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3일(금)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
성경말씀 아모스 5:21-24
찬송 315장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순서와 전통은 그 뿌리가 출애굽 시대로까지 거슬려 올라갑니다. 당시 예배 의식에는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등이 빠지지 않았는데, 이는 사람의 죄나 허물을 속해 하나님과 사람 간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예배임을 보여줍니다. 폴 틸리히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과 인간 간의 분리를 극복하고 하나 됨을 회복하기 위한 예식적 절차가 예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배를 거부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정의와 공의를 팽개치고 힘없는 자들을 밟고 부당한 세금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즉 일상의 삶이 예배와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음과 행위의 논쟁 안에 있는 바울의 메시지를 기억하게 합니다. 바울이 ‘행위’가 아닌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은, 행위를 일방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닌 ‘믿음 없는 행위’를 비판한 것입니다. 믿음 없이 예배하는 행위,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척하는 행위를 책망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재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삶을 동반하지 않은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배는 죄의 용서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예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소한 일들에 관여하시고, 이 일상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와 하나님의 큰 길을 만들기 원하십니다. 유대 랍비이자 신학자인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은 사소한 일들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과 소통하는 것이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접촉점’이라고 했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곧 정의와 공의가 우리 삶이 될 때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가 서로 화해하는 진정한 기쁨의 장이 될 것입니다. 일상과 예배가 온전히 하나 됨으로 주님이 우리를 기쁘게 받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예배와 삶이 하나 되어 있습니까?
정의의 하나님, 주변의 사소한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영적인 예민함을 주옵소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고, 내 입술과 몸짓 하나에도 정의와 공의를 흐르게 하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그래서 삶으로 예배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대광목사/공덕교회
첫댓글 아멘! 오늘도 삶으로 예배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