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낯설기 하기, 혹은 알함브라를 찾아서
-유럽 여행기
안 영 희
언제부터였을까?
유럽하고도 저 서남쪽 끄트머리 스페인, 포르투갈에 대한 관심이 내 맘속에 머릴 들어올리기 시작한 것은.
오랜 여행지기 작가 G가 알함브라는 안선생이 꼭 가보셔야 할 곳이던데요, 먼저 다녀 온 곳에 대한 소감을 요약해주던, 그때부터였는지? 아니면 일몰의 미아로 신호대기에서 시대미상이 되어가는 내 어깨 홀연히 짚어오던 FM, 붉은 눈물자락 같은 파두였을까?
크로와상과 찬 우유로 서두른 아침, 시나브로 잎을 버리는 키 큰 가로수 너머로 고풍의 파리가 우울한 얼굴을 들어 올리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노조는 파업 중. 적체의 거리에서 가이드는 길들여지지 않는, 오만하고 고집불통인 파리 인들을 얘기하고 있다.
아무데서나 돌아다보면 오래 묵은 집과 아름 넘치는 가로수길. 샹제리제, 룩셈부르그, 몽마르뜨르...가 아닌 어느 거리를 앵글에 잡는다 해도 예술이 아니고, 삶 또한 낭만이 아니겠는가. 자재가 썩지 않는 대리석이기도 하다지만 무엇보다도 몇 백 년이고 있는 그대로를 보존할 수 있었던 건 저 강자들의 힘일 것이다. 개인의 내면에도 아직 상흔들 옹이로 박혀있고, 짓밟히고 불타서 내 나라는 보여줄 것 하나 없는데. 일찍이 이십대에 날 강타하고 흡사 어린 짐승이었던 내 자아를 눈뜨게 한 싸르트르와 보봐르. 물방울 치는 음악 속에 머리칼 쓸어 올리며 걷던 여인의 신비한 이미지, 영화 남과 여. 노인들조차 옷 색깔의 대비가 완벽하고, 일회적 생의 본질을 살기 위하여, 인습과 도덕률의 껍질 따위 벗어던지는데 용감한, 저 앞선 의식을 가진 이들과 저 나라에 경의를 표하지만, 나는 일갈하고 만다. 어젯밤의 세느 江 환상크루즈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동행들에게
그냥 파리에 남아라!하고. 저마다가 다 유적이고 세계사인 몇 세기씩 나이 먹은 건물들과 숲, 예술인촌이라는 생루이 섬 그 조용한 격조가 부러워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어도, 몇 안 되는 저 세계의 포식자들에게 열광하기엔 난 이미 지구의 이쪽저쪽에서 너무 많이 보아버린 것이다. 눈물조차 사치스런 침략과 착취의 절망적인 이빨자국들을.
노트르담 대성당은 800년 프랑스 역사와 파리의 상징답게, 낮에도 우릴 압도하고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성경 주제한 조각장식들과 환상적 색깔의 스테인드 글라스, 네 가지 색조의 장미창들은 한낮에 중세의 황홀한 미로속으로 우리를 헤매게 했다.
휴관인 루브르, 밀려다닌 오르세로 억울해 드가, 모네, 고갱들의 엽서그림들 챙겨 넣으며 리스본행 공항을 향해 가는 길. 거리의 꽃집들은 빗물 너머 갇힌 열정처럼 붉게 타고, 머리카락 잿빛, 혹은 밀밭 같은 얼굴이 조그만 파리지엔느들 몽환인 양 저문 거리를 가고 있다.
리스본에 짐을 풀고 땅 끝 까바다로까로 가는 창 너머는, 탁 트인 하늘 창창한 햇빛, 열렬히 밀려드는 대서양 ...못 견딜 역동감이다.
몇 해 전 브라질여행 때 내 피를 역류케 했던 포르투갈. 그 침략자들의 나라에 들어 나는 한 눈에 저들을 읽어내고 있다.
세계로! 미지로! ...저들을 미치게 불러낸 것이 저 아무데로나 열린 지형, 끊임없이 쳐대는 파도, 무한대의 바다였을 것이라고. 아프리카틱한 하얀 집과 흰 벽을 타고 오른 부겐베리아. 비로소 낯설음이 나를 흥분케 한다.
최초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제로니무스의 생애와 대항해시대를 구현한 15세기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식민지들로부터 수탈해온 부가 어느 만큼인지 그만 눈을 감게 한다.
바이런이 ‘에덴의 동산’이라 칭송했다던가.
피레네 산맥 깊이 숨은 신트라. 표고 500미터 산정, 왕의 여름별궁 ‘페냐 궁전’에 도착했을 때 차라리 잘 됐어, 했던 고장 난 내 디카를 처음으로 아쉬워했다. 이슬람, 고딕, 르네상스... 뒤섞은 동화궁전을 내려오는 길바닥에 박힌 작은 돌들이 비록 노예무역으로 온 이들의 피눈물 역사라 해도.
쟈카란타 가로수 사이로 지는 해가 붉고도 붉다. 프랑스 말 fatum, ‘운명’의 뜻에서 유래했다는 저 애절한 노래 포르투갈인의 파두처럼.
청곤색 하늘 굵고 청청한 남국의 별알들에게 발목 잡히기 전에 우리는 떠난다.
광활한 구릉과 구릉사이 조가비인양 이마를 맞대고 깨어나는 사람의 마을들, 무궁의 바다, 뭉게구름 터지는 쾌청하늘...,낙천적인 사람들은 말한다지. 바로 저곳이 <천국의 한 켠>이라고. 아, 그러나 국경을 넘으면서 나는 돌아본다. 어이없음으로. 엔리케 항해왕자는 발견기념비 금방이라도 차고 나갈듯 테쥬강 하구에서 포효하고 있건만, 넓은 지구촌에서 하필 식민지 브라질에 해방신학을 탄생시킨, 잔학한 정복자였으면서도 오늘은 우리보다도 못사는 열등국가로 전락했다니!
‘피와 황금의 기’가 국기인 이베리아반도의 맹주 스페인.
플라멩코, 투우, 강렬한 태양과 하얀 집. 안달루시아의 주도 지브롤터해협을 건너온 무어인들의 5백년도 넘은 이슬람문화의 무대였고, 신대륙으로 출발한 콜럼버스의 땅 세비아에서, 대성당을 돌아 나오는데 1세기를 바쳐 완성한 하늘을 찌르며 신에게로만 향해 열렬히 치솟은 신본주의의 극치 면죄의 문을 나섰는데, 한 마리 개미보다 작아진 내 발길이 문득 갈 바를 몰라 하고 있다. 구시가 아랍인의 마을밖에는 어쩌자고 중세의 둥근달이 비추고.
도시마다 드는 충격적 규모와 호화극치의 성당 관람을 두고
“그런데 과연 저들에게 백성들은 무엇이었을까요?”
“뭐 사람이기나 했겠어요? 강아지새끼들이지.”
동행들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는다. 성당 가는 일이 태어났을 때, 결혼할 때, 죽었을 때, 일생동안 단 3번뿐이라는 유럽의 현대인들과 그저 딱딱 입이 벌어지는 기막힌 성당들이,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님을 위한 것이었는가를.
피카소의 생가 갤러리에서 그의 고향 말라가의 색채처럼 화려한 색조의 스티커 그림이나 몇 점 산 걸로 지중해변을 통과해 와서는, 저 아래 남국의 불빛들 전설 속처럼 찰랑이는 저녁, 플라멩코를 감상하러 외출한다.
이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노래와 기타반주, 기나긴 뿌리 인도대륙으로부터 끌고왔다는, 사무친 소외와 유랑의 짚시 춤이, 세상에나! 어둔 객석의 내게 그리 빨리 점화될 줄이야. 미친 듯한 불꽃 번개치는 칼날에 신들려버린 평생 몸치인 내 몸의 까닭을 나도 모른다. 내 오랜 그리움의, 이슬람의 마지막 수도 그라나다에 와서.
무려 8세기동안이나 지배했던 이슬람 문명의 결정체.
돌에 수를 놓듯 코란과 아라베스크 등의 극 세공과 분수의 연못, 레이스에 휘감긴 듯 문양장식 타고 내려온 기둥이 많은 회랑과 건물 가운데에 끌어들인 하늘이 있는 정원, 정복자 카톨릭 왕까지 경의를 바친 사막민족의 몽환적 궁전 <알함브라>를 만나고 가는 차 안에서, 타레가의 키타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듣는데 창유리 밖 어두워지는 황야를 건너서, 되돌릴 수 없는 것에 대한 비애와 허무감이 울고 싶도록 밀물 쳐 온다. ‘여행은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 는 누군가의 싯귀가 왜 이곳에 와서사 이해되는지. 사람이라는 이름이 이리 애잔해오는지.
지구를 반 바퀴쯤 돌아 나와서 전설적인 고도 똘레도를 모국어의 분분한 꽃잎으로 덮는 일은 의미로운 일이었다. 또한 즉석에서 나선 홍희표, 김창완 두 선배시인들의 주제발표는 뜻밖에 낯설고 품격이 있었으나, 오래 자동차에 실려온 피로와 늦은 밤의 시간대는, 졸다가 자다가로 아물가물 시낭송회를 치러야 했다. 그랬다 해도 쓰는 자들로서의 무릇 시낭송회란, 서로를 알아보고,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는 일일테다.
짧은 여행의 날들은 벌써 저물어가고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싹튼 정을 숨길 수 없는 양, 스페인 내전을 다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대라는, 절벽 위의 다리 싼 마르틴에서 우리는 헤밍웨이를 얘기하고, 부르지 않아도 서로 엉기며 추억을 찍어댔다.
‘브레다의 항복’ ‘불카노의 대장간’의 디아고 벨레케스와, 프란시코 데 고야의 ‘까를로스 4세가족’ 옷 입은, 옷 벗은,의 마야부인들 하며, 노년의 조국과 민중을 주제한 ‘5월 2일’ ‘몽끌로아의 총살’, 모순된 사회의식 담아낸 그 말년의 검은 그림들을 집중 감상하는 걸로 프라도 미술관을 나서는데,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오리엔트와 유럽문명의 요소 결합됬다는 고원도시 시민들이 입김을 내뿜으며 한 겨울 무장을 하고 바쁜 걸음으로 지나고 있다. 여행자의 현실감을 일깨우고 있다.
돼지다리 숙성시키는 하몽이 주렁주렁 걸린 카페테리아에서 우리도 웬만큼은 익숙해진 저들의 독한 커피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 저 먼 여행의 동료들이었던 우리는 둥글게 둘러앉아 저마다 네 잎, 다섯잎 꽃 잎으로 핀 듯, 따뜻하고 정다웠다.
서녘하늘 짧아 질수록 붉게 타는 해처럼, 저녁식탁에서 부딫는 한 잔의 와인 빛이 여행지의 마지막 밤에 아리도록 곱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향수로 지은 18세기 바로크 왕궁은 방마다가 세계적 예술가들의 작품들이라 해도, 유럽최고의 아름다움이라 안내문은 말하고 있어도, 호사의 극치를 이룬, 요란한 번쩍임들은 지구촌에 해가 지지 않는 식민지를 두었던 피 묻힌 칼의 이력과, 내 유년과 청춘이 놓였던 전쟁의 뒷 마당을 노여움으로 떠올리게 했다.
마요르 광장 밖 그 가게 앞에서 나는 놀랍게도 흘러나오는 옴마니밤메흠을 들었다. 카톨릭 왕국 유럽 한 복판에서 인도풍의 꽃보라 아라베스크 무늬의 숄 한 장을 사들고 나오다가 나는 환성을 올렸다. 그 샵의 이름이 <예수와 붓다>였기로. 그 아름다운 두 분이 함께라면, 아니 마호멧까지 함께할 수 있다면, 우리들의 세상은 정말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사다 줄 선물이라곤 눈에 든 게 하나도 없었지만, 자원도 없으면서, 내놓을 유적도 변변찮으면서, 이만큼 우리의 눈을 높혀 준, 참 괜찮은 내 나라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준, 유럽에게 그라시아스!
오래도록 내 맘 속의 사원이 될
알 함브라여, 아디오스!
*월간문학 2008년 2월호 게재
![](https://t1.daumcdn.net/cafefile/pds61/15_cafe_2008_03_02_19_18_47ca7eef6969a)
첫댓글 나는 아직도 알함브라를 떠나오지 못했네. 눈 감으면 어두워지는 그라나다의 막막한 황야를 질러서 오는 기타소리 알함브라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