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징가제트와 울트라맨, 베어브릭과 동짜몽이 어우러지는 그의 작업실은 참 신기하다. 서로 이질적인 것들끼리 모였지만 정신없이 난잡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소품이 어울려 뭔가 유쾌한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머릿속 한구석쯤은 성장하지 않고 계속 어린 채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하는 이 작업실 주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소품들이다. 그가 문을 닫고 퇴근하길 기다려, 만화영화 ‘토이스토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살아나 뛰어다닐 것 같은 느낌이다. 장식장 앞에 나란히 놓인 흰 의자는 모두 그의 손길을 거친 것. 도트 프린트나 타이포만 붙였을 뿐인데도 범상치 않은 작품이 됐다. 더 신기한 것은 장식장 속 잡다한 오브제와 놀랍도록 잘 어울린다는 것!
그의 작품을 보면 저렴한 것과 비싼 것(또는 천대받는 것과 중요시되는 것)을 대비시킨 것들이 유독 많아 유쾌한 웃음을 자아낸다. 또 퍼플, 핫핑크 등 우리 사회에서 그다지 활용하지 않는 컬러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런던에서 유학하면서 ‘컬러’를 재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 런던 사람들이 다채로운 컬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면서 우중충하게 흐린 날씨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도 전통적으로는 색채에 민감했었는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알록달록한 색깔은 가벼워 보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져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컬러들이 우리 생활을 얼마나 즐겁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우레탄 커튼의 럭셔리한 힘 커튼처럼 제작한 우레탄 소재는 원래 인테리어용으로는 잘 쓰지 않는 아이템. 그런데 보일 듯 말 듯 불투명한 재질감 때문에 뒤쪽 사무 공간을 효과적으로 가려 주는 파티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값싼 형광등 불빛도 우레탄 커튼 뒤에서 은근히 비쳐 나오면 고급스러워 보이니 신기하다. 천장에 매달린 미러볼은 그냥 장식이 아니라, 불을 켜면 작업실을 클럽 못지않게 몽환적인 분위기로 단숨에 바꾸어 놓는 기특한 아이템이다. ‘fake’란 글자가 박힌 모자 역시 그가 직접 만든 것.
1 고리고리 라이트 그의 작품 스파게티 샹들리에서 전구 하나만 떼어 벽걸이 형태로 만든 것. 벽걸이 프레임에 그려진 패턴이 놀랍도록 다양하다.
2 개성 강한 작품의 어울림 1만원 안쪽의 저렴한 플라스틱 의자에 ‘expensive(값비싼)’ ‘luxurious(사치스러운)’등의 다분히 생뚱맞은 단어를 금빛 타이포로 만들어 붙여 새로운 느낌으로 거듭났다. 뒷페이지에 나오는 ‘크리스마스 팩토리’에서 보듯 그는 요즘 화이트와 골드 컬러의 조합에서 나오는 에너지에 심취해 있다. 뒤편의 코카콜라 병은 그에게 ‘코카콜라 보이’란 별명을 안겨 준 작품 코카콜라 프로젝트.
3 장난감도 인테리어다 문 위에 매단 선반에는 십자가와 베어브릭 형제들이 공존하고 있다. 메롱, 하고 혀를 내밀고 있는 노란 포스터는 올해 초 진행했던 ‘환타스틱 아티스틱 서울팀’전의 포스터.
4 페이크 백(fake bag) 짝퉁이 가장 많이 존재한다는 루이비통 스피디백을 풍자한 작품. 아줌마부터 아가씨까지 수십 명의 여자들이 똑같은 모델의 루이비통 백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이 백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must have’ 아이템인가 싶었다고. 하지만 그중에는 반 이상이 모조품일 텐데, 별 양심의 가책 없이 들고 다닐 정도로 카피가 대중화된 것도 신기한 사실이다. 차라리 그 모조품 가방 위에 ‘나는 짝퉁이다(fake)’라고 선언을 하는 순간 당당한 진실이 되는 아이러니를 표현했다는 것이 그의 작품 의도다. 이 가방은 앞과 뒷면이 다른 디자인인데다, 뒤집으면 또 다른 패턴이 나오는 리버서블 백이라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들고 다닐 수 있을 듯.
디자이너 박진우의 작품들
1 가짜 루이비통의 유머 흥국생명 빌딩 로비에서 열렸던 환타스틱 아티스틱 서울팀 전시에서 박진우가 선보인 작품. 다채로운 컬러의 페이크 백 패턴이 고층 빌딩의 로비를 잠시나마 유머러스하게 바꾸어 놓았다.
2 그의 크리스마스트리 1월 말까지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 옆에서 전시 중인 ‘크리스마스 팩토리’. 이 작품을 블로그에 담은 한 네티즌은 “기분이 우울해서 일부러 보러 갔어요”라는 소감을 덧붙였을 정도로 기념 촬영 스폿으로 인기 만점이었다. 영화 ‘찰리와 초콜렛 공장’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이 세상 어딘가에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내는 공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에서 탄생했다.
3 팝 아트 같은 일상 소품 제본한 책들을 아무렇게나 쌓아 놓았을 뿐인데 전체적인 인테리어와 어우러져 특별히 신경 쓴 오브제인 양 멋지다. 선반 속 잡동사니를 보일 듯 말듯 훌륭하게 가리고 있는 우레탄 소재 커튼도 유쾌하다.
4 에로틱 디시 영화 ‘감각의 제국’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에로틱 디시. ‘당신의 파트너와 음식을 먹으며 에로틱한 무드를 즐길 수 있는 선물’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역시 영국 왕립미술학교 재학 시절, 영화 한 편을 정해 디자인 작업으로 표현하라는 과제를 받고 만든 작품.
5 5 미닛 캔들 영국 왕립미술학교 재학 시절 ‘일회용품 만들기’ 과제 시간에 만든 것인데, 전 세계에서 3만 개가 넘게 팔렸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의 의미를 넘어서서, 마음 한구석에 영원히 따뜻하게 남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자꾸만 기념일을 까먹어 걱정이라면 항상 이 미니 캔들을 휴대하고 다니길.
6 캔디트리 산업화의 상징인 플라스틱과 내추럴한 나무 둥치가 만나 어우러진 스탠드. 이렇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을 조합시켜 잘 어울리게 바꾸어 놓는 것이 그의 특기다.
기획 김유리 | 포토그래퍼 이진하 | 여성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