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카.
어느덧 봄이 다가왔습니다. 지난 1년간의 고초를 겪고 나니 새로운 봄이 더 반갑기도 합니다. 이제는 코로나의 고비도 넘어가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는 최근 지고의 말씀 한글번역을 수정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는 10여명이 참여한 줌모임을 갖기고 했고요. 논의가 점점 진행되면서 저는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부터 깊게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일을 진행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성향이라서 처음에는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고 논의에 참여했습니다.
사실 지고의 말씀 번역본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수정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몇몇 마르기들은 '영겁의 고통'이라는 구절등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표현했고 일부 아차리아는 바바의 원래 말씀과 다르게 의역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을 하곤 했습니다. 어찌보면 이렇게 일부 아차리아와 마르기들의 요구에 공통분모가 형성되면서 수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수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면서 몇차례 모임이 이루어졌고 일이 진행되면서 처음의 예상과는 다르게 일이 커지기도 했습니다. 작년 말의 컨퍼런스가 끝나고 한국 아차리아들을 포함해 다섯명이 모여 진지한 토론을 했고 어느 정도의 결론을 도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나온 의견은 기존의 산스크리트 단어들을 한글로 바꾸는 등 상당한 변화를 이룬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자나키지가 지고의 말씀 벵갈어 원본 등을 포함한 깊은 연구를 하시고 자신의 의견을 정리한 문서를 제출하셨어요. 저는 그 연구의 깊은 수준과 노력에 매우 큰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전의 수정작업을 다시 원점에서 부터 검토하게 됐고 지난 주말의 줌 모임에서 다시 수정작업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서 저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의가 길어지면서 또 다시 근본적으로 다른 의견을 제출하는 것이 너무 어색하기도 해서 저는 나중에 제 생각을 정리해서 올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선 처음에 수정에 대한 필요가 제기된 지점에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차리아들은 원래 바바의 말씀을 충실하게 옮기는 것에 주력한 반면에 '영겁의 고통'이라는 구절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분들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무난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번역의 필요성을 제기한 듯 합니다.
막상 많은 분들은 자연스럽게 외워서 암송을 하면서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원문을 보면 '수많은 동물생의 고통'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더 끔찍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완화된 표현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생각이 옳은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바바는 지고의 말씀을 통해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과 그것조차 지키지 않았을 때의 결과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표현이 우리에게 적절하지 않다고 해서 우리에게 맞는 표현을 찾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설사 우리 맘에 맞는 표현을 찾았다 하더라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미 기존에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던 표현에 비해 그것이 낫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왕 수정을 한다면 원래 바바의 말씀에 최대한 가깝게 번역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바는 처음에 지고의 말씀을 벵갈어로 알려주셨는데 이후에 아난다마르가가 세계적으로 전파되면서 영어본이 널리 쓰이게 됐습니다. 이 영어본을 바바께서 직접 벵갈어에서 영어로 옮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아차리아를 시켜 번역한 것을 승인한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바바께서 승인한 것이라면 우리는 원본이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아차리아들은 공식적인 모임에서 영어본을 암송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수정작업에서 벵갈어본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일단 벵갈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올바로 수정된 것인지 교차검증을 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새로 수정을 하더라도 기존의 영어본을 기준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벵갈어본을 참고해서 기존에 없던 구절이 추가되기도 했습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대의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영어본에 없는 구절을 추가하는 것은 곤란할 것입니다. 벵갈어본에 충실하기 위해 새로운 구절을 추가해야 한다면 벵갈어본에도 나오는 '수많은 동물생의 고통'이라는 명확한 구절을 다른 표현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더 큰 모순이 되기도 합니다.
기존에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본은 다소 의역이 된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문장 자체는 매우 유려하고 암송하기에 좋은 번역본입니다. 그리고 영어본에 있는 구절을 빼거나 없는 구절을 추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한글본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는 분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대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기존의 번역본을 사용하는 것도 무방할 것입니다. 과연 새로운 번역본을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없이 수용하고 암송할 지에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하는 것이 좋다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하면 수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충분히 그런 작업을 할 역량이 있고 이번 작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참여하면서 논의가 활성화되고 지고의 말씀에 대한 더 깊은 공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번 작업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많은 마르기들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결론을 내기 위한 작업이 계속될 것입니다. 추가로 좋은 생각이 나면 계속 말씀을 드릴 것이고 다른 분들도 적극 참여해서 이번 일이 한국 아난다마르가의 발전에 큰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나마스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