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액운을 띄워보내고 풍어를 기원하는
위도 띠뱃놀이를 찾아
위도 띠뱃놀이는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대리 마을의 풍어제로 띠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워 보내기 때문에 띠뱃놀이라 불려졌고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원당에서 굿을 하기 때문에 원당제라고도 한다.
변산반도 앞 서해 도서인 위도는 한때 조기잡이의 칠산 어장으로 유명하여 많은 배들이 모여 들었고 파시(波市)로 성황을 이루었던 곳이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띠뱃놀이는 어로신앙의 한 분야로서 풍어제에 해당된다.
-주행사장의 모습이고 앞산의 맨꼭대기에 원당이 있고 그곳에 올라 원당제를 지낸다.-
그러나 여느 풍어제와 달리 굿의 공간이 산과 마을, 바다로 이어져 풍어를 기원하고 마을의 평안과 액운을 띠배에 띄워 보내기 때문에 온 마을 사람들의 축제이고 굿마당은 큰 잔치와 놀이마당이 된다.
띠뱃놀이는 정월 초사흗날 당산행으로 시작된다. 마을 동편 산꼭대기의 원당에서 먼저 원당굿을 하고 이어 제물을 챙겨 원당에 오를 때와 마찬가지의 행렬을 이루어 흥겨운 농악과 함께 내려온다.
- 풍물패가 원당에서 흥겹게 풍물을 치고 있다. -
- 원당제 모습으로 큰무당이 축문을 사르고 있다. -
이어 제관과 농악대와 뱃기 행렬이 마을 뒤의 산언덕 쪽을 한바퀴 돌아오는데 이를 주산돌기라 일컬으며 이때 산신께 마을의 평안을 기원한다.
- 원당제를 마치고 산을 내려오고 있다. -
- 당산나무 아래에서 마을의 안녕을 빌고 있다. -
- 주산돌기라 하여 마을의 뒷산 아래를 돌며 산신께 마을의 안녕을 빈다. -
그동안 마을 앞 바닷가에서는 띠배를 만들어 준비해 놓고 행렬이 도착하는 대로 용왕굿과 띠배보내기를 한다.
띠배는 띠풀과 짚, 싸리나무 등을 함께 엮어 길이 3m, 폭 2m 정도의 크기로 만드는데 안에는 각종 제물과 함께 7개의 허수아비, 돗대, 닻을 만들어 달아 배형태를 갖춘다.
- 갈대같이 생긴 띠로 띠배를 만들고 있다. -
- 배안에 제물과 함께 넣는 제웅(허수아비) -
- 완성된 띠배 -
용왕굿은 마을의 풍어 기원과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혼을 달래 주는 굿으로 굿이 진행되는 동안 일대는 큰 놀이마당이 된다. 마지막에 제물을 조금씩 떼어 함지에 담아 바다에 고수레를 하는 용왕밥 던지기를 한다.
- 본격적인 용왕굿이 시작되기 전 띠배를 둘러싸고 한바탕 흥겹게 춤을 추며 논다. -
- 풍어를 기원하고 수중고혼을 달래는 용왕굿 ( 두 분은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은 분)-
- 용왕굿을 마치고 제물의 일부를 바다에 고수레하는 용왕밥 던지기 -
드디어 띠배를 어선과 끈으로 연결하여 바다 한가운데로 끌고 나가는데 띠배를 끌고 가는 모선에는 풍물패의 구성진 농악과 가래질소리, 술배소리, 애용노래 등 앞소리꾼들의 띠배놀이 노래가 함께 어울어져 놀이의 마지막을 흥겹게 달군다.
- 드디어 띠배를 모선에 연결하여 바다로 진수하고 있다. -
- 큰바다로 나가고 있다. -
- 마을의 액운을 담아 띠배를 먼바다로 띄워보내고 용왕님게 풍어를 기원한다. -
마을 사람들은 띠배가 바다로 나갈 때 바닷가에서 합장하고 또 절을 올리는데, 띠배가 마을의 모든 액운을 실어 간다고들 믿는다.
위도 띠뱃놀이는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다호로 지정되었고 장구의 김상원과 이종순이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위도
변산반도에서 서쪽으로 약 15km 떨어진 해상에 위치한 섬으로 섬의 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았다고 해서 위도(蝟島)라 불리며 행정구역으로는 전라북도 부안군에 속한다.
위도는 고려시대부터 유배지로 이용되었던 이곳이 허균의「홍길동전」에서 이상향으로 묘사된 ‘율도국’의 실제 모델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고려말에서 조선시대까지 수군의 전략적 요지 역할을 했던 섬으로 대표적 문화재는 위도관아(지방유형문화재 101호)가 남아 있고, 위도 띠뱃놀이는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다호(서해안 풍어제)로 지정되었다.
지난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의 아픔을 겪은 후 격포와 위도를 오가는 여객선은 자동차도 싣고 갈 수 있는 크고 안전한 철선으로 바뀌었고 격포항에서 약40여분 걸린다.
새만금 방조제가 생겨 만경강, 동진강 물이 바로 바다로 유입되지 못하게 되자 그 영향으로 어획량이 줄어 위도의 많은 어선이 폐선되고 수익이 줄어 외지로 떠난 주민들이 많아졌고 더욱이 섬에 젊은이들이 적어 비교적 큰 학교였던 위도초등학교는 학생이 25명밖에 되지 않고, 그나마 2013년 2월에 6학년 5명이 졸업해 나가고 3월 신입생이 한 명도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한다.
- 최근 도서관을 새로 마련한 위도초등학교 - - 논이 적은 위도에서 가장 넓은 진리에 있는 논 -
서해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부안IC나 줄포IC에서 나오거나, 동군산IC에서 나와 새만금방조제를 지나 격포로 가서 터미널에서 정기여객선을 타면 된다.(격포 위도 같이 첫배 아침 8시, 막배 오후 4시)
격포에는 바닷가에 수만권의 책을 가지런히 쌓아놓은 듯한 퇴적암 층리와 해식동굴을 볼 수 있는 채석강이 유명하며, 격포 곰소간 석양 무렵 붉게 물든 곰소만을 감상하며 달리는 해안도로 드라이브 코스는 가히 환상적이며, 근처에 전나무 숲길과 고색창연한 문살이 유명한 내소사가 있다.
- 물이 빠지면 퇴적암 층리를 볼 수 있는 채석강 - - 바닷물의 파장과 해식으로 생긴 해식동굴 -
- 입구의 전나무 숲길이 고즈녁하고 문살의 문양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내소사 -
- 내소사 안의 등굽은 소나무가 오는 길손을 공손히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