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지 프로필 |
▶생년월일 = 1970년 4월 8일 ▶출생지 = 경남 밀양 ▶포항스틸러스 소속 |
김남주 웹젠사장·이판정 넷피아사장·박성훈 벅스뮤직 사장
“고졸이면 어때!”
한국 경제의 신(新) 성장 엔진인 인터넷 업계에 고졸 CEO ‘3인방’의 돌풍이 거세다. 상고 출신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대한민국 CEO에서 ‘고졸 신화’를 만들어낸 데 이은 후속작이다. 그 동안 서울대(이해진 NHN 사장) 연세대(이재웅 다음 사장) 등 소위 일류 명문대 출신 CEO들이 잡고 있던 대권에 당당한 도전장을 내고 있는 것이다.
고졸 CEO ‘3인방’은 김남주 웹젠 사장(32), 이판정 넷피아 사장(38), 박성훈 벅스뮤직 사장(36). 졸업장을 위한 대학 진학 대신 일찍이 ‘자신의 길’을 걸어 지금은 명성과 함께 부를 누리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중략-
박성훈 사장은 온실 같은 캠퍼스 대신 험난한 시장에서 사업을 배운 전형적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경남 밀양고 졸업 후 줄곧 부산에서 사업을 했다. 서울대 법대를 지원했다 떨어진 후 부산에서 카페 등을 운영하다가 1997년 PC방 사업을 하며 인터넷에 뛰어들었다. 박 사장은 2000년 인터넷에 엔터테인먼트 사이트인 벅스뮤직을 만들었다. 벅스뮤직은 현재 회원 수만 1400만 명에 달해 웬만한 라디오 방송국을 능가할 수준이다.
비록 음반협회와 저작권 분쟁에 휩쓸려 있지만 벅스뮤직은 부산에서 단출하게 출발한 살림과는 달리 3년 만에 매출 500억 원을 바라볼 만큼 성장했다. 둥지도 벤처 업계의 심장인 역삼동 스타타워에 틀었다.
삼성전자 기흥단지에 가면 아름다운 정원에 우뚝 선 현대식 건물이 나타난다. 세계 최고의 기술이 나온다는 삼성종합기술원이다. 15년 전 고 이병철 회장은 기술원에 자신의 집무실을 만들고, 고급 기술자 집단을 키우고자 했다. 아쉽게도 준공 한 달 후 이 회장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손욱 삼성종합기술원장(57)은 첨단기술에 대한 이 회장의 유지를 이어 850명의 연구진을 이끌고 있다. 5∼10년 뒤 삼성 계열사가 먹고 살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계열사가 해결하지 못하는 기술적 난제를 푸는 게 기술원의 일이다. 기술원은 민간 최대의 연구소이고 전체 연구원 중 380명이 박사이지만 정작 원장은 박사학위는커녕 학사 졸업장밖에 없다.
“물론 전문 지식은 박사를 못 따라갑니다. 그러나 박사가 되면 시야가 좁아지고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적어져 기술융합시대에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습니다.”
손 원장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듯이 수많은 첨단기술을 꿰어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만들 것인지 연구원들이 생각토록 하는 게 내 일”이라고 말한다.
최근 벤처기업의 몰락도 기술은 있지만 관리 능력의 부족으로 기술이 제 가치를 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달 한국에 왔던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츠와 기 소르망도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취약한 기술 경영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한 점을 그는 상기시킨다.
삼성의 ‘기획통’, ‘혁신통’으로 통하는 그는 80년대 중반 삼성전기의 기술연구소장으로 일할 때 20여개의 신규사업을 성공시켜 국내 최고의 종합부품회사로 만들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삼성SDI 대표이사로 일할 때에는 ‘프로세스 혁신’과 ‘6시그마’를 국내 최초로 도입해 회사의 경영 위기를 돌파했다.
4년 전 삼성종합기술원장이 된 그는 기술원도 혁신 중이다. 좋은 기술을 가진 전문가는 많으나 이를 융합해 시너지를 내는 데는 취약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기술경영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GE의 경영품질혁신 방식인 ‘6시그마’를 연구개발 분야에 처음 도입했다. 또 기술 분야간의 융합을 위해 조직을 매트릭스 체제로 전환하고, 연구원 1인당 10명의 세계 고수와 네트워크를 구축토록 했다.
현재 기술원 연구원의 연평균 교육시간은 100시간. 1인당 교육비는 250만원으로 미국의 유수한 기업인 GE나 시스코의 교육비를 능가한다. 삼성의 반도체가 세계 최고가 된 것도 이런 체계적인 기술 관리 시스템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는 “34년 동안 기술은 물론 기획, 판매, 마케팅, 전략 분야에서도 일한 것이 기술경영자가 되는 데 큰 보탬이 됐다”고 한다. 또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3년 동안 지방의 현장 근무를 자청해 거의 모든 기계를 다뤄 본 것이 평생 큰 자산이 되고 있다.
또 하나 그의 저력은 왕성한 독서에서 나온다. 특히 역사책을 많이 본다. ‘전통 속의 첨단공학’이란 책을 쓰기도 했다. 가끔 “책을 몇 가마니 읽었느냐”고 물어 부하 직원들을 질리게 한다. 기획부서에서 일할 때는 일본 마쓰시타의 기업경영에 대한 책을 150권이나 읽었다.
그는 “지금까지 과학기술자의 노력에 힘입어 소득 1만달러 시대를 열었지만 그 주역이 누구인지를 한국 사회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공계 기피의 원인을 진단한다. “소득이 2만달러가 되려면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강력한 조처가 필요합니다. 우선 연구원은 군대를 면제해 주고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면 전액 학비를 지원해야 합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dongho@donga.com
▼손욱 원장은▼
1945년 경남 밀양 출생. 1967년 서울대 공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한국비료공업과 한국종합제철을 거쳐 1975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삼성전기 기술연구소장을 거쳐 1993년 삼성의 신경영 선포 때 이건희 회장을 도와 비서실에서 일했다. 이어 삼성전자 전략기획 담당 부사장, 삼성SDI 대표이사를 거쳐 1999년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에 취임했다. 별명은 흔들리는 듯 보이지만 결국은 신념대로 이루어낸다고 하여 ‘흔들바위’. 산업계 및 정부기관에 6시그마를 확산시켜 ‘6시그마의 전도사’로 알려진 그는 서울대에 개설한 기술경영전략 과정을 통해 올봄부터 대학에도 6시그마를 전파하고 있다.
△좌우명=진인사 대천명 △인상 깊은 책=성경
항일운동 임굉 선생 독립유공자 인정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2003/08/16 020면 11:05:48
일제치하에서 후세들의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비밀결사조직을 결성하는 등 항일운동을 벌인 임굉(본명 임병찬·본적 경남 밀양군 삼랑진면 송지리)선생이 사후 53년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임 선생은 1940년 12월 대구사범학교 재학중 학생운동으로 '연구회'를 결성,교육책임부문 부서를 맡았다. '연구회'는 겉으로는 학술 연구를 표방했지만 실은 조선의 우수한 학생들을 교육시켜 광복이후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조직이었다.
이듬해 함경북도 청진시 천마공립국민학교 교사로 발령난 임 선생은 그해 6월까지 매 10일 간격으로 회원들과 회합을 가지며 활동을 하다 8월 일본 경찰에 발각됐다.
그는 치안유지법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수감중 1945년 8월15일 해방으로 출옥했지만 1950년,2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 선생의 항일운동은 그동안 묻혀지내오다 지난 95년 조카인 임상규(58)씨가 1차로 국가보훈처에 상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임 선생의 수형사실을 자료로 입증못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최근 마산보훈청 자료에서 임선생의 수형기록표를 발견함으로써 올해 광복절을 맞아 빛을 보게 됐다.
박기범기자 pkbum
밀양 오북의 명인들, 박동영(朴東暎)외
풍물에 북이 쓰이는 것은 어느 고장에서나 볼 수 있지만 영남 풍물에서 북의 위력은 대단하다. 북의 편성도 많거니와 판굿에서 북놀음이 발달된 것이 영남 풍물이다. 판굿에서 북잽이가 설놀음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한 곳은 밀양, 대구, 진도 등 여러 고장을 들 수 있는데 특히 밀양 북놀음이 밀양백중놀이로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밀양 북놀음은 그 유명한 하보경 노인이 기막힌 솜씨를 보였던 외북놀음과 북잽이 다섯이 합주하는 오북으로 나눈다. 지금 밀양에는 박동영 선생을 비롯하여 하용부, 박종우, 이용만, 설원수 같은 북의 명인들이 있어 많은 공연에서 갈채를 받고 있다.
밀양에는 하보경과 같은 북의 명인들이 있어 북놀음이 발전되어 왔는데 박동영 선생을 비롯한 많은 북의 명인들이 하보경의 북솜씨를 이어오고 있다. 박동영 선생은 하보경의 문하에서 밀양백중놀이 전수생이 되었고, 또 이수자를 거쳐 지금은 조교로 인정되었으며 동 종목의 부회장으로 재직중이다.
밀양 오북은 글자 그대로 북잽이 다섯명이 치는 합주이다. 입장하기 전에 먼저 모닥굿이라 하여 다스름과 같이 손을 고르는 가락을 치며 신명을 일으킨다. 덧배기 장단(자진모리)을 치며 갈지자 걸음으로 들어와서 북울림을 한 다음, 덧배기 장단으로 둥글게 돌아가며 북을 힘차게 친다. 그리고 나서 늦은 덧배기 (굿거리)로 느릿느릿 춤을 추고 까치걸음, 걸어나가기 등 갖가지 허튼춤을 춘다. 다시 덧배기 장단에 둥글게 돌아가며 원안으로 향하여 힘차게 가락을 치며 다시 북울림을 한다음 뒷풀이로 어울림 가락을 치며 신명을 돋우고 덧배기로 돌다가 북울림을 하고 퇴장한다.
1952년 경남 밀양 가곡동728 출생
1984년 동경 히비야공원 밀양백중놀이 공연
1988년 한헝가리 합작 '노스토이(불의 아해들)' 출연
1991년 통일 민속예술제(사할린) 참가
1995년 미국 케네디센타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
:: 김청프로필 ::
생년월일: 1962년 6월 1일
출 생 지: 경남 밀양 단장 고례
가족사항: 1녀 중 1번째
혈 액 형: B형
학 력: 경희대학교 무용과
취 미: 수영
특 기: 무용
데 뷔: 1981,MBC 공채 14기
수상경력: 제34회 대종상,MBC 방송연기상
:: TV 출연작 ::
2002 KBS2 드라마 시티
2001 SBS 허니 허니
2001 SBS 용서
2000 KBS2 송화
그 외 임진왜란, 엄마의 방, 풍란, 겨울꽃, 사랑과 야망, 검은 자화상, 사랑을 위하여, 여자가 사랑할때, 남의 속도 모르고 등
:: 영 화 ::
2001 헤라퍼플 이혜림 역
1996 애니깽
1990 누가 붉은 장미를 꺾었나 외 다수
중소기업연구원장에 김인호씨
[속보, 경제] 2004년 03월 26일 (금) 14:55
[머니투데이 이규석기자]중소기업진흥재단(이사장 김용구)는 26일 이사회를 열어 중소기업연구원 신임 원장으로 김인호(金仁浩)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선임했다.
< 김인호 중소기업연구원장 프로필 > ㅇ 생년월일 : 1942년 9월 24일 ㅇ 원 적 : 경남 밀양 ㅇ 학 력 - 1960. 02 : 경기고 졸업 - 1966. 03 :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 1973. 07 : 미국 시라큐스대학교 멕스웰대학원 졸업(행정학석사) (경제학 석사과정도 수료) - 1988. 12 : 국방대학원 안보과정 졸업 - 1995. 03 :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ㅇ 주요경력 - 1966. 08 : 제4회 행정고등고시 재경직 합격 - 1985. 02 :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 - 1989. 01 :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 1989. 05 : 경제기획원 차관보 - 1990. 04 : 경제기획원 대회경제조정실장 - 1992. 06 : 환경처 차관 - 1993. 04 : 한국소비자보호원장 - 1994. 08 : 철도청장 - 1996. 03 : 공정거래위원장 (장관급) - 1997. 02 :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장관급) - 1999. 09 : (社)국가경영전략연구원 원장 - 2000. 10 ~ 2001. 11 : (주)와이즈인포넷 회장 - 2001. 04 : (법무법인 세종 부설) 시장경제연구원 운영위원장(現)
"교수님도 지각하셨네요" 경성대 조달곤 교수 첫 시집 발간 | |
국제신문 | 기사프린트 | |
대학강단에서 수많은 제자들 앞에서 현대시를 강의해온 현직 대학교수의 ‘지각시집’ 발간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경성대 국문과 조달곤 교수가 첫 시집 ‘뒤란이 시끌시끌해서’(작가정신 펴냄)를 엮었다. 정년 2년여를 남기고 있는 조 교수는 60줄을 눈앞에 둔 지난 1999년 ‘문학21’을 통해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 조 시인은 그러나 대학시절부터 습작기를 거치는 등 지난 30여년간 시를 쓰는 등 지역문단에서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여왔다. 조 시인의 이번 첫 시집에는 9년 전 경남 밀양으로 근거지를 옮겨 시골생활에 젖어들면서 창작한 시들이 듬뿍 들어 있다. 그는 “시골생활은 도시적 삶으로 인해 오랫동안 실어증을 앓고 있던 나의 말문을 트게 했다”고 말했다. 긴 잠을 깨우고 실어증을 치유해준 시골 텃밭의 유순한 흙밥과 키 작은 야생화들이 그의 시의 바탕이다. 조 시인은 이 때문에 오랜 세월 쓰온 시를 모두 버리고 최근 쓴 시만 모아 첫 시집에 담았다. 흙밥이 좋아야재/흙밥이 좋아야 나무가/문실문실 잘 자라지/부드럽고 포실한 흙밥/젊은 날 아내 궁뎅이처럼 살지고/토실토실한 흙밥/흙밥이 좋아야 채소도 기름지고/속살이 찌지……제초제에 신음하고 있는 흙은/흙밥이 아니지……(‘흙밥’ 중에서) 일상을 벗어난 시가 주류를 이루는 그의 시는 그렇지만 시골 삶을 통해 도시적인 삶을 잘 드러내는 장점을 갖고 있다. 옛날을 되돌아보면서도 어느 순간 현재 삶을 그려내는 이야기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문학평론가 박훈하씨는 “조 시인은 굉장히 현대화된 시를 쓰면서 패기만만한 창작활동을 펼친다. 그러면서도 연륜이 엿보이는 시 작품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상기도의 반란/때론 반란은 아름답다./일상사 번다한 일 건듯 접어두고/방에 군불을 넣고/방문도 꽁꽁 걸어 잠그고/방구석에 배를 붙이고 누워/한 닷새쯤 유배되고 싶다……상기도의 반란/겨울 감기는 아픔답다. 그러나/그런데 그렇더라도……(‘감기’ 가운데) |
[인터뷰] 무역협회 부산지부 주수도 신임 지부장 |
![]() 최근 부임한 한국무역협회 부산지부 주수도(52) 신임 지부장은 5일 “지역내 무역업체들이 대외 환경 변화에도 크게 흔들림없이 수출입 활동에 힘을 쏟을 수 있도록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겠다”며 앞으로 발로 뛰는 활동을 통해 더 많은 업체들을 직접 만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부산의 무역업체 수는 7400개사로 전국의 7.7%에 달하지만 수출비중은 2.5%에 그치는 등 상대적으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어 기업의 자생력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이를 위해 주 지부장은 한국해양대와 산학협력을 통한 수출입 물류 실무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비롯, 인터넷 마케팅사업이나 정보화 혁신 등 각종 지원사업을 강화해 영세업체들의 해외시장 개척활동을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부산은 항만물류 전시컨벤션 관광상품뿐만 아니라 서비스면에서의 발전 잠재력도 큰 도시로, 부산이 복합무역 전초기지가 될 수 있도록 부산시와 항만공사 등 관련 기관과 협력해 나가겠다”며 “특히 APEC 유치활동 등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에도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195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주 지부장은 1982년 한국무역협회에 입사한 뒤 부산지부 부지부장, 경남지부장 등을 거쳤다. |
**강촌별곡(3) 밀양천황산자락 소설가 김춘복씨 나, 고향愛 빠졌소 영남알프스의 천황산 자락에 묻혀 소설을 쓰고 있는 김춘복(65^경남민족 문학작가회의 고문)씨를 찾아가는 그 날은 날씨가 참 맑았다. |
![]() |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321. 소설가 김춘복씨가 태어난 이 곳은 마을 외곽 에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해서 「숲마」라고도 불리지만 시례마을로 더 통한다. 새마을운동의 허상을 비판한 그의 장편소설이자 사실주의 문학의 새 지평 을 열었다는 「쌈짓골」(창작과비평사, 1976)의 무대이기도 하다. 천황산과 운문산의 완강한 품안에 안긴 이 곳은 밀양시내를 거쳐 얼음골 을 향해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달려야만 닿는 산골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단풍인파가 끊일 새 없었을 테지만 지금은 하얀 나목이 투명한 겨울하늘을 이고 처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지천으로 깔 려 있는 사과나무에선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 마을 입구 한 식당에서 만난 그의 인상은 언젠가 고은 시인이 그를 두고 「멧돼지」라고 불렀던 것처럼 오척단구의 단단한 외모와 저돌적인 성정이 얼핏 느껴진다. 동행한 이달균 시인과 함께 좁쌀막걸리를 두어 순배 돌리 자 친근감이 든다. 취재차량을 타고 사과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죽 들어가자 마을 들 머리에 재실인 「동림재」가 나오고, 바로 옆에 줄장미를 단 철제 아치 대 문의 2층 벽돌집이 반긴다. 바로 김씨가 터 잡고 살고 있는 둥지다. 150여평의 이 집은 20평만 차지하고 나머지 채마밭에는 고추 가지 오이 무 상추 배추 등이 철따라 자라고 꽃밭에는 목련, 동백들이 서 있다. 1층 서재로 들어가기전에 곧게 뻗어 있는 측백나무 뒤로 난 토담창고를 들여다 봤다. 옛날 누에를 쳤다는 이 곳엔 약재로 쓸 오가피가 주인의 손길 따라 잘 말려지고 있었다. 그 토담 사이로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서 있는 고목나무가 눈길을 확 붙 잡는다. 「쌈짓골」 소설속에서 대립과 갈등을 표출하며 끝내 베어져 나가 지만 수령 600여년, 십수 아름드리를 자랑하는 마을 수호수인 당나무란다. 그가 서울에서도 늘 눈에 선했던 바로 그 당나무다. 둘러 보는데 한참(?) 걸릴 정도로 태어나서 그처럼 큰 고목나무는 처음보지만 몸통 군데군데에 구멍이 뻥 뻥 뚫린 채 불에 시커멓게 탄 흔적도 남아있어 안타깝다. 여기서 내려다 뵈는 쌈짓골은 천황산을 병풍 삼아 운문산과 백운산이 감 싸고 있는 형국이 7천만년전 거대한 화산지대의 중앙 분화구였다는 설명이 없어도 물만 고여 있으면 백두산 천지못을 연상케 한다. 김씨는 5년여전, 1998년 6월에 아내와 자식들은 남겨두고 23년 간의 서 울 생활을 접고 이 자리로 돌아왔다. 마치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하듯. 『새벽에 눈뜨면 여기가 시례인가 하고 보면 서울이었죠』라는 그는 자나 깨나 그의 영혼속에 숨쉬고 있는 고향을 잊을 수 없었단다. 「농어촌문학」의 고문을 맡고 있는데, 서울에 살면서 그 일을 한다는 것 도 우습고, 밀양을 배경으로 소설을 쓴다면 무엇보다 내 작품의 자양분인 이곳에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그의 결심을 굳히게 했다. 그렇게 해서 고택을 헐고 그가 손수 지은 「심우당(尋牛堂)」이란 편액 을 내건 이 집에서 노모를 봉양하며 살고 있다. 기자가 찾은 날, 노모는 건 강이 좋지 않아 작은 아들 집에 가고 안계셨다. 조상 대대로 6대가 살았다는 이곳은 그의 자랑대로 1층 서재에 들어서자 130년전의 호적등본과 그가 20년전에 처음 손대 본 유화그림(할아버지 초상 화)이 벽에 걸려 있다. 또 컴퓨터와 팩시밀리, 심지어 복사기가 있고 주인의 손때가 묻은 책 등 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어우러져 있다. 주인도 이 풍 경에 잘 어울리게도 격의 없고, 자연스럽다. 따끈한 차를 마주하고 앉은 김씨는 노모 얘기부터 꺼낸다. 노모(백필경)는 당시 「춘향뎐」을 필사해 동네사람들 앞에서 읽어 주곤 했는데, 마치 일일연속극을 보는 것처럼 집에 몰려들었다고 회고한다. 아 마 어머니의 소질을 타고 난 것 같다는 그는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땐 1천 200여평에 이르는 사과밭도 일구고 소설도 쓸 요량이었단다. 하지만 마음 만 훤할 뿐 몸이 따라 주지 않아 농사꾼으로서의 길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신 소설에만 매달리기로 했다는 그에게서 치열한 작가정신이 엿보인다. 『영락없는 「촌놈」이라 흙냄새 맡으면서 생활하는 지금의 환경이 딱 체 질에 맞습니다.』 그가 손에 흙과 물을 묻히고 식물을 매만질 때면 새둥지엔 새가 날아들 고 나비는 꽃들 사이를 누빌 것이리라. 그렇게 흙과 함께 숨쉬며 자신이 태 어난 땅에서 사는 그의 삶은 욕심없이 여유로워 보였다. 『하루 일과랄 게 따로 없어요. 작품 쓰고 틈나면 채마밭 만지다보면 하 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지경이야』라는 그의 말마따나 이 곳에서 김씨는 이순의 정열을 오롯이 쏟아부을 대하소설 밀양아리랑을 준비하고 있다. 일제때 활동한 밀양 출신의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 장군과 석정 윤세주 를 중심으로 한 대하소설인데, 조선독립운동사이면서 농민운동사가 될 것이 라고 들려준다. 이왕 시작했으니 이기영의 「두만강」과 조정래의 「아리랑」, 박경리의 「토지」를 능가하는 소설을 쓸 생각이다. 현재 작업중인 영상으로 보는 「미리벌 이야기」제작이 끝나는 3월이면 본격적으로 작품을 쓸 참이다. 『내가 아니면 영원히 아무도 쓸수 없을 것 같은, 역사에 대한 책임과 의 무감으로 그동안 이 작업을 준비해 왔다』는 그는 전국의 주요 도서관과 정 부 문서기록보존소를 뒤졌고 유족들을 인터뷰했다. 태어나서 자란 이곳 흙냄새를 맡으며 『눈 감을 때까지 작품을 써야죠』 라는 그의 꼭 다문 입술에서 후세에 길이 남을 「작품」을 기대해 본다. 글= 김다숙기자 dskim@knnews.co.kr 사진= 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 - - - -- - - - -- - - ♣ 약력 △1938년 밀양 출생, 부산중^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 업, 밀양 홍제중, 세종고, 영남상고, 중대부고 교사로 지냄. △1959년 단편소설 「낙인」 현대문학 추천(김동리), 1976년 장편소설 「쌈짓골」(창비), 79년 「계절풍」(한길사), 1991년 교육문제 연작소설집 「벽」(풀빛) 간행. △2000년 경남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중편소설 「조지나 강사네」(「경 남작가」 창간호) 등을 발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