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는 다시 서울 사무실로 돌아간다. 시골에서 어머니와 둘이 지내다가, 서울로 올라갈 때면 마음이 무겁다. 마치 어린아이 혼자 두고 집을 나서는 기분이다. 아무리 어머니가 건강하다 해도, 나이 91세가 되면 몸 움직이는 게 부치니 하루 세 끼 챙기기도 버거울 일이다. 요리 솜씨가 있든 없든, 어머니와 살면서 시간 맞춰 식사를 챙겨드리며 스스로 흡족해 한다.
어머니와 일주일 혹은 열흘 남짓 떨어져 있지만, 서울 가기 전에는 어머니와 무언가 좀 특별한 요리를 해 먹는다. 내가 없는 동안 좀 더 편하게 식사를 챙길 수 있도록 미리 시장도 봐둔다.
어머니가 요즘 제철인 새조개를 드시고 싶어 해서, 점심을 먹은 후 벌교 재래시장을 보러 갔다. 우선 마트에 들러, 계란이며 콩자반, 라면 등을 산 후 온갖 생선이 즐비한 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새조개가 쇠고기보다 비싸다더니 채 한 대접도 안 되지 싶은데 5만 원이란다. 비싸긴 해도 어머니와 샤브샤브를 해 먹기에는 적당한 양 같았다. 큼직한 생태도 두 마리 사고, 싱싱해 보이는 매생이도 서너 봉지 샀다.
어머니와 나만의 해물샤브샤브를 준비한다. 여러 야채는 필요 없었다. 겨울 배추와 무가 있고, 매생이가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어머니가 새조개를 손질하는 동안 나는 미리 배추와 무를 썰고 매생이를 씻어 두었다. 매생이는 물만 닿아도 녹아버릴 듯, 손이 간지러울 듯이 부드럽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음미하듯 킁킁거릴 만큼 바다 내음이 스민 향기가 싱그럽다.
늙으신 어머니와 늙은 아들 둘이 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고체 육수와 소금으로 간을 맞춘 채소 육수가 끓기 시작한다. 푸른색이 짙어 오히려 거무스레 보이는 매생이도 넣었다. 매생이는 점차 연기 풀어지듯 푸르게 풀어진다.
새조개를 넣어 데친 듯 익힌 후 매생이와 먹어 보는 그 맛이 지금껏 여느 음식점에서 먹어 본 샤브샤브와는 차원이 다르다. 새조개를 먹고, 매생이를 후루룩 마시는 일명 매생이와 새조개 샤브샤브이다. 새파란 매생이가 몸의 풀기를 돋우는 듯하다. 어머니는 맥주를, 나는 소주를 곁들었다. 예의 어머니의 고단하였던 옛날이야기가 이어진다. 수없이 들어온 당신 이야기지만, 나는 어머니가 지난 이야기를 끝없이 꺼낼 때 어머니의 건강한 기운을 느끼곤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