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문跋文
사무사 무불경思無邪 毋不敬을 마음에 새기고
- 삿된 생각을 품지 말고 매사에 공경하고 배려하라
경암 이원규(시인 · 문학평론가)
박민순 작가는 언제 봐도 '바르게 사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처한 악조건 속에서도 자존감을 앞세우며 대쪽 같이 사는 부지런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직장생활만 봐도 그렇다. 여건이 그리 좋아 보이지도 않은데, 마치 그 직업이 천직인 양 여기며 진짜 오래도록 일했다.
그의 시도 마찬가지라서 오랜 세월 동안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그리움으로 점철되었던 예전과 별반 다름없는 시를 아직도 줄기차게 쓰고 있다. 너무나 달라진 세상, 시쳇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낄 만큼 세상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념이나 사상에 물들지 않고 시의 대상과 주제와 소재는 조금도 바꿀 의향이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작품마다 푸근한 인간미가 넘치고 자연을 대하는 애정이 듬뿍 담긴 소박한 시를 잘 쓴다. 어려운 말을 쓰거나 복잡한 수사법을 동원해 기교를 부리지도 않으면서 쉽고 편하게 쓴다.
쉬운 말로 쓴 시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막 쉽게 쓴 시가 아니다. 시를 어렵게 쓰는 데는 2∼3년 정도 학습하면 족하지만, 원로시인들처럼 진짜 쉽게 쓰려면 최소한 4∼50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품격과 지조를 지키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박민순 작가의 작품에는 작품마다 ‘이렇게 사는 게 바른길이며 사람의 도리’라는 바른말뿐이라서, 틀린 말은 한마디도 찾을 수가 없다. 또한, 그의 시는 용감무쌍하게 단도직입單刀直入한다. 우회하지 않고 직설적이며, 감상에 젖지 않고 너무 냉정해서 까칠하기까지 하다.
한 편의 시는 그 사람이 들려주는 진솔한 한 토막의 인생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필자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늘 강조했다. 자기의 속마음을 후련하고 진실하게 표현한 시가 잘 쓴 시, 좋은 시다. 이때, 길게 쓰는 것보다는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줄여서 짧게 쓰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굳이 ‘경제적’이란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최소의 언어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압축하고 생략해서 가장 짧고 강하게 써야 한다.
박민순 작가는 평생 지병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향한 봉사활동은 쉬지 않았다. 언론이나 방송을 통해 선행을 드러내지 않고, 사무사 무불경思無邪 毋不敬을 마음에 새기고 작은 봉사를 즐기며 실천했다.
이처럼 타인에게 봉사하는 사람은 스스로 행복감이 배가 되어 장수한다고 한다. 결국, 타인을 위한 봉사가 자신을 위한 봉사가 되는 셈이다. ‘가진 것, 귀한 것, 전부 퍼주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선한 마음으로 박민순 작가처럼 이웃들과 나누며 사는 게 말로는 쉽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가황歌皇 나훈아 형님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노래했다. ‘사랑은 주는 것, 아낌없이 주는 것’이라고….
제1부에 실린 「내 마음」 등 열아홉 편과 제2부의 전반부「웃음꽃」부터「내 마음의 나이테」까지 열한 편은 그야말로 순수 서정시의 모음이다. 박민순 작가는 주로 수필을 쓰다가 시를 겸업했지만, 어느 틈에 가속도가 붙어 그 힘이 매우 거세졌다. 2부의 후반부 「행복 바이러스」부터 다섯 편의 장시에서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고 있다.
3부는 그야말로 박민순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어머니’를 주제와 소재로 삼아 쓰는 시들의 모음이다. 3부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주걱」과 「아내의 지우개」는 작가와 함께 알콩달콩 사는 아내의 모습도 보인다. 주로 행사장에서 낭송했던 시가 실린 제4부 <아름다운 5060>도 무척 길게 썼지만, 인간미가 넘친다. 회갑 때 쓴「젊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연작시 3편에서는 유머 있게 인생무상을 노래하고 있다. 그때가 60대 초반이었는데, 지금은 중반을 지나 70대로 성큼성큼 치닫고 있다.
1974년경 고교 시절부터 <시림詩林>이라는 문학 동인을 결성하여 박민순 작가와 함께 활동했던 수원의 김우영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박민순은 《학원》 지에 수필과 소설 등을 발표하며, ‘학원문학상’ 소설 부문에 입상했을 뿐만 아니라 《학원》, 《학생중앙》학생기자로 다부진 활동을 하며 어엿한 학생 문사로서 전국의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유명인(?)이었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제2대 오산문학회장을 역임하고 한남상호신용금고 전무이사였던 고 백규현 시인은 “나는 지금까지 박민순처럼 문학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라고 했고, 오산시인협회 초대 회장이었던 김선우 시인은 “오늘도 수없이 만나는 나그네에게 사랑을 제공하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문학 활동을 하는 사람”, 윤영화 시낭송가는 “글 한 줄, 시 한 편 붙잡고 고뇌하며 기뻐하며 살아가는 시인,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부자인 시인”이라고 했다. 또한, 남기선 시 낭송가는 “박 시인의 시는 세상사에 지쳐있는 내 마음의 나이테에 조용히 맑은 수액이 차오르게 한다”라면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격려와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런 주변 사람들의 응원 덕분인지 박민순 작가는 신체적 체력이야 약골인 것은 그 옛날과 변함이 없지만, 글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뜨겁다. 아무쪼록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딱 삼십 년만 더 울울창창한 문학의 텃밭을 가꾸면서 늘 건필하시라.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