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펜 풀르트
요즘 저녁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약 한 시간정도 반복하는 일이 있다.
펜풀르트라는 악기를 다루고 있다. 입으로 부는 단순한 목관악기인 펜풀르트는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생긴 가장 오래된 악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친숙한 악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입으로 부는 악기종류는 대나무 하나에 구멍을 달리 뚫어서 소리의 음을 조절한다면, 펜풀르트는 길고 짧은 관을 길이의 순서대로 조립해서 만든 취주악기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일단 소리가 자연의 소리라서 친근감이 더 드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필자가 이 악기를 선택한 배경에는 여러 계기가 있었다.
우선 노래를 좋아하면서도 악기 하나도 다루지 못하는 나 자신이 소침해보였기 때문이다. 그 흔한 피리나 하모니카, 또는 기타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악기에 관심이 없고 음감이 전혀 없었더라면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고향동네에서 멋지게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선배들과, 교회 처음 나갈 때 복음성가를 기타 치며 가르쳐준 교회 총각 전도사님의 모습은 부러움 자체였다.
더구나 바로 밑의 동생은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을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취미생활로 한 가지 정도는 악기를 다루고자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었다. 나름대로 몇 가지 기준을 마음에 가지고 있었던 것은, 우선 배우기가 복잡하지 않아야하고 휴대하기도 간편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들었던 팬풀르트 소리가 마음에 와 닿았다.
기계음이나 인위적으로 내는 소리가 아닌 자연에서 나온 재료이고 자연의 소리가 호기심을 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휘파람을 불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이유는 말하지 않으면서 제제를 했던 기억들이 있다. 그럼에도 흥에 겨우면 자연스럽게 휘파람을 불었다. 산골에서 살다보니 여름에 들리는 휘파람새의 소리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었다.
이처럼 익숙한 산새 소리이기에 펜풀르트를 선택한 것이다.
이 악기를 처음 접한 것은 결혼 때 동생이 선물로 주어 처음으로 다루게 되었었다.
어떻게 할지도 몰랐지만 그저 불면 조금씩 소리가 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다가 책을 사서 공부를 했다. 하지만 모든 악기가 그렇듯이 호락호락 내주지를 않았다.
징검다리 건너듯 음을 찾고 연습하지만 조금만 하면 입술에 피가 나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지만 아랫입술 바로 밑에다 펜풀르트 관을 대고 부는 바람에 자극을 받은 부위에 피가 나며 쓰라렸다.
그러다가 늘어나지 않은 실력에 포기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잊어버리다가
겨울에 심심하면 한 번씩 연습을 하였다. 하지만 한 시간만 하면 또 입술에 피가 나고 아파서 중단하면서 한 해를 보내며 반복하다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서투른 노래가 어줍잖게 들리지만 갈 길은 멀기만 했었다.
그러다 스마트폰이 나오고 유트브가 생기면서 영상으로 팬풀르트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음색도 알고, 주법도 이해하며 고수들의 연주도 감상하며 연습을 자주 하게 되었다. 어떤 때는 잘되다가 또 어느 시간에는 팽겨치고 싶을 정도로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 시간을 내서 부르다보니 어느듯 입술에 더 이상 피가 나지 않았다. 이제야 조금 숙달된 과정에 접어든 것 같다. 흔히 말하기를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처럼 문자 그대로의 연습이었다.
판소리 명창(名唱)이 되려면 득음(得音)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소리를 지르다보면 목에서 피가 나고 소리가 안나오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수련하면 자유자재로 어떤 소리도 소화시키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어느 악기나 최소한 만 시간 이상 연습해야 통달(通達)한다고 한다.
아직 그 시간에는 도달하지 않았지만 계속 하다보면 높은 수준의 연주솜씨를 드러내는 그날이 오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연습은 주로 찬송가를 하고 있다. 내가 아는 찬송가는 혼자서는 거의 부를 수 있지만 아직 남들 앞에서는 미숙함이 많이 있다.
그래도 저녁마다 연습하면 아내는 거기에 맞추어 찬송가를 따라 부르며 즐거워한다. 아내도 부러워서 악기 하나를 배우고 싶지만, 음감이 워낙 없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은 열심히 은혜롭게 노래하지만 음을 다르게 부르면서도 틀린지도 모르는 기본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또 한 악보를 정확히 볼 줄 모른다.
찬송가 첫 음만 몇 번 소리를 내다보면 그 다음은 악보를 안보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늘 자주 부르는 찬송가이기도 하지만 절대 음감을 조금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펜풀르트를 연주하면서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다.
늘 듣기만 했던 악기를 이제는 직접 연주하는 뿌듯함이 생활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정신건강과 삶의 여유로움이 되는 시간이다.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부를 수 있고 너무 요란하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적당한 소리를 내기에 만족감을 더 주고 있다.
유럽인들은 중산층의 조건 중에 하나로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것을 포함한다.
늘 바쁜 중에도 망중한의 삶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 악기를 연습하며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주위에 있는 요양원에 찾아가서 위로의 연주를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더 바란다면 다윗이 사울왕 앞에서 수금을 탈 때 악신(惡神)이 물러갔듯이, 정신적인 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연주를 통하여 치유의 은혜가 있으면 좋겠다.
하나님 말씀과 천혜의 자연풍경을 갖춘 이 지역에서 자연농법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며, 영혼의 위로와 쉼을 주는 음악으로서, 갈수록 늘어나는 현대적인 여러 질병을 치료하는 전인적 치유목회를 소망하며 오늘도 열심히 훈련하며 기도한다.
활뫼지기 박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