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 사무엘기 상권의 시작 1,1-8
1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춥족의 라마타임 사람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엘카나였는데, 에프라임족 여로함의 아들이고 엘리후의 손자이며, 토후의 증손이고 춥의 현손이었다.
2 그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다.
한 아내의 이름은 한나이고, 다른 아내의 이름은 프닌나였다.
프닌나에게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3 엘카나는 해마다 자기 성읍을 떠나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주님께 예배와 제사를 드렸다.
그곳에는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가 주님의 사제로 있었다.
4 제사를 드리는 날, 엘카나는 아내 프닌나와 그의 아들딸들에게 제물의 몫을 나누어 주었다.
5 그러나 한나에게는 한몫밖에 줄 수 없었다.
엘카나는 한나를 사랑하였지만 주님께서 그의 태를 닫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6 더구나 적수 프닌나는,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으므로, 그를 괴롭히려고 그의 화를 몹시 돋우었다.
7 이런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주님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프닌나가 이렇게 한나의 화를 돋우면, 한나는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8 남편 엘카나가 한나에게 말하였다.
“한나,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도 않고 그렇게 슬퍼만 하오?
당신에게는 내가 아들 열보다 더 낫지 않소?”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버리는 것>
오늘부터 연중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부터 복음은 마르코 복음을, 독서는 히브리서를 듣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에서의 예수님의 ‘첫 발설’로 시작됩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이는 세 개의 내용으로 된 문장입니다.
'때가 찼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신 일이 아무 때나 우연히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이전의 모든 시간이 지금의 이 “때”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이 바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로 계획하신 준비해 온 결정적인 “때”(카이로스)임을 밝혀줍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에서 '가까이'(원어의 뜻: 손 안에), 곁에 혹은 예수님과 함께 ‘온’ 나라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요 은총이라는 선포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나라'는 결코 가는 나라, 곧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이미’ 온 나라입니다.
'가까이 왔다'는 완료 시제는 과거에 이루어진 행위의 결과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내거나 현재 존재하는 상태를 표시합니다.
곧 ‘이전에 이미 이루어져서 지금까지 완성된 상태로 머물러 있음’ 또는 ‘완성되어 있음’, ‘가까이 왔고 지금 가까이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는 말씀은 '복음'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요, '회개'는 이를 믿는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이는 바로 지금이 '회개의 때요, 믿음의 때'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를 가져온 예수님 자신이 곧 '복음'이요,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 안에 이미 현존하는 나라임을 말해줍니다(루카 11,20).
결국, ‘회개’의 구체적인 모습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왔다’는 ‘복음을 믿는 것’이 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도록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심입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마르 1,17)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려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버리는 일입니다.
곧 가지고 있는 것,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을 버리는 일입니다.
제자들은 아버지도, 삯꾼도, 배도, 그물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결국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실현을 위한 자신의 삶의 태도를 버리는 것이요,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신의 가치관과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요, 반면에, 새로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잘못된 것, 좋지 않는 것은 당연히 버려야 할 것이지만, 좋은 것으로 여기던 것마저도 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 좋은 것’, ‘더 값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생계 수단인 배와 그물보다도, 더 값진 예수님을 발견한 까닭입니다.
그러니 '버림'은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하나의 조건이요 방법일 뿐, 결코 목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을 버렸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찾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버리기 위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따르기 위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복음’을 따르기 위해, ‘하느님 나라’를 위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 · 샘 기도>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르 1,15)
주님!
언제나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제 자신을 빠져나가 당신께 나아가게 하소서.
어디에 어떤 처지에 있든지 당신과 함께 있게 하소서.
당신을 따라 당신의 나라에 들게 하소서.
오늘, 제 안에 당신의 나라를 이루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첫댓글 '버림'은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하나의 조건이요 방법일 뿐, 결코 목적은 아닙니다.
아멘💖💖💖
주님!
당신을 믿고 그저 따라나섬은 다 버림인데
왜이렇게 욕심 보따리가 여기저기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옳지 못한 모든것을 다 버리고 오직 당신 만으로 가득 채우게 하소서!
사랑과 겸손으로 채우게 하소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시여!
어디에 어떤 처지에 있든지 당신과 함께 있게 하소서.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 님 늘 고맙습니다 🙏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Amen.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버림'은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하나의 조건이요 방법일 뿐, 결코 목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을 버렸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찾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