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시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길쌈이라고도 하며 농경의식의 하나인 일종의 편싸움 놀이이다.
줄다리기의 방법은 사람들이 두 집단으로 나뉘어 줄을 서로 잡아당겨 자기편으로 끌어온 쪽이 이기는 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초등학교 운동회의 주요 종목으로 많은 수가 참여하는 청․백 간의 가장 큰 경기의 하나이며 구경꾼들도 하나가 되어 응원하는 흥미진진한 경기이고, 각종 행사에서 단체경기로 많이 하는데 이것은 경기 자체가 단순하고 줄 하나면 할 수 있고, 긴 줄이 아니어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기는 단결심을 북돋우는데 아주 적절하여 놀이로도 많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줄다리기의 연원은 아득한 옛날 삼한시대에 농경문화가 발달한 지역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줄다리기는 농경사회의 풍년 기원 및 제례의식의 테두리를 벗어나 지역 간 또는 마을 간의 대항 행사로 발전, 지역민과 마을 사람들의 단결심과 협동심을 고취하는 집단놀이로 발전되었다.
우리나라는 중부 지방 이남 곳곳에서 줄다리기가 많이 행해졌고, 오늘날에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경남 창녕군 영산면의 영산 줄다리기(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와 기지시 줄다리기가 대표적으로 쌍벽을 이루며 전통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기지시(機池市)의 행정구역은 근래 시로 승격된 충남 당진시에 편입되었으나 전에는 당진군 송악읍 기지시리로 리(里) 단위의 작은 마을이었다.
기지시는 예부터 서산과 당진에서 서울로 가려면 거쳐야 하는 교통의 중심지였으며 또한, 당진은 중국과 왕래가 많은 항구일 뿐만 아니라 농산물의 집산지여서 베를 짜는 수공업이 성하였던 곳이다.
기지시 지명의 유래는 첫째, 지형이 풍수지리적으로 옥녀직금형으로, 옥녀가 베틀을 놓고 베짜는 형국이라 해서 베를 짜려면 베틀(機)이 있어야 하고 또한, 꾸리(북 안에 들어 있는 실뭉치)를 담그고, 짠 베를 담가 우리고 하는 물(池)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명명된 것이라 하며, 또 하나는 삼베를 짜고 나서 베틀을 다음 해 쓰기 전까지 뒤틀림과 부식을 막기 위하여 못에 넣어 둔데서 기지시가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때 시(市)는 시장을 뜻하므로 순 우리말로는 틀못장 쯤이 될 것이다.
예전에 기지시 시장은 오랜 기간 동안 이 지역에서 대단히 번성했던 장터로 한 달에 열두 번이나 장이 섰고 전국에서 수많은 상인들이 몰려들어 특산물인 삼베를 전국에 내다 팔았고 우시장도 크게 열렸다고 한다.
기지시의 줄다리기는 문헌상으로는 그 연원을 찾을 수 없으나 주민들에 의하면 약5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며, 풍수설을 배경으로 하여 지형과 어울리는 전설로 전해지다가 토착 신앙에 따른 세시놀이로 발전해 왔다.
즉, 베를 짜는 시늉으로 줄다리기가 생겼다고 전해지며 베를 짜서 마전(짠 베를 삶거나 빨아서 바래는 일)할 때의 동작과 줄다리기의 동작이 서로 잡아당긴다는 데서 이러한 전설이 비롯되었다. 또, 지네 모양의 큰 줄을 만들어 놀이를 함으로써 땅의 정기를 밟아 풍년이 들게 하고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빌었다고 한다.
기지시 줄다리기는 많을 때는 10여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여하여 공동체를 확인하는 민속행사로 농촌 사회의 협동 의식을 돈독히 해주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고을 사람들은 노소를 막론하고 참가하여 줄을 당기어 승패를 겨루는 큰 축제이다.
줄다리기를 시작하기 전에 전야제로 당제를 지내는데 기지시 인근 국수봉 정상에 있는 국수당에서,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낸 다음 행해졌다.
줄다리기는 그동안 윤년이 드는 해의 음력 3월 초에 택일하여 하다가, 몇 년 전부터 지자체의 축제로 매년 4월 초에 하고 있다.
줄다리는 날짜가 잡히면 한 달 전부터 행사에 쓰이는 큰 줄을 만드는데 줄은 볏짚으로 만든다.
큰 줄을 만들기 위해서는 볏짚 40,000단이 소요되며 30명의 기술자들이 한 달 동안 작업을 해야 되며, 큰 줄 꼬기는 이 고장의 독특한 줄틀 기구를 사용하여 동네 주민들이 대거 참여하여 크고 견고한 줄을 만든다.
암․수줄의 길이는 각 각 100m 이며 직경이 1.8m 정도이고 무게만도 어림잡아 40여 톤에 이른다. 이때 수천의 사람들이 굵은 줄을 한꺼번에 잡아당길 수가 없으므로 사람들이 잡을 수 있도록 곁가지 형태의 줄을 만드는데, 그 결과 줄은 거대한 지네 모양이 된다. 곁줄은 몸줄의 가닥을 빼는 방식과 별도의 줄을 잡아매는 방식이 있다.
줄다리기의 두 편은 수줄 팀인 수상(水上, 기지시에서 내륙 쪽)과 암줄 팀은 수하(水下, 바다 쪽)로 나뉘어 만든 줄을 놀이의 장소로 운반한다. 전에는 마을을 관통하여 흥척동 앞으로 운반하였는데 몇 년 전부터 초등학교 앞에서 출발하여 새로 개관한 줄다리기박물관 앞으로 옮겨서 마지막 놀이를 벌인다.
기지시 줄다리기의 가장 큰 볼거리는 바로 이 거대한 줄을 놀이 장소로 옮기는 광경으로 전국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인근 마을의 온 주민들이 수백기의 농기를 펄럭이고 수백의 풍물패를 앞세워 풍악소리와 어우러져 흥겹게 춤을 추며 마을길을 관통하여 함께 이동하는 과정으로 수줄이 앞서고 암줄이 뒤따르며 한 팀당 2,000여명이 넘은 인원이 세 시간에 걸쳐 옮기는 모습 그 자체가 가장 큰 축제이다.
운반된 암줄과 수줄을 연결시키기 위해 ‘비녀장’을 꽂아 서로 잡아당길 수 있도록 하는데 암․수줄을 연결시키는 비녀장은 길이 2.5m, 직경 50cm의 통나무로 만든다.
심판의 신호에 따라 첫 번째는 줄을 잡고, 두 번째는 줄을 들고, 새 번째 신호에서는 잡아당기는데 수천 명이 매달려 서로 힘주는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커서 심판의 중지 신호인 징소리가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줄다리기는 생산의 의미에서 여성을 상징하는 바닷가 쪽인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으며, 줄은 이긴 편이 갖는다. 그러나 승부가 결정되는 순간 사람들이 달려와 줄을 끊어 가져 가며, 원줄은 썰어서 논에 거름으로 쓰기도 한다.
당진시의 지원으로 기지시에 국내 유일의 줄다리기 박물관을 2011년 4월에 개관하여 기지시 줄다리기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청소년들에게 줄다리기 관련 체험학습을 통하여 전통민속문화의 보존과 전승에 힘쓰고 있다.
줄다리기 당일은 당진시의 지원과 당진교육청의 협조로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하여 체험활동을 통한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향토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기지시 줄다리기는 198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었으며 박물관내의 보존회에서 전수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