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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결코 규제될 수 없다>
언론은 흔히 제4의 ‘권력’이라 불린다. 그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언제나 다른 권력으로부터 견제를 받게 마련이다. 1605년 최초의 신문이 생겨난 이후 이제까지 수많은 정권과 위정자들이 언론을 검열하게 규제하고 탄압했다. 지금도 정도와 방식의 차이는 있을망정, 이러한 현상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가 억압 받는 곳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외치고 싸우는 이들 또한 존재했다. 17세기 영국의 시인이었던 존 밀턴 역시 그 중 하나다. 그가 지은 <아레오파기티카>는 출판검열과 언론탄압이 횡행하던 당시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도록 촉구하는 고전이다. 그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오늘날 언론을 포함한 각종 규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도 유의미한 사고의 틀을 제시한다.
<아레오파기티카>에는 ‘허가 없는 출판의 자유를 위한 잉글랜드 의회에 대한 연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1643년 출판허가명령이 만들어진 이후 출판검열과 언론탄압이 횡행하는 세태를 지적하면서 의회가 나서서 언론의 자유를 옹호해줄 것을 촉구하는 글이다. 영국 의회가 승인한 인쇄허가명령에 따르면 “책이나 팜플렛 또는 문서는 앞으로 허가관 또는 적어도 이 법에 따라 지명 받은 자 가운데 하나에 의해 인증 및 허가 받지 않으면 인쇄될 수 없다.” 존 밀턴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출판허가제로 인해 자신의 글이 반대파에 의해 고발을 당했기 때문이다.
아레오파기티카(Areopagitica)는 그리스 말로 법정인 아레오파고스(Areopagus)에 ‘논하다’라는 뜻의 ca가 합쳐진 것이다. 아테네의 유명한 논객이었던 이소크라테스가 기원적 355년 원로회의에 대해 고등법원인 아레오파고스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촉구한 ‘Aeropagitic Discourse’ 혹은 ‘Aeropagiticus’라는 연설문에서 사용한 말이다. 이소크라테스는 대중을 상대로 연설하기에 육체적, 심적으로 부담을 느껴 종종 자신의 주장을 글로 발표하였는데 존 밀턴은 영국 의회에 대해 정책의 변경을 요구하는 자신이 이소크라테스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느껴 책 제목으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출판검열과 언론규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존 밀턴은 출판허가명령이 부당한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열거한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비윤리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위험한 선동과 비방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이러한 조치가 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이들은 책을 막으면 미풍양속을 저해하고 신을 모독하는 경향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는 책이라는 형식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형태를 통해 전파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생각과 행동이 왜 전파되는지에 관한 것이지 무엇을 통해 전파되느냐는 그 다음이다. 존 밀턴은 “이렇게 얼마든지 기만할 수 있는 일을 허가제로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공원의 문을 닫아버림으로써 까마귀들을 가두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그런 용감한 사람으로 비유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에둘러 비판한다. 하나를 막으면 반대급부로 다른 쪽이 열리는 ‘풍선효과’는 현대의 경제에서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 것이다.
게다가 책의 허가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검열관의 자질도 문제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사람이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의 책을 허가한다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결국 허가명령은 소기의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하는 셈이 된다.
둘째, 이는 책에 대한 몰이해로 책을 읽는다는 행위와 그 의미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것. 존 밀턴은 책을 살아 있는 존재로 규정한다. “좋은 책은 뛰어난 영혼의 고귀한 생혈이며 그리고 책은 한 생명이 죽은 후에도 그 정신을 영원히 간직하고 비장해 두는 것이다.” 따라서 책을 검열하거나 심지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는 생명을 죽이는 것에 버금가는 심각한 일이며 생명과 마찬가지로 한 번 죽은 책은 다시 되살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선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있어도 모든 생명은 소중하듯 책에 담긴 지식도 마찬가지다. 선한 지식이든 악한 지식이든 지식은 그 자체로 순수한 것이다. 존 밀턴의 말처럼 “선의 지식과 악의 지식은 함께 태어났”다. 따라서 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선의 지식도 알 수 없다. 무엇을 피하고 삼가고 절제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악의 유혹과 외견상 즐거움을 주는 악을 파악하고 이를 숙고할 수 있는, 그리하여 절제하고 이를 구별하면서 진정 더 좋은 것을 선호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출판검열과 언론규제는 인간과 이성에 대한 모독이다>
이는 출판허가명령과 같은 인위적인 조치가 스스로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려는 시민의 이성과 능력을 무시함으로써 “모든 배움을 방해하고 진리의 발전을 막을 것”이라는 존 밀턴의 세 번째 주장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성숙한 인간이라면, 책에 담긴 내용이 무엇이 되었든, 일단 읽어본 후 스스로 분별하고 판단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그 지식의 선악을 가리고 그 내용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이성과 자연의 섭리를 숭상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행정관이나 검열관은 있었지만 신을 모독하거나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며 쾌락주의나 적나라한 풍자를 포함해 어떤 책도 쓰거나 출판하는 일이 가능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지적한다. 심지어 기독교가 국교가 된 이후로도 로마에서는 400년 카르타고 총회의 이전까지 이방인이 쓴 책도 엄연히 출판되었다는 것. 문제가 있는 책이라도 그것을 읽을지 말지는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세로 넘어 오면서 신의 이름으로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가운데 출판검열과 언론탄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교황 마틴 5세는 이단서적을 칙령으로 금지하고 이를 읽는 사람은 파문하였다. 이후 트렌트 대종교회의와 스페인 종교재판에 의해 금서목록은 더욱 강화되었고 삭제목록까지 만들어졌다. 존 밀턴은 “모든 시대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가장 좋은 그리고 가장 현명한 국가들은 이런 명령을 삼갔고 오직 가장 어리석은 선동가들만이 이런 일을 행했으며 그리고 이런 명령은 개혁의 첫걸음을 차단하고 방해하는 일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존 밀턴은 이러한 중세적 접근에 대해 르네상스 시대의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한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이성을 준 것은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를 주었다는 것이다.
<검열과 규제 대신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출간 당시에는 크게 주목 받지 못했던 <아레오파기티카>는 오늘날에는 언론의 자유주의에 대한 고전적 경전으로 존 밀턴의 대표작인 <실락원>에 버금가는 저술로 평가 받고 있다. 이는 존 밀턴의 주장이 단지 당시 상황에 대해 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전적 자유주의의 대명제인 ‘사상의 자유롭고 공개적인 시장’이라는 관념과 더불어 진리의 발견을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언론자유에 대한 전통적 논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과 같은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천착하면서 일관된 논리를 견지한다.
존 밀턴은 “진리와 오성이라는 것은 티켓(ticket)에 의해 법률 조항이나 어떤 표준에 따라 독점되고 거래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상의 모든 지식을 판매허가를 받은 옷감이나 양모처럼 마크를 넣고 감찰할 수 있는 주요 상품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출판과 언론의 자유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리를 담아내는 도구들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묶이면 진실은 결코 통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존 밀턴은 교회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기가 막을 내리고 인간이 스스로를 결정할 수 있게 된 새로운 시대에 출판의 자유는 “인민의 생득권이며 특권이었고 어둠을 뚫고 비치는 빛”이라고 말한다.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삶을 엄청나게 바꾸어 놓은 지금도 존 밀턴의 이 말은 여전히 큰 울림을 전한다.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Print.html?idxno=34072
첫댓글 아, 이제 좀 쉬워졌어요!^^;;
좋은 글 계속 부탁합니다~~♧
아, 이 책은 절판됐어요~ ㅎ
@박상익 넵, 알고 있는데용...
'아레오파기티카' 언감생심이었다가...but now 그것에 대한 이해가 더 쉬워졌다는 뜻이죠!^^
@우산 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