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創軍의 苦難史 제48회》 ☆공산주의를 신봉하며 정부 전복과 창군을 방해하다 🐕 죽음을 당한 빨갱이들의 말로 ☆ 4.남부군 사령관 이현상 이현상은 1905년 전라북도 금산군 군북면(현, 충남 금산군 북일면)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 중앙고보 재학중이던 1925년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여 공산주의자가 되었습니다. 1927년에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였습니다. 그의 부친이 군북면장을 하고 자기 형들 두명도 모두 면장을 하였는데 그들의 도움으로 서울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하면서도 생활에는 불편이 없었습니다. 해방이 된 조국에서 또다시 박헌영의 남로당에 입당하여 박헌영의 신임이 두터웠습니다. 박헌영이 월북하자 따라서 월북을 하여 강동정치학원에서 남파 무장간첩 교육을 받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이 되었으며 태백산 줄기를 타고 남파하여 지리산까지 내려왔습니다. 48년 10월 여수 14연대가 반란을 일으키고 반란군이 지리산으로 입산했을 때 북으로부터 반란군은 지휘하라는 지령을 받았습니다. 49년 4월에 반란군 주모자 김지회와 홍순석이 사살된 후부터 이현상이 지리산, 덕유산, 회문산 일대의 빨치산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여 인민군이 낙동강 전선으로 남하하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철도와 교량 등 국군의 병참선을 파괴하고 국군의 보급차량을 급습하는 등 게릴라 활동으로 국군의 후방을 교란하였습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철수하자 이현상도 버틸 수 없음을 깨닫고 북으로 철수를 하는데 박헌영 부수상의 직계인 이승엽(서울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북으로 가지말고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이라는 명칭으로 남한전체의 빨치산을 지휘하라"는 남부군 사령관 직위를 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이현상이 "남부군 사령관"이 된 것이고 이후 북으로 가지 못하고 지리산에서 왕초 노릇을 하며 북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실체도 없는 공산주의 지상낙원을 꿈꾸며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 망나니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쓸모가 없어지자 김일성은 박헌영의 남로당파를 제거할 때 이현상도 남로당파이므로 제게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의 지령을 받은 북로당파인 전북도당위원장 방준표와 전남도당 위원장 박영발에 의해 무장해제 되고 남부군사령관 직위도 해임되어 평당원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렇게 평당원으로 얼마동안 종군하다 53년 9월 17일 하동 쌍계사 뒤 의신리 빗점골 너덜바위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이현상은 경찰과 군인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당시 군의관의 검시결과 아주 가까운 지근거리에서 목에 총을 겨누고 쏜 것으로 보아 방준표와 박영발의 지령을 받은 북로당파 저격수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이현상은 5년여 동안을 추위와 굶주림에 떨면서 지리산과 덕유산을 오가며 산짐승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오로지 김일성을 태양처럼 모시고 충성했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과 🐕 죽음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공산주의자들이 걸어온 잘못된 길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 한국의 좌파들은 김정은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언행을 일삼고 있는걸 보면, 한편 불쌍한 생각까지 듭니다. 요즘 뉴스를 보니 어느 지상파 방송은 대놓고 이란을 옹호하고 미국을 비판하는 방송을 계속 내보내고 있는데, 국제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고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으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 月 谷 -
출처: 憂國衷情(우국충정) 원문보기 글쓴이: 마당쇠(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