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한 미 령
가톨릭 신자는 일 년에 두 번 판공성사를 본다. 예수님이 오시는 성탄시기와 성주간을 앞둔 사순 시기에 통회를 하고 죄의 용서를 받는 의식이다. 판공성사에는 두 부류가 있다. 사제 앞에 한 사람씩 고백하는 개별 성사와 단체로 받는 공동성사가 있는데 나는 공동 성사를 택했다. 고해소에 칸막이가 있긴 하지만 신부님께 일대 일로 고백을 한다는 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제는 예수님의 제자이며 대리자이므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성사를 보아야 영적 성장이 된다는 데 기쁨보다 의무감에 눌려 회피하게 되는 것이다.
신부님 말씀이 개별성사는 때를 깨끗이 씻어내는 것이요, 공동성사는 샤워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서 죄의 때가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판공성사를 보는 날 나 같이 소극적인 신자가 많은 듯 의외로 공동으로 성사를 준다는 시간대에 성당 안이 넘쳐났다.
성사 전에 마음의 정화를 위한 참회예절로 묵상영화가 상영되었다. 실화를 토대로 한 체코의 단편영화 ‘MOST’ 였다. 모스트는 체코어로 다리를 의미한다.
영화는 아버지가 어린아들을 자신의 직장에 데려가면서부터 시작이 된다. 아버지의 직업은 배와 기차가 들어 올 때 부산의 영도다리처럼 개폐식으로 다리를 올리고 내리는 일을 하는 다리 관리자이다.
아버지가 기계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잠시 후에 배가 지나갈 거라’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는 기계실의 레버를 움직여 배가 지나가도록 다리를 올리며 강가에서 놀고 있는 아들의 안전을 확인한 후 잠깐 기계실을 비운다. 그런데 그때 다리를 올린다는 빨간 신호등을 보지 못하고 기차가 속력을 내어 달려오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아들이 아버지에게 기차가 온다고 다급히 외쳤다. 그러나 아버지는 기계의 소음 때문인지 아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위험을 감지한 아들은 급한 마음에 다리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다리 밑에 있는 수동레버를 당기기 위해 손을 대는 순간 아들의 몸이 그만 다리 밑 기계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마침 그 광경을 목격한 아버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다리를 내리면 아들이 죽고 다리를 올리면 기차에 탄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아버지는 생사의 기로에 선 아들과 달려오는 기차를 번갈아 보며 안절부절 끝에 결국 다리를 내리고 만다.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여러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을 알길 없는 기차 안에서는 승객들이 웃고 떠들고, 사랑을 나누고······.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밖에서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 관심조차 없다. 기차 안에서 마약을 투약하려던 한 여인과, 아들의 시신을 안고 울부짖는 아버지의 모습이 오래도록 오버랩 되는 장면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저 처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판공성사 전에 참회예절로 상영된 이 영화는 마약과 같은 죄에 빠진 인간들을 살리려고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대신 희생 시킨 하느님의 사명을 각인시켜 주는 영화였다.
우리도 기차에 탄 승객들처럼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눈앞의 현실에 취해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 길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뜻밖의 화재를 당할 수도 있고, 갑자기 병마가 덮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때 목숨을 걸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이나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의사처럼 사명을 갖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희생양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안전하게 살아 갈 수가 있을까.
십자가는 죽음과 생명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십자가를 보면 세로와 가로로 연결 되어있다. 내가 베네룩스 삼국을 여행 할 때 어느 성당에 선가 십자가의 예수님을 두 가지로 그린 성화를 본 기억이 난다. 하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다른 하나는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성화였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상을 세로’ 십자가에서 내리신 예수 상을 가로로 본다면 전자는 희생, 후자는 구원이 아닐까.
죽음으로 가는 고난이 있어야만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부활이 따른다는 것은 성서 속의 진리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 죄도 없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꽃나무들에 눈길을 준다. 십자가와 같은 추위를 이겨내고 하늘을 향해 비상할 듯 눈부신 목련 꽃망울을 보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나는 등에 진 십자가가 무겁다고 몇 번이나 내려놓으려고 했던가. 오늘 내가 고해소에 들어가는 걸 피하고 공동 성사를 본 행위도 어떻게 보면 십자가의 회피일 수 있으리라. 이 계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한 예수님을 본받아 죄를 씻기 위해 받은 보속(補贖)을 사명을 갖고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한 미 령 1988년 월간문학 등단.
수필집 [들꽃은 들에 있을때 행복하다][내 인생의 노트북][어느 은퇴부부의 해외여행기] 동화집[세월호에서 온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