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꿈이 이루어지다.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
교회당 이층에 벽마다 손수 만든 소나무 책장에 책들이 가득 채워진 모습이다.
아이들부터 청소년 그리고 어른들도 볼 수 있으며 신앙적인 책 외에도 일반적인 다양한 책들이 있다. 자신들을 보아주기를 바라는 꽃들처럼 얌전히 꽂혀 있다. 이 공간 외에 작은방에도 공간만 있으면 책꽂이를 만들고 그곳에 책들을 놓았었다. ‘활뫼 작은 도서관’ 이란 간판을 달아놓고 이용을 바라는 마음으로 책들을 구비시켜 놓았다.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기여한 단체가 있다.
서울 큰 나무 교회 선교회의 ‘보리책다섯팀’에서 필자가 원하는 책을 보내주었다.
코로나로 인해 늘 집에만 있어야 하는 이 시기에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이 기간이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곳 활뫼마을에 이사 오면서부터 시작된 건축과 목회로 늘 숨 가쁘게 지내면서 마음속에 여유로운 독서의 시간을 꿈꾸어 왔었다.
이제는 그렇게 바라던 환경이 된 현실을 맞이하며 문득 50여 년의 필자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소년 시절에 자연 속에서 숲과 들판을 뛰어다니면 심심할 시간이 없지만, 날씨에 따라 집에서 지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유일한 문화시설은 트랜지스터라디오가 전부였다. 또래 아이들은 다양한 딱지놀이나 못 치기 등 여러 놀이를 하며 지냈다. 하지만 필자는 왠지 남과 경쟁하는 놀이에는 흥미가 없었다. 우선 순발력이 늦어서 매번 해봤자 지는 바람에 약이 올라서 차라리 안 하는 것이 편했다. 그 대신 책을 보는 것이 가장 기쁨을 주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면 소재지를 가려면 십 리도 넘는 먼 거리이다. 고향은 산촌이다 보니 책을 마음껏 접할 수 없는 환경이 아니다. 어쩌다 책을 빌려보는 기회가 있으면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책을 보곤 했었다. 그 당시 제일 부러운 것은 집에 책장에 책을 가득 채운 집이다. 동네 남의 집에 전시용으로 장식한 위인전집을 사정하며 빌려다 본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러면서 내 맘대로 마음껏 책을 구비하고 보는 세상이 있을까? 하는 그 당시에는 막연한 꿈을 꾸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장에 책들이 구비되어 있다. ‘아! 얼마나 행복한 고민인가?’ 어린 시절의 꿈이 이루어짐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비단 책에 대한 꿈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몇 가지 부족함으로 소원이 되는 꿈이 있었다. 동네에서도 가난한 집이기에 다른 집과 비교해서 아쉬운 것이 많았다.
단칸방에 삼남 일녀로 다섯 식구가 거주하기는 너무 부족했다. 작은방 하나가 있지만 겨울에는 거주하기가 힘들고 겨우 혼자서만 누울 수 있었다. 장남인 필자는 십 대 후반부터는 늘 남의 사랑방이나 친구들 집에서 자는 경우가 많았다. 방이 여러 개가 있는 집은 당연히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교회당을 포함해서 수십 명이 와도 숙박이 가능한 곳에 살고 있으니 부자가 따로 없다. 시골집들은 보통 넉넉한 터를 소유하는 것이 일반이지만 그 당시 고향의 집은 적을뿐더러 마당과 뒤란에도 흔한 과일나무 한 구루 없었다. 그나마 있는 마당의 한구석은 돼지우리와 거름 터, 그리고 타작을 위해 비워두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뒷마당은 장독대가 차지하고 있다. 특별한 간식거리가 없었던 그 시대에 과일나무는 아이들에게는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미처 익기도 전에 감이나 대추를 따먹는 조급함도 그 당시 흔한 풍경이었다. 과일이 익을 즈음이면 남의 집이나 산에서 밤이나 감을 주어오는 과정에 마음 졸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은 수 십 그루의 실과나무가 다양하게 심어져있다. 가까운 뒷산에는 가을이면 밤알이 절로 떨어져도 주워가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흔하다.
모든 것이 풍성한 시대를 살아가는 환경으로 먹거리도 달라진 풍속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소년 시절 탈것이 부러웠던 것이다. 남자들은 아이 때부터 자동차 같은 장난감을 좋아한다. 늘 걸어 다니는 그 시대에 조금이라도 편안히 탈것은 아이들이 최고의 부러운 도구였다. 소달구지나 리어카, 자전거는 보통 집에서는 가지고 있었다. 시오리나 되는 먼 길을 두발로 걸어 다녀야 하는 필자로서는 타고 다니는 것에 당연히 소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먼 거리도 오고 갈 수 있는 편리한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
마지막 한 가지는 주위 환경에 대한 개인적인 바람이다.
고향은 야트막한 숲으로 둘러싸여 나중에 국내 최대의 야산 개발이 된 지역이다.
멀리 보이는 산은 높아만 보였고 접근할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이들로서는 동네 주위에서만 작전권(?)이기 때문이다. 멀리 내다보고 싶으면 나무에 올라가는 것이 전부이었다. 지금은 바로 산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어머니의 품 같은 숲이 있다. 오를수록 멀리 보이는 산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 소년의 마음속의 소박한 원함이 사 오십 년 만에 꿈같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드러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았던 꿈 들이다.
다만 학교에서나 누가 꿈을 물어보면 큰 농장을 가지는 농부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현재는 별로 소득이 없지만 법적으로는 어엿한 농부이기도 하다.
문득 성경 시편 37장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라는 말씀이 생각이 났다.
지금의 이러한 환경은 농촌 목회를 하는 목사로 살기에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 것 같다. 정작 그 시절에는 목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목사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목사가 되리라는 바람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목회자가 된 것은 순전히 주님의 은혜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원하지도 꿈꾸지도 안 했던 목사로 부름 받아 마음속에 원하고 부러웠던 소망이 이루어진 현실이다. 지금의 삶은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만족하며 행복을 느끼고 있다. 소년의 꿈이 50년 만에 이루어진 소망이라면 이제 또 다른 50년의 소망을 가져본다. 그것은 산 소망이다. 이 땅의 소망은 죽음이란 한계에 부딪치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허상이다. 때가 되면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을 다 놓아야 하며 잠시 빌려 쓰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제 더 나은 새로운 소망을 꿈꾸며 기다린다. 이 또 한 50년 안에 이루어질 소망이다.
영원히 이어지고 완전하게 누릴 수 있는 천국의 모습을 상상하는 소망이다.
그 소망을 위해 오늘도 삶의 의미를 확인하며 보람 가운데 정진하고 있다.
이 소망을 가지는 자체가 주님의 은혜이고 사랑을 받고 사는 증거이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면 그 기다림의 궁극 점은 우리 모든 인생들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일 것이다. 막연한 본능이 아닌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는 나의 본향이 그곳이다.
활뫼지기 박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