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길, 아난다 마르가(the path of Bliss)
아난다 마르가는 행복의 길이다
바바는 깨달음보다는 행복을 강조하였다.
바바가 오직 바란 것은 무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행복이다.
그래서 채식을 비롯한 사회체계의 온갖 지침을 준 것은
단지 그렇게 하면 우리가 보다 행복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오직 바바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자 하는 이유 하나로 바바 스스로가 숱한 고난을 겪었고 그분의 길을 따르게 했던 것이다.
바바가 상대 세상의 규범을 강조한 것은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상대적 현상 세상에서 나와 남이 같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다만 바바가 제시하는 행복은 이 상대 세상에서의 행복, 불행의 반대 개념의 행복뿐만아니라 이 세상을 초월하는 절대 행복, 지복(아난다)까지를 포함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바는 “이 현상 세계에서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 언제나 시간와 공간과 인간에 따라 적용하라.(adjust)”고 하셨다.
예를 들어 채식만 해도 에스키모라든지 채식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육식도 괜찮다고 하셨다.
이런 일화도 있다.
어떤 마르기인가가 와서 이렇게 말했다.
“난 절대 육식을 끊을 수가 없어요. 바바께서 특별한 조치를 해주시던가 하지 않으면 난 절대 못합니다.”
그러자 바바가 대꾸하셨다.
“내가 무얼 네게 할 수 있겠느냐? 네 일이지”
얼마 후에 그 마르기는 식당에서 생선을 먹을려다 생선이 살아 움직이는 듯 느껴져서 결국 먹지 못하고 말았다.
얼마 전 어떤 마르기가 까페에 몽고 여행 중에 여럿이 고기를 먹는 사진을 올려 다다께 지적(?)을 받고 사과한 일이 있었는데
내가 알기로는 몽고에서는 7.8월을 제외하고는 너무 추워서 야채가 거의 자라지 못하므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육식만을 한다고 알고 있다.
이런 여행 사진조차 까페에 올리기를 꺼려한다면
약간 날라리 기질이 있는 내게는
아난다 마르가가 너무 융통성이 없는 단체로 느껴진다.
이 말은 내 개인적인 소견일 뿐이다.
나 개인에게 있어서도 온 가족이 인정했듯이
아난다 마르가 이전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건강해졌다는 것이다.
원래 건강하고 긍정적이던 인드라데바나 자나키는 아난다 마르가 이전보다 크게 달라진 것이 보이지 않지만 원래 부정적이고 불건강했던 내게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바가 오로지 우리의 행복만을 원해서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하지 말아라.”는 지침을 주셨다는 점이다.
아난다의 의미는 “기쁨, 환희, 축복, 지복”이다.
기쁨이 없으면
행복의 길, 아난다 마르가를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