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뫼봉을 아시나요?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은 활모양의 산이 동네를 감싸고 있어 궁산(弓山))이라고 부르고 있다. 북쪽 방향으로 산이 두르고 있고 농가주택들은 남쪽을 향해 자리 잡고 있으며 고창에서 세 번째로 큰 저수지를 끼고 있는 마을이다. 고즈넉한 풍경을 품고 있는 마을 중앙 뒤쪽에 활뫼봉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에서 쳐다보면 단숨에 올라갈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높은 산으로 보인다. 해발 270미터로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다. 마을을 중심으로 양 쪽의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이 있지만, 5부 능선까지는 가파른 길이라서 노약자들은 엄두를 못내고 있다. 오르는 가장 쉬운 길은 마을 입구의 용구바위 옆의 활뫼 산책길 나무 안내판을 따라 가는 길이다. 산 중간에 마을과 호수를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잘 다듬어져 있고 사색하기 좋은 숲길이 마을 끝의 집까지 이어진 길이다. 산책길 중간에 옛날에 산 너머 주산 초등학교를 다녔던 ‘죽맷재’가 나온다. 그 재를 올라서서 오른쪽으로 능선을 따라가는 등산로가 활뫼봉으로 가는 오솔길이다. 늘 변함없이 마을을 내려다보는 활뫼봉을 재발견 한 계기는 사진 한 장 때문이다. 고창이 좋아서 귀촌한 지인이 궁산 마을에 빈집을 구해서 잠시 지내면서 근방의 활뫼봉을 발견한 것이다. 암벽등반과 등산을 취미로 삼은 그 분은 혼자서 주변을 탐방 하면서 활뫼봉의 가치를 사진 한 장으로 남겼다. 서울에서 방문한 친구들과 오후 늦게 활뫼봉에 올라서 노을을 배경으로 담은 사진 전문가의 작품이다. 60십대 두 사람의 모습을 찍은 그 사진은 사진예술이 무엇인지를 금세 느끼게 해주었다. 인생의 노년을 해가 지는 노을로 표현했듯이, 두 분의 이미지와 석양의 배경이 길게 여운을 남기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이러한 멋진 장면이 나오기까지 주변을 정리한 마을 분들의 수고가 있었다. 처음에는 필자와 귀농한 신00선생님과 함께 활뫼봉을 기점으로 산길을 내기 시작했다. 마침 농한기라서 마을 어르신들도 동참하며 활뫼봉을 정리하기로 합의하고 같이 협조하였었다.
옛날 나무꾼들이 다니던 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주민들과 함께 잡목을 제거하면서 길을 정비하였다. 칠십을 넘은 어른들은 맨몸으로도 조심스럽게 지나면서 “이 길을 어떻게 지게에 나뭇짐을 지고 다녔는지 모르겠다!”며 세월이 지나고 세상이 변한 현실을 새롭게 느낀다고 말씀 하셨다.
활뫼봉 정상은 그 옛날 봉화대를 설치했을 것 같은 넓은 공터가 있었다.
십 여 년 전에 죽곡 마을에서 시작해 올라온 산불로 인해 큰 나무들이 일부 죽었고 그 자리에 키 작은 잡목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산 아래 시야를 가리고 있는 잡목들을 동네 분들과 같이 제거하니 사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돋보이는 전광은 남쪽에 자리 잡은 평화로운 궁산 마을과 해리 쪽에서 시작된 갈뫼산을 굽이치며 펼쳐진 궁산호수가 한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밑에서는 전체를 보기가 어렵지만 산 위에서는 다 보이는 풍경을 볼 수 있어 그 가치를 더 느끼게 해 주었다. 강원도 영월의 한반도 지형은 아니지만 갈뫼산을 돌아가며 반달 모양으로 자리 잡은 궁산 호수는 풍부한 수량으로 해리심원면의 넓은 농토를 적시기에 부족함 없는 농업용수이다. 그리고 서쪽방향이 활뫼봉에서는 가장 풍성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때 한 많은 소작농들의 피땀 어린 농토가 이제는 자작농으로 바둑판처럼 정리되어 있다. 사 계절에 따라 변화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다. 이어서 보이는 염전의 특이한 모습도 고창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멋진 풍경이다. 맑은 날씨에는 동호 바다 너머로 펼쳐진 위도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인다. 무엇보다 석양의 노을은 그 어떤 곳에서보다도 더 넓게 멀리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이다.
봄에는 고창에서 가장 넓은 유채 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이다.
그 다음 동쪽으로는 선운산의 산자락이 마치 산악지대가 많은 강원도처럼 보이며 일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활뫼봉은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경관(景觀)할 수 있는 명소의 조건을 갖춘 곳이라 할 수 있다.
북쪽으로는 드넓은 줄포만이 자리 잡으며 부안변산 반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소중한 갯벌과 앞으로 건설될 노을대교를 관조할 수 있어 더 큰 의미를 주는 장소이다.
그동안 고창의 여러 산책길과 이름난 산봉우리를 다녀 보았지만 고창의 특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활뫼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고창은 바다도 있고 강도 있으며 넓은 들판과 야산과 산도 있는 그야말로 고대로부터 살기 좋은 자연조건을 다 갖춘 지역임을 고인돌이 입증하고 있다. 고창에서만 살면 잘 모르지만 외부에서 살다가 오는 분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고창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고창다운 자연 경관의 특징을 한 장소에서 한눈에 다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활뫼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