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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도 엽 (원고지 33매)
예고편 -
못 찾 겠 다 꾀꼬리
- 숨어버린 골목, 경남 마산시 양덕동
하나, 골목을 어슬렁거리다
어리석었다. 또 찾지 말아야 할 길을 찾아 나섰다.
얼마나 설??던가. 처음 골목이야기를 쓰자 할 때. 삶은 골목이지 않을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숙명 같은 것. 고샅을 돌면 고만한 집이 있고, 또 고만한 삶이 스멀스멀 피어 반갑게 나를 맞이하겠지. 놓아버린 사랑이 있고, 잃어버린 정이 있고, 돌아가고픈 기억이 누렇게 바랜 흑백사진으로 있을 골목. 들 뜬 마음으로 사진기를 챙겨들고 마산 양덕동을 찾아 간다. 지리한 장마의 시작인 이천 오년 유월 이십팔일.
골목, 설레는 기억
경남도민일보 뒤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나는 컬러에서 흑백으로 바뀌는 마산고속버스터미널 옆 골목을 들어서며 추억 여행을 시작한다. 오육십 걸음 남짓한 짧은 골목 끝에 야하게 들어선 모텔의 빨간 간판보다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 있다. 칠이 너덜하게 벗겨진 철 대문 앞에 붙은 종이 한 장. 연습장을 찢어 매직으로 쓴 “달셋방 100에 15만원.” 내겐 한 편의 서정시가 되어 다가온다. 얼마나 울렸던가. 돈이 맞으면 방이 아니고, 방이 맘에 들면 돈이 맞질 않고. 끝내 돈에 맞출 수밖에 없었던 신혼살림이 아직도 골목에 있다.
하지만 내 여행은 여기서 멈춰야 했다. 짧은 골목을 벗어나면 또 이어져야 할 골목이 사라진 거다.
골목이 사라졌다
읍과 면 마을을 돌며 살다 오랜만에 찾은 도시의 골목은 바뀐 게 아니라 숨어버렸다. 터미널 옆 골목을 벗어나면 도랑이 있어야 하고, 도랑을 건너면 가난한 호주머니로 곯은 배를 채울 수 있는 허름한 술집과 그들을 눕게 할 자취방들이 모여 있는 골목이 있어야 하는데.
눈앞에 널찍한 사차선 도로가 내 기억을 동강내며 뚫려 있지 않은가. 그 뿐인가 우람하게 버티고 선 000 붉은 콘크리트 건물은 내가 양덕동 골목을 찾은 이유마저 막고 있다.
“소화집”
마산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치고 이 집을 찾지 않은 이가 있을까. ****원을 내고 두루치기 하나를 시키면 오목한 후라이팬 가득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가 나왔지. 안주 하나만 시키면 소주는 주량만큼 몇 병이고 비울 수 있었지. 값싸고 양 많은 안주. 십 년 전 우리에게 이보다 물(?)좋은 술집이 있었을까.
내가 양덕동하면 소화집을 먼저 떠올리는 이유는 안주의 양보다 ‘소화’라는 이름에 있다. 내가 구십일 년에 마산에 내려와 소화집을 처음 듣고 든 생각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이다. 마산 창원이 노동운동의 허리라고 생각했던 내게 수출자유지역 앞의 소화집은 지리산이자 빨치산이다. 내겐 신비로움이 감싼 술집이다.
아, 그 신비가 저 큰 찻길 너머 근육질의 콘크리트 건물 아래 살아 있을까?
그곳엔 아직 작업복이
어찌 건너야 하나. 아니 건널 필요가 있을까. 추억 여행이 끝났다는 멍한 머리로 찻길을 건너 수출자유지역 후문으로 걷는다. 이게 뭔가. 소화집이 있지 않는가.
* 소화집의 바뀐 모습을 그린다.
*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사람, 여전히 그곳을 찾는 이는 노동자를 그린다.
**소화집 주인 인터뷰 (원고지 5매 이내로 박스)
골목이야기를 쓰자 했을 때 나름대로 세운 다짐이 있었다. 골목을 느끼기 전에 사람을 만나지 말자. 내가 먼저 양덕동 골목이 되자. 내 몸이 골목이라는 공간이 되지 않고 어찌 사람의 삶을 담아낼 수 있단 말인가.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첫 날 이 다짐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골목을 몸으로 느끼기도 전에 사람을 먼저 보았다. 아니 사람보다 생존의 몸부림을 먼저 보아야 했다.
보고 말았네
수출자유지역 후문 건널목 맞은쪽에서 후문을 바라보면 꼭 교도소를 보는 것 같다. 꽁꽁 철망을 둘러친 후문. 왼쪽 구석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가고 빠져 나오는 노동자들. 내 생각이 아직도 위험한 건가, 아니면 시간이 지나도 저 철망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위험한 걸까. 리모델링이네, 개발이네 하며 한순간에 삶의 뭉개며 뒤바꾸면서,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의 간판과 닫힌 철문을 지키려는 속셈을 의심하는 내 생각이 더 엉큼한 걸까.
발걸음을 후문 맞은쪽 버스정류장으로 옮겨 몸을 왼쪽으로 틀어 골목에 또 슬그머니 들어선다. 이 곳은 한때 내가 총각인 줄 알고 짝사랑했던 귀여운 벗이 십 몇 년 전에 자취를 하던 골목이다. 둘이 설 수 없었던 연탄아궁이가 있던 부엌에서 꼭 고개를 숙여야 방으로 들어 갈 수 있었지. 늘 잘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아 문 여닫느라 알통이 생겼다고 조잘대던 그 입술이 눈에 선하다.
자취집 대문을 열고 나서면 바로 시장 골목이라 나는 여길 자주 드나들었다. 언제 가더라도 생선 한 토막은 김치와 함께 자취 살림 밥상에 올라 왔지.
한가한 듯한 시장을 빠져나와 벗을 생각하며 사진을 한 장 찍는다. 시장 골목 중간쯤 벗의 얼굴을 그려 넣는다.
손님들이 사와서 마신 술이에요.
시장 골목을 나와 찻길을 건너니 골목이 삼십년 전 양덕을 간직한 채 남아있다. 이제야 골목을 느끼겠구나. 담배를 꺼내 한 모금 깊숙이 빨아들인다.
“왜 그러니 거에요.”
갑자기 앞치마를 두룬 마흔 중반쯤 된 아주머니가 내 팔을 잡는다.
“저랑 같이 좀 가요.”
“아주머니, 왜 그러세요.”
“사진 찍으셨잖아요.”
“무슨 사진요?”
......................
내가 어설피 느끼려 했던 골목은 여기서 삶의 몸부림에 부딪히고 말았다.
둘, 바냇들을 아시나요
양덕동의 역사는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의 운명과 맥을 같이 한다. 천을 중심으로 논과 밭이었던 양덕동은 1966년 지금의 수자지역에 임해 공업단지 조성을 위한 매립과 산호천 주위로 한일합섬 공장을 지으면서 시작.
마산 종합 운동장과 한일합섬이 들어선 곳이 바냇들.
l
이사장님, “여가 다 논이었지. 저기는 밭이고. 지금 MBC자리 산이 소 미러 다닌 곳이라. 소 똥에 미끄러지고 그랬제.”
“어린교 근처에서 해삼도 잡아먹었지.”
“타워 맨션은 절대 안 무너질기라. 저기에 동산이 있었거든. 완전 바위라. 산을 깍는데 애 먹은 기라.”
“봉덕 초등학교가 합포 초등학교 분교 제. 우리가 다라이에 흙을 나르며 운동장--”
양덕동의 논과 밭이 골목을 만든 것이 한일합섬과 수자였다면, 골목을 지우는 것도 한일합섬과 수자이다.
칠십년대 공장으로 양덕동을 꾸몄다면, 이젠 부동산 업자의 손으로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있다.
유통(홈플러스, 신세계 백화점), 언론(문화방송, 도민일보), 문화 (315 시민회관, 삼각지 공원)의 중심지라고, 마산의 중심이라고......
긍정하면서도 거부하고 싶은 양덕의 내일이다.
셋, 골목을 훔치다
[한일합섬 기숙사 000 인터뷰]
누구나 이곳을 거쳐 간 사람은 기억을 간직하기 보다는 지우려고 한다. 내가 만난 000도 마찬가지다.
이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
마산공장 기숙사는 감방보다 더 했어
한 방에 여덟 명이 살았거든. 여덟명이 나란히 못 누웠어. 양쪽으로 머리를 맞대고 네 명씩 누우면 꽉 맞았어(중략)
어마 어마 했지
내가 일학년 들어 갈 때 사십 반까지 있었거든. 한 반에 육십명씩 ...(중략)
빨리 떠나고 싶은 기억
..... 졸업하는 날이 일요일이었거든. 그래서 토요일날 퇴사하겠다....... 졸업장을 안주겠다는 거야. 그래 가지고 월요일날 .......
세수대야를 깨끗이 씻어야 되는 기라
...... 열 시에 점호를..... 두 줄로 쭉 앉아...... 물 때 없이. 그래 가지고 검사를 맡아...... 발로 확 차 거든..... 짜악 굴러가지......
..........
칠만 원도 안 된 것 같애
.....재형저축 ..... 칠만 원 내고 나중에 마이너스가 나왔더라고....... 87년 이후 좋아졌지...... 이십만 원 가까이..... 이십만 원 안 됐다.......
산골에서 온 아이들
... 김치에 청각이 있잖아..... 미더덕찜 ..... 도대체 그게 뭔지를 몰라서 못 먹었어. .... 밥도 찐밥 있잖아...... 참 밥 먹기 힘들데.
모포 두 장을 주돼.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어찌 살았을까........
[산호천에 고추를 심은 할아버지 000 인터뷰]
“.......아파트 거 들어 갈 놈 누가 있노..... 관리비가 암만 못 들어도...... 우리 할마니랑 둘이 한 달 생활비야........ 있는 놈이나 들어가제 없는 놈은 들어가라 해도........... 그래 그거 물어 갓꼬 뭐 할라꼬.”
[세 번째로 집을 지은 쌀가게 ooo 할머니 인터뷰]
“길가 댕기면서 무슨 애길 물어 봐?..... 노무현이 잘한다꼬......그리 사는기지 우짤꼬.......연타 파동이 나가지고...... 어찌 보골이 나던지 연탄 공장.... 하루에 삼천장 배달 했는데.....그래도 개코도 뭐 여태 한 꼬랑탱이가 요 모양 요 꼬라지....... 아이고 무서라. 배도 안 고프요.”
넷, 골목은 없다, 아니 지워야 한다 (결론)
첫댓글 연휴에 숙제를 정말 열심히 하려고 다짐했는데, 서울에 오지 않으면 반민족 반통일 세력이 된다는 공갈에 어쩔 수 없이 토요일 밤 새며 부랴부랴 숙제를 했습니다. 틀거리만 만들어 보았습니다. 근데 상암경기장 진짜로 좋습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