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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갑니다. | |
08/07/02 (수) 오전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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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집권을 안하였다면, 당나라에게 다 털리고 점령당했을 겁니다. 연개소문 집권이 당시로서는 최고의 방법이었을 겁니다.. | |
08/07/02 (수) 오전 12:40 [성남왕미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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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갑니다. 모두 사실은 아닐테지만 참고할 만할 내용이 많았습니다.(악의는 없습니다.) | |
08/07/02 (수) 오전 12:41 [FOOD헌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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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거점이 되는 성을 중심으로 싸웠죠.
'전선' 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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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2:42 [음...] from 58.237.18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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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짱깨들을 평양성까지 불러들여서 싸우는 것은 전에도 몇 번 있었습니다.
보급선이 길어지면 원정군은 지칠 수 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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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2:44 [음...] from 58.237.18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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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예로, 독일에게 공격을 당한 러시아가 '초토화 후퇴'를 하면서
독일의 병참선을 늘여서, '볼고그라드(예전 이름: 스탈린그라드)'에서
반격을 한 것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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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2:46 [음...] from 58.237.18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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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한 적의 침공에 대항하는 고구려의 전술, 즉 청야전술은 양날의 칼을 가집니다.적의 보급선을 늘리고 지치게 만들어 역습을 가하는 것은 좋지만 반대로 이쪽의 생산시설까지 파괴시켜야 하는 전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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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31 [nnn] from 122.254.15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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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한번의 침공으로 끝나면 좋지만 몇번의 침입이 계속되면 고구려 역시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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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33 [nnn] from 122.254.15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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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고구려는 지형과 기후의 특성상 대부분의 생산지가 수도 평양 주변에 몰려 있었습니다. 그 평양이 몇번이나 포위당한 상황에서 국가적으로 입었을 타격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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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35 [nnn] from 122.254.15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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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내용에 거의 동의합니다. 고구려를 문무에서 대표하는 인물을 뽑으라면 을파소, 을지문덕을 말할수 있겠지요. 두 사람의 공통점은? 둘다 평민 출신이라는 것입니다.강력한 5부귀족제가건재하는데 평민이 최고의 관직에 올라설수 있었다는 것에 하나의 사실을 유추할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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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39 [nnn] from 122.254.15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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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즉 왕과 평민/5부귀족 간의 균형이 잇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균형과 견제가 계속 유능한 인물들을 나오게 만들었고 고구려를 강하게 만들어 준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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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42 [nnn] from 122.254.15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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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멸망은 고수대전으로 인한 국가손실에 있읍니다. 고구려가 선수를 쳐서 기선제압을 했죠. 그래서 영류왕이 사대굴종을 택한것입니다. 경관을 헐고 봉역도를 바친것은 영류왕의 실책입니다. 연개소문은 전쟁을 택했고 고구려를 지켜냇읍니다. 연개소문은 전쟁대신에 수성전에 돌입햇어야 했읍니다. 신라를 끌어내서 대당전선에 세웠어야 했읍니다. 신라김춘추를 목아지를 쳤어야 지요. 신라를 못멸망시킨게 두고두고 한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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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45 [ㅇㄻㅇㄹ] from 121.135.7.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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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멸망원인1.고수전쟁 2.고당전쟁3.연개소문의 무리한 중국침공작전4.신라김춘추의 배반5.사수대첩에서 승리6.백제신라를 통합못한죄가 큽니다. 연개소문의 일본으로의 도왜로 인한 권력공백으로 아들들 내분이 생겼읍니다. 연개소문이 역성혁명을 못이룬 죄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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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48 [ㅁㄴㅇㄻㄴ] from 121.135.7.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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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연개소문의 반정에 개인적 권력욕이 개입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글의 구조가 그저 연개소문에 대한 비판을 위해 지나치게 짜맞춰간다는 느낌이 강하군요. 그가 권력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과 그것이 고구려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식의 논거가 완전히 중구난방으로 얽혀서 글의 핵심이 없이 그저 연개소문 나쁜놈이란 주장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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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53 [--] from 58.142.193.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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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개소문의 집권 후 왕은 최고통치자이자 귀족세력의 견제인이 아니라 허수아비로 평민은 국가운영의 참가에서 피통치자로만 전락했고 5부귀족 역시 연개소문에 우호적인 부족을 제외하고 숙청을 당해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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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56 [nnn] from 122.254.15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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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뭐 전쟁마다 패배하는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본문대로 연개소문 집권후의 여러행보들은 대당강경론자로 보기에 고개가 갸우뚱할만한 부분들이 많지요. 단순한 사적인 권력투쟁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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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58 [nnn] from 122.254.15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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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의 가문인 연나부는 그 전에도 여러번 반정을 일으킨 경력이 있었고 왕을 죽인 적도 한번 있었다고 그러죠. 그럼에도 가문이 계속 이어졌다는 것은 고구려 5부 귀족이 얼마나 강력했다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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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2:17 [nnn] from 122.254.15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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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연개소문과 그들을 따라 싸웠다면 고구려가 승리 안할거라는 장담도 할수없다. 어차피 망할거면....끝까지 싸우는게 좋았을거다. | |
08/07/02 (수) 오전 2:28 [t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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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고구려땅을 되찾읍시다. | |
08/07/02 (수) 오전 2:42 [heavenitachi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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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 여러각도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님의 의견도 일리가 있는 견해입니다. 내용 잘 보았습니다. | |
08/07/02 (수) 오전 4:39 [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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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만 ...어디서 옮겨 온 건지 출전을 밝혀 주세요^^ 그래야 후학들도 빠른 지식을 공유합니다. 행여 사서기록입니까? 아니면 역사관인가요^^ 이런 글도 때론 오류의 역사를 접어들게 하고 후학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한 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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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5:11 [이토민] from 168.154.15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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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고토 만주를 생각하며 잠시 한 시름-역사의 굴레는 어찌 우리 한민족에게 이다지도 참담한 결과를 보여주는지-얼마전 중국 흑룡강성의 동경성진이란 곳에 다녀 왔는데 알고보니 거기가 바로 발해의 옛 수도-큰 태산과도 같은 왕의 무덤이 하나 있던데-접근 불가-발해의 어느 왕의 무덤일지-발해풍정원이 공원화 되었건만 대부분 소실되고 일부만 보존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읍니다.바로 거기가-여기가 우리의 옛 땅이였음을 후인은 생각에 잠겼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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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6:00 [강남제비] from 58.102.6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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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족의 한나라 고구려가 없어진것은 섭섭하지요 만은 결과적으로 중국도 주선족이 자수가 혼합되어서 새워진나라입니다. 인디안이 조선족과 그근원이 같다고 할때에 미국도 조선나라 라고요. | |
08/07/02 (수) 오전 6:03 [gaminggam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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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글쓴이의 주장에 반대입니다. 수당 교체기의 중국 내부 혼란을 이용해서 고구려는 분명 승부를 걸었어야 했습니다. 물론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고구려도 큰 피해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수나라의 피해와 내분이 훨씬 더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보다 바로 당나라가 시간을 벌면서 때를 기다리기 위해 초기에는 고구려 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힘이 강성해지자 고구려와 백제를 압박하고 결국 멸망시켰던 것이니까요. | |
08/07/02 (수) 오전 7:15 [원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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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와 청나라의 사례는 그 결정적 교훈입니다. 청나라는 결국 명나라가 내분에 빠지자 모든 것을 걸고 승부수를 강하게 띄웠습니다. 만약 그 때 청나라가 승부수를 띄우지 않고 어영부영했다면 다른 한족 왕조가 들어서서 사태를 수습했을 때 그 결과는 청나라에게 치명적일 수 있었겠죠. | |
08/07/02 (수) 오전 7:15 [원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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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빠로 잘 읽고갔네.......
ㅡㅡ 도라이 후니대사 ㅡㅡㅡ | |
08/07/02 (수) 오전 7:57 [원조짝퉁훈이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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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을 일러 오천년 역사를 통틀어 첫째가는 영웅 이라고 했었죠.. 신채호 선생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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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8:43 [소향] from 210.103.7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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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그런데 오자가 너무많아 좀그렇네요 (피패해진, 영토를 훼복하려는, 붕괘 되었음을 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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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8:45 [쪽집게] from 220.79.180.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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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고개를 숙이고 뒷날을 기다렸다면 당은 서쪽 토번족과의 싸움에 정신을 돌렸을 것이고 고구려와 싸울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후 토번이 당을 침공할때 동쪽에서 협격하였더라면? 전쟁을 계속해서 피폐해지고 나라를 잃게 되었는데 지배층 20여만호가 중국으로 끌려감으로써 고구려는 문화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발해가 고구려땅에서 일어났다는 주장은 하였으나 200여년 동안 고구려 역사를 정리하지도 않은 점에서 알수 있듯이 발해인은 우리민족과 동질성이 없었던 것이니 고구려는 없어졌다 | |
08/07/02 (수) 오전 9:08 [heigga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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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은 새로운 왕조를 만들었어야 했다. 그의 정권장악만으로는 고구려를 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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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9:24 [정진] from 123.200.8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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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 죽겠네!! 가장 큰 원인은 민족성, 백제와 신라를 진작에 없애 버렸어야 고구려가 안 망했을지도... 동족끼리 배신하면서 까지 짜장면 에게 피리 뒷다리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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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9:32 [답답] from 222.120.140.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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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이 한민족의 분파라 해서 미국이 우리 땅이라는 얘기는 비약이고 중국대륙과 만주는 한민족 본류가 9,000년 이상 살아왔던 지역이라 당연히 우리의 고토이고 고향이라는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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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9:49 [dk] from 211.249.118.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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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지구전과첩보에당함.대군의 침공보다 게릴라전을 택해 내부분열을 초래하고 주변국에는 이권을 제공하여 이이제이한 결과 돌궐과 신라가 미끼를 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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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9:51 [박영수] from 124.153.14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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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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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9:56 [GGG] from 124.0.21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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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연개소문이 중국 경극에 등장할까요??? 하여간 이분의 시각은 대수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 |
08/07/02 (수) 오전 9:59 [로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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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까지 밀고 들어온건 영양왕 때도 있었던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연개소문의 집권은 권력 다툼에서 이겼을뿐 영류왕, 연개소문 둘중 누가 돼던 당나라가 신라와 손잡고 고구려 쳐들어가는건 정해진 수순이였기때문에 당해낼수 없었을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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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07 [YorkShire] from 24.188.22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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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반대파를 숙청하고 자신의 사람들만 채운것은 반정후 나타나는 전형적인 수순이죠.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요동성을 잃었지만 당나라의 공격을 막아냈던건 변명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영류왕 또한 막아낼수 있는 능력과 사람들이 많았지만, 친당파로 채워지던 조정에서 과연 기대할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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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15 [YorkShire] from 24.188.22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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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은 후대에 많이 왜곡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많은 부분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특히 연개소문에 대하여는 다소는 과장되게 국수적인 해석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 |
08/07/02 (수) 오전 10:15 [무성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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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자가 많이 틀리네요. 오타... 올바른 한글을 사용합시다. 이런글 쓸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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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15 [ktb] from 123.142.96.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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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집권한 후의 수많은 실패들을 보고서도 어떻게 연개소문을 그렇게 높게 평가할 수 있는지 모르겠군요. 남으로는 신라와의 전투에서 ㅇ아무런 성과도 없었고 백제의 멸망은 구경하기만 했고 거란을 정벌하기 위해 5만의 대군을 일으켯지만 실패만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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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21 [ㅎㅎㅎ]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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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집권한 후의 수많은 실패들을 보고서도 어떻게 연개소문을 그렇게 높게 평가할 수 있는지 모르겠군요. 남으로는 신라와의 전투에서 ㅇ아무런 성과도 없었고 백제의 멸망은 구경하기만 했고 거란을 정벌하기 위해 5만의 대군을 일으켯지만 실패만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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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21 [ㅎㅎㅎ]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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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당과 대결 자체가 불가능하죠. 남과 북이 적인데 그걸 무시하고 서진이 가능한가요? 게다가 당은 대제국이 모두 그렇듯이 능력만 있으면 출신 종족을 가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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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23 [ㅎㅎㅎ]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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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당과 대결 자체가 불가능하죠. 남과 북이 적인데 그걸 무시하고 서진이 가능한가요? 게다가 당은 대제국이 모두 그렇듯이 능력만 있으면 출신 종족을 가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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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23 [ㅎㅎㅎ]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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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의 정권 장악력이 너무 커서 탈이였던거 같습니다. 그가 죽자 권력은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연개소문이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했다면 그의 후계자를 제대로 된 사람으로 정했어야 했는데 그렇지를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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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24 [마메] from 59.20.217.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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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류왕의 친당정책도 일리는 있지요 일단 싸움을 피하고 힘을 비축한다음 서토로 가겠다고, 수나라와 전쟁에서 고구려도 많이 어려워졌고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힘을 비축한다고 하였지만 당도 그당시 수나라가 망하고 다시 일어난 나라이기때문에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지요 고구려가 힘을 비축하는 동안에 당도 내란을 정리하고 당나라 자체가 안정적으로 변하였을껍니다. 아니 사실상 시간이 지나고 나라가 안정되었죠 시간이 지날수록 땅이 큰나라가 힘을 더 많이 비축하게 되는건 당연한게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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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24 [대한민국] from 118.33.212.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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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또한 그의 인물보는 안목이..개판이라는건 알겠지만 영류왕보다는 나았으리라 봅니다. 영류왕때만 해도 무왕이 신라와 자나깨나 싸움을걸고 신라또한 이 7세기 무렵에는 소위 허접이였습니다. 백제만 잘구슬리고 신라와 뒷손을 잡았어야 당나라 하나만 경계할수 있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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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24 [YorkShire] from 24.188.22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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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시간이 지나서 돌궐도 당에게 쓰러지게 되었구요.. 적의 적을 잃게 되었으니 고구려도 그만큼 유용한 힘을 잃게 된 격이지요... 사실상 연개소문이 반정을 하게 된 계기는 책려과, 봉역도, 노자, 전승탑 등등 많이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죠 천리장성 축조를 연개소문에게 강행시키게 된것은 연개소문이 혁명의 시작을 결정하는 계기가 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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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25 [대한민국] from 118.33.212.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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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용하여 모든 장수 관리들이 유능했지만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고구려는 오히려 갈수록 폐쇄적이 되어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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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26 [ㅎㅎㅎ]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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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계속 영류왕의 남진정책의 핑계로 고수전쟁이후의 나라가 피페해졌다고들 하는데 살수대첩후 고구려의 전력으로 분명히 역공을 할수도 있었지만 영류왕은 뭘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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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30 [YorkShire] from 24.188.22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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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후로도 수나라는 내부적으로 무너져갔습니다. 그때도 영류왕은...그렇게 국가의 피폐?를 회복하고 싶었다면 남진정책은 왜했는지도 궁금하고 훗날 당나라를 견제하려했다면 살수대첩후의 그많던 기회를 다 날려버린 영류왕을...우리나라 역사중 답답한 사람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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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35 [YorkShire] from 24.188.22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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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너무 과대평가 하시는군요. 수나라는 고구려와의 전쟁에 몇백만을 동원했습니다. 그에 반해 고구려의 인구는 얼마였을까요? 학자마다 다르지만 300~500만 정도로 추정합니다.고구려는 대륙전체를 상대할 정도로 광대한 자원을 가진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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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37 [ㅎㅎㅎ]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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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의 반정을 환영하는 이유는 영류왕의 친당정책이 아니라 그의 덜떨어진 대당,대백제신라의 외교술과 기회를 볼줄 모르는 안목, 돌아가는 정세를 볼줄 몰랐다는 점에서 환영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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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40 [YorkShire] from 24.188.22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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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대륙진출의 필요성이 별로 없었죠. 대륙북쪽의 황무지나 서쪽의 사막, 산악지대의 유목민들은 규모가 커지면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기름진 중원으로 눈독을 들일수 밖에 없었지만 고구려는 그렇지 않앗거든요.충분한 평야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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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40 [ㅎㅎㅎ]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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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진출과...피해를 줄수 있을때 최대한 주어야한다는것을 같다고 생각하시는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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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46 [YorkShire] from 24.188.22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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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건전쟁에선 기회가 왔을때 확실히 타격을 주어야 외교건 무엇이건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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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48 [YorkShire] from 24.188.22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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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수나라가 전쟁에 동원한 병력이 총 200만~250만까지도 말하는데, 전투병력은 불과 몇십만 밖에 안돼었다는건 모르십니까. 또한 전쟁은 원정하는쪽이 항상 불리하기 마련이었습니다. 대등한 국가라면 원정군이 최소한 10배가 있어야 안전히 정복할수 있다고까지 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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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전 10:52 [YorkShire] from 24.188.221.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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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먹는다 | |
08/07/02 (수) 오전 11:06 [rlaghwls24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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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부수적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고구려 멸망의 모든 책임은 영류왕에 있고 그의 대내외적인 정책기조의 헛다리에서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수가 통일 왕조를 형성하기 전까지의 한반도 주변의 역학관계와 수통일 직후와 고수전쟁후의 주변 정세는 고-수,고-당간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에 집중되고 그기에 맞춰 급속하게 변한다는 것을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고, 영류왕은 그 중요한 시기에 너무 소심한 나머지 자국의 피해에만 정신을 뺏겨 버렸습니다. | |
08/07/02 (수) 오전 11:16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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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는 아국이 힘든 만큼 적국도 힘들고 더우기 고수,고당 전쟁의 적 주력군의 괴멸을 틈타 그 기세로 적의 수도를 위협하고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변방의 거점들을 보복의 일환으로 초토화 시켜 놓으면 오히려 적의 붕괴를 가속화 시키기 좋았는데 그것을 모두 놓쳐 버련 대실수를 했습니다. | |
08/07/02 (수) 오전 11:17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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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전쟁 직후 적의 주력을 괴멸시킨 상태에서 적의 목줄을 따거나 치명타를 가하는 부수적인 전쟁의 필수적인 수순을 진행하지 않았음에도, 수는 주력군 괴멸과 더불어 그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이세민에 의한 당왕조로의 교체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 와중에도 영류왕은 그런 전승국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랄까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삽질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 결과적으로 적의 빠른 회복을 돕고 내부와 가까운 형제국간의 분열까지 초래한 것입니다. | |
08/07/02 (수) 오전 11:22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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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연개소문의 반정은 왕으로서의 사명감과 방향감각 상실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고, 그 당시로서는 그것이 고구려가 책할 수 밖에 없는 길이었습니다. 고구려와 수,당은 같은 땅을 사이에 두고 공존 할 수 없는 관계였으니까요. 연개소문도 반정후에는 영류왕에 의한 대내외적인 잘못 끼워진 단추들을 풀기 위해 진땀빼다보니 고당전 승리후의 반격을 할 여력이 수당전 직후와는 달리 많이 반감되서 그것을 결행하지 못한 것이고...이미 그 즈음에는 당은 수보다도 더 내부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든 상태였으니까요. | |
08/07/02 (수) 오전 11:30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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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가정은 없겠죠 !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
08/07/02 (수) 오후 12:03 [이승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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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나라를 망친게 아니라 자식들이 나라를 말아먹은게지. 그러게 누가 배다른 자식을가지래?어짜피 고구려의 운은 다했다.너무 오래되었었어.고구려는.제수없게 연개소문이 뒤집어쓴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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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12:13 [111] from 125.133.37.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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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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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요새 졸라 성의 없어졌다. 예전처럼... 잘 읽고갑니다. <--- 이게 모냐... 쫌 길게 써라 -후니대사 개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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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12:29 [안티훈이대사] from 192.5.246.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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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역사를 왜곡하니 그당시 간신이많아서 ...인하단결이 안돼면 망한다는걸 교훈을 삼아야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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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12:37 [장영식] from 211.222.226.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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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를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옛날이나 지금이나 파벌싸움이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파벌싸움만 없다면 전방에 있으나 중앙에 있으나 하등의 문제가 될 수 없는데, 강온이 대립하던 시기에 전방에 있으면 목숨까지 위험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
08/07/02 (수) 오후 1:06 [시간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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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경우 돼지에게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을 정도로 자신들의 영웅들을 존경하고 자부심을 가지는데, 이놈의 나라에는 일부 아주 더러운 놈들이 자국의 영웅을 어떻게든 이유를 가져다 붙여 까내리고 폄하하기 바쁘다. 연개소문 정도의 카리스마라도 있으니 그 혼란한 정국에서 초강국을 상대로 간담을 서늘하게 혼줄을 내줄수가 있었지... | |
08/07/02 (수) 오후 1:07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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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또 머 대단한거라고... | |
08/07/02 (수) 오후 1:12 [sixsers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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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아쉽지만 그때 연개소문이 반정을 일으키지않고 영류왕의 온건책으로 영토를 보전하였다면 지금쯤 연변위쪽 만주지방까지 다 우리영토 가 아닐까.가정이지만 | |
08/07/02 (수) 오후 1:12 [김화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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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우리나라 사람인가 ??????????? 난 잘 모르겠다. 내가 바보는 아니지만 연개소문은 우리나라 사람 아닌거 같은데 | |
08/07/02 (수) 오후 1:18 [김형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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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은한국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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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1:21 [코리안] from 122.37.10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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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반정을 일으킨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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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1:24 [연개소문] from 59.2.139.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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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人眞是恬不知恥~~~無恥的淫逸... 爾等乃跳梁小丑也 | |
08/07/02 (수) 오후 1:25 [ao.sh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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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미친놈아 개시부랄 헛뢰 나부랑 거리지 마라.. 그건 말 그래도 너에 아집적이고 편집적 자학사관에 근거한 착각이야.. 당태종이세민은 연개소문에 등장과 혁명과 상관없이 침략 게획을 가지고 있었단다..뭐 ㄹ좀 씨부릴 려면 좌뇌와 우뇌 양쪽뇌를 다 활용해라.. 난 또 뭐라고... 글 쳐 내려 임마... | |
08/07/02 (수) 오후 1:47 [연개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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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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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1:51 [ghhghgk] from 118.45.107.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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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글 인지 모르겠어... 그리고,글이 너무 만잖아. 이글 올렸은 사람 누구야.바보 똥개 멍청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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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1:54 [gfhgjhfdjh] from 118.45.107.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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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글 인지 모르겠어... 그리고,글이 너무 만잖아. 이글 올렸은 사람 누구야.바보 똥개 멍청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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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1:54 [gfhgjhfdjh] from 118.45.107.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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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2년 혁명했지? 당태종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영류왕 시절부터 고구려침략 게획을 세우고 수차레 실행을 할려했으나 신하들 만류로 거듭 미룰수 밖에 없었어.. 그러다 연개소문에 혁명에 소식을 듣고 대의명분을 들어 준비된 침략을 한거야... 너 그러다 밥이나 먹고 살겠냐? 일반인도 너정도 는 이미 다 아는데... 좌뇌와 우뇌를 다 활용하는 시야를 가져 특히 역사학에 글 올릴때는 자샤..쪽팔린다 글 쳐 내려 임마.. | |
08/07/02 (수) 오후 1:54 [연개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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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영류왕처럼 정치를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거 같니? 고구려에 정체성도 잘 생각혀봐.. 영류왕에 실정은 시간을 다루면 아마 기가 찰 문제점들이 한두가지가 아닐거란다. 영류왕처럼 정치를 물러 터지게 하면..지금처럼 장기 촛불집회가 열리는 거야.. | |
08/07/02 (수) 오후 1:57 [연개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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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역사가 많이있구나! 나는 신평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4학년 까지 다 반장 회장 하였는데.... 나도 크면 역사인물이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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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1:57 [정아빈] from 118.45.107.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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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ㄳ | |
08/07/02 (수) 오후 1:58 [jisoo3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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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아마 햇불집회가 꽤나 열였을 거다.. 신라에 김춘추도 신라에 정체성을 팔아 먹었지만.. 반대세력인 비담제거에 성공했을뿐이고 영류왕은 반대로 연개소문에 혁명을 막지 못했을 뿐이야.. 네가 반말 왜 하는지 기분 나쁜 만큼 자네에 글이 조잡하고 편중되 있어... | |
08/07/02 (수) 오후 2:00 [연개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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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이 많구나!!! 6.25때 역사인물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으니 이순신 장군을 본받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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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2:00 [채연] from 118.45.107.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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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쌔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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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2:02 [@@22] from 118.45.107.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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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류왕이 계속 집권을 했을때 과연 고구려는 나라를 지탱 했을까 잘 고민해보게.. 아마 시간에 차이일뿐.. 어쩌면 더 빨리 망했을 거야.. 천하에 당태종을 상대로 감히 영류왕 정도가 막을수 잇었을까 심이 우려가 된다. 난 영류왕에 대동강 전과도 의심이 간다.. 사실 612년 이후 618년까지 이어진 고수내전이 643년 고당1차 전쟁까지 무려 20여년 이라는 천금 같은 시간을 영류왕은 국내문제에만 치중했단다.. | |
08/07/02 (수) 오후 2:05 [연개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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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이라는 시간이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왠만큼은 전후복구가 되는 시간이다.. 제 1차세게 대전이 끝나고 패망한 독일에 경우도 불과 20년 뒤에 완전히 전후 복구하고 다시 제 2차 대전을 일으킨 사례는 다 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6.25가 끝나고 1970년대 경제에 들어 섯을때.. 하긴 자넨 어려서 그 당시를 모를거야.. 반공이 교육에 상당부분을 자리 잡던 시기야.. 그러니 구수내전으로 인한 피폐된 경제 나불거림은 너누 억측이야.. 오히려 피해는 중국 수와 당이 더 문제가 복잡했어.. | |
08/07/02 (수) 오후 2:11 [연개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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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연개소문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 |
08/07/02 (수) 오후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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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서울이 엣날에 고구려 흐흐흐 | |
08/07/02 (수) 오후 2:25 [tjrals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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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는 연개소뭉이 잘한짓이라고 봅니다. 만약 계속 그렇게 당나라와 친선을 맺으려고 했으면, 당나라는 결국 고구려의 정권에 더 간섭을 하게 될 것이며 나중에는 고구려가 멸망하게 될 것이여겠죠. 물론 연개소문이 당나라에 너무 나대긴 했지만요 연개소문이 살아있는 동안엔 당나라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잖아요. 결국, 잘못된 것은 연개소문의 아들들이 너무 싸우느라 망한 거죠. 연개소문이 조금만 아들들에게 교육을 잘 시켰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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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2:30 [샤인라이크어윈도] from 125.186.148.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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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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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2:37 [chad0723] from 220.86.5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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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하면주몽도있고유리왕자도있고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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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2:39 [여강희] from 117.53.2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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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ㄷ호ㅓ호 러로ㅓㄹㄴㅇㄻㄶㄹㅣ히히ㅓㅀㅇ니ㅓㅎㅣㅓㅇ허허닝ㅎ리언헝ㅎ런ㅇㅎ렁ㄶ러읺ㅇ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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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2:40 [여강희] from 117.53.2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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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잘한짓인듯한.. | |
08/07/02 (수) 오후 2:44 [상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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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되는 비법공개!!! | |
08/07/02 (수) 오후 2:51 [부자클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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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는 수나라때부터 당나라초기때부터 어멍난물량인적희생을해도 또모을수가있다고구려는 한번전쟁치루고나면 다음엔 버틸여력이없다 그래서5부족도 고심한거다 싸울병참기지나인구 병력이안돼는데 대륙을 침략한다는연개소문은 무책임한 이상주의자다 | |
08/07/02 (수) 오후 2:54 [새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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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그래도 정치를아는사람들이었다 신라가 위기관리를 잘못했다면 아마지금쯤 우리나라 중국땅이되었을것이다 | |
08/07/02 (수) 오후 2:55 [새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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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부터 16세기까지 사라본 사람처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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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2:56 [LJJ] from 116.4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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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화된 성벽 중심의 방어체제에서 장성 방어로 전환 한것이 화근아닌가? 이렇게 돤것는 당나라의 은말한 공작도 작용했을것이다. 그후 장성 후방만 교란하면 필승 ! 결국 나당 연합군이 남쪽에서 침공하여 멸망했다. China 를 조심하라. | |
08/07/02 (수) 오후 2:56 [huhya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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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김춘추와 김유신의영웅담을 그리는 드라마가 안나온다느게 뭔가 속임수같다 좀우습지않은가 망한나라 영웅이 천년왕국지탱한 영웅보다 더취급된다는게 ,,가소롭도다 그래봐야 망상에불과하다 역사는 승리한나라가 역사를만들어나왔다.패자들의역사물을봐야 스트레스만쌓인다. | |
08/07/02 (수) 오후 2:57 [새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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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 장성은 여러 유목민의 통로를 막아 결과적으로 그들과 고구려를 분리 하여 전투력을 약화시켰다. 내우외환이란 것이다. 고구려가 선택 할 길은 전쟁을 피하는 것만이 생존의 길이었다. 무신정권의 한계인 것이다. | |
08/07/02 (수) 오후 3:00 [huhya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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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아니도 덜도 아니고 영류왕은 딱 죽을만큼 잘못했다. 딴건 다 제껴두고라도 요즘으로 치면 아국의 군사기밀과 군전략의 모든 정보가 담긴 강역도를 내손으로 적국에 가져다 바치는 희대의 멍청한 짓을 했고, 적국의 첩자가 대사로 가장해서 전국 곳곳의 군사요충지를 정탐하도록 내버려 두었으니 요즘 같으면 대통령이 자국 군사기밀을 적국에 내준 반역행위다. 그렇게 고구려의 강역도와 군사대응을 바탕으로 당은 아주 쉽게 고구려의 방어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초반기세를 장악할 수 있었으니까 | |
08/07/02 (수) 오후 3:06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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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는 왜 인구가 번창하는가? 양자강 남쪽은 쉽게 말해 인구번식지대다. 황하 이북 유목민 침력으로 인구손실이 발생해도 충분한 인구가 공급된다는것이다. 마침내 15 억 인구가 된것이다. | |
08/07/02 (수) 오후 3:07 [huhya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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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종의 대 실책- 가장 무능한 황제 고종의 과오는 고구려를 멸망시킨것이다. 고구려는 유목국가가 아니고 농경중심의 국가다. 농경국가를 제거 함으로 북방 유목민과 무방비로 부딪히게된다. 그 결과 요, 금, 글안, 몽골에 의해 유린당한다. 만약 고구려가 건재 했다면 고구려가 북방 유목민의 남침 방어 벽이 됬을 것이다. 청나라가 망하자 황제 능을 파 뒤집었단 소문이다. 그렇게 억울 했나? 농경종족은 이웃국가를 침략할 사회구조가 아니다.이하생략. | |
08/07/02 (수) 오후 3:17 [huhya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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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연개소문 때문에 지금 우리 땅이 아주 작아진 건 가요?? 그렇다면 연개소문은 우리 나라를 배신하는 것이랑 똑같네요.. 연개소문은 이제 내 사전에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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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3:29 [jackjack1588] from 222.107.222.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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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야 어찌 된던 우리 고려 땅을 찿으십다! | |
08/07/02 (수) 오후 3:32 [행운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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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이구 이런 찌질스런 글 때문에 역사지식이 부족하거나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이 연개소문을 형편없는 인물로 오해하고 바로 위의 위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이 글 쓴 작자같은 찌질한 편집증적 자학사관에 빠진 환자들이 다름 아닌 영류왕류의 멍청한 짓을 오늘날까지 되뤂이 하는 원흉이라는 것을 아무리 사실에 근거해 떠들어 봐도 다 헛일이로세! 그냥 이글 쓴 작자에게 욕지꺼리나 흠찔나게 해줄 걸 그랬나! 욕바가지나 먹어야 제격인 글을 가지고... | |
08/07/02 (수) 오후 3:38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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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살지도 않았는데..어찌들 그리들 잘 아시는지? 다 책 읽고 자신이 살았던것처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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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3:39 [ㅁㅁ] from 124.155.40.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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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지도가 좀 작게 나온거 아닌기여? | |
08/07/02 (수) 오후 3:45 [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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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 | |
08/07/02 (수) 오후 3:56 [jww4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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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패망원인은 연개소문 아들 남건,남산,남생,형제간에 정권 다툼으로 인하여 668년 보장왕을 때 멸망. | |
08/07/02 (수) 오후 4:03 [베테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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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멸망 원인은 연개소문 아들들 때문입니다 | |
08/07/02 (수) 오후 4:06 [이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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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끌여 들여가지고 역사를 아니 지도를 이렇게 만든 지금 이모양 이꼴로 만든 신라의 천인공로할 만행과 실정은 후손 대대로 지탄 받아 마땅 합니다 그끝이 지금도 나라를 이모양으로 만들고 있읍니다!매곡노는 가까이 있음니다 !!나라를 살립시다 대한민국을 살립시다 !! | |
08/07/02 (수) 오후 4:07 [여울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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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으로 400년대 고구려 진주강씨 입니다! 위 글은 강이시장군시대죠! 저는 남한 진주시 진주강씨 입니다.시대 년도에 따라 틀리네요=시대에 따라 지도가 틀리다고 해야지 이런식으로 강이식이 한국 남한사람들에세 진주강씨시조라고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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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4:13 [강철민] from 211.229.23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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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개용훈님!
찌라시 멘트가 사라지는 그 날까정 열씨미 활동해여~~~^^* | |
08/07/02 (수) 오후 4:16 [원조짝퉁훈이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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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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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4:29 [암행어사] from 116.122.233.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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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야 신기하네요 .................... (할말이 없다.....) 신기하내요 사기아니야 | |
08/07/02 (수) 오후 4:37 [불사신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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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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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4:42 [장석현] from 118.41.18.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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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함부로 평가하는것이 아니될것 같아요.. 그것을 보고 판단기준에따라 우리가 엉떻게 미래를 대처해 나갈것인가 하는것이 중요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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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4:45 [장석현] from 118.41.18.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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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고구려를 멸망의 길로 빠지게 했습니다,영류왕은 수나라가 평양성을 공격할 때 수군과 수도를 방어하는 총대장으로 큰 역활을 한 문무를 겸비한 백성들을 생각하는 군주였습니다.고구려가 수나라를 물리는 쳤다고 해도 그 피해는 막심했을 것입니다,인명과 재산과 국토훼손이 컸을 것입니다,당태종때의 정관의치 라는 중국역사상 최대의 경제와 군사력을 가진나라가된 당나라의 막강한 힘 앞에서 고구려가 당을 적으로 맞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었습니다, | |
08/07/02 (수) 오후 4:58 [hrk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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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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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5:01 [조준연] from 211.116.140.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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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당이 일부 군으로만 공격을 자주 해 와도 국토는 피폐해지고 백성들은 너무 힘들어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현명하고 백성을 생각하는 영류왕은 막강한 당을 보고서 될수록 전쟁을 피하고 수나라와의 전쟁 때 입은 훼손된 국토를 복구하고 나라를 보존하면서 백성들의 힘든 삶을 도우는 것이 급했을 것입니다, | |
08/07/02 (수) 오후 5:03 [hrk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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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이 고구려 정벌을 결심한 것도 연개소문이 반정을 일어켜서 영류왕을 죽이는 불충하고 폐덕한 일을 보고서 나라가 단결될 수가 없고 반 연개소문주의자들이 있을 것으로보고 쉽게 점령을 할 것으로 보고 명분도 있고 그 명분을 내세워 결심을 한 것입니다, 연개소문의 반정은 곧 나라가 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 것입니다, | |
08/07/02 (수) 오후 5:04 [hrk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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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642년 반정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영류왕이 당의 거짓 유화책에 속아서 당에게 시간을 주는 동안 당태종은 티벳의 송첸캄포의 위협에 시달리다 결국 문성공주를 볼모로 티벳에 보냄으로써 티벳과의 변방 정리를 겨우 할 수 있었다. | |
08/07/02 (수) 오후 5:05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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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들들도 애비를 닮아서 서로 권력을 다투다가 자멸을 한것입니다,당태종도 고구려 주변의 당에 굴복한 나라들의 군사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평양성으로 직행하는 공격을 하였다면 당태종때 고구려는 쉽게 점령을 하였을 것입니다,신라 백제,거란등 수많은 나라들이 당에 굴복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 |
08/07/02 (수) 오후 5:05 [hrk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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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쪽은 돌궐,동북쪽은 고구려, 서남쪽은 티벳에 의해 변방수비조차 힘겨운 당에게는 영류왕의 그런 유화책이 그 어떤 것보다도 숨고를 틀 수 있는 든든한 우군역할을 한 것이다. 고수전 이후로 고구려가 당의 거짓 유화책에 넘어가지 않고 대수당 강경기조를 이어갔더라면 당으로서는 변방의 고구려,돌궐,티벳의 세력의 압박에 적어도 어느 한세력에게 충분한 땅과 공물을 받치면서라도 수당 왕조교체로 인한 내부정리의 시간이 필요했다. | |
08/07/02 (수) 오후 5:06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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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에 가정은 논난을 위한 논란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경제력에서 문화적인 측면 정보에서 고구려가 진 것이다 당시 당은 로마와 회교들과 교류를 통해서 여러가지 측면에서 경제 문화 군사 인구등 고구려를 압도했다 그런데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하나 영류왕이나 연개소문의 잘못으로 망한 것도 아니다 | |
08/07/02 (수) 오후 5:06 [johpc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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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은 자기의 권력을 위해서 마치 자기가 더 애국심이 있는 자주성을 내세워 백성들의 안위는 생각도 안하는 어리석고 성질급한 이들을 부추겨서 자기권력의 쌓고 종래에는 반역으로 영류왕과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권력을 차지했습니다,고구려가 당과 막먹는 군사력이라고 생각하면 큰오산 입니다, | |
08/07/02 (수) 오후 5:06 [hrk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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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에서 고구려로 오는 길은 멀고 요하같은 큰강도 건너야 하는 보급로를 확보하기 어렵고 산성에서 수비위주와 보급로 공격으로 어려워 지게한 것이지 똑 같은 들에서 맞붙어서 싸울때는 대패를 하였다,처음 요동성 싸움에 연개소문이 대군을 이끌고 요동성을 구하려고 가서 맞서다 대패한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 |
08/07/02 (수) 오후 5:07 [hrk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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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가 연대나 주변상황은 전혀 고려치 않고 연개소문 일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단세포적인 사고는 어디서부터 나오는 사고인 것인가! | |
08/07/02 (수) 오후 5:07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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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개소문의 탁월한 지도력으로 단기간 당태종에게는 이겼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고구려의 경제가 인구가 문화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또 이상한 사람이들이 신라가 당과 협력해서 같은 동포 백제 고구려를 명망시켰다고 무식한 소리를 찌꺼리는데 그때에 고구려 신라 백제가 한 민족이란 의식 자체가 없었다 한민족이란 생각은 고려 때 삼국 유사에서 시작된다 그러면 백제가 왜와 엽합한 것은 친일이가 이런 헛소리를 듣지 말자 | |
08/07/02 (수) 오후 5:07 [johpc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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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의 반정이 당의 고구려 침입의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이양말로 당이 고구려를 침입할 어떤 명분도 없음에도 후대에 어거지로 끌어들인 자기합리화의 논리인데, 이것을 오늘날 우리들 입에서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개탄스러운 일이다. 정말 이런 소리 하는 인간들은 혹시 중국인들의 역사논리에 물든 사대주의거나 중국족속들 피가 흐르는 종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 |
08/07/02 (수) 오후 5:14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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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체로 보면 ...드라마에 영향을 참 많이 받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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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5:20 [mmm]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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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와의 전승기념탑인 경관을 무너뜨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렇지 않았으면 중국에서는 언제나 고구려를 공격해서 자기들 손으로 경관을 무너뜨리려 할 것이다,영류왕으로서는 당의 공격을 피하고 고구려를구하는 실속을 차리는 정책이다 봉역도 같은 것은 당에서 첩자를 보내서 그와 같은 지도는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었을 것이다,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고 당의 환심을 사고 믿게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국력을 키우고 때를 기다리면 반듯이 당도 혼란한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 |
08/07/02 (수) 오후 5:22 [hrk0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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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어떻게 그렇게 오래 강건히 유지될 수 있었는가? 생각해보면.. 첫번째,대내외적인 긴장감이 계속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외부적으로 끊임없이 외부부족 국가들과 영토쟁탈을 벌였어야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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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5:25 [mmm]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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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적으로는 왕 5부귀족 평민간에 권력을 둔 긴장이 있어서 고구려인들은 나태해질래야 나태해질수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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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5:26 [mmm]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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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적으로는 왕 5부귀족 평민간에 권력을 둔 긴장이 있어서 고구려인들은 나태해질래야 나태해질수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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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5:26 [mmm]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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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만한 이유는 내부의 혼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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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5:26 [하하하] from 220.77.115.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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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위에 글도 하나의 사견이고 저때의 역사적 기록이란 단 몇줄에 불과한거 아니겠습니까....이렇쿵, 저러쿵 할일이 아니지요... | |
08/07/02 (수) 오후 5:27 [임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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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오브리스노브리제가 한국 역사상 가장 확고하게 볼수 있었던 국가입니다. 고구려의 왕족은 항상 위험한 첩보나 전투에 가장 먼저 투입되었었죠. 그럼으로서 5부귀족에 대항해 백성의 지지를 얻고 왕실의 위엄을 세울 수 잇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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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5:29 [mmm]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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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민은 고구려가 강격책을 택하든 유화책을 택하든 연개소문이 반정을 일으키든 아니든 상관없이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고구려라는 위협을 제거하려고 생각하던 인물이라니까. 당은 서남쪽의 티벳과 서북방의 돌궐의 위협만 제거하면 즉시 고구려를 치려고 계획했었고, 마침 고구려가 영류왕의 유화책으로 동북방의 위협을 보류해준 덕분에 티벳과 돌궐을 정리할 여력이 생겨 티벳과 화친하고 돌궐을 격퇴할 여력이 생긴 것이다. | |
08/07/02 (수) 오후 5:30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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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고구려마저 강경일변으로 나왔다면 당으로서는 속수무책으로 수,당 정권교체로 인한 내부정리도 힘겨워 장안은 티벳에 떨어지고 북쪽은 돌궐에게 막혀 고구려 침공은 꿈도 못꿀 상황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 |
08/07/02 (수) 오후 5:30 [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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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왕실과 귀족이 강성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민들 역시 능력만 있으면 국정의 운영자로서 참가할 수 잇는 풍토가 있었습니다.신라나 고려의 골품제아는 상반된 풍토였죠.그럼으로서 백성들은 자기국가라는 긍지를 가지고 잇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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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5:31 [mmm]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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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왕실과 귀족이 강성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민들 역시 능력만 있으면 국정의 운영자로서 참가할 수 잇는 풍토가 있었습니다.신라나 고려의 골품제아는 상반된 풍토였죠.그럼으로서 백성들은 자기국가라는 긍지를 가지고 잇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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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5:31 [mmm]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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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사학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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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5:33 [백마타고온초인] from 125.129.10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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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자주의식으로 고구려를 강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강건한 국가는 이런 구성원들의 생각과 긍지가 뭉쳐서 만들어 내는 것이지 한두사람의 영웅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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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5:33 [mmm] from 211.55.187.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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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집권을 않했으면 고구려 털리고 신라 털리고 백제 털렸을듯 고구려는 민족의 방파제역할을했다고나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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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5:54 [뷁] from 59.4.3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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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봤고요. 연개소문의 반정은 복합적이겠죠.질문 있습니다 .꼭 답변부탁합니다. 신라를 공격한 이유와 아들들의 반목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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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5:56 [신호재] from 121.162.23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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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견해를 가진 놈들은 병신입니다. 연개소문이 만약 집권안하고 당나라가 쳐들어왔으면 그 많은 대군을 누가 무찔렸을 것이며 아마도 방파재 역활을 한 고구려가 깨진다음에 백제 신라를 차례대로 먹은다음에 한반도를 지배했겠죠 다행히도 고구려가 버텨줬기 때문에 나중에 신라놈들이 당나라를 무찔를수 있었던거지 사실상 고구려가 군대 안막았다면 그 많은 대군을 어떻게 신라가 상대합니까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영웅이지요 또한 민족의 자존심 입니다 | |
08/07/02 (수) 오후 6:12 [예쁜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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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까 글을 읽어보니깐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의 행동은 민족에 배반행위가 아니다 했는데 실질적으로는 배반행위는 아닙니다. 자신도 잘아야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백제를 멸망시킨 이외에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고구려유민들 까지 몰아낸 점에 대해서는 명백한 민족 배반 행위입니다. 또 삼국시대 당시 민족이라는 의식이 없다 하더라도 옛날 광계토때 신라를 지원해준 일과 백제의 성왕의 목을 천민의 손에 베게 한것은 실질적으로 야만적인 국가행위이죠 | |
08/07/02 (수) 오후 6:17 [예쁜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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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은 쿠데타를 일킨것이고,고구려를 말아먹으것입니다.망국의 실패자가 역사상 인물로 기록되는것은 그만큼 한국의 역사학이 미개하다는증거 일뿐입니다. | |
08/07/02 (수) 오후 6:23 [어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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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또 글을 읽어보니깐 고구려를 과대평가 하지 말랬는데 과대평가를 해야할 나라가 고구려입니다. 유일하게 중국대륙을 상대로 중국의 야망을 상대로 중국의 화이사상을 꺽은나라가 어디입니다. 고구려입니다.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발해가 들어서고 발해다음에 같은 민족은 아니지만 요.금 .원 나라가 중국을 꺽지 않았습니까 ? 실질적으로 그들의 근본이 되었던것이 고구려입니다. 아시아 문명이 서양문명에게 진 이유는 다양한 국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
08/07/02 (수) 오후 6:23 [예쁜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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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도는 잘못된 지도입니다. 영양왕은 수나라를 치기전에 백제와 신라를 칩니다. 그런데 한국의 지도는 신라가 안변 비열홀부터 한강하류까지 지배하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590년 신라진흥왕의 한강하류는 590년 온달의 남하로 백제의 침공으로 잃게 됩니다. 온달이 590년 경북죽령으로 남하하자 백제가 한강하류를 다시 되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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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6:37 [dsf]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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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년 영류왕은 남수북진이 아니라 남진북수를 택한 왕입니다. 우선 백제신라를 도모하고자 하는 왕이었죠. 그리고 대전이나 청원 조치원에가면 원수산성 소문산성이 있읍니다. 고구려가 남하를 시도한것이고 총수에는 연개소문이 있었읍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지도를 안변홀까지 확대하는 것은 한국사의 역사왜곡측면이 강합니다. 그리고 당항성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근방일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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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6:41 [ㅁㄴㅇㄻㄴ]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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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년 5월에 군대를 보내 백제 송산성(松山城)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석두성(石頭城)으로 옮겨 습격하여 남녀 3천 명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608년 신라의 변경을 습격, 우명산성(牛鳴山城)을 함락하고 군사 8,000을 포로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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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6:43 [ㅂㅈㄱㄷ]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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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건처럼 영양왕 시절에는 이미 백제와 신라를 남변에 두고 대치중이었읍니다. 한국은 신라사 날조를 중단해야 합니다. 신라는 고구려 백제 말갈 왜의 4각 침공으로 경상도 지역으로 영토가 줄어서 고구려로 왜로 당나라로 구원병을 요청하러 간것이고 고구려 백제가 멸망한 것이죠. 그런데, 왜 역사를 날조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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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6:45 [ㅂㅈㄱ]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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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은 600년경에 태어나서 강원도 원주에 버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신라로 들어가서 종살이를 하다고 중국으로 건너 갑니다. 중국으로 건너가서 수나라 멸망에 공헌하게 되지만 세력이 없어서 중국황제에 오르지 못하게 되고 고구려로 다시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영양왕 시절에 남진북수의 임무를 띄고 대 백제신라전을 지휘합니다. 그래서 조치원에 소문산성이나 원수산성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나이 40-50쯤에 쿠테타를 일으켜서 대막리지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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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6:49 [ㅇㅁㄴㅇㄹ]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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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막리지 연개소문은 642년경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대중국정벌전을 감행합니다. 그리고 당왕 이세민을 사로잡기까지 합니다. 연개소문이 몸소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다? 경관을 다시 세우지 않았다는 것은 엉뚱한 딴지에 불과합니다. 연개소문의 죄는 고수전쟁으로 피폐해진 고구려의 국력으로 당왕 이세민을 잡는데 쓴죄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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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6:52 [ㅁㄴㅇㄹ]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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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한국인들아직드고구려갓꾸말하네 언제말한나라 10세기넘께지낫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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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6:52 [eqwe] from 124.234.11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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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류왕멍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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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6:53 [송정혁] from 221.144.63.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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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은 동북아를 지배하는 황제가 목표였읍니다. 불행하게도 연개소문은 거란이나 몽고 말갈여진처럼 운이 따라주지 못하였읍니다. 죄가 있다면 이것을 물어야 합니다. 연개소문이 당나라를 멸망시켰다면 연개소문은 역성혁명을 넘어서 티벳부터 왜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태황제에 올랐을것입니다. 그리고 연개소문은 662년 사수대첩을 끝으로 고구려와의 인연을 끊고 왜로 도왜해서 천무천황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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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6:55 [ㅁㅁㅁㄴㅇ]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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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we 개념없는 소리하지 마세요 고구려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토를 가졌던 어느 나라에도 비기지 않을만큼 강력했던 나라이며 우리는 그 역사를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님처러 개념없는 소리하는 인간이야말로 문제입니다 그리고 오타 내용 보면 초딩인것같은데 왠만하면 그런 재수없는 소리는 하지마세요 기분나쁩니다 고구려라는 나라를 우리는 절대로 잊어선 안되고 그역사에 대한 평가는 우리의 반성이 될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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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6:55 [서번트] from 221.138.111.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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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님에게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고구려는 그 때 당시 수나라의 침공으로 인하여 국력이 거의 상실상태였습니다 애석하지만 우리는 이미 중국이라는 그 거대한 호랑이를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그때 당시로는 최대한 멸망을 늦추고 중국을 혼내는것 그렇게 한다면 중국도 생각을 고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연개소문이 집권하지 않았더라면 영류왕에 의해서 고구려는 더 빨리 망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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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6:57 [서번트] from 221.138.111.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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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영자님의 좋은말을 알아냈습니다.돈버그는 아닙니다. | |
08/07/02 (수) 오후 6:57 [하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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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류왕의 처세는 옳은 판단이었읍니다. 영류왕은 고수전쟁으로 피폐해진 고구려의 국민들을 다시 만드는 일이 급선무였읍니다. 사람 하나 만드는데 30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봉역도를 바친일 경관을 허무는 일은 영류왕의 실책으로 보입니다. 연개소문의 죄를 묻자면 고수전쟁으로 피폐해진 고구려의 군대를 이끌고 당왕 이세민을 잡는데 병력을 써버렸다는 것이죠. 연개소문이 당나라를 멸망시켰다면 불세의 영웅이었을텐데 결과적으로 보면 고구려 멸망과 관련이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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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7:00 [ㅁㄹㅇㅁ]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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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대해서 논하자면 신라는 태어나면 안되는 나라엿읍니다. 왜구의 침략을 50여차례 이상 받은 나라엿고 550년 신라 진흥왕의 한강유역 점거도 590년 온달의 남하고 모두 잃게 됩니다. 한강하류는 백제가 다시 차지하게 됩니다. 고구려는 경북죽령까지 지배하게됩니다. 신라의 죄를 논하자면 원광에게 시켜서 고수대전을 부추기는 걸사표를 바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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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7:03 [ㄴㅇㅀㄴㅇ]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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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대해서 민족의식은 없었으니 잊어달라고 하는 것은 괘변입니다. 신라는 민족의식 유무로 알수있는 나라가 아니라 가장 어리석고 가장 슬픈 판단을 한 한국사의 비극입니다. 신라는 왜 신라가 존재하는지 이유를 모르는 나라엿읍니다. 고구려가 막아주니까 신라가 존재하는 것이죠. 왕을 유지하기 위해서 쓸데없이 당나라로 가서 백제고구려 멸망을 부추긴것이고 고구려 멸망시에 20만명을 원병하게 됩니다. 발해때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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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7:05 [ㅁㄴㅇㄹ]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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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당나라로 가지 않았다면 백제나 고구려의 멸망은 없엇을 것입니다. 백제는 대 신라전에 병력을 투입하다보니까 삽시간에 배후를 당한 것이죠. 그리고 고구려는 백제신라에 통일전선을 형성해야 했읍니다. 다 고구려가 통일 못한 후유증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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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7:07 [ㅁㅇㄴㄻ]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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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멸망후에도 고구려는 662년 사수대첩에서 당나라를 전멸시킵니다. 그리고 연개소문은 고구려를 아들에게 맡기고 일본에 가서 황제의 꿈을 실현시킵니다. 고송총이나 기또라 고분은 누구의 무덤일까요? 연개소문은 이순신 장군처럼 국민과 조국을 위해 헌화한 분은 아니고 나폴레옹이나 한고조 유방 주원장 이성계나 왕건씨처럼 역성혁명내지 황제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왕입니다. 나폴레옹이나 카이저 한고조 유방과 같은 황제의 꿈 입신출세의 달인으로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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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7:11 [ㅁㄴㄹㅇ]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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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의 죄를 논하자면 1.고구려의 병력으로 당왕 이세민을 잡으러 길길이 날뛴죄, 그로인한 고구려 병력의 손실 2. 대막리지 벼슬을 아들에게 물려준죄,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앗어도 고구려멸망은 없었다. 신라의죄를 논하자면 1.원광의 걸사표사건으로 고수대전을 부추긴죄2.고수대전으로 고구려신라국경선이 경북죽령이었는데 고수대전으로 삽시간에 한강유역 500리땅을 갈취한죄가 있다. 게다가 고구려백제말갈왜 4각 침공으로 신라의 영토가 경상도 유역으로 좁아지자 당나라로 도당해서 당나라를 끌어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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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7:15 [ㅁㅇㄻ]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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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역사에 저렇게 큰 나라였던 당나라하고 저렇게 어깨를 두고 당당히 싸웠다는 자체만으로도 자랑스럽습니다. 현재의 모습은 그에비해 너무 안타깝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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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7:15 [ㅁㄴㅇㅁㄴㅇ] from 121.188.31.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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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류왕의 공과를 논하자면 1.영류왕의 사대주의는 긍정할만하다. 하지만 봉역도를 바치고 경관을 파괴한죄는 용서받을수가 없다.2.영류왕은 봉역도와 경관파괴대신에 수성전에 돌입할채비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이래저래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가 당나라다.3. 연개소문같은 주전파들도 적극 포용을 했어야 옳았다. 사대만이 살긴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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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7:24 [ㅁㅎㅁㄴ]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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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의 죄를 논하자면 1. 김춘추가 고구려에 왔을 당시 감옥이 아니라 목아지를 땄어야 옳았다. 2.서해상에서 김춘추가 당나라에서 돌아왔을때 모조리 죽여서 김춘추를 죽였어야 옳았다. 3.662년 사수대첩에서 승리한후 일본으로 도왜한죄. 황제가 그리고 좋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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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7:25 [ㅁㄴㅇㄻ] from 122.36.184.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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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7:31 [3] from 118.103.207.1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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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류왕은 지금의 현 정부와 비슷한것 같습니다. 모든 정책이 사대주의로 흐르고, 민족의 주체성을 살리기 보다는 현 체제 유지에만 급급하는... 연개소문이 중국의 경극에도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것처럼, 고당 전쟁때 중국의 본토를 휩쓸었던것이 사실일거라 생각합니다. 그 당시 당나라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정복전쟁을 완성했어야 하는데, 아마도 중간에서 회군한 점과...고구려가 신라를 정복하지 안한것은 결국 현재의 좁은 한반도로 그것도 반쪽짜리 땅덩어리만 후세에 물려준 뼈아픈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 |
08/07/02 (수) 오후 7:36 [sjme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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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한사람의 생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너가 그시대에 살아나. 연개소문이 바보가 그시대 그정도의 시대 감각이 없다고 생각 하고 평가하는가. 사람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혼자 살지 못하고 종으로만 살아야 하는 사람... 다른하나는 삶의 개척하는사람.재발 너같은 역사를 한쪽으로만 평가하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 한다... 재발 한국에 있지 말구 나가라 부탁할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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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7:42 [바른역사] from 210.90.2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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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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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7:42 [db] from 121.125.206.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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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꼬... 미친놈...혼자다 하는구나. 너가 연개소문의 평가 하나. 아니고. 연개소문보다 더 한 차원 높은 분이 왔네.. 이제 우리나라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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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7:48 [444] from 210.90.2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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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수상한 느낌이 드네요. 짱개의 냄새가 조금 나는데. | |
08/07/02 (수) 오후 7:58 [kimjh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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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류왕이였다면 저 중국을 쳐들어가서 넓은 영토를 빼앗을수 있었다는 생각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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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02 (수) 오후 8:21 [영류왕] from 125.180.153.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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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u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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