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연못에서(2)
9월은 소멸을 향해 막 첫걸음을 떼는 달이다.
여름내내 9월 중순인 이 때까지 연꽃은 피고 진다.
7월 초순부터 시작한 연꽃은 9월도 한참 지난 오늘까지도
연꽃이 나를 기쁘게 한다.
내가 매양 다니던 커다란 덕진 연못은 연꽃이 거의 끝나고
우리 집 옆 학교의 연못에 연꽃이 아직 곱게 남아 있다
버틀란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과학자들은 대체로 행복하고 예술가들이 비교적 불행하다.”
내가 봐도 물질을 다루는 과학자들은 단순하고 비교적 경제적으로 나은 편이라 보다 행복해보인다.
그에 비해 주로 마음을 형상화하는 예술가들은
물질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신적이므로
생존의 부적응과 민감한 감성으로 인해 아픔이 많다.
프상에는 “당신의 줄기에 핀 고통의 가시, 오 연꽃이여....”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가시’라는 용어가 궁금해서
연꽃 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신기하게도 줄기에 아주 작은 가시들이 돋아 있었다.
그 가시들이 고통이자 아픔일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들의 아픔이란 이런 가시와 같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고호, 베토벤, 미켈란젤로 등 그들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할 수 있고
그 가시가 그토록 위대한 작품, 즉 연꽃을 피웠을 것이다.
모든 진화는 이런 식으로 나간다.
가장 거친 뿌리(정체원리)로부터 쉽게 움직이는 가지와 이파리(변화원리), 그리고 가장 정묘한 꽃(지각원리)으로 향한다.
꽃은 욕구의 씨(삼스카라)를 남기고 소멸하고
씨는 다시 생을 되풀이한다.
소멸이 차차 다가오는 9월,
여름의 폭염과 장마도 건들일 수 없는 고통의 가시는
연꽃을 이토록 눈부시게 했다.
어쩌면 내가 이번 해에 유달리 연꽃에 연연한 것은
삶의 소멸이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아서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