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3일, 이란 혁명수비대의 촘촘한 방공망을 뚫고 저공 비행하던 F-15E 스트라이크 이글 전투기가 불뿜는 미사일에 피격당했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기체는 화염에 휩싸였고, 두 명의 조종사는 사막 한복판으로 비상 탈출했다. 한 명은 추락 직후 신속히 구조되었으나, 나머지 한 명의 행방은 묘연했다. 이란 당국은 즉시 실종 조종사의 목에 6만 달러 (한화 약 8천만 원)라는 파격적인 현상금을 내걸었다.
라디오와 SNS를 통해 "미군 조종사를 생포하는 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선전이 사막 전역에 울려 퍼졌고, 현상금을 노린 혁명수비대와 무장 세력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수색망을 좁혀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미군은 올인(All-in)을 선택했다. 구조를 위해 투입된 UH-60 블랙호크 헬기는 이란군의 집중적인 지상 사격에 노출되어 기체가 피격되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했다. 조종석 계기판이 경고음을 울리고 대공포탄이 헬기 주위를 스쳐 지나갔지만, 구조팀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적진 깊숙한 곳에서 홀로 고립된 전우의 거친 숨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흐르는 한, 후퇴는 없었다. 결국 미군은 현상금 사냥꾼들보다 단 몇 분 먼저 조종사를 찾아냈고, 빗발치는 포화를 뚫고 그를 하늘로 끌어올렸다.
어떤 희생과 비용이 들더라도 자국민을 반드시 구출해 내고야 만다는 이 집요함! 미국이라는 거대한 엔진을 움직이는 가장 뜨거운 연료는 바로 "단 한 명도 남겨두지 않는다(Leave no man behind)"는 철칙이다. 이게 바로 다인종·다문화 사회를 하나로 묶는 미국식 애국주의(Patriotism)의 실체이자 국가의 존재 이유다.
미국식 애국주의의 진면목은 화려한 승전보가 아닌, 고요한 활주로 위에서 완성된다. KBS 미국 특파원 시절, LA 국제공항(LAX)에서 목격한 한 장면은 국가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웅변하고 있었다.
6.25 전쟁터에서 산화하여 차가운 이국 땅에 잠들어 있던 미군 용사의 유해가 반세기를 훌쩍 넘겨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날이었다.비행기 문이 열리고 성조기에 싸인 유해함이 모습을 드러내자 활주로는 정적에 잠겼다. 그곳에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구부정한 허리로 남편을 기다리는 100세의 흑인 노파가 있었다. 그녀는 70년 전,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며 떠난 젊은 남편의 마지막 뒷모습을 가슴에 묻고 평생을 홀로 버텼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거릴 세월이었지만,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어제 일처럼 뜨거웠다.
놀라운 것은 국가와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지역 방송사 ABC 뉴스는 이 용사의 귀환을 정규 뉴스보다 우선하여 무려 3시간 동안 전 과정을 생중계했다. 유해를 실은 운구 차량이 묘지로 향하는 고속도로, 그 거대한 행렬 주변의 모든 차량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갓길에 멈춰 섰다. 운전자들은 차에서 내려 모자를 벗고 가슴에 손을 얹었으며, 경찰 오토바이 수십 대가 전조등을 켜고 최고의 예우로 호위했다. 안장식에는 시장과 지역 유지들이 빠짐없이 참석해 이름 없는 용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반세기가 흘렀어도 "당신을 결코 잊지 않았다"는 국가의 약속이 실현되는 순간, 묘지 주위를 둘러싼 각기 다른 피부색의 시민들은 하나의 '미국인'으로서 무언의 동질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미국 사회에서 제복 입은 영웅들에 대한 존경과 존중은 인위적인 교육의 산물이 아니라,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문화적 토양이다. 어느 국내선 여객기 안에서 목격한 장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탑승이 한창이던 프레스티지석에 한 노신사가 앉아 있었다. 그때 앳된 얼굴의 젊은 병사 한 명이 무거운 군장을 메고 좁은 이코노미석 통로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노신사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병사를 불러 세웠다. "자네, 이 자리에 앉게나. 당신들이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니, 이 정도 자리에 앉는 것은 당신에게 마땅한 권리일세." 노신사는 자신의 비싼 좌석을 병사에게 내주고 좁은 뒷좌석으로 향했다. 놀라운 것은 주변 승객들의 반응이었다. 누구 하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미소와 박수로 노신사의 선택에 화답했다.
이러한 풍경은 일상의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제복을 입고 식사를 마친 군인이 계산대에 서면 점원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이미 저쪽 테이블 손님이 계산하고 가셨습니다. 당신의 서비스에 감사드립니다." 이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이들의 태도다. 너덧 살 먹은 꼬마들이 군인을 보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달려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서툰 경례를 붙인다. 그러면 병사는 식사 중이더라도 즉시 일어나 절도 있는 답례 경례를 보내며 아이의 눈을 맞춘다. 이것은 단순히 예의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가치가 세대를 거쳐 어떻게 심장으로 전수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뜨거운 교육의 현장이다.
2012년 9월 11일, LA 다저스 구장은 거대한 거울이 돼 미국인의 심장을 비추고 있었다. 테러 비극으로부터 11년이 흐른 날, 야구장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장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성당으로 변모했다. 경기 직전, 외야 전체를 뒤덮는 초대형 성조기가 서서히 펼쳐졌을 때 다저스 구장을 가득 메운 4만 관중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그 성조기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이들은 당시 구조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과 경찰관들이었다.
그들의 거친 손마디가 성조기를 팽팽히 당길 때, 장내 아나운서가 국가(國歌)의 시작을 알렸다. 4만 명의 목소리가 하나로 뭉쳐 "The Star-Spangled Banner"를 제창하자 야구장은 거대한 진동에 휩싸였다.
투수 류현진 선수를 취재하러 간 기자석에서도 심장 박동이 귓가에 들릴 만큼 강렬한 전율이 느껴졌다. 압권은 노래의 절정에서 시작됐다. 머리 위로 굉음을 내며 대열을 맞춘 전투기들이 경기장 상공을 가르는 애도 비행을 선보였고, 전광판에는 순직 소방관과 경찰관 400 여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새겨졌다. 피부색도, 태생도 다른 거대한 관중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우주적 통합>이 무엇인지 보여 주었다.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는 이런 현상을 시민 종교(Civil Religion)라고 분석했다. 성조기라는 상징과 국가라는 노래 아래, 파편화된 개인들이 미국인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용해되는 순간이다. 이 거대한 서사는 단순히 애국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정서적 답안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마지막, 숨을 거두는 밀러 대위가 라이언에게 남긴 유언은 "Earn this (가치 있는 삶을 살아라)"였다. 이 짧은 문장은 국가의 헌신이 개인의 가치 증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도덕적 선순환>의 핵심을 관통한다.
국가가 단 한 명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줄 때, 시민은 자신이 누리는 자유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미 지불된 삶> 임을 깨닫는다. 개인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가치 있는 인생을 일궈내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희생에 보답하는 가장 적극적인 응답이다.
한국 사회 역시 보훈을 금전적 보상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승인(Social Recognition)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일상 속에서 제복 입은 이들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박수가 문화적 토양으로 뿌리내릴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통일 시대와 다문화 사회를 지탱할 도덕적 결속력을 얻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