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는 김대중의 심복이었던 윤상원이 일으켰는데,
부마사태 역시 윤상원이 선동하였습니다.
윤상원 추종자들이 펴낸 윤상원 평전에
윤상원이 YH 사건 주동자로, YH 사건이 부마사태를 터뜨렸고,
10.26 사태로 이어졌다는 서술이 나옵니다.
그런데, 광주사태 때 윤상원이 폭동 선동을 위해 내걸었던
투쟁선언문과 부마사태 선동자들이 내걸었던 폭동 선동문이 일치함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요?
● 부산대학교 민주투쟁선언문
YH사건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국회의원직 제명 등 말기적 증세를 보이던 박정회정권은 10월 15일 부산대학교의 시위로부터 시작된 부산, 마산의 반유신항쟁으로 붕괴국면으로 돌입하였다. 부마항쟁에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일반시민들도 합류하였으며, 조직적인 도시봉기의 일면도 지니면서 4월혁명 이 후 최대규모로 전개되었다. 다음 자료는 10월 15일 부산대학교 시위 때 뿌려진 '부산대학교 민주학생 일동' 명의의 민주투쟁선언문이다.
한민족 반만년 역사 위에 이토록 민중을 무자비하고 처절하게 탄압하고 수탈 한 반역사적 지배집단이 있었단 말인가?
식민지적 경제구조를 온존시키고 그 위에 원조와 차관경제로써 허세를 부리면서 GNP와 수출만능으로 대외의존을 심화시켜온 매판기업가와 관료지배세력은 농촌경제의 파탄과 이로부터 쫓겨나온 대다수의 도시근로자가 셋방살이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신음하며 병든 근대화의 표상이 되어 자신들의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생활과의 대립이 첨예화함을 두려워하여 모든 경제적 모순과 실정을 근로자의 불순으로 뒤집어씌우고 협박, 공포, 폭력으로 짓눌러왔음을 YH사건에서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저들의 입으로나마 나불대던 민주공화국의 형식논리마저도 이제는 부정함을 야당의 파괴 음모에서 깨닫게 하여 주었다.
우리는 학원이 정의와 양심의 최후 보루라는 것을 멀지 않은 역사에서 배워왔다. 적과 마주하여 스스로 펜을 총으로 대신하였고 민주주의의 혼이 꺼져갈 때 피를 흘리며 쓰러져간 선배 형들의 끓어오르는 함성이 귀에 메아리쳐옴을 어찌 하랴! 학우여! 오늘 우리의 광장은 군사교육장으로 변하였고 자유로운 토론은 정보원과 그 앞잡이 상담지도관과 호국단이 집어삼키지 않았는가! 타율과 굴종으로 노예의 길을 걸어 천추의 한을 맺히게 할 것인가 아니면 박정희와 유신과 긴급조 치 등 불의의 날조와 악의 표본에 의연히 투쟁함으로써 역사발전의 장도에 나설 것인가? 불을 보듯 훤한 이 시대의 비리를 바로잡을 역사의 소명 앞에 아무 두려움도 아쉬움도 남김없이 훨훨 타오른다. 오직 오늘 보람있는 삶과 내일 부끄럽지 않은 과거를 갖기 위하여 우리는 이제 투쟁의 대열에 나서는 환화를 찾는다.
학우여! 동지여! 독재파의 논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모여 대열을 짓고 나서자!
꺼지지 않는 자유의 횃불을 들고 자유민주주의의 노래를 외치면서.
yahak.or.kr/data/2/his/23.htm
첫댓글 사람들은 부마사태를 부산 사람들이 일으켰다고 생각하지만 박노해 시인 등 윤상원 추종자들이 남긴 기록에 의하면 김대중의 전리도 조직이 시초부터 부마사태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주목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