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층
고대 요가의 사상이나 가장 최근의 물리학 이론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존재란 단일한 하나의 실체로 된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서로 관통하는 층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마음의 다양한 층들을 통하여 존재는 가장 거칠고 무딘 물질에서부터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궁극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이들 연속적인 층을 거쳐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 층들은 점차 보다 더 섬세하고 정밀해진다. 요가 수행자들은 육체와 영혼 사이에 있는 정신의 단계들을 다섯 개의 층, 꼬샤kos̍a로 나누었다. 거친 층에서 좀 더 오묘한 층으로 옮겨갈 때, 거기에는 보다 즐겁고 확장된 깨달음이 있다. 계속 이어지는 마음의 층에서, 보다 높은 층은 에너지와 지식의 광대한 저장고를 가지고 있으며, 더 낮은 층으로 미묘한 영향을 미친다.
각 개인이 가진 마음의 다섯 층을 모두 초월하면 ‘영혼’ 혹은 무한의식의 영역, 이른바 수순자아의 내부에 이르게 된다. 어떤 진동이나 상대적 표현을 초월한 이 완전한 평화의 단계에 이르면 저급한 마음의 갈등과 대립은 해소되며, 모든 것은 하나가 된다. 아주 짧은 순간일지라도 이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 한 순간 우리의 전 존재가 느끼는 법열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요가의 목표이며 삶의 목표이다. 즉 그의 안에 내재한 무한하고 지복에 찬 자아를 인식할 때까지 더욱 높은 층의 단계로 마음을 고양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인간의 목표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들은 가장 내면에 존재하는 심오한 그 단계들을 깨닫지 못한다. 단지 낮은 쪽의 두 층, 즉 의식과 잠재의식만을 경험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들 얕은 층들의 끊임없는 표면적 흔들림이 높은 층으로의 초월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몇몇 사람들은 이 소란스러운 낮은 단계들을 꿰뚫고 올라와 아주 잠깐이지만 더 오묘하고 전지적인 초의식의 정신과 감응하기도 한다. 한 줄기 섬광과도 같은 정신적 텔레파시의 반짝이는 경험들을 가지고도 하고, 미래를 예견하거나 엑스타시에의 돌입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작은 에고의 한계가 해체되어 버리고 모든 것을 완전히 포용하는 일체감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그러나 아쉽게도 잠시 후에는 얕은 층들의 부단한 지배가 다시 시작되고, 초월에의 일별은 사라진다. 역사를 통틀어 이 초의식의 세계에 도달하거나, 거기에 남아있기 위해 노력하고, 그 영광과 힘을 인식한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진실 된 자아를 깨닫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망과 고통에 의해 내팽개쳐진 채, 자신들의 진정한 잠재력의 작은 부분만을 사용하면서 무지와 혼란 속에서 자기 자아의 절반도 채 의식하지 못하고 표피적인 삶만을 살아간다. 다시 말해서 마음의 표면만을 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현자는 말한다.
“여기 이 상태에서 그대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대는 벌통속의 밀납과 같다. 밀납이 불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양초가 되어 녹아 타오를 때 비로소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살아있다고 느낄 때는 사실은 이미 죽어 있으며 단지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첫댓글 나마스까~!
2018년~2019년에
"빛이온다" 책자의 내용을 입력했던 공간을 수정하여
2024년 1월부터 전체단톡방에 공유하는 <초의식의 세계를 넘어서> 책자의 내용을 입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