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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기(宋煥箕)는 1728년(영조 4)∼1807년(순조 7).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자동(子東), 호는 심재(心齋)‧성담(性潭)이다. 송시열(宋時烈)의 5대손이며, 송인상(宋寅相)의 아들이다. 외조부는 안동권씨 권돈(權墪)이고, 처부는 창녕성씨 성도응(成道凝)이다. 남달리 총명하여 어릴 때부터 《태극도설》‧《역학계몽》‧《가례》 등을 배웠다. 1762년(영조 38)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799년(정조 23) 사도시주부(司䆃寺主簿)가 되고, 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군자감정(軍資監正)을 거쳐 진산군수가 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사직하였다. 1807년(순조 7) 형조참의‧예조참판에 올랐다. 당시 심성(心性)의 변(辨)으로 성리학계에서 논쟁을 벌일 때 한원진(韓元震)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그는 학덕을 겸비하여 조야의 존경을 받았으며, 문하에 많은 선비가 모여들었다. 저서로는 《성담집》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이 글은 崇禎後三辛酉에 썼으니 1801년(순조1년)이다.
○니재유고 권지4/世系 附年記에 보면 “三月送子性心于性潭宋先生煥箕門受學(삼월송자성심우성담송선생환기문수학)/3월에 큰아들 성심을 성담 송환기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도록 떠나 보냈다.”란 글이 있는데, 나학신의 장자 성심의 스승이 된 인물이다. |
余夙聞松齋先生羅公之重試對策獄中陳疏。(여숙문송재선생라공지중시대책옥중진소)/내가 일찍이 송재 선생 나세찬공은 重試 對策으로 옥중에서 상소하였다고 들었는데
爲世所盛稱。(위세소성칭)/이를 세상에서 몹시 칭찬한 바
而恨未覽其全文。(이한미람기전문)/아직 그 全文을 열람하지 못한 것이 恨이었다.
今得一繙過。(금득일번과)/이제 한번 (전문을) 펴볼 수 있게 되어 지나쳐보니
益有以夐想公之氣節卓偉矣。(익유이형상공지기절탁위의)/더욱 공의 기절이 높고 훌륭함을 멀리서도 생각할 수 있었으며
餘事文章。(여사문장)/문장은 그 외의 일이었으니
何暇論也。(하가론야)/어찌 閑暇히 논하겠는가.
嗚呼。(오호)/아,
公蚤歲蜚英。(공조세비영)/공은 이른 나이에 이미 英名이 널리 알려지자
敭歷淸顯。(양력청현)/그 덕으로 좋은 벼슬을 역임하므로
甚見推重於一世諸名勝。(심견추중어일세제명승)/한 세대에 諸名勝으로 받들어 존중함이 매우 깊었다.
其與退溪,河西兩賢。(기여퇴계하서양현)/퇴계와 더불어 하서 두 어진 이랑
聯武湖堂。(연무호당)/독서당에서 나란히 걸었으며
多少唱酬。(다소창수)/얼마간에 상여수창의 시는
必不趐幾許什。(필부혈기허십)/필시 열 개를 허락하는 정도도 못되지만
而是集所載。(이시집소재)/이 유집에 실려 있다.
只有一二而止耳。(지유일이이지이)/다만 있어도 하나 둘에 그칠 뿐이다.
惜哉。(석재)/애석하도다.
然公之徽蹟可徵。(연공지휘적가징)/그러한 공의 아름다운 자취를 거둘 수 있어
豈係於殘篇斷簡乎。(기계어잔편단간호)/어찌 조각난 쪽지와 떨어진 책장에 달렸다고 하겠는가.
當時之媢嫉公者固爲奸兇。(당시지모질공자고위간흉)/당시에 공을 질투하는 것은 진실로 간사하고 흉악한 자들이며
而愛慕公者寔皆忠賢也。(이애모공자식개충현야)/공을 애모하는 자는 참으로 모두 충성스럽고 현명한 자들이었다.
百世之下。(백세지하)/백세 아래로
欲知公者。(욕지공자)/공을 알려고 하는 자는
宜於斯觀之也。(의어사관지야)/마땅히 유교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我先祖尤菴文正公大書其墓曰。(아선조우암문정공대서기묘왈)/나의 선조 우암(송시열) 문정공은 큰 글씨로 그 묘에 이르기를
大司憲羅公諱某之墓。(대사헌라공휘모지묘)/“대사헌나공휘모지묘”라 하였으며
權文純公狀其行。(권문순공장기행)/문순공 權尙夏는 行狀을 지었는데
有曰。(유왈)/이르기를
正直之風。(정직지풍)/"정직한 風度는
益著於鷹鸇之逐。(익저어응전지축)/새매가 하늘 높이 날듯 더욱 드러났으니
剛大之氣。(강대지기)/강직하고 정대한 기운으로
不挫於桁楊之酷。(부좌어항양지혹)/혹독한 옥살이에도 좌절하지 않았으니
能保晩節。(능보만절)/晩年의 절조를 능히 보전하여
爲世名臣。(위세명신)/세상에서 이름난 신하가 되었다" 라고 하였다.
非平日所養之深且大。(비평일소양지심차대)/평일의 기르는 바(所養)가 깊고 크지 않겠지만
能若是乎。(능약시호)/능히 이렇게 될 수 있겠는가.
<해설>
○重試(중시)는 조선시대 당하관(堂下官) 이하의 문무관에게 10년마다 한번 씩 보이는 과거
○對策(대책)은 과거시험의 한 과목
○聯武(연무)는 나란히 걷다, 함께 걷다,
○諸名勝을 토 달기 식으로 해설하였는데, 앞뒤 문맥으로 보아 誤記일 가능성이 엿 보인다.
○唱酬는 相與酬唱의 의미
○殘篇斷簡은 斷簡殘篇으로도 표현하는데 “조각난 쪽지와 떨어진 책장”
○媢嫉(모질)은 질투
○斯觀을 해석키 위해 斯文을 먼저 이해하고자 한다.
斯文은 유교(儒敎)의 도의(道義)나 또는 문화(文化)를 일컫는 말, 그러므로 斯는 유교를 지칭한 것이다.
觀 은 볼관이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斯觀은 “유교의 눈으로 보는”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桁楊(항양)은 예전에, 죄인의 목에 씌우는 칼과 발에 채우는 차꼬를 아울러 이르던 말,
그러므로 桁楊之酷은 혹독한 옥살이로 해석함이 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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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니재집은 성유가 저자이니 초명이 性心이 맞을 겁니다.
은석의 3子 혼원- 인상-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