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확장
노 선생은 기독교 신앙이 학문과 사상, 나아가 궁극적으로 문학을 바꾸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했다. 단테, 밀턴, 파스칼, 키르케고르, 도스토옙스키 같은 인물이 한국기독교에도 나와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한 말씀이다. 선생의 무교회에 대한 기대 수준은 정말 높았다. “한국 교회는 숫자는 많으나 내용(콘텐츠)이 빈약하니 무교회가 내용을 생산해 읽을거리를 공급해줘야 한다”라고 누누이 강조하셨다. 하지만 『선데이서울』과 ‘동네 축구’ 수준으로 무슨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을까. 한국 무교회의 부끄러운 현실을 돌아본다.
무교회 선구자 밀턴도 기독교 신앙의 확장성을 강조했다. 종교개혁의 출발은 ‘종교’지만, 가정·교육·사회·정치·학문 등으로 진리가 구석구석 확대되고 스며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자신 『실낙원』으로 ‘진리의 확장’을 실천했다. 그리고 ‘진리의 확장’을 위해 언론·출판·표현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아레오파기티카』의 핵심이다. 무교회에도 진리의 확장을 위한 뜨거운 토론의 장이 형성되었으면 한다. 임세영 교수가 말한 무교회학파의 성립을 기대해본다.
노 선생은 기독교 신앙과 가치관이 세상에 스며들어 보편적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칼라일 말처럼 “땅이 하늘을 많이 닮아 해로울 일은 없다.” 그 목표를 이루는 수단은 ‘진리’였다. 이념은 다르지만,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유진 제노비즈의 ‘진리에 의한 사회 변혁’을 떠올린다. 미국 신좌파 역사가 유진 제노비즈는 인문학 진리의 탐구야말로 ‘최고의 정치투쟁’이라고 역설하면서 아스팔트 운동권을 경멸했다. ‘진리의 힘’에 대한 이런 놀라운 신념은 이념을 초월해 배울 필요가 있다.
김교신 선생도 ‘진리의 힘’을 믿었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를 연재할 무렵 함석헌 선생의 글을 대하는 김 선생의 태도에는 흥분과 긴장과 설렘이 보인다. 행간에 자부심과 기쁨이 넘친다. 『성서조선』에 「조선역사」와 「조선지리소고」가 실린 1934년은 마침 개신교 전교 50주년이 되던 해였다. 그 해 33살 두 청년이 나란히 세기의 명문장을 남겼다. 김 선생은 「조선 역사」야말로 기독교 병원, 기독교 학교를 뛰어넘는, 전교 50년의 최고 업적이라고 극찬했다. 김 선생은 겸양의 뜻으로 함 선생에 대해서만 칭송했지만, 나는 「조선지리소고」야말로 「조선 역사」에 못지않은 개신교 50년의 금자탑이라고 평가한다. 함 선생의 「조선 역사」가 현묘 유장한 고담준론이라면, 김 선생의 「조선지리소고」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학자의 글이다. 맑고 투명한 보석 같은 문장이다. 영문학자 이현원 선생은 김 선생의 문체를 퓨어 스타일(pure style)이라고 했다. 김 선생의 성품을 보라. ‘문체가 곧 사람(The style is the man)’이란 영어 속담 그대로 아닌가.
김 선생이 평화로운 시대를 살았더라면 전공인 지리·생물·지질학에서 무교회주의적 통찰과 문제의식을 담은 위대한 문장을 많이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함 선생과 다른 스타일의 명문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모름지기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조선지리소고」를 기독교 진리의 확장성을 보여준 롤모델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