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아침, 신혼여행을 마친 딸과 사위가 무사히 돌아왔다.
아이들은 지난 달 하순에 결혼식을 치렀다.
내가 “결혼을 했다”고 하지 않고 “결혼식을 치렀다”고 말하는 이유는, 두 아이가 부부가 되기로 마음을 모았을 때 이미 결혼한 것이며, 결혼식은 단지 그 사실을 여러 지인들에게 알리는 의식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지인들 중에, 딸아이 결혼식에 대해 알리지 않은 걸 섭섭해 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다.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나는 우리나라 결혼식 문화가 낭비도 심하고 지인들에게도 과한 부담이 되는 등 부작용이 꽤 크다고 생각한다.
하여 가능한 조용하고 조촐하게 치르고 싶었다.
3.
딸아이가 사위에 대한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흡족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을 말하자 딸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도인인 줄 알았는데 아빠도 그냥 세속인이다.”
몇 년 전부터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아빠는 필수사항 3가지만 본다.
첫째, 바른 사람이어야 한다. 인간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둘째, 제 밥벌이할 능력은 있어야 한다.
셋째, 몸이 너무 약하면 곤란하다.
이상 3가지만 갖추면 나머지는 상관하지 않겠다.
학력이건 외모건 경제력이건 그 모든 건 선택사항일 뿐이니 너희들 알아서 해라...
사위는 필수사항 3가지를 다 갖추었다.
그런데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속적 욕심일 게다.
머리와 가슴이 일치하지 못한 것이다.
“그냥 세속인”이라는 딸 아이 말이 맞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위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진다.
내가 세웠던 기준이 역시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4.
내 기준에 의하면, 아들아이도 사실상 결혼을 했다.
사귀는 여친과 부부가 되기로 두 사람이 이미 마음을 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의 인정을 받으려면 결혼식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내년에 치를 예정이었던 아들아이 결혼식이 더 늦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직장문제 때문이다.
청렴결백으로 말하자면 아들이 나보다 한 수 위다.
그런 아들이 다니는 직장에서 상사인 부장이 비리를 저질렀다.
아이는 그와 동조할 수 없었고 결국 내부고발자가 됐다.
그 일로 부장이 회사를 떠났지만 아들아이 마음고생이 너무 크다.
회사에 계속 다닐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30대 중반인 아들이 직장을 떠나면 다시 자리를 잡는 일이 만만치 않다.
5.
기준을 다시 조정해야 할 것 같다.
3가지 필수사항을 하나로 줄여야 하지 않을까...
첫 번째 조건은 하늘이 무너져도 양보할 수 없다.
인간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주변을 해롭게 하는지는 내 인생 전체를 통해 너무나도 충분히 겪었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선택사항으로 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게으르고 무책임해서 제 밥벌이를 못한다면 곤란하겠지만, 요즘은 바르고 착한 사람을 사회가 외면하고 도태시키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 젊은이를 밥벌이 못한다고 퇴짜 시키는 건 너무 가혹한 게 아닐까...
건강문제도 그렇다.
사실 건강문제를 필수조건으로 넣은 건, 몸의 장애를 가진 아이를 사위나 며느리로 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내 아이가 정말로 수용할 수 있고 상대방을 좋아한다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끝까지 남는 필수조건은 단 하나, 사람 됨됨이 뿐이다.
내 아이들은, 이 점에서는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내 인생 농사, 잘 지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자식 농사만은 잘 지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