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의 사회상
박정희의 가장 큰 업적은 거지의 나라를 잘 사는 나라로 만든 것이다. 일자리를 폭발적으로 양산해 냈고, 해외 과학자들을 대거 유치, 과학단지를 만들어 기술소화력을 높였고, 경험 없는 기업에 생산방법과 품질관리를 지도케 했다. 방위사업 공단을 만들어 자주국방을 향한 무기생산능력을 키웠고, 호전적인 북괴의 무력 도발과 간첩침투를 봉쇄하기 위한 공안 시스템을 강화했다. 이 모두가 박정희 만이 할 수 있었던 기적들이었다. 장면과 김영삼은 무능해서 어림도 없고, 김대중, 노무현은 우리가 경험했다시피 빨갱이들이 아닌가?
박정희가 이러한 기적을 일구어내고 있을 때 김영삼이나 김대중 같은 선동적 정치꾼들은 박정희를 끝없이 모함하는 한편, 유언비어 등으로 국민을 선동하여 열심히 뛰고 있는 박정희를 못살게 굴었다. 국가 경영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이 두 사람, 애국과는 거리가 먼 정치꾼들에게 국가를 순순히 내맡기는 사람이었다면 박정희는 애국자가 아니었다. 애국자라면 방해꾼들을 때려 눞이고 국가를 반듯하게 건설하여 후손에 물려줄 생각을 굳혔을 것이다. 그는 싱가프로의 이관유 수상처럼 그 역시 때를 기다려 국가를 물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오직 한 사람의 영웅에 의해 앞으로 앞으로 달리던 한국이 1979년10월26일에 일대 혼란기를 맞게 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라는 자기도취증에 빠진 인간적 배신자에 의해 만찬 자리에서 살해되자 그 동안 눌려 지내던 정치 협잡꾼들과 불순세력이 마치 살길이라도 만난 듯이 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작정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만을 생각했던 얼치기 식자들과 학생들이 마치 때를 만났다는 듯이 민주화, 자유화를 외치며 기존 질서에 항거하여 무정부 상태를 연출해 냈고,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은 이러한 민주화 세력과 연대하고 선동하면서 각기 대통령이 되겠다며 무질서를 더욱 부축이고 있었다. 하지만 최규하 당시 대통령은 영국의 체임벌린과 같이 유약하여 이러한 무질서를 통제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1980년 전반기는 1960년 장면시대를 방불케 했다.
이 때 북한은 어떤 조치들을 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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