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마 픽업트럭
지금의 활뫼마을에 내려오면서 가장 필요를 느낀 것이 있었다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운행수단이었다. 도시에서 교회 차량을 운행하다가 시골에 와보니 정말 필요성을 더 느끼게 하였다. 도시는 자가용이 없어도 대중교통이 원활하지만 시골은 한 번씩 면 소재지를 다녀오려면 한나절이 지나가버렸다. 빈집을 구입하여 오자마자 재래식 부엌을 입식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철물 하나 사더라도 가게가 있는 소재지나 읍내로 나가야 했다. 다행히 중고 자전거를 가져와서 아쉽지만 우선 요긴하게 사용했었다. 그럼에도 도시 맛을 본 필자로서는 여간 불편한 환경이 아닐 수 없었다. 가족들과 동행할 경우는 더욱 난감했었다. 그 당시 마을 주민들도 트럭 자가용은 몇 가정이 있었다. 그 외 대부분은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편이었다. 개척교회 중 어려운 형편이지만 고심 끝에 결혼 예물을 팔아서 오토바이를 장만했다. 공사하는데 기동성이 있어 많은 시간을 절약하며 때로는 온 식구가 같이 타고서 가까운 처갓집에도 갈 수 있었다.
이후 서울의 동광교회와 연결되어 중고 승합차를 지원받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동네에서 유일한 승합차라서 다양하게 주민들과 성도들을 섬길 기회가 많이 있었다. 이후 지금까지 승합차는 계속 운행하며 부족함 없이 지내왔었다.
5년 전에는 C 회사의 픽업트럭을 신차로 구입하였다.
평소 부러워했고 원하였던 나에게 꼭 필요한 차량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몸 밑천인 형편에 도저히 마련할 수 없는 환경이기에 지나가는 차를 볼 때마다 기도만 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같이 삼 년 만에 기도 응답으로 트럭을 구입하게 되었다. 이 차량을 간절히 원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 실용성과 편리성이다.
교회 승합차는 낡은 차라서 장거리를 가는 경우에는 심한 소음 때문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한 번 씩 다녀오면 피곤함으로 그 다음날에는 쉬어야만 일상생활을 지속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시골에서 농사도 짓고, 건축도 하며 다양한 활동에서 픽업트럭은 안성맞춤의 동력이다. 사륜구동이라서 일반 트럭이나 승용차가 갈 수 없는 험한 길도 넉넉히 접근하는 차량이다.
그동안 화물을 실을 경우에는 옆집에서 빌려 사용했다. 그렇다고 화물차를 구입하기에는 이용률이나 경제적 형편으로는 무리였다.
그리고 또 승용차처럼 장거리도 자주 사용하는 필자의 활동상 이 두 가지의 요건을 다 만족할 수 있었다. 농촌에서 살아가며 미자립 교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교회의 형편상 최대한 유지비를 줄이고자 화목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
월동준비를 위해서 땔감을 싣고 올 때나 농사를 위해서 짐을 싣고 다닐 때는 영락없는 험한 트럭의 모습이다.
일반 트럭만큼 많은 짐을 실을 수는 없으나 뒷문을 열면 적재함이 늘어나서 꽤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었다.
외부로 재능기부 봉사를 할 때는 공구들과 필요한 자재를 싣고 다닐 수 있는 편리한 면에서는 더욱 만족감을 주는 차량이다.
그러다가 깨끗이 세차를 하고 길을 나서면 또 매끈한 승용차 같은 변신된 나의 애마이다. 필요에 따라 차의 기능을 다 감당하는 픽업트럭은 개척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서슴지 않았던 서양인들로부터 전해온 차량이다.
농어촌 교회를 개척하여 삼십 년이 다가오는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나의 목회가 마치 픽업트럭 같은 일꾼 노릇을 한 것 같다.
처음부터 같이 생활하며 산다는 마음으로 내려왔기에 주민들과 하나 더불어 살아왔던 것이다. 농부들처럼 허름한 옷을 입고 농사도 지어왔으며 오랫동안 건축을 하면서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노동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텃밭에서나 마당에서 일하는 필자를 보고 담임 목사를 찾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예배 시간이 되면 목회자로서 외모와 내면적으로 준비하고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가끔씩 외부로 공적으로 나갈 때에는 양복에 넥타이를 한 차림에 나 자신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곤 한다. 늘 모자를 쓰고 일하기에 햇볕에 그을려도 며칠만 음지에 있으면 금세 하얘지는 피부는 부모로부터 무려 받은 선물이었다.
그리고 도시의 지인들을 만나면 시골 사람 같지 않다는 말을 종 종 듣는다.
픽업트럭을 험하게 사용하며 다양하게 다루다 보니 전천후 자동차로서 손색이 없지만 해가 갈수록 여러 흠집이 생겼다. 목수의 손이 그 경륜을 말해주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헌차의 표적(表迹)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자동차의 기본은 유지되며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변함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
필자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닥치는 대로 교회와 마을의 맥가이버처럼 열심히 살아온 세월의 흔적으로 얼굴에 잔주름이 늘어가고 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손재주로 인해 봉사의 기회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실수도 반복하며 벗쟁이처럼 지나온 시간들이었다.
자동차를 쓰면 쓸수록 흠이 생기고 부속이 점점 낡아지듯이 닳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기계이다. ‘늙어 소멸하기보다는 닳아 없어질 몸이 되기를 바란다’는 어떤 분의 말처럼 주님이 기뻐하시는 봉사라면, 필자도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지 섬기고자 한다.
자동차를 자신의 얼굴 인양 몸을 가꾸듯 닦고 광내며 화장하는 사람들처럼 대우하지는 않지만 필요시 제 기능을 다하는 픽업트럭에 항상 만족하며 감사하고 있다.
필자 역시 가는 세월 앞에 잔주름이 하나씩 늘어가며 쇠퇴해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지만, 나의 도움을 요구하는 곳에서 기꺼이 영,육간, 지원을 해주는 샘물 같은 이웃의 한 사람이 되기를 늘 준비하고 있다.
활뫼지기 박종훈
몸 밑천 ; 가진 것이라고는 몸뿐이고 무일푼이라는 몸을 밑천으로 함.
벗쟁이 ; 일에 익숙하지 못한 바치(장인), 또는 뭔가 배우다 그만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