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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비경
"산에는 우정이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들은 자연으로 떠나 자유를 향유하라"는 어느 문인의 글귀가 생각난다.
도시인들이 도시를 떠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나도 비록 도시를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하루의 산행이라도 하고
싶어 뒤늦게 대학 동기 산악회 회원이 되었다. 이번 등반은 4번째로 왕초보다
버스가 산행지 도명산 입구에 도착한 것은 9시 40분. 산 입구부터가 속리산 국립공원이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한 화양계곡이 우리를 반긴다. 화양 계곡은 화양목이 많아서 황(黃)양(陽) 동(洞)으로 불리다가
효종 때 (1666년) 우암 송시열 선생께서 이곳에서 주자학을 연구하고 의리사상을 길러 오면서
화양동으로 불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화양구곡
화양구곡은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의 조화가 이름난 곳으로, 조선 후기 대학자인 우암이 머물면서 중국의
주자가 무이산 계곡에 무이계곡을 정한 것을 본 떠 화양계곡의 아홉 명소들을 골라 화양구곡으로 정하여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고 한다. .
도명산은 해발 643미터로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면 마치 산자락에 진주알을 뿌려 놓은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기암괴석과 천년노송이 넘쳐나고 산행 도중 수십 곳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천하일품이다.
그 뿐만 아니라 산 정상 바로 아래에 세분의 부처님이 음각되어 있는 마애참체불은 뭇 등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마침내 정상을 정복하고 나서 조망에 취한 회원들은 "기가 차다" "내려가기 싫다" "천하 비경이다"
"왜 이런 산을 지금에야 올라 오게 되었느냐" 며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튀어 나온다. 정말 명산이다.
정상에서 멀리 보이는 속리산 주능선, 즉 천왕봉에서 입석대 문장대를 거쳐 묘봉 상학봉에 이르는 장쾌한 조망들이
도명산의 이름을 더욱 빛내준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 가운데서 수심에 잠길 때"가 바로 여행의 적기라고 했다.
하지만 수심이 깊어져도 도시에서 얻은 피로와 천박한 욕망을 무디게 할 자연을 찾아 떠나기 어렵고 떠났다해도
결국 도시로 돌아와 머물며 살 수 밖에 없는 도시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인정이 흐르는 산행 모임'에
참여하는 길 밖에 없을 것 같다.
화양계곡은 웅장한 계곡이 기암괴석들에 둘러 쌓여 있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계곡이 넓고 야영장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사계절 많은 사람들이 찾으며
예로부터 산수가 아름다워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쉬어갔던 대표적인 곳이다.
최택만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현 월간 '경제평월' 상임 편직위원
제 1 곡(曲) "경천벽"(擎天壁)
화양 제1곡으로 기암이 가파르게 솟아 있어 그 형세가 자연의 신비라고나 할까
산이 길게 뻗히고 높이 솟은 것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듯 하고 있어 경천벽이라 한다.
매표소 아래에 있었다 (바위 벽면에 "화양동문(華陽洞門)"이라고 송시열 선생의 필체로 새겨져 있단다)
제 2 곡 ; 운영담(雲影潭)
제 1곡에서 약 400m 북쪽의 계곡에 맑은 물이 모여 소(沼)를 이루고 있다.
구름의 그림자가 소에 맑게 비친다하여 운영담이라 이름지었단다.
운영담의 송림과 기암절벽이 빚어내는 풍취는 일품이다....
괴석 아래쪽에 한문으로 운영담이란 예서체 글귀가 음각되어 있다.
제 3 곡 ; 읍궁암(泣弓岩)
제2곡 운영담과 화양서원을 지나면 위 사진처럼 희고 둥굴넓적한 바위가 있으니
우암이 효종대왕의 돌아가심을 슬퍼하며 매일 새벽마다 이 바위에서 통곡하였다 하여 후일 사람들이 읍궁암이라 불렀다.
제 4 곡 금사담(金沙潭)
맑고 깨끗한 물에 모래 또한 금싸라기 같으므로 금사담이라 했다.
읍궁암에서 조금만 오르다 보면 계곡 건너편에 바로 금사담이란 암자가 보인다.
우암선생이 조그만 배로 초당과 암제를 통하였다 하는데 현재는 흙에 묻혀 옛모습을 찾기 어렵다.
금사담 절벽위에는 사진에서 처럼 암서재(巖棲齋)라는 정자가 있다...암서재는 송시열의 서재와 별장이였다...
<제 5 곡> 첨성대(瞻星臺)
도명산 기슭에 층암이 얽혀 대를 이루었으니 제5곡이다.
경치도 좋을 뿐더러 우뚝 치솟은 높이가 수십m이고 대아래 "비례부동"이란 의종의 어필이 새겨져 있으니
이름하여 첨성대라 했다. 또한 평평한 큰 바위가 첩첩이 겹쳐있고 그위에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 하여 첨성대라 불린다.
<제 6 곡> 능운대(凌雲臺)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여 능운대라고 불리운다.
이곳 능운대 정상에 오르면 큼직한 예서체로 능운대라고 새겨져 있단다...
<제 7 곡> 와룡암(臥龍巖)
첨성대에서 1km 지나면 계곡주변에 이 바위가 있다.
궁석이 시내변에 옆으로 뻗혀 있어 전체 생김이 마치 용이 누워 꿈틀거리는 듯하고,
그 길이가 열길이나 되어 와룡암이다. 바위 한가운데에...와룡암(臥龍巖)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제 8 곡> 학소대(鶴巢臺)
와룡암 위쪽으로 조금 지나면 학소대이다.
낙낙장송이 오랜 성상의 옛일을 간직한채 여기저기 서 있는데,
옛날에는 백학이 이곳에 집을 짓고 새끼를 쳤다 하여 이름을 학소대라 하였다.
<제 9 곡> 파천(巴串)
개울 복판에 흰 바위가 펼쳐 있으니 티 없는 옥반과 같아서
산수경관을 찾아 이곳에 오는 관광객은 누구나 이 넓은 반석 위를 거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학소대 위쪽으로 조금 지나면 이 반석이 오랜 풍상을 겪는 사이에 씻기고 갈리어 많은 세월을 새기고 있었다.
첫댓글 20여년전 산악회 따라 미친 듯 원거리 산행을 즐길 때 도명산과 이 계곡을 2번 가 보았는데 계곡 물이 오염수 수준이어서 그후 다시 안 가게 되었읍니다. 환경정화가 이루어졌으면 산도 그리 험하지 않고 한번 가 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