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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에반게리온 초호기 기동 개시! 에반게리온 : 서(エヴァンゲリオン : 序)
한태식(칼럼니스트), 강상준(필름2.0 기자)
1995년 TV도쿄 채널을 통해 처음 방영된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특유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가이낙스의 상업적 기획력이 어우러져 ‘신세기’ 애니메이션의 진일보를 이루었다. 그리고 에바가 창조된 지 10년을 훌쩍 넘겨 세기마저 바뀐 지금. 신극장판 4부작이라는 이름으로 21세기형 새로운 에바가 기지개를 폈다. 작년 9월 일본에서 처음 공개된 4부작의 서장 <에반게리온: 서(序)>는 에바의 전설을 확인하는 동시에 또 다른 신화를 예견케 하는 작품. 2008년 한국에 상륙한 새로운 에바를 통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시작과 미래를 더듬어본다.
에반게리온, 신화의 재구성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아마추어 동호회를 중심으로 시작한 일개 애니메이션 제작사 가이낙스를 세계적인 문화 근원지로 격상시켰다. ‘에바’가 창출한 수많은 코드와 이에 열광한 팬들의 추억은 신세기를 맞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애니메이션 전문가 한태식이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낳은 거대한 효과와 추억을 더듬는다.
거대한 아야나미 레이의 목이 꺾이고 하늘도 사라진 무대. 도무지 시작인지 끝인지 알 수 없는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의 아득한 단말마. 그리고 어색하게 고개를 떨어뜨린 채 흐느끼는 이카리 신지. 1997년 공개된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진심을 그대에게> 마지막 장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말 그대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공개됐다.
지난해 9월 난 도쿄에 있었다. 일본에서 최초 개봉한 <에반게리온: 서(序)>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관련 행사들을 보고 싶어서였다. 9월 초 도쿄 이케부쿠로 근처 작은 극장가. 많은 팬들이 줄을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에는 일본의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신세기 에반게리온>(이하 <에반게리온>) 관련 문화 행사인 ‘Eva At the Work’에 대한 광고와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개봉 뒤 며칠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많았고, 레이와 신지, 아스카의 코스프레도 간혹 보였다. 상점에는 <에반게리온> 관련 상품들이 즐비했는데, 예전처럼은 아니지만(1997년 당시에는 새벽 5시 30분이 첫 영화 시작이었다!) 미리 그것들을 입고 등장한 여러 선수들도 보였다. 물론 그중에는 서양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구세기 <에반게리온>은 20세기 마지막 5년 동안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 아니메 팬들 사이에서 붐을 일으켰으며, 안노 히데아키라는 젊은 감독과 가이낙스라는 제작사의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게 했다. 이러한 현상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CG를 담당했던 웨타프로덕션(WETA)이 실사영화를 위한 개발단계로 들어가게 했고, <에반게리온> 시리즈에 대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하게 했으며, 전세계에서 아니메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발간되는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에반게리온>에 대한 수많은 수수께끼와 그에 따른 괴소문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에반게리온>은 일종의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았다. 과연 무엇이 그토록 ‘에바’에 열광하게 했을까?
가이낙스의 태동
한국 사회에서 안노 히데아키와 가이낙스라는 이름을 가장 먼저 알렸던 작품은 놀랍게도 PC게임인 <프린세스 메이커>였고, 이후 소규모 동호회를 통해 상영됐던 <건버스터: 톱을 노려라!>(이하 <건버스터>)와 <1982 오타쿠의 비디오>(1991)였다.
1989년 가이낙스가 제작하고 안노 히데아키가 감독을 맡았던 OVA <건버스터>는 기존의 애니메이션에서는 보기 힘든 패러디와 장르적 결합을 선보인 최초의 작품이었다. 사실 가이낙스는 첫 작품이었던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1987)를 통해 화려한 데뷔를 하려 했었지만, 이 작품은 당시 보기 드문 수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는 참패하고 만다. 이 덕분에 가이낙스는 소위 상업적으로 기획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건버스터>다. 이 기획의 전말은 ‘로봇+미소녀+SF애니메이션’이라는 공식이었다. ‘오타쿠’라 불리던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모든 장르와 인물을 결합시켰던 것. 덕분에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오타쿠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됐다. 물론 이러한 장르의 골격은 안노 히데아키의 다음 작품인 1989년 작 TV시리즈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미소녀+전함+SF)로 지속됐으며, 이후 <에반게리온>에도 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쩌면 이 작품이야말로 패러디와 오마주, 그리고 오타쿠라는 관객을 몰고 다닌 가이낙스의 실체를 보여준 첫 작품이었던 셈이다.
<1982 오타쿠의 비디오> 역시 가이낙스다운 작품이었다. 80년대 오타쿠라고 불렸던 집단에 대한 애니메이션과 실제 오타쿠를 인터뷰한 실사 다큐멘터리가 함께 수록된 이 작품은 제작사 자신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자화상 격으로 완성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1960년대 태생(흔히 이들을 ‘아니메 세대’라고 부른다)으로 70년대의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경험했던 가이낙스의 구성원들은 오타쿠라 불리던 세대 그 자체였으며, 또한 순수 아마추어 동호회 출신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오타쿠로 대변되던 마니아 문화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취향과 감성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에반게리온>, 장르 변용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1995년 TV도쿄를 통해서 처음 방영됐을 당시에는 그리 큰 방향을 일으키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 방송이 어린이 시간대에 잡혔던 것이 문제였다. 안노 감독이 “이 작품의 시청 연령대는 30대 이상이어야 한다”고 언급했던 인터뷰 내용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어린이들이 이 작품을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지속된 마케팅과 작품을 본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의해 <에반게리온>의 2차 방영이 시작됐으며, 동시에 신드롬이 조성됐다. 그 시작은 로봇이라는 장르적 종말과 패러디, 그리고 오타쿠였다.
<에반게리온>이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로봇물임에는 틀림없다. 흔히들 로봇물 하면 떠오르는 작품들은 나가이 고의 <마징가 Z> <게타로보>, 도미노 요시유키의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모두 1970년대 시작된 애니메이션들로서, 아니메 세대라 언급되는 신세대 감독들에게는 더없는 감동을 주었던 작품들이자 동시에 뛰어넘어야 할 산이기도 했다. 특히 안노 히데아키에게 로봇물은 SF 오타쿠였던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장르이기도 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먼저 <에반게리온>이 취했던 로봇 장르의 이해는 탑승과 관련되어 있다. 에반게리온 초호기에 신지가 우연히 탑승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적을 무찌르는 장면은 모든 로봇물의 기본 전형이었다. <마징가 Z>의 가부토 코지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징가에 탑승하게 됐고, <기동전사 건담>의 아무로 레이도 전쟁 중에 엉겁결에 건담에 탑승하게 된다. 또한 그들은 모두 로봇을 만든 장본인의 아들이기도 하다(로봇물이 주로 가족, 특히 가부장에 대한 권력과 함께 독해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덕분인지 아이들은 아버지의 명령대로 로봇에 탑승하고 알 수 없는 적들에 맞서 싸운다. 그리고 그 로봇들은 <마징가 Z>가 그랬듯이 끝없이 침입해 들어오는 괴수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기지를 지켜내는 것을 반복하며 위기를 극복한다. <에반게리온>이 취한 이러한 로봇물 장르의 전형은 이외에도 1호기, 2호기와 같은 서브 머신의 개념, 지하 비밀기지의 존재, 탯줄로 이어진 로봇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오랜 시간 동안 싸울 수 없다는 설정, 탑승자가 로봇의 고통을 함께 겪는 탑승자와 로봇의 일체화 방식 등으로 이어지며 기존 로봇물을 반복해나간다.
그러나 에바는 이런 기존 로봇물의 전통을 비틀어버린다. <에반게리온>은 기존의 로봇 파일럿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열혈소년’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상쇄시켜버렸다. 열혈 또는 근성이라는 말은 소년 파일럿들에게 언제나 강조됐던 것으로, 오타쿠들 사이에서는 유행어처럼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에반게리온>의 신지에게 열혈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그는 자신이 로봇에 탑승한 어떠한 정당성도 발견해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에바의 모든 캐릭터들이 열혈탑승자가 아닌 분열적이고 어딘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로 묘사되기까지 한다.
이러한 로봇물 전통의 핵심은 정의와 평화는 전투를 통해 지켜진다는 남성적 담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로봇의 디자인은 강인하고 전투적인 남성적 신체를 닮아 있다. 하지만 에바의 모습은 강인한 남성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다. 오히려 그 모습은 클림트나 에곤 실레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왜곡되고 변형된 신체를 가진 우울한 인간의 모습에 가깝다(실제로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아담(Adam), 에바(eva), ‘생명의 나무’ 등은 클림트의 작품들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들이다). 초호기의 본래 명칭이 ‘범용 인형 결전 병기 인조인간 에반게리온 초호기’라는 것을 기억하자. 에반게리온은 태생적으로 로봇이 아닌 사람에 가깝다.
안노는 이를 통해 이 작품이 단순히 오타쿠의 입맛에 봉사만 하는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특히 시리즈의 종반에 이르러 관객과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에서는 오타쿠였던 그들에게 “이웃을 사랑하고 마음을 열어라”는 복음(evangel)을 설파하기에 이른다. 실로 이 작품은 오타쿠에 대한 비판이 더 우선시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에바의 막대한 영향력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은 <건버스터> 때와 마찬가지로 ‘로봇+미소녀+SF애니메이션’이라는 부분을 차용하고 있다. 이는 주로 안노 히데아키와 가이낙스의 여러 아니메 세대들이 보아온 작품들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것들은 주로 70년대와 80년대 초반에 이르는 일본의 애니메이션들과 각종 특수촬영물에서 비롯됐다.
제일 먼저 작품의 극단적인 파국과 주인공의 고뇌에 대한 부분에서는 건담 시리즈를 만든 도미노 요시유키의 <바다의 트리톤> <기동전사 건담> <전설거신 이데온>의 영향을 빠뜨릴 수 없다. ‘도미노 요시유키’의 작품들은 그 당시 일반 TV를 통해 방영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상당히 충격적인 결말이나 암울한 내용으로 일관했던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1972년도 TV판으로 제작됐던 <바다의 트리톤>은 아틀란티스 대륙의 마지막 트리톤족 생존자인 아이가 겪게 되는 해양 어드벤처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에서 방영했을 때도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막바지에 이르러 한없이 흥겨웠던 작품은 고뇌에 갇히게 된다. 바로 주인공이 복수를 하려 했던 대상이 이미 예전에 트리톤족이 멸망시켰던 포세이돈족이었던 것이다. 피아의 구분이 어려워진 주인공의 모습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이러한 충격적 결말은 <에반게리온>에서도 반복된다.
일본 로봇 아니메사의 최대 문제작으로 남아 있는 <전설거신 이데온: 발동편>(이하 <발동편>)의 마지막 장면이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마지막 장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1982년 지나치게 난해하고 우울한 내용을 가진 <전설거신 이데온>은 마지막 4회분이 방영되지 못한 채 강제 종영된 TV시리즈였다. 이후 팬들의 성화에 의해 <전설거신 이데온: 접촉편>과 <발동편>으로 나눠진 세 시간짜리 극장판 대작으로 만들어졌다. 이 중 <발동편>의 마지막은 상당히 충격적인데, 로봇의 장대한 힘에 이끌려 폭주했던 이데온이 주인공들을 포함해 모든 인류를 말살시킨다.
이후 주인공들은 일종의 유령의 형태로 우주 공간에 남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생명체로의 희망을 이야기하게 되는데, <에반게리온>은 <발동편>의 이 같은 제작방식을 차용함과 동시에 결말 부분도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시켰다. 이외에도 사도의 등장과 이를 막아내는 조직의 등장은 기본적으로 70년대 슈퍼로봇 시리즈와 특촬물 <아이젠버그>의 스토리 구조를 빌려왔다. 사도와의 격투 신 연출은 <고지라> 같은 특촬물의 전통으로부터 계승됐으며, 물론 당시 거의 모든 SF애니메이션들이 지켜온 <아키라>의 시대 구분과 도쿄의 명명법 역시 <에반게리온>에서 계승됐다. 그리고 일본의 거대로봇 애니메이션과 특촬물들이 숭배해 마지않았던 1968년 영국의 특촬물 <썬더버드>, 70년대 애니메이션의 전설 <우주전함 야마토> <초시공 요새 마크로스> 등 <에반게리온>이 영향을 받은 작품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 막강한 영향력이 <에반게리온: 서(序)>를 통해 다시 한 번 우리를 찾아온다.
- 한태식(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에바 월드, 새 서막이 열리다
<에반게리온>의 신세기를 열 ‘4부작 신극장판’의 그 첫 번째 조각이 공개됐다. 20세기의 영광을 다시금 이어나갈 새로운 에바 시리즈의 전초기지 <에반게리온: 서(序)>는 에바의 본질 그대로를 가져온 팬서비스 작품이자 새로운 신화창조의 도화선이다.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파란 물결이 신비한 파문을 그리며 문을 열었던 이 오프닝넘버의 외침은 오늘날 진정한 신화로 자리매김한 ‘에바’의 위치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듯하다. <우주전함 야마토> <기동전사 건담> 이후 일본 내에서는 애니메이션의 세 번째 사회적 신드롬으로 평가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하 <에반게리온>)은, 명품 애니메이션이기 이전에 90년대 일본에 초문화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온 동시에 전 지구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킨 20세기의 중요한 문화 코드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TV 방영용으로 제작돼 명백히 상업용 작품을 지향하는 이 로봇 애니메이션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독창적인 디자인의 메카닉, 그리고 명령과 체계를 중심으로 한 밀리터리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아니메 마니아를 겨냥한 본연의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몇 가지 외피만으로 충분히 매혹적이던 <에반게리온>은 기존 로봇물을 답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회를 거듭될수록 로봇 애니메이션의 장르적 관습을 하나둘씩 전복해나가며 파격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에반게리온>은 처음부터 온갖 콤플렉스 덩어리인 소년 이카리 신지와 그의 성장에 집중하며 단순히 적을 섬멸하는 장르적 상투구에 머물지 않으려 한다.
에바는 기독교적 신화를 기저에 두고 인간과 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진중한 질문들을 반복적으로 던졌다. 또한 과학을 과신하는 인간의 오만함을 거름 삼아 비밀스럽게 생명의 근원을 파헤쳐가며 철학적인 물음에 매달리기도 했다. 이렇듯 피를 흘리고 송곳니를 드러내는 그로테스크한 인간형 병기 에반게리온이 만들어낸 신인류 묵시록은 세기말을 바탕으로 한 20세기의 가장 신비로운 전설이자 새로운 신화로 묵직한 발자취를 남긴다. 그리고 마침내 아서 C. 클라크의 소설 <유년기의 끝>과 같은 인류 전원의 자아가 합일되는 SF적 결말의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마지막으로 에바는 명예롭게 무대에서 퇴장하는 듯싶었다.
이제는 모두의 기억 속에 ‘고전 애니메이션’으로 굳건히 자리잡은 <에반게리온>. 이런 이유로 2007년 에바의 귀환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프로젝트였는지 모르겠다. 1997년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으로 화려하게 대단원을 장식한 줄 알았던 21세기 에바의 새로운 장은 20세기에 이룬 신화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며 다시금 그 서막을 올리기 시작한다. 물론 신극장판 <에반게리온: 서(序)>(이하 <서>)는 가이낙스와 안노 히데아키가 선사하는 추억의 서비스 이상이다. 이는 곧 <에반게리온>이 만들어놓은 역사를 다시금 되짚어가는 동시에, 21세기의 또 다른 신화를 예고하는 의미 있는 등장이다.
에바의 재구축
원년 멤버 그대로 완성된 <서>는 리메이크도 리바이벌도 아닌 ‘리빌드’(Rebuild) 버전이다. 말 그대로 <에반게리온>을 재구축한 <서>는 과거의 추억을 복기하는 것을 넘어 에바에 대한 기대치와 유통기한을 21세기로 새롭게 확장하려는 신세기 에바 프로젝트의 첨병을 자처하는 작품이다.
극장 스크린을 통해 팬들과 조우할 새로운 에바는 10년 전 원화와 레이아웃을 디지털 작업으로 재작화하여 극장용 와이드 화면에 걸맞는 새로운 옷을 입었다. 최신의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볼거리를 기본 바탕으로 하는 신세기 에바 <서>의 새로운 면모는 재구축된 에바의 세계를 더욱 매력적으로 현대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 변화는 구세기 <에반게리온>의 연출을 거의 그대로 활용하면서 여기에 2D와 3D를 뒤섞는 세밀하고 감각적인 화면 배합에서 우선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캐릭터들을 표현하는 음영은 과거에 비해 훨씬 디테일해졌고, 에바가 사용하는 무기들 역시 더욱 메커니컬한 형태로 재창조돼 곳곳에서 작화 퀄리티의 향상을 감지할 수 있다. 이로써 요새도시 제3신도쿄 시가 적의 침공에 대비하여 변화하는 과정은 정교하고도 짜임새 있는 움직임을 갖추며 상당한 실재감을 품게 됐다.
특히 디지털 기술이 더욱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사도의 모습은 눈길을 끈다. 초호기와 사도의 첫 대면 장면, 전투를 위해 구속구에서 해제돼 어깨를 늘어뜨린 초호기의 모습은 수년 전 기억과 맞물리면서 추억으로부터 거슬러오며 전율을 일으키는 장면 중 하나다. 여기에 덧붙여 불가사의한 생명체이자 신의 대리자인 사도에게 더욱 역동적인 생명력을 부여하는 <서>는 과거의 연출 그대로 액션 장면을 완성하면서도 에반게리온과 사도의 싸움을 훨씬 박진감 넘치게 완성하고 있다. 8면체 형태의 사도 라미엘은 고정된 모습의 TV판과는 달리 형체를 자유로이 변환하는 3D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확연히 드러내며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런 새로운 장면들은 모두 <서>가 새로이 제공하고자 하는 시각적 쾌감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단순히 과거 팬들의 무한한 애정에 의존하거나 고전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아우라에 기대지 않으려는 가이낙스의 새로운 야심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新에바, 소년의 음울한 성장기
<서>의 부제 ‘You are (not) Alone’은 괄호 쳐진 부정어 ‘not’으로 인해 혼자를 지칭하는 것인지, 혼자가 아님을 의미하는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든다. 이는 신극장판 4부작이 <에반게리온>의 기획의도와 세계관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끝내 명확한 해답을 던져주지 않고 비밀스러운 세계관을 간직한 채 마무리됐던 20세기 신화 <에반게리온>은 암호나 다름없는 이야기들이 그 중심을 이루며 다양한 담론을 양산하게끔 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사실 <에반게리온>의 함의는 비교적 명백하다. 갖가지 암호화된 지시어들과 기독교 신화가 에바 세계를 뒷받침하며 동시에 무한한 확장을 꾀하고 있지만, 모든 상징들은 언제나 주인공 신지를 통해 합일되곤 했다. <에반게리온>은 미지의 존재가 꾀하는 인류 멸망과 이에 맞서는 인간들의 분투기를 그리는 SF애니메이션의 껍질을 두르고 있다. 그럼에도 에바는 결국 인간의 ‘관계’에 대한 원천적인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드라마’에 가깝다.
아버지의 명령에 의해 강제로 에바 초호기에 탑승하는 신지는 시리즈 내내 “왜 하필 내가 에바를 타야 하느냐”는 본연의 질문을 반복하며 갈등한다. 이는 에바가 물리적인 조종방식이 아닌 기체와의 정신적 싱크로를 통해 기동하는 것으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신지가 에바를 타고 미지의 적과 맞서는 것은 “도망치면 안 돼”를 되뇌며 “스스로 맞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돼”라는 당연한 교훈을 체화하는 과정과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불완전한 무기로 상징되는 에바의 본질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인조인간 에반게리온은 유선으로 연결된 상태로 전력을 공급받지 않으면 자체적으로는 단 5분 혹은 1분 정도밖에 움직일 수 없다. 파일럿이 에바의 정신 제어에 실패해 오히려 이에 잠식당하는 정신 오염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적을 막기 위한 무기지만 폭주에 이르면 제어불능 상태가 되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신지가 아버지를 비롯한 타인의 기대에 억지로 부응해 에반게리온 초호기에 몸을 싣고, 또 이를 통해 남을 상처 입히고 또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처음부터 새로운 영역에 몸을 들이민 소년의 공포와 이를 이겨내야 하는 소년의 통과의례와 다름없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작품 내내 신지의 성장과 그의 나약한 정신을 읽는 데 주력하는 <에반게리온>은 언제나 타인 앞에서 주눅 들어 있는 신지가 아버지나 미사토, 레이 등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이야기로 좁힐 수 있다. 이것은 거대담론으로 포장된 에바가 언제고 이런 본연의 이야기로 돌아갈 수 있음을 숨기지 않는 것과도 일치한다. TV시리즈의 대단원을 어떤 거대한 사건의 종결로 마무리한 것이 아니라 신지의 사이코드라마로 그리며 다시금 인간의 관계에 대해 토로했던 <에반게리온>은 인류 보완계획이라는 에바 시리즈의 궁극의 미스터리를 모든 자아의 통일로 인한 관계의 맺고 끊음 그 자체의 소멸로 구현하며 이를 더욱 극명히 제시한다.
구세기와 신세기를 연결하는 신화
신극장판 <서> 역시 <에반게리온>이 말하고자 하는 이 주제를 놓지 않는다. 레이의 웃음으로 마무리되는 <서>의 결말은 TV판의 6화에 해당하는 장면 그대로지만, 타인을 위해 진실한 눈물을 보이고 이에 미소로 호응하는 두 소년소녀의 교감은 4부작 시리즈의 한 부분이 아닌 단독 작품으로도 손색없는 완결성을 <서>에 부여했다.
TV시리즈의 1화부터 6화까지의 내용을 요약정리하고 있는 <서>는 4부작으로 예정돼 있는 신극장판의 간소한 전초전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태어날 에바의 새로운 때깔을 확인하고, 애초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그대로 활용한다는 일종의 안도감과 기대감을 십분 부풀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서>는 인간의 형태로 신지에게 접근했던 마지막 사도 나기사 카오루의 등장을 암시하며, 또 네르프 지하에 롱기누스의 창으로 봉인된 제1사도 아담(그러나 실은 아담이 아닌 릴리스)의 실체를 TV판에 비해 무척이나 일찍 공개하면서 이후 공개될 ‘파’(破), ‘급’(急), 그리고 아직 제목이 결정되지 않은 완결편의 향방에 대한 궁금증을 잔뜩 불러일으킨다. 2부에 해당되는 <에반게리온: 파(破)>의 예고편은 달을 배경으로 하강하는 새로운 에반게리온, 그리고 안경을 쓴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며 팬들의 궁금증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제작진의 말대로 신극장판 4부작은 <에반게리온>의 본래의 기획의도와 작품의 본질만은 그대로 가져갈 예정이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새롭게 진화해나갈 <에반게리온>이 또 다른 평행세계(parallel world)를 통해 구세기와 신세기를 연결하는 진정한 신화로 자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강상준(필름2.0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