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미를 계승한 삼탄교회
남기완 (목사, 충주엄정교회)
목회자에게 있어서 교회 건축은 무거운 짐이면서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특히 농촌 목회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교회가 낡고 초라하고 필요한 공간이 부족하다. 예장 통합의 경우 대도시의 교회는 49.5%가 지은지 15년이 못되지만 농어촌의 경우 43%가 지은지 36년이 넘은 낡은 교회이다. 목회와 교회 건물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배, 교육, 성도의 교제, 사회 봉사 등 목회자의 생각대로 목회 하기에 교회 건물이 공간적으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저런 이유로 건축은 하고 싶으나 교회의 형편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골 교회 짓는 이야기'에서는 한국 농촌 교회를 탐방하면서 교회를 지으려는 농촌 목회자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 목회자들이 교회를 지으려 할 때 다음 세 가지 정도를 고려하게 된다.
1. 한국적인 건물이면서도 교회의 거룩성과 상징성을 갖춘 건축물
2. 목회자의 목회 방향에 맞는 공간의 유기적 결합
3. 저렴하면서도 품위 있고 세월이 지날수록 가치가 빛나는 건물
한국적인 교회 양식
우리 나라 교회는 국적이 없는 건축물이라는 혹평을 받는다. 또 천편일률적이고 어설프게 서양식 건물을 흉내냈다고도 한다. 그래서 최근 교회를 짓는 목회자들은 한국적인 교회가 무엇인가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한국적인 건축물을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우리 나라의 고유 전통 양식을 따른 외관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가 서구에서 전래되다 보니 한국적인 건물이 교회의 상징성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는 수가 있다. 누가 보더라도 교회라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십자가가 붙은 것 외에는 교회 건물 같지 않은 경우가 있다. 심지어 양복 입고 갓을 쓴 것과 같이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건축의 형태에 있어서 한국적인 것을 따를 때는 외관 자재 등 전통적인 것을 완벽하게 이루려는 것에서부터 일부 문양이나 분위기를 채용하여서 한국적인 멋을 풍기게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건축 양식은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서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 그 시대의 건축사들의 고민의 결과인 것이다. 전통 양식이 삼국 시대 다르고 고려 시대 다르고 이조 시대 다르듯 우리 시대에 맞는 우리의 건축 양식이 모색되고 시도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우리 시대가 복고적인 것을 좋아하는 시대이고 우리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시대라서 그 것이 반영되는 것이라면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무조건 옛날 형식을 따르는 것이 한국적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오히려 한국적인 교회 건축이라고 할 때 현대인들이 원하는 교회의 역할, 한국적 목회 상황이 반영된 공간, 최근의 건축 기술, 오늘날 생산되어지는 건축 자재 등이 반영된 건축이 한국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 건축물에 대해서 비판하는 소리는 많다. 그러나 그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교회만의 고유함을 지니면서도 누가 보아도 교회의 거룩성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고민이다.
교회 건축과 목회자
교회 건축에는 목회자의 목회 방향이 반영되어야 한다. 교회 건물은 탑이나 신전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이다. 따라서 교회 건축을 할 때 교회의 본질과 사명이 무엇이며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무엇인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예배와 봉사와 친교와 교육이 우리 교회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이런 활동들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공간이 어떤 형태로 배열되어야 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지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건축은 건축사의 작품이기 이전에 목회자의 목회 철학이 담긴 작품이다.
좋은 건물을 저렴하게 짓는 방법
저렴하면서도 튼튼하고 품위 있는 건물을 짓는 다는 것은 현실적인 고민이다. 앞의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도 쉽지 않지만 건축비가 풍부하다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농촌 교회를 짓는데 풍부한 재정이 있을 리 없다. 저렴하게 짓다 보면 건물이 부실해 지기 쉽다. 결국 건축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눈으로 접근해야 한다.
무리한 욕심도 버려야 한다. 필요한 공간을 욕심 것 확보하려다 보면 건축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한 공간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서 규모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의자 문화가 들어오기 전 까지 우리 교회는 예배당이 예배 후에는 식당이 되고 부흥회 때는 밤에 함께 자며 은혜를 받는 숙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 공간에 장의자가 들어오면서 예배 실은 예배만 드리는 곳으로 굳어 졌고 교인들은 의자 없는 곳에서 예배 드리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한 공간을 여러 용도로 융통성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오늘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리한 욕심에는 건축 규모뿐이 아니다. 아름답고 여러 곳에서 보러 오는 교회, 오래도록 남아서 관광지가 될 만한 교회를 꿈꾸는 것도 욕심일 수 있다. 오늘날 교회를 지으면서 수 백년 후까지 남는 기념비적인 교회를 짓겠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일 수 있다. 시대가 급변하고 있고 이에 따라서 교회의 역할도 변하기 때문에 그 시대에 맞는 건물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 불과 30년이나 50년 후에는 이런 공간이 불편하기 짝이 없을 수 있다. 또 이미 일어난 현상이지만 교회 건물을 헐고 새로 지을 경우, 짓는 비용보다 철거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교회를 지을 때 헐 것을 생각하면서 짓는다는 것이 모순인 것 같지만 지금은 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건축은 주로 기초공사, 골조 공사, 마감 공사, 전기 및 설비 공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공정마다 새로 개발된 신 공법과 신 소재로 기존의 것 보다 파격적으로 공사비를 줄이면서 아름답고 튼튼하게 지을 수 있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다면 이런 시도도 가능하다. 그러나 무리하게 공사비를 줄이려다 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건축비 마련도 목회자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효과적이고 은혜스러운 방법을 찾아야 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다.
'시골 교회 짓는 이야기'에서는 최근에 건축된 시골 교회들을 찾아보고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좀더 나은 대안은 없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삼탄교회 지은 이야기
교회소개
삼탄교회는 충주에서 제천을 넘어가기 직전에 있는 산척면이라는 작은 면에 있다. 이 교회는 면 소재지에서도 천등산과 지등산을 가르는 높은 고개를 넘어 약 8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골 교회이다. 원래 화전민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충주호가 생긴 뒤로 약 120호 되는 주민들이 주로 임업, 농업과 더불어 민박이나 어업 등으로 살림을 꾸려 나가고 있는 마을이다.
현재의 교회는 1987년 10월에 세워졌다. 현재의 김영근 목사 내외가 오래 전에 폐교한 강변의 재건 고등 공민학교를 빌어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교회가 이곳에 처음 세워진 교회는 아니다. 이미 6번이나 교회가 세워졌다가 문을 닫은 곳이다. 또 70년대 초에는 '호생기도원'이라는 사이비 종파가 집단 생활을 하면서 기독교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긴 곳이었다. 주민들은 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마음이 닫혀 있었다. 원래 선교사를 지망하였던 김목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사역하여 한때는 아동부 중고등부등 모두 100명 가까운 교인들이 모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느 시골 교회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상급학교를 진학하면서 떠나가고 매년 계속되는 이농 현상으로 교인들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현재는 아동부 20여명과 중고등부 5명 장년 13명이 교인의 출석하고 있다.
교회건축의 동기와 과정
그동안 교회겸 사택으로 사용하던 건물은 몹시 낡고 추위에 무방비인 건물이었다. 겨울이면 방이 꽁꽁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김목사는 만성 비염에 그리고 세 자녀는 감기, 기관지염, 천식 등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더구나 여름이면 마당까지 물이 차서 늘 위험한 곳이었다. 그러던 중 90년에 큰 홍수가 났고 건물이 물에 잠겨 가재 도구와 책이 물에 잠기는 등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홍수로 인한 피해는 이것뿐이 아니었다. 너무도 초라하고 무력한 교회의 모습은 선교에 큰 걸림돌이 되기까지 하였다. 이곳에서 3년간 사역한 후에 선교사로 떠나려 했던 김목사는 파송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지금 떠난다면 7번째 문닫는 교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선 교회 부지라도 마련해 놓아야 후임자가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총회 사회부에서 보내준 복구비와 여러 교회에서 보내준 수재 의연금을 모아서 현재의 부지를 구입하기로 하였다. 대지 461평과 전 246평으로 시가 7,000만원이나 하는 땅이었다. 당시 있던 1,000만원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으나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하심으로 농협에서 대출 받은 돈을 합하여서 3,000만원에 구입하였다.
그후 3년간 이 부채를 해결하느라 김목사의 사례비와 보조금이 모두 들어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지 구입뿐 아니라 건축까지도 그에게 맡기셨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 모교회로부터 건축비 지원을 구두로 약속 받은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던 '토(土) 건축사무소'의 이용우 집사에게로 가서 무료로 설계를 받아 마침 정년 퇴직한 아버지의 퇴직금 2,800만원으로 착공을 하였다. 그러나 건축비 지원을 약속했던 교회는 본 교회 교육관 건축을 핑계로 지원 금을 보내 주지 않았고 이때부터 건축비 마련을 위한 피 말리는 일이 시작되었다. 우선 부지를 담보로 효성교회 신협으로 부터 1,500만원을 대출을 받아 1차 중도금을 치렀으나 계속되는 건축비를 마련할 수가 없었다.
김목사는 건축비를 위해 자신의 신장을 팔려고 까지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다. 기도중에 하나님은 시편 119편 105절 말씀을 통해 "내가 너의 발의 등이 되어서 한걸음씩 한걸음씩 인도하시겠다"는 확신을 주셨다. 그 일이 있은 후로 기적적인 일들이 여러 번 나타났다. 한 번은 우연히 성결신협에서 대출업무를 보고 있는 사모님의 친구를 만나 2,000만원을 대출받게 되었고 산척농협으로부터 2,000만원을 대출 받기도 하였다. 충주 북시찰과 효성교회의 지원 등으로 어렵게 건축을 마치고 1996년 4월 입당하게 되었다.
교회 건축 구상
김목사는 교회 건축하기 전에 교회가 이 곳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였다. 아름다운 경치, 대학생들의 M.T장소로 자리 잡혀가는 곳, 여름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 간이 역 같은 작은 기차역이 있는 곳에 세워지는 이 교회는 예배 장소로서 뿐 아니라 선교 훈련, 경건 훈련으로 유용하게 쓰여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또 주민들을 위한 문화 센타로써의 역할도 하게 될 것으로 봤다.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들이 이 교회를 발견하고는 교회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번 찍어 보고 싶고 사진을 찍은 후에는 그 안이 궁금해 져서 둘러보고 그 안의 분위기가 신앙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처음 신앙에 대한 추억이 떠올려 지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에 대한 동경심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위한 공간, 세미나를 위한 공간 등을 연차적으로 마련하고자 하는 마스터 플랜도 함께 세웠다.
설계자는 직사각형 모양의 천편일률적인 교회의 모습을 탈피하고 한국적인 미를 갖춘 교회를 짓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시골 교회의 형편을 고려하여 유지 보수에 돈이 들지 않고 한 번 지으면 오래 사용될 수 있게 설계를 하였다. 또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면서 튀어나오지 않게 하였고 아름다운 주변 환경을 예배실에서도 만끽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건축의 특징
건축의 외관은 전체적으로 가마솥을 형상화하여 교회 건물에서 한국적인 맛이 은근히 풍겨 나오게 하였다. 지붕 부분은 원형의 곡면 슬라브를 하여서 보기에 따라서는 가마솥 뚜껑 같기도 하고 한국의 갓 같기도 하다. 외부 마감은 골조 부분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벽은 시멘트 압축 블록을 사용하였으며 미장을 하지 않고 노출시키고 줄눈(메지)을 넣었다.
그리고 골조를 따라서 바닥까지 이어지는 창은 예배실에 앉아 있으면 마치 원두막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였고 현관 부분은 유리 블록을 사용하여 채광과 함께 현대적인 멋을 주고 있다. 지붕 한가운데 유리로 돔형 모양의 창을 만들어 자연 채광이 되도록 하였다.
바닥은 온돌 파이프를 깔아서 난방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우드 스트롱으로 마감을 하였다. 예배실은 원형으로 만들었고 약간의 공명이 이루어져서 설교시 마이크가 없이도 잘 전달되도록 하였다. 예배실 벽과 천정은 드라이비트로 마감하여서 단정하면서도 약간의 흡음(吸音)도 이루어지게 하였다. 강단 부분은 가는 스텐레스 파이프를 이용하여서 만든 십자가가 걸려 있는데 심플하면서도 단정한 느낌이 들게 하였다. 강단의 높이는 아주 낮게 하였고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게 하였다. 강단에 보통 놓여져 있는 의자를 치웠다. 이것은 강단에 앉아 있는 것이 자칫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아니라 예배를 받는 사람 같은 느낌이 들게 할 수 있다는 목회자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십자가 탑은 외부에 별도로 세워져 있는데 역시 노출 콘크리트 마감에 H빔을 사용하여 시공하였다. 화장실은 수세식으로 외부에 별도로 시공하였는데 겨울철 동파가 염려되기도 한다. 보일러실은 6평 규모로 지하실을 만들어 사용하게 하였다.
시공하는 동안 오지(奧地)여서 자재 조달이나 인력 조달에 어려움이 있었고 규모가 작으면서도 모든 공정을 다 거침으로써 노임이나 재료의 손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총 건축 규모는 60평으로 약 1억 2천만원 정도가 소요되었다.
삼탄교회의 외관을 멀리서 보면 팔각정 같아 보이고 가까이에서는 갓이나 솥뚜껑을 연상하게 하여 한국적인 면을 살리면서도 자재나 시공 방법은 현대적인 것으로 하였다. 한국적이면서도 소박하고 단정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서 교회의 거룩성과 상징성도 잘 나타나 보인다. 공사비에 있어서도 비교적 저렴하게 시공을 하였고 시공 상태도 매우 훌륭하였다. 값싼 건물 같지 않은 건물이다.
한국적인 미와 함께 저렴한 비용, 견고성을 함께 갖춘 우리 시대 교회 건축 양식에 새 모델을 제시하는데 성공한 건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