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사
羅 孫 書 室 通 信 - 金東旭 -
한국문학비건립동호회
<펴내는 말>
사람이 이승에 와서 한 누리를 살다가 떠난 다음에 그의 자취가 더욱 빛남을 본다. 그러기에 옛부터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한 것 같다. 나손 김동욱박사는 이 땅에 태어나서 예순 아홉 고개를 넘어가다 숨을 거둔 분이다.
그러나 살았을 제 수많은 길벗들과 정답고 재미있게 사귀다가 떠났기에 그 분이 없는 자리가 더욱 허전하고 아쉽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뜻같은 이들이 정성을 모아 “나손 김동욱 문학비”를 세우기로 하자 온 나라 안팎에서 일백스무 명도 넘는 분들이 성금으로 협찬해 주셨다. 이는 오로지 나손만이 누릴 수 있는 음덕양보라 여겨진다.
이제 문학비를 세워 제막식을 치루고 나면 이승에 남겨진 우리들의 가슴에는 그리움만 쌓일 터이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래 생각해낸 것이 김박사가 우리에게 들려주던 ‘나손서실통신’을 다시금 재생하여 이번 일에 동참해 주신 회원들에게 나누어드리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빠진 호가 많아 송백헌박사(충남대)와 황패강박사(단국대) 그리고 김영자 교수(숭의여전)들이 간직하고 있는 것들을 모아 엮게 되었다. 그런데도 제24호, 27호, 29호를 거두지 못했으니 이는 뒷날에 깁고 보태기를 벼를 뿐이다.
또 앞자리에 고인의 인자한 모습과 연보 논저목록을 싣고 끝에는 그 분의 인간과 학문, 송시, 추도문 등을 붙여 다른 날에 나손 연구의 길잡이가 되게 하였다.
1991년 4월 13일
나손 김동욱문학비 제막일에
한국문학비건립동호회장 이상보
<羅孫 金東旭 선생 연보>
1922. 3. 16 (음 2월 19일) 충남 홍성군 구항면(龜項面) 마온리(麻溫里) 92번지에서
경천김씨 기우자(騎牛子) 창제공(蒼濟公)과 김해김씨(小禮)사이의 장남으로 출생
1929. 4. 1 홍성공립보통학교 입학(1935.4. 동교 졸업)
1935. 4 동교 고등과 입학(1937.3. 동교 고등과 졸업)
1939. 10 조선총독부 시행 전문학교입학자 검정시험 6과목 합격
1940. 10. 동 전검 4과목 합격
1941. 5. 21 일본문부성 시행 전문학교입학자 검정시험 합격
1941. 9. 1 동경 중앙(中央)대학 전문과 법과 제일학년 제이학기에 편입학
1943. 5. 23 해주(海州) 최광자(崔光子)씨와 결혼
1943. 11. 18 학병 거부로 징용되어 태능 지원병 훈련소에서 4주일 훈련,
원산 철도공장에 징용되어 주물공으로 복무
1944. 9. 19 장남 경(炅) 출생
1945. 10. 16 홍성중학교 교유로 피명
1946. 11 장항농업학교로 전보되어 2주간 봉직하고 사직
1947. 4. 1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제2학년에 편입학
1949. 7. 15 동교 제4학년 졸업, 천안농업중학교 교유로 피명
1950. 4. 1 신설 병천중학교로 부임(籍은 천안농업중학교)
1951. 3. 30 대천 수산중학교로 보근(그해 4월에 고등학교로 승격)
1951. 5. 13 차녀 예환(禮煥) 출생
1952. 4. 30 부산 동아고등학교 교사 사직
1952. 5. 1 부산 동아고등학교 교사로 취임
1952. 11. 1 양재연(梁在淵), 김민수(金敏洙), 장덕순(張德順), 정병욱(鄭炳昱), 허웅(許雄), 강한영(姜漢永), 金光鏞(김광용) 등과 함께 국어국문학회를 창립
1953. 4. 1 서울대학교 문리과교수 강사로 피속
1953. 10. 6 동아고등학교 사직, 상경, 흑석동 20번지에 거주,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연구실 조교, 전임상업학교 강사(1학기)
1954. 4. 1 동덕여자고등학교 강사(2학기), 경기여자고등학교 강사(2학기),
수도여자사범대학 강사(1학기), 전시연합대학 강사(1학기)
1955. 4. 1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 국문학과 전임강사로 피명
1956. 서울대학교 교양학부 대우 전임강사 피명
1957. 4. 25 국어국문학회 연구이사 피선, 근화여대, 문리사대, 명지대학 강사(6년간)
1958. 8. 30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 조교수로 승진
1959. 3. 1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 부교수로 승진
1959. 6. 5 이하윤(異河潤)교수와 비교문학회를 창설, 연구조사부 위원으로 피임
1960. 단국대학 강사(1966년 3월까지), 우석대학 강사(1학기)
1961. 10.14 국어국문학회 이사피선, 진단학회 감사 피선,
한중록으로 한국일보사 출판문화상 수상
1963. 2. 28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부교수로 피임
1963. 6. 20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피임
1964. 3. 1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피임
1965. 6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사임
1966. 3. 1 제7회 삼일문화상 인문과학상 수상
1966. 5. 29 국어국문학회 편집이사 피선
1966. 6. 8 마포구 대흥동 316의 16으로 이주
1967. 7. 28 부친 창제공 별세
1968. 2. 28 서울대학교에서 문리박사학위 수득(판소리계 소설의 실증적 연구)
1971. 3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장 취임
1971. 7 동 인문과학연구소 소장 취임
1972. 민족문화추진회 기획위원 피속
1973. 5 고문서집진으로 연세대학교 학술상 수상
1973. 8. 20 동 인문과학연구소 소장 사임, 국문학과장 사임
1973. 10. 20 하버드 대학 연경학사 보조로 도미
(1974년 4월 8일 귀국, 다시 1975년 1월 도미, 1975년 2월 귀국)
1974. 9. 1 민속학회 이사 피선
1975. 10. 8 한국 비교문학회 회장 피선
1975. 12. 19 한국 복식학회 부회장 피선, 동북 아세아 연구회 결성, 주무
1976. 이 해부터 도자기 유약 연구를 시작하여 고창점토, 천안점토, 홍성점토,
팔당자토, 망우리청토, 문의점토, 공주점토 등으로 시험
1977.2 문화공보부 문화재위원(제이분과) 피속
1977. 12.12 개인잡지 나손서실통신 제일호 발행
1977.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 발족, 초대 회장에 피선
(총 33기의 시가비와 기적비 세움)
1978. 12. 1 한국복식고증연구회 발족
1979. 10. 12 향토사연구회 결성, 부회장으로 피임
1980. 5. 국어국문학회 평의회 피선
1980. 7.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백과사전편찬위원 피속
1981. 3. 문화공보부 정책자문위원 피속
1981. 8. 13 학술원 회원(인문사회 제이분과)으로 피임
1982. 2. 민족문화추진회 감사 피속
1984. 3. 단국대학교 대학원 교수 겸 동양학연구소 4대 소장에 취임
1986. 2. 민족문화추진회 회장에 취임
1990. 1. 29 고혈압으로 별세, 장지는 충남 홍성군 구항면 마온리 선영
논저목록
국어국문학사, 을유문화사 1955.4. (공저)
비교문학, 신양사, 1959. 9. (역)
교주 한중록, 민중서관, 1961. 3
국어학개설, 민중서관 1961. 4. (저)
한국가요의 연구, 을유문화사, 1961.5. (저)
이조전기복식연구, 한국연구원, 1963. (저)
춘향전연구, 연세대학교 출판부, 1965.8. (저)
고문서집진,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72. (편)
고소설판각본전집(3책), 연세대학교 인문과연구소, 1973.3. (편)
한국복식사연구, 아세아문화사, 1974. (저)
조선문학사, (일어) 일본방송출판협회, 1974.12.일본 (저)
한국가요의 연구(속), 선명문화사, 1975.3. (저)
고소설판본전집 4?5집, 나손서실, 1975.3. (공편)
고대한국사, 일신사, 1975.5. (저)
단편소설선, 민중서관, 1976.4. (저)
국문학사, 일신사, 1976.6. (저)
역주 무오연행록, 민족문화추진회, 1977.2. (저)
아리랑과 흰 옷, 개문사, 1977.12. (저)
신라의 복식, 신라문화선양회, 1979.6. (저)
춘향전비교연구, 삼영사, 1979.9. (공저)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영어) Toyo Bunko, 1980. (저)
比較古代日と本韓國文化, (일어) 日本 學生社, 1980.7. (공편)
일본문화의 원류로서의 비교한국문화, 삼성출판사, 1980.7. (공저)
잡가전집(사책), 태학사, 1981. (공저)
삼국유사의 연구, 중앙출판, 1982.12. (공저)
한국의 전통사상과 문학,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2.12. (공저)
한국의 복식, 한국문화재보호협회, 1983.2 (공저)
임란전후출토복식과 상례, 충북대학교 박물관 제8책, 1983.10. (공저)
사설시조 발생고, 국어국문학회지 3호, 1953.1. (논)
경판본 춘향전 문체고, 국어국문학회지 3호, 1953.1. (논)
사뇌가산고일려대사뇌가, 국어국문학회지 9호, 1954.4. (논)
춘향전 근원설화고, 최현배선생회갑기념논문집, 1954.4. (논)
중세기의 예능인 광대, 사상계3-3 20호, 1955.3. (논)
판소리 발생고(1), 인문사회과학논문집2집, 서울대학교, 1955.6. (논)
국문학 연구의 현황과 장래, 사상계3-8 25호, 1955.8. (논)
황진이와 허난설헌, 현대문학 9호, 1955.9. (논)
춘향전의 창작적 기교를 위하여, 문경 1호, 중앙대학교 문리대, 1955.9. (논)
시용향악보가사의 배경적 연구, 진단학보 17호, 1955.10. (논)
춘향전이본고, 중앙대학교 논문집 30주년 기념호, 1955.11. (논)
황진이의 생애와 문학, 성심여대 논문집 1집, 1955.11. (논)
판소리 발생고(2), 인문과학대학 논문집 3호, 서울대학교, 1956.4. (논)
비교문학의 입장, 현대사상강좌 4호, 1956.4. (논)
정음청시말, 서울대학교 논문집 5, 1957.4. (논)
신라정토사상의 전개와 원왕생가, 중앙대학교 논문집 2, 1957.12. (논)
도솔가소고, 인문과학대학 논문집3호, 서울대학교 1956.4. (논)
춘향전배경으로서의 남원의 지지적 고찰, 이희승 송수기념논총, 1957.12. (논)
판소리 삽입가요를 위한 시론, 서울대학교 논문집 7, 1958, 10. (논)
만화본 춘향전 연구, 문경 8, 중앙대학교, 1958, 11. (논)
이조학교 풍속고, 중앙대학교 논문집 3, 1958.12. (논)
이씨조선의 이방인 허균, 사상계 7-3, 68호, 1959.3. (논)
신라향가의 불교문학적 고찰, 백성욱박사송수기념논문집, 1959.3. (논)
인현왕후전 이본고, 문리사대 1호, 서울대학교, 1959.3. (논)
춘향전의 한 이본, 어문논집 1호, 중앙대학교 1960. (논)
한글소설 방각본의 성립에 대하여, 향토 서울 8, 1960.
춘향전의 문예적 성격, 국어국문학 1, 서울대학교 문리사대, 1960. (논)
춘향전의 비교적 연구, 아세아연구 5, 1960. (논)
향가와 신라문화, 한국사상 3, 1960. (논)
무가 바리공주, 황의돈선생 고희기념사학논총, 1960. (논)
판소리 문체와 수사, 중앙대학교 논문집 5, 1961.2.
국문학 형태분류의 비평, 국어국문학회지 23호, 1961.5. (논)
처용가 연구, 동방학지 5, 1961.6. (논)
한국여성복 개량추의, 문경 11, 중앙대학교, 1961.8. (논)
판소리 장르의 비교적 연구, 국어국문학회지 24호, 1961.10 (논)
심청전의 불교적 고찰, 현대불교 7, 1961.10. (논)
허강의 서호별곡과 양사언의 미인별곡, 국어국문학회지 23호, 1962.6. (논)
신라행자염불 및 설화, 진단학보 23호, 1962.6. (논)
신라인의 사생관, 한국사상 23호, 1962.6. (논)
이조초의 복식금제, 중앙대학교 논문집 7, 1962.12. (논)
면복교(상), 향토 서울 14, 1962.12. (논)
면복교(하), 향토 서울 15, 1962.12. (논)
우리 복식의 기본구조, 문경 14, 중앙대학교, 1963.2. (논)
양사언의 남정가, 인문과학 9호, 1963.6. (논)
두곡시조 연구, 동방학지 6, 1963.6. (논)
우리 복식의 변천에 있어서의 편복포제의 변천에 대하여, 동방학지 7, 1963.12. (논)
On the Dual System of Korean Dress and Clothing, (영어) Journal of Social Science and Humanities, 1963.12. (논)
Womens Literature Achievment, (영어) Korea Journal 3-11, 1963.12. (논)
Earliest Korean Songs and Poems, (영어) Korea Journal 3-1, 1963.12. (논)
Humor in Classic Literature of Korea, (영어) Korea Frontier 3-11, 1964.12. (논)
이조관복제의 시말, 아세아연구 7-1 13, 1964.3. (논)
이조중후기의 여복구조, 아세아여성연구 3, 1964.12. (논)
이조전기사치금압고, 향토 서울 21, 1964.12. (논)
임난전후가사연구, 진단학보 25?26?27 합병호, 1964,12. (논)
신재효?허난설헌?이규보 인물한국사, 박우사, 1964.12. (논)
고공가 및 고공답주인가에 대하여, 조윤제박사회갑기념논문집, 1964.12. (논)
한림별곡의 성립연대, 연세대학교창립팔십주년기념문집, 1965.5.
고려초의 민서평복에 대하여, 아세아연구 8-2 18, 1965.6. (논)
관서별곡교이, 국어국문학 30호 효성 조명기박사 화갑기념, 1965.10. (논)
판소리 소설과 불교적 기록, 불교사학논총, 1965.10. (논)
도이장단가에 대하여, 인문과학 14?15, 1966.6. (논)
이조기녀사 서설, 아세아 여성연구 5, 1966.12. (논)
안성판?경판 대교 춘향전, 일산 김두종박사희수기념논문집, 1966.12. (논)
목동문답가소고, 가람 이병기박사송수논문집, 1966.12. (논)
판소리 근원설화첨보, 국어국문학회지 34?35호, 1967.1. (논)
우륵 십이곡에 대하여, 신라가야문화 1, 1967.5. (논)
고문서의 양식적 연구 서설, 인문과학 17, 1967.6. (논)
기산 박헌봉본 향랑신설에 대하여, 동방학지 8, 1967.6. (논)
허균과 여성, 아세아여성연구 6, 1968.2. (논)
판소리계소설의 실증적 연구, 박사학위, 서울대학교, 1968.2. (논)
이조고문서의 분류에 대하여, 인문과학 19, 1968.6. (논)
판소리사 연구의 제문제, 인문과학 20, 1968.12. (논)
홍길동전의 국내적 소원, 심악이숭박사환력기념논문집, 1968.12. (논)
서교전래후의 천주찬가, 인문과학 21, 1969.12. (논)
한국인의 희생정신, 인문과학 22, 1969.12. (논)
한국문학의 기저, 동방학지 10, 1969.12. (논)
춘향전 과학의 현황과 장래, 성대문학 10, 성균관대학교, 1969.12. (논)
한국복식사, 한국문화사대계 4, 1970. (논)
고대소설에 나타난 인간상, 국어국문학회지 49?50호, 1970.9. (논)
판소리는 열두 마당 뿐인가, 낙산어문 2, 1970.12. (논)
방각본에 대하여, 동방학지 11, 1970.12. (논)
판소리계 소설의 구조적 연구 서설, 국어국문학회지 51, 1971.1. (논)
한국 인문과학연구의 변천과 과제, 민족문화연구 5, 1971.8. (논)
국문학연구사 서설, 청파문학 10, 숙명여자대학교, 1971.10. (논)
이조소설의 작자와 찬자에 대하여, 장암지헌영선생화갑기념논총, 1971.10. (논)
흥덕왕복식금제의 연구, 동양학 1집,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71.10. (논)
국문학연구사, 인문과학 26, 1972.2. (논)
한국상고 및 일본복식의 계통, 동양학 2집,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72. (논)
두껍전 연구 서설, 국어국문학회지 55?56?57 합병호, 1972.11. (논)
고소설연구의 문제점 및 기본소설 종별시고, 기헌손락범선생회갑기념논문집, 1972. (논)
국문학연구사와 앞으로의 과제(발표), 민족문화연구 6, 1972.11. (논)
방각본 소설 완판?경판?안성판의 내용 비교연구, 연세논총 10, 연세대학교, 1973.7. (논)
악보(나손본)의 서지적 연구, 예술원 논문집 12, 1973.7. (논)
종교와 국문학, 한국사상대계 1,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소, 1973.7. (논)
신라문화와 향가, 한국사상총서 1, 1973.7. (논)
On Pansori, (영어) Korea Journal Vol.13, 1973.7. (논)
의생활, 한국민속종합정보서, 문화재관리국, 1974. (논)
고려도경의 복식사적 연구, 연세논총 11, 연세대학교, 1974. (논)
일반문학사, 청파문학 11, 숙명여자대학교, 1974. (논)
향가의 하위장르, 신라시대의 언어와 문학, 한국어문학회, 1974. (논)
韓國文學における春香傳, (일본) 比較文學硏究 26, 1974. (논)
경판본 방각본 소설에 대하여, 향토 서울 33, 1975. (논)
고려기문학의 개념과 그 문제점, 고려시대의 언어와 문학, 한국어문학회, 1975. (논)
해외문학자료 수집 잡기, 한국학보 봄 1, 1976.3. (논)
한국복식 연구의 길잡이, 아람 4, 서울대학교, 1976.3. (논)
의고착용민족 일본정벌설, 독서생활 8, 1976.3. (논)
上古衣袴着用民族の日本列島王朝征服設, (일본) アジア公論 5권 12호, 1976. (논)
춘향전연구는 어디까지 왔나, 창작과 비평 40, 1976. (논)
경판 35장본(九州대학본)춘향전, 한국문학 겨울 9, 1977. (논)
이조전기문학, 서울육백년사, 1977. (논)
복식(전기), 서울육백년사 제1권, 1977. (논)
복식(중기), 서울육백년사 제2권, 1978. (논)
수도사대소장 복식 및 자수,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78. (공논)
숙대박물관소장 자수유품,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78. (공논)
이화여대소장 복식 및 자수,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78. (공논)
동국대소장 서산 문수사부장품, 고려시대 소저포,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78. (공논)
고창 신재효선생고택,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78. (공논)
출토조선시대유의의 복식사적 연구, 복식 2, 1978. (공논)
창덕궁소장복식유품,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78. (공논)
조선중기출토복식(울산이휴정)안동김씨 병난당시 수의,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78. (공논)
춘향전의 비교적 연구, 동방학지 20, 1978.12. (논)
이조후기문학, 서울육백년사, 1978.12. (논)
한국문학의 현장과 그 연구, 한불연구 5, 1978.12. (논)
임진전?후기의 복식구조, 동방학지 22, 1979.6. (논)
복식(말기), 서울육백년사 제3권, 1979.6. (논)
고대박물관소장의 홍진종의 의복 일괄,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79. (공논)
장흥임씨일괄유물,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79.6. (공논)
김덕령장군일괄유물,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79.6. (공논)
김덕원공일가의복,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79.6. (공논)
국문학에 있어서의 예와 자아회복, 인문과학 43, 1980.6. (논)
경주이씨일괄유의,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80.7. (공논)
의고착용민족 일본정복왕조설, 일본문화의 원류로서의 비교한국문학, 1980.7. (논)
전주이씨 고림군종주일괄유의, 중요민속자료 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80.7. (공논)
신라시대의 문학사상, 한국문화연구 3호(’81.2) p.274-278.
화사?국학자료 38호 (’80.12) p.14-17.
충장사 김덕령장군두루마기의 복식사적 소고, 김향문학 창간호, 1981.3. (논)
敍事詩とその表記體制, (일본) アジア 公論, 1981.4. (논)
홍길동전의 비교문학적 고찰, 허균문학과 혁신사상, 새문사, 1981, 5. (논)
한림별곡에 대하여, 고려시대의 가요문화, 새문사, 1982.1. (논)
도이장가의 문헌비평학적 고찰, 고려시대의 가요문화, 새문사, 1982.1. (논)
東亞服飾史より見 たる正倉院 伎樂裝束, (일본) 東北大學 日本文化硏究施設, 紀要, 1982.3. (논)
한국문학연구의 몇가지 문제, 연세대인문과학(46.47 합호) (’82.9) pp.,231-233. (논)
역사극의 고증 : 복식?예법?언어를 중심으로, 방송연구 2호(’82.10) pp.149-156. (논)
돌아온 고양이, 시문학 136호(’82.10) p.15-17. (논)
한국복식과 일본정창원복식, 학술원 논문집 제21집, 1982.12. (논)
신라의 제전, 신라문학선양회 4, 1983.2. (논)
국문학연구사, 한국학입문, 학술원, 1983.12. (논)
신라의 종교문학, 신라문화 선양회 5, 1984.2. (논)
삼국유사 이야기와 시조인식의 세 양상, 도남학보 7.8(’85.10) p.68-77 (논)
전통문화와 우리글 : 문교행정 46호 (’85.10) pp.20-23 (논)
향가가창의 “장”에 대하여, 신라문학의 신연구 제7집(’86.2.25) (논)
현대비평의 고전해석에 따른 문제점, 동양학회 1(’88.7) pp.340-352. (논)
새로운 아이디어 10측, 국어국문학 100(’99.12) pp.111-118. (논)
1977.12.20 서울특별시 마포구 대흥동 316-16 김동욱 33-2246
제1호 <창간사>
이런 개인 잡지를 만들어보기로 하였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주위가 삭막해지고 가끔 옛 친구가 그리워지는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수복 직후와 같이 다방에 앉아서 주막길 나그네처럼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서신을 보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쓰레기 통에 집어넣어도 좋습니다. 뜻있는 친구가 있어 간수해주시고 이 심심풀이나마 뜻있는 일이 되었으면 망외의 기쁨이 되겠습니다.
더구나 서투른 타이프 솜씨라 틀리는 글자가 있더라도 애교로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타이프로 치니 한글전용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한글전용론자는 아닙니다.
2 임난 이전의 갑옷
임난 이전의 갑옷은 세종실록지와 악학궤범에 그 도형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의 갑옷이 그렇게 고증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의 갑옷은 바로 명나라 태조릉 앞에 있는 무인식 그대로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우리나라대로 전통이 있는데 우리나라 갑옷대로 하면 위엄이 없어보인다고 그런 갑옷을 입힌 것 같습니다만 이것은 한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임난 당시의 갑옷의 실물이 얼마나 있느냐도 문제입니다. 숭문 비무의 전통으로 일본 같으면 가문의 자랑으로 훌륭한 유물이 남아있는데 우리나라는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팔자의 아는 바로는 하회의 유성룡 것이 남아있으나 너무 낡아 재구불능이고, 그 외 있다는 것이 서산의 정충신 장군의 것이, 영덕에 박무의 것이, 경추에 또 한 벌 있고, 정지장군의 고려때 갑옷이 유전할 뿐입니다.
이번 경주신라문화제 고증 평가회에 갔다가(77.12.10) 경주시 평동에 들러 이 갑옷을 실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갑옷은 운문의 비단에 누비한 무명으로 안을 받친 것으로 피갑이나 찰갑이 아닌 것은 아쉬웠읍니다만 희구한 자료라고 여겨집니다. 상세한 것은 뒤에 조사가 되어야 되겠읍니다만 아래에 간단한 스켓치를 그려,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상을 보는데 참고로 삼고자 합니다.
3 엠.비.시. 타국의 고증에 대하여
엠비시의 타국은 임난 당시 납치된 도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텔레비전 드라마입니다. 작가는 심봉승 씨. 심봉승씨가 드라마를 이끌어 나가는 솜씨는 좋은 듯합니다. 그것은 현재의 14대 심수관씨도 좋아하고 있고, 심수관씨도 나에시로가와에 피납되어온 도공의 신분에 대하여 그 나름대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고, 자기가 청송심씨의 피를 이어받고 있다는데 하나의 긍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피납된 7천명의 도공 중 아직까지 성을 갈지않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동경에서 발간되는 통일일보에 일본 교포사회에서 지키는 것은 자기가 누구라는 것에 대한 기연한 태도일 뿐이라는 글을 보냈습니다. 또 아울러 국제 사회에서 자기를 지키겠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 조국의 영광과 관계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나에시로가와에 가서 그 도공의 묘지를 가보았읍니다만, 일본식으로 성을 간 것은 19세기 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 속에서도 심씨 일가만은 성을 갈지않았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심씨집에서 그들의 수호신인 옥산신사의 제관복을 보았을 때 놀랐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임난 당시의 의복 천릭이었습니다.
이 임난 당시의 천릭을 400백년동안 자기네 신관복으로 간직한 그들의 망향의 집념이 아직도 우리가 잘 인식해야 할 일이라 믿습니다.
이런 면에서 엠.비.시의 타국을 보면 그 의복 고증이 현대판으로 되어있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 적지에 갓을 어떻게 구하며 흰 옷을 어떻게 입겠습니까.
망건은 어떻게 구하며 광다회띠는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여자의 옷들은 1970년대의 옷입니다. (여자 타렌트들은 이상한 옷을 입히면 찢어버린다고 하지만)
이제 우리도 이런 안이한 고증에 의하지 않고 땅에 발붙인 리얼한 복장으로 당시 사회를 재현할 때는 왔다고 보여집니다.
이런말을 해봐야 잠꼬대같이 들릴 터이니까 옥산신사의 신관복과 요지음 청주에서 출토한 천릭을 도표해서 아래에 제시하고자 합니다.
4 처용암탐방기
부산 동대신동에서 울산행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택시를 잡았다. 타고 보니 운전사가 조심스럽게 차를 몬다. 그래서 울산까지 가자고 했다. 7,000원을 달라고 한다. 우리는 6,000원을 주겠다고 깎았다. 그랬더니 운전사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공대에 걸리면 야단납니다.”
한다. 나는 처음엔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하였으나, 특공대란 전속력으로 달리는 택시를 이르는 말이라 한다. 그 말이 그럴듯해서 우리는 그 택시로 가기로 했다. 부산을 벗어나 시골길을 달린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산, 산의 연속이다. 상당히 높은 산들이다. 도중에 망해사도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택시미터는 3,500원을 나왔다. 망해서는 길에서 벗어나서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정을 고쳤다. 나오는 금액의 배로 주기로 하였다. 그러나 망해서 근방에 와서 저게 망해사라고 할 때에는 갑고 싶은 마음이 쑥 들어갔다. 산 중턱에 자리잡은 조고만 암자였기 때문이다. 앞이 헤벌어지고 절 앉을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가도의 오른쪽 논밭을 보고
“옛날에는 저기까지 물이 들어왔을 거라는 겁니다.” 한다.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그러면 처용암은 어딥니까.”
하고 물으니, 그 논 쪽을 가리키며
“저쪽입니다”
한다. 그러니 더 이상했다. 마치 망해사는 바다를 망보는 파수자리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리로 하면 몇 킬로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울산 시내에 들어서서 처용암까지의 길은 멀었다. 검문을 당하고 공장지대를 지나 고개를 넘어 처용암에 다다렀을 때에는 택시 미터는 4,500원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촌 마을 바닷가에 사당하나가 있고 옆에 안내판이 서있다. 여기서 처용암까지는 100미터 남짓했다. 그런데 그 처용암이 높이 5미터도 안되는 갈라진 암석 더미가 아닌가! 왜? 우리는 건너 마을 처용동에 가는 나룻배를 탔다. 그리고 돌아올 때에 다시 싣고 와달라고 했다. 처용암에서 건너 마을 나루터까지도 300미터정도인 것 같다. 우리 일행은 처용암에 내렸다. 시컴한 울퉁불퉁한 석회암이다. 바위가 미끄럽다. 전부 조각조각으로 갈라진 바위덩어리들이다. 까만 조개돌이 바위에 붙어있다. 낚시 줄을 내리고 있는 사람이 하나 --- 외항 쪽을 바라다보니 1킬로쯤 앞에 바위들이 천연의 방파제인양 외항을 가리고 있다. 얼마 안 있으면 여기 전부 메워지리라 한다. 그러면 처용암은 없어지는 것이다. 처용 천년의 신화가 육지가 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상전벽해가 아니라 벽해상전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처용암에 올라가 사진도 찍고 처용암 부스러기의 돌을 각기 주웠다. 기념으로 삼자는 것이다. 제일 높은 바위위에는 꼬부라지고 비틀어진 느티나무가 키도 1미터도 안되게 자란 것이 그 석회석 바위에 딱 붙어 자라고 있다. 수령으로 해서는 수십년이 넘었을 것 같다. 우거진 잡초가 습기를 머금고, 백미터 건너 어촌의 풍경이 무엇을 말하려는 듯 울긋불긋 스레트 지붕이 조용하고 배들이 십여척 매어있다. 그 마을의 이름은 세촌이라 했다. 그런데 우리가 타고 온 동북쪽 자동차길 옆에 조고만 산이 있다. 처용암에서 300미터는 될까. 그것은 삼국시대 초기의 전형적인 토성같았다. 공주 공산성크기의 산이다.
그러고 보면 이는 신라 초기의 토성의 자리가 분명하다. 그리고 나중까지도 신라의 변성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곳은 신라 시대의 항구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처용암과 이 토성과 망해서와 치술령은 상고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무슨 상관관계에 있었을 것이다. 내게 숙종시대 동래부사 지낸 분의 문집이 있다. 온천장마당에 빨래들이 있어 보니 신라시대 왕의 순수비로서 글자가 109자 남아있더라는 것이다. 그가 이 남아 있는 글자를 그대로 기록했으면 좋았을 것을 다만 서와 시만 남겼다. 아까운 일이다. 이것은 사묵사기에 헌강왕이 5년에 국등을 순행하였다는 기록과 상부한다. 아마 지금도 동래온천장 어디에 묻혀있을 것이다. 헌강왕은 여기서 동래로 배를 타고 갔음이 분명하다. 또 이 토성이라고 내가 주장하는 산에서 석촉과 석검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조고만 토성은 분간하기 어렵다. 내가 본 것만도, 내 고장 홍성의 태메산, 공주 공산, 김해 천제당터, 경주 반월성, 영천 경산 사이에 하나, 천호동의 풍납리토성 등이 있으며, 청주에도 항고 뒷산에 이런 토성이 있었다. 백제병이 옥쇄했다는 은산도 바로 이런 산이었다.
그러니 처용암의 신비는 여기서 풀어야 할 것 같다. 처용이 이스라엘 상인일 것이라는 기묘한 학설을 제시하기 전에 이용범 교수도 처용암을 한 번 왔었어야 했다.
물론 나에게는 이 신비를 깰 능력은 없다. 그런 시간적 여유도 없다. 빨리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돌아오는 나룻배에 올라 처용사당옆에 기다리고 있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울산 시내에 돌아오니 택시미터는 5천 4백원대를 가르키고 있었다. 만원짜리를 주니 운전사는 군말을 하지 않았다.
5 여행자문학의 가능성
이번에 심재완 교수에 의하여 민중서관의 고전문학대계에 일동장유가와 연행가의 교주본이 곧 발간될 예정입니다.
이 계제에 우리도 고전시대의 여행자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동경대학 비교문학과 하가 도오루 교수는 18세기의 동서양의 기행문학을 중심으로 같은 시대의 인간들이 여행을 통하여 어떤 지식의 탐구와 인간체험을 하고 있었던가를 추적하기 위하여 미국에 가서 연구하고 돌아왔습니다. 필자는 그를 위하여 우리의 박연암의 열하일기를 추천하였읍니다만, 일제시대에 나온 열하일기 일역보닝 없어 그 자료를 제공못하고 있습니다. 가지고 계신분이 있으면 제록스의 편의를 제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민족문화추진회에서는 해행총재와 연행록선집의 국역을 진행하여 각10여권이 나와있습니다. 이 양자를 비교하여보면 재미있습니다. 조천록이나 연행록에 비굴에 가까운 우리의 사신들이 일본에 가면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자세속에서 문화교류의 한 측면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화가 일차적으로 중국을 통하여 들어왔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외 정신적 측면은 이제까지 연구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모멸이 앞서고 여기서 무엇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진즉 일본의 무사도에 대하여 조금만 일찍 눈을 떴더라도 임난의 수모는 껶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우 유명인 같은 이는 개인적으로 가등천청의 사람됨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에서 이들 기행문에 당시 삼국의 의식구조는 여실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비교문학내지 비교문화면에서도 소중한 자료가 되리라 믿습니다.
이런 국제간의 기행문이 아니라도 국내외 기행이 각 문집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면 많은 논문을 쓸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이 기행문은 풍속사의 귀중한 자료가 됨은 물론, 인생을 자연과 고독속에서 관조하는 산 증인으로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줄 것입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기이래 많은 고승 걸사 문인 학자들이 남긴 우리의 이행자 문학은 가사류 뿐만이 아닙니다. 그 대부분의 시가 바로 이 여행자들의 문학적 발상인 것 같습니다. 이조 시대의 각지 대사의 제영에서 비롯하여 전별 시축, 산을 읊고 바다를 읊은 것도 바로 이 인생의 여행자의 발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얼마 되지 않는 국어표기의 작품만 쫓다보니 우리 국문학은 요지음 빈혈증에 걸려 있습니다. 이것을 타개하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이 여행자문학의 개척을 후진들에게 권장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부탁의 말씀
: 저에게는 460책 정도의 소설 방각본과 사본이 있습니다. 그 목록은 지헌영선생과 손락범선생의 환갑기념 논문집에 실려있고 여기에 싣지않은 것도 100책정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제락스 촬영이나 열람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실(연대 문과대)에 비치하고 있으니 이용하여주시기 바랍니다.
: 방각본전집 1,2,3은 절판이나 4,5책은 약50부 정도 남아있습니다.
하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도자회라는 동호회를 조직하여 가끔 이천으로 도자기에 글씨를 써서 나누어갖고 있습니다. 도자기 반평 굽는데 12만원 정도입니다. 한번 같이 가보시지 않겠읍니까?
: 윤선도 후손은 막대한 금액을 들여 가비를 세울려고 현재 기획하고 있습니다. 후손이 영락한 송순의 면앙정가비를 담양의 면앙정 앞에 세우고저 합니다. 이 지문을 돌리겠으니 협조하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6 국학자열전(1)
도남 조윤제 선생
: 1948년의 어느날. 김삼불과 나는 연구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때 들이닥친 조윤제 교수.
“연구실은 연구하는데지 식당이 아냐!”
: 내가 서울대학교가 국대하가 되고 최초의 입학시험을 치렀을 때, 제2학년으로 편입학을 하였다. 연구실에서 조박사를 만나 인사를 하였을 때, 제일성.
“이아 가입학 학생인가”
시골에서 중학교 선생을 하다가 올라와 시험을 치르고, 단 한명의 외로운 입학생이 된 다는 어안이 벙벙할 수 밖에 없었다.
: 부산에서 국어국문학회를 창설하고 나는 국어국문학 제1호에 “사설시조발생고”를 실은 적이 있었다. 모씨가 그 학회지를 조박사에게 갖다 드렸더니 내 논문(?)을 한번 괴안하더니 그대로 집어던지더라는 것이다. 직선적인 조박사의 성품. 가소로왔을 것이지만 후진에게 용기를 주는 아량이 아쉬웠다. 다음 내가 춘향전이본고를 썼을 때부터 나는 조박사의 눈의 밖에 난 제자였다. 그러나 내 춘향전 연구가 나와서 세배 차 갖다드렸더니 기뻐하시고, “박사논문감이야”하고 칭찬해주었다. 그때만해도 조박사의 슬하에서 사랑하는 제자가 다 떠나고 외로운 때였다.
전국가비건립동호회 회원 모집
제 1차 사업 : 면앙정가비 건립
장소 : 전남 담양군 제월면 기촌리 면앙정 옆
제 2차 사업 : 처용가비 건립
장소 : 경남 울산시 처용암 상
: 본 동호회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는 사람 및 찬조자로서 결성한다.
: 회원은 1회 건립 때마다 10,000원 이상의 성공을 각출하여야 한다.
: 회원은 원칙적으로 개인 자격으로 이에 참가한다.
: 가비는 자연 경관을 손상하지 않을 정도로 조촐하게 건립한다.
: 가비 건립에 참여한 사람은 가비의 적당한 위치에 본인 자필의 방명을 넣을 수 있다.
: 가비의 글씨는 동호회원 가운데 적당한 사람을 선정하여 쓰게 한다. 단 이에 대한 사례는 없다.
이상 취지에 찬동하는 분은 성금 10,000원 이상과 본인 성향을 한자에 1촌 사방씩 먹으로 써서,
광주시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이나 교육대학원장 정익섭 교수나 본인 김동욱에게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미 제 주위에서 120,000이상의 성금이 모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대흥동 316-16 라손서옥 김동욱
전화 : 33-2246
기증 받은 도서(일일이 감사의 뜻을 전하지 못한점 부끄럽습니다)
이동영, 가사문학연구, 272페이지, 형설출판사, 1977. 대구, 값 2,700원
구인환, 한국근대소설연구, 397페이지, 삼영사, 1977, 서울, 값 3,000원
최장수, 고시조해설, 547페이지, 세운문화사, 1977, 서울, 값 2,600원
이능우, 가사문학론, 130페이지, 일지사, 1977, 서울, 값 1600원
김열규, 한국신화와 무속연구, 284페이지, 일조각, 1977, 서울, 값 3,000원
최인학, 조선전설집, 450페이지, 일본방송출판협회, 1977, 동경, 값 3,000원
김용덕, 조선후기사상연구, 616페이지, 을유문화사, 1977, 서울, 값 5,000원
유종호, 염무웅, 한국문학, 무엇이 문제인가, 394페이지, 전예원, 1977, 서울, 값 2,500원
안병희, 중세국어구결의 연구, 158페이지, 일지사, 1977, 서울, 값 2,000원
김대행, 한국시가구조연구, 254페이지, 삼영사, 1976, 서울, 값 2,500원
김태준, 임진란과 조선문학의 동점, 316페이지, 한국연구원, 1977, 서울, (비매품) 김정학, 임나와 일본, 322페이지, 소학관, 1977, 동경, 값 980엔
최진원, 국문학과 자연, 240페이지, 성대출판부, 1977, 서울, 값 2,500원
황패강, 소재영, 진동혁, 한국문학작가록, 486페이지, 형설출판사, 1977, 값 3,800원
우리문학연구회, 우리문학연구, 161페이지, 예그린출, 1977, 값 1,000원
정현기, 문학의 사회적 연구, 폐.퍼.221페이지, 1977, 값 1,500원
송민, 일본어의 구조, 관동출판사, 16=226페이지, 1977, 서울, 값 1,500원
조동일, 한국소설의 이론, 지식산업사, 473페이지, 1977, 서울, 값 3,500원
김학동, 한국현대시인연구, 민음사, 319페이지, 1977, 서울, 값 3,000원
이밖에도 많은 학회지, 자료등의 기증을 받았습니다.
이런 기증 도서를 받으면 그때그때 사례의 편지를 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장을 게을리하는 것도 한국적 습성인가 합니다. 엽서 한 장이면 되는 일, 그 일을 게을리하여 상기 여러분에게 결례된 것 널리 용서를 비옵니다. 김성배 박사의 회갑 기념연에는 논문집, 수필집 기타 합 5책이나 받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긴, 제가 공편으로 펴낸 고소설선은 출판사를 시켜 100부정도 보냈는데 받았다는 회답이 온 것은 다섯 분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유구무언? 그러니 여러분의 해량을 비옵니다.
10 해를 보내면서
올해도 저물어갑니다. 해를 보내면서 누구나 감회가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정월에는 올해 14,5권의 책을 내겠다고 다짐을 해보았습니다만, 올해 출간한 책은 무오연행록(교주), 고소설선(편), 춘향전사본전집(편), 수필집 아리랑과 흰옷 등 4책뿐. 그러나 비교춘향전(공저), 신라의 복식, 일본문화의 원류로서의 한국문화의 국문, 일문 2책의 편저, 목민심서(번역) 4책은 원고집필이 완료하였고, 방각본연구, 허균문선, 고소설론, 한국복식사연구, 고문서론 등은 집필을 내년으로 미루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 것은 놀고있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대신 논문을 쓰지는 못하였습니다. 발표는 4,5차 하였습니다만, 이제 우리는 정리의 연대라고 생각하면서 올 한해를 지내웠습니다.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저를 아껴주는 분들이 한참 공부할 나이에 여기저기 끌러다닌다고 충고해주시는 분도 계십니다만, 저는 중년들이 골프치러 다니는 셈으로 도락으로 동분서주하고 다닌다는 신념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말많은 세상이라 말이아 당연히 들을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의 최대의 수확은 “일본문화의 원류로서의 한국문화”의 국문, 일문의 2책의 원고가 동북아세아연구회 회원 여러분의 협조를 얻어 완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복식학회에서는 “복식”이란 학회지의 창간호를 내었고, 한국비교문학회에서는 “비교문학과 비교문화”라는 학회지를 창간한 일입니다. 이렇게 학회지 하나를 창간하면 다음에 이를 물려받는 분이 다시 이를 발전적으로 이를 신장시켜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다음 구상하고 있는 것은 삼국유사연구회의 발기와 춘향전 연구회의 결성이 숙제로 남았습니다. 동지들의 많은 호응을 바랍니다. 이런 일들은 생산적인 활동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데 보람을 느낍니다. 다만 한 학회를 오래 가지고 있는 것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것이므로, 회장이나 대표에 미련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만은 신념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올해도 저를 편달해주신 여러분 내년에도 끊임없이 편달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이글을 제 자랑으로 받아들이실지 모릅니다만, 미친 척하고 멱목판에 엎어지는 저의 짓궂음으로 받아주셔도 좋습니다.
돈아 경이는 지금 알젠틴에서 미싱을 돌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패자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만 마음이 쓰립니다. 노모는 고향에서 농사를, 장녀는 군산에서 여학교 교사를, 차녀는 곧 남편따라 빠푸아 뉴기니아에 갈것입니다. 이만큼 홀가분한 처지라 내년에도 힘껏 뛰어보겠습니다. 성원과 편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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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간:
김동욱 저 아리랑과 흰 옷 개문사 간 433페이지, 값 2,000원
김동욱의 수필집
김동욱 설성경 공저 비교춘향전 삼영사 간, 78년 3월 간행 예정.
빠리 동양어학교본 남원고사를 간, 사본 20여종과 플롯을 비교하여 그 이동을 밝혔음. 남원고사 원문 전재.
동북아세아연구회 편 일본문화의 원류로서의 한국문화 삼성출판사 간, 78년 여름 간행 예정.
600페이지 호화판.
동 역저 :
천관우, 김동욱, 김기웅 편 비교:상대조선문화와 일본문화
일본, 일본방송출판협회 간, 78년 여름간행 국판 600페이지가 될 듯.
이상 양저의 집필진:
묘제 (김기웅)
의복 (김동욱)
무기와 마구 (김기웅)
기마민족설 (천관우)
무기 (김기웅)
신화 (김열규)
주거와 건축 (김정기)
고대민간신앙 (장주근)
민담 (최인학)
일본서기 (박시인)
언어문자 (송민)
식품 (윤서석)
임진란과 일본문화 (김태준)
토기 (김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