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지용 청소년 문학상 운문 작품
한빛 고등학교 3년 강 예 은
선인장으로 살아간다는것
신발 뒤축에는 눈금이 보인다
읽다만 책의 두께와 두고 온 지붕들처럼
걸음과 걸음 사이의 간격을 재는 눈금자처럼
컨테이너 박스 창살 사이로 들어 오는 빛이
누구에게 빌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빛나는 것들은 수상해서
아침은 늘 손이 느리다
점자를 읽듯 무딘 손끝으로
휘어진 빛을 수리하기 시작한다
날카로운 것들을 닦을 때면
가슴 아래께 가시처럼 도지는 통증이
부끄러움인 줄 알았다
몇 번의 마름질을 거쳐 바닥을 앓았던 날이 모두 마르면
수선할 수 없는 절반의 거리는 지워질 것이다
낮은 곳의 그림자는 두께가 없고
간격은 늘 그늘의 소유다
낡은 라디오 잡음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는 뿌리 곁에
밀창이 터진 신발을 내려놓았다
밑창의 무늬는 손금을 닳기도 했다
무릎에 떠도는 멍처럼 푸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컨테이너 박스의 내부를 들여다본다
나는 불쑥 일어나 직립의 그림자를 던진다
발자국은 없고 바퀴자국만 선명한 골목길이 흔들린다
첫댓글 고등학생의 작품으로 보기엔 완성도가 너무 높아서 깜놀했답니다. 이번 백일장에 나온 작품들은 모두 내가 시인으로 살아 온 날들을 다시 돌아보게 할 만큼 좋은 작품들이 많았어요. 이런 학생들이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문단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큰 작가로 우뚝서길 바래봅니다.
정말 글을 읽다보면, 요즘 청소년들 가운데도 이렇게 멋진 사람이 있구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