 샘이 솟아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병칠목사/갈월교회
첫댓글 아멘! 우리가 가는 곳마다 평화의 샘이 솟아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할 수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