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해 시집 『마음을 다녀간 누군가의 흔적처럼』
권순해 시인의 시집에는 보이지 않는 낚시꾼이 산다. 힐끗 지나치는 길 위의 시어를 낚싯대로 낚아챈 시의 이미지는 싱싱한 은빛 비늘처럼 선명하다. 마치 햇살 인색한 도시 한 귀퉁이에서 밝은 문장을 낚는 것처럼, 시인이 가지고 있는 시적 자산 또한 따듯함이다. 이로 인해 시인의 시는 마음이 맑은 언니가 편 편의 시상을 들려주는 것처럼 읽힌다. 언어를 비틀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아 읽는 이들에게 공감을 넓히고 본 재료 맛을 느끼게 하는 시. 이처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작품 속에 감동과 현장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키워드는 길이다. 이 ‘길’에서 시인이 낚은 어망 속의 서사들은 따뜻하다. 대어를 낚는 욕심보다 사소하지만 그 사소함 속 비범함이 유영하는 서사를 낚고 있는 시인이다. 우리의 보편적인 정서를 그림처럼 펼쳐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시집을 읽는 이들에게 시를 쓰고 싶다는 감정을 일게 하는 시인, 바로 시를 짓는 고수의 힘일 것이다. - 이서화 시인
출판사 서평
권순해 시인의 『마음을 다녀간 누군가의 흔적처럼』 시집을 포엠포엠에서 펴냈다. 시 전체가 시를 쓰는 시인의 품성처럼 단아하고 품위가 있다. 오랜 습작을 거쳐 2017년 등단한 시인으로 2018년 첫 시집 『가만히 먼저 젖는 오후』를 간행한 후 『마음을 다녀간 누군가의 흔적처럼』은 7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시집이다. 4부로 나눈 시집에서는 바탕과 호흡에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어떤 시적 기교나 장치를 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권순해 시인의 시에는 여운이나 아쉬움 같은 잔잔한 여백으로 감돌게 해주는 맛이 좋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두드린 기척, 여기 적었다. 아직 오지 않은 기척들도 당겨서 썼다” 고 자서에서 쓰고 있다. 시집의 첫 페이지에 놓인 「봄, 바람 봄바람」 시를 읽으면 시집 전체의 그림이 보인다.
바람이 분다
이불을 빨아서 널고
하얗게 날리는 꽃잎 바라보다
집을 나선다 갈색 머리카락의 젊은 여자 따라
건널목을 건너고 몽블랑에서
녹색 크로와상 두 개를 산다
책방 한 귀퉁이 더듬거리다가
지금은 세상에 없는 시인의
유고시집 한 권 산다
바람이 분다
본색을 드러내는 저 기분은 어떻게 측정하지
땅끝마을에서 문자 한 통 날아왔을 뿐인데
바람이 분다
봄이 분다
권순해 시인의 『마음을 다녀간 누군가의 흔적처럼』 시집은 읽는 순간 독자들 가슴으로 먼저 젖어들 것이다.
- 포엠포엠 POEMPO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