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병’ 환자들 ‘배움’에 대한 김교신의 태도는 대단히 학구적이고 적극적이다. 심지어 교회주의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 말도 서슴지 않는다. 즉 ‘어려서부터 배워 그런지’ 『논어』의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가 요한복음 3장 16절보다 마음에 와닿는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보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공자 말씀이 가슴에 더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계의 영적 능력이 있다는 신자, 고등 과정의 정통적 신조를 자랑하는 신자를 대할 때마다 우리는 기독교에 염증이 생기고 유교를 동경하는 마음이 일어남을 깨닫는다. 공자는 안으로는 ‘마음에 내키는 대로 해도 거리낌이 없었다(從心所欲不踰矩)’는 경지에까지 이르렀고 밖으로는 3,000명의 제자가 따랐다. 그런 공자도 평생토록 배우고 또 배울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었다고 했다. 공자의 해면 조직같이 부드럽고 신축성이 좋은 그 흉금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배울 마음 없이 단단하게 굳어버린 교회주의자들을 볼 때마다 김교신은 유교와 공자를 동경하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3,000명의 제자를 거느렸으면서도 그 마음이 굳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펀지처럼 말랑말랑하고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종교적 신앙이나 사상적 신념을 가질 수도 있다. 없기보다 낫다. 그러나 이 신앙이나 신념 때문에 그 심정이 바윗덩어리보다도 딴딴하게 굳어서 다시는 가르침을 받을 수 없이 된다면 이것은 다시는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다. 수많은 교회주의자를 접하며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말까지 했을까 싶다. 그는 이들을 고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한다. 어떤 약도 소용이 없다고 한다. 불치병 환자다.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다가 완전히 눈이 멀어버렸다. 산돼지 쓸개를 먹은 다음에는 다른 약은 효과가 없다고 하거니와 신앙적으로 굳어버리는 병에는 어떤 약도 효과가 없다. 이 고질병 환자들은 가끔 보이는 젊은 유물론자들처럼 설익었다. 또한 미숙한 만큼 열렬하다. 이들의 눈에는 어른도 없고, 선생도 없다. 오직 옳은 것은 자기뿐이요, 귀한 것은 자기의 주장이요, 자기의 기도가 제일 강하다고 확신한다. 이들은 다른 이의 신앙을 헤아리며 코웃음을 친다. 눈에는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향할 때와 같은(사무엘 상 17장) 필승을 확신하는 섬뜩함이 빛난다. 이 가공할 신앙병의 만연을 보고 우리는 깊이 반성하고자 한다. 비록 천상의 윗자리에 오르지 못할지라도 아직 배울 수 있는 인간으로 살고자 한다. 김교신은 ‘가공할 신앙병’ 환자들을 미숙한 유물론자, 철부지 사회주의자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한다. 다윗에 맞선 골리앗과도 같은 신앙병 환자들의 ‘확신’이 섬뜩하다고 했다. 적어도 ‘배움에 대한 태도’에서는 유교가 교회주의에 매몰된 ‘조선 기독교 신자들’보다는 훨씬 낫다. 어느 부문의 학술이든지 어느 교파의 주창에든지 감히 쓸모없다고 속단치 말고 거기에서 배우고 얻어서 살과 피를 만드는 자가 되고자 소원한다. 우리가 강습회를 여는 것도 지식을 자랑하자는 것이 아니고 서로 배우려는 것이다. 『성서조선』 또한 오늘도 배우고 내일도 배우려는 자의 기록일 뿐이다. 새뮤얼 존슨 박사에게는 쓸데없는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 접하는 모든 물건을 다 스승으로 삼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바라건대 우리도 한없이 부드럽고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배우고 또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신앙병’은 김교신이 가장 경계한 질병이다. 그는 새뮤얼 존슨의 태도에서 『논어』의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를 본다.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에게 본받을 만한 것은 있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에서 배울 점을 찾고자 하는 것이 김교신의 무교회 정신이다. 열린 정신이다. 태양이 비춰주는 빛으로 더 많은 진리를 찾아내려는 정신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14세기 초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파헤친다. 중세철학 전문가가 쓴 소설답게 당시의 시대 상황 묘사에는 사실감이 넘친다. 소설에서 범죄 수사를 맡은 윌리엄 수도사가 광신자이자 살인자인 호르헤 수도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잘 들어 둬. 당신은 속았어.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이런 게 바로 악마야.” 김교신이 말한 ‘신앙병 환자’를 여기서 다시 만난다. 자기 신앙이 절대적이며 자기 신앙이야말로 다른 사람의 신앙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환자들’은 지금도 곳곳에 넘쳐난다. 자신이 깨달은 신앙이 한 점의 의혹도 없는 확고부동한 진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들은 중세 말기의 종교재판관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다 알고 있으며, 바가지 크기만 한 머리 안에 절대자의 뜻을 다 담고 있다고 믿는 중환자들이다. 그들의 핵심 증상은 배움의 자세가 없는 ‘교만’이다. 천사 루키페르가 반역 천사 사탄이 된 것은 교만 때문이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자만은 멸망의 전 단계”라는 서양 격언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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