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북 지역 " |
현 시대 흑암문화 대표하는 이단들의 아지트 지역 서기 1392년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일으키며 한양에 도읍을 정하기 전까지, 서울은 다른 곳과 별반 다른 것 없는 한촌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던 곳이 6백년 세월 동안 한 나라의 중심이 되면서, 서울의 문화는 곧 한국을 움직이는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조선시대부터 서울의 문화라는 것은,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문화로서, 서로 각 지역별로 상충 작용을 하면서 특이한 ‘서울 문화’가 되었다는데. 이렇게 생겨난 것이 서울 말씨라고 한다. 하지만 서울이라고 해서 다 같은 서울은 아니었다고 한다. 6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중의 하나는,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준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서울은 4대문 안을 가리키며, 지금의 종로구 청운동, 효자동 일대가 오리지널 양반촌, 그리고 남산 밑자락이 딸깍발이 양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면서 행색은 양반으로 살아가야 하는 잔반들이 모여사는 곳이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후부터 서울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뭔가 뜻을 펴려고 올라온 팔도의 사람들이 처음 머무를 수 있었던 곳은 서울이 아니었다. 대부분 하층민들이 주류를 이루며 살던 곳이 동대문 바깥 지역, 서울의 동북부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중랑구, 성동구, 강동구 일대였다는 것. 1960년대 이후 서울의 개발은, 면적을 넓혀 나가면서 수많은 건물이 세워지고 도로들이 닦이는 등, 변화를 거듭해왔지만, 아직도 이 곳은 인구밀도가 높으면서도 대표적인 중산층 지역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지난 1월의 전국 현장 르포 지역이 된 서울 동북부 지역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영적인 흐름 속에서, 또한 그 어떤 곳보다 심각한 영적 전투의 현장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온갖 우상문화의 흔적들 뿐만 아니라, 현 시대의 흑암문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거대한 종교 집단의 아지트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처음 계획은 서울 동부노회 목회자들과 함께 지역 현장을 밟을 예정이었지만, 동부노회 목회자들의 수련회 일정으로 함께 할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며 영적 전투를 벌이는 교회야말로, 지역의 영적 현장을 가정 정확하게 진단하며 함께 기도제목을 나눌 수 있는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1박 2일의 짧은 일정과 서울의 교통 상황은, 깊이 있는 취재를 하기에 역부족이기도 하였으며, 분명히 많은 현장을 놓쳤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어쨌든, 이번 서울의 동북부 지역의 현장 르포는 동대문구에 자리한 동묘(東廟)→ 선농단(先農壇) 주변→ 낙산 묘각사→ 동국대학교→ 장충단→ 통일교 재단인 리틀엔젤스회관, 선화예고→ 영화사→ 중곡동 대순진리교 본부→ 성수동 외국인 근로자 현장→ 불암산(불암사, 석천암, 천보사)→ 삼육대학교→ 태릉 등의 코스를 밟았다. ◆ 관우를 제사하는 사당인 東廟, 재개발 공사 주변에 무당촌 즐비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에서 신설동역 사이에 자리하며, 지하철 6호선 동묘역으로 명명되어진 동묘(東廟)는, 도심 속에 묻혀있어 일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조선 선조시대에 건축, 특이한 건축 양식으로 보물 제124호로 지정된 곳이다. 참 이상한 것은, 지역에서 역사하는 영적 흐름을 쫓아가다보면, 한국 속담에 ‘도다리는 도다리끼리 모인다’고 하듯이, 흑암세력이 집단으로 모여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동묘 주변은 재개발 공사 현장으로 어수선했는데,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은 곳에는 어김없이 깃발을 내건 무당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동묘는 어떤 영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동묘는 중국 촉한의 유명한 장군인 관우를 제사하는 사당으로 원래 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이다. 관우는 관성제군, 관보살이라고도 하며, 무운(武運)과 재운(財運)의 수호신으로서 중국의 신앙대상이었다. 특히 중국인들에게 전쟁에서 영험이 있다고 하여 왕조의 존경과 숭상이 더욱 두터워지면서, 관우는 신성불가침의 우상이 되어 각지에 그를 모시는 사당인 관제묘를 세웠다. 또한 재신으로 숭배된 것은 관우가 위나라의 조조에게 잡혔을 때, 조조가 그에게 상마금, 하마은 등 푸짐한 상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사퇴하고 촉나라 유비에게 돌아갔다는 고사에 따른 것이며, 도교에서도 관우를 사후세계의 유력한 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런 영향은 지금까지 대만이나 중국에서, 관우를 신으로 모시는 곳이 많을 정도이며, 한국의 많은 무당들 중에도 관우를 모시는 곳이 많다고 한다. 서울 동묘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조선과 명나라 군대가 왜군을 물리칠 때 관우의 신령이 여러 번 나타나서 덕을 입었다고 하여 명나라의 신종이 비용과 친필로 쓴 액자를 보내오고, 조선에서도 협조하여 1601년에 완공되었다는 것. 건물 양식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다른 건축들과 비교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는 관운장의 생일인 5월 13일과 10월 19일에 대제를 지내는데 관성교(觀聖敎)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음식을 준비하여 제사를 드리는 정도라고 하는데. 문화재이기 때문에 서울시 문화재 관리국에서 관리, 평상시에는 관운장의 상을 모셨다는 문이 굳게 잠겨있다는 것. 지금은 도심 속에 파묻힌 공원으로, 특히 주변의 노숙자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전락해버린 모습이다. ◆ 동대문구 용두동의 선농단(先農壇), 그 주변에 자리한 말일성도교 훈련기관,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선교단체 죠이선교회 자리해 동대문구 용두2동에 위치한 선농단에서는 조선시대 국왕이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그 해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후 친히 소를 몰아 밭을 갈면 그 뒤를 따라서 신하들이 밭을 갈았다는 유적이 담겨있는 지역이다. 농업을 국가 근본으로 삼았던 우리나라에서는, 경칩이 지난 뒤 첫 해일에 동대문 밖 선농단과 적전에서 제사와 밭갈이 행사를 했다고 한다. 선농제의 제신은 농업을 관장하는 신농씨와 후직씨였다. 오늘날 선농단이란 지명은 선농제에 바칠 곡식과 천경행사를 거행한 왕실 농토가 있었던 곳을 의미하며 제기동은 선농제를 지내는 제사터가 있었던 곳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제사를 지내고 나면 제사에 바친 쇠고기를 음식으로 만들어 참석한 백관, 인근지역 농민,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는 제사를 지낸 후 제사 참가자들이 술을 나눠 마시는 음복 풍습과 유사한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제사 고기를 골고루 나눠줄 수 없었기 때문에 쇠고기국에 밥을 말아 많은 사람이 먹도록 한 것이라는데. 여기에 우리가 즐겨먹고 있는 설농탕(設農湯)이 유래했다는 것. 농사의 신께 제사를 올리던 세종대왕이 논을 경작하는 본을 보일 때였는데 갑자기 심한 비바람이 몰아쳐 오도가도 못하게 된 임금의 배고픔을 달래느라 백성들이 농사짓던 소를 잡아 맹물을 넣고 끓였는데 이것이 설농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베풀설(設), 농사농(農), 끓일탕(湯)의 의미이다. 역시 이곳 선농단 바로 옆에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선교단체인 죠이선교회(JOY), 말일성도교 훈련기관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한 쪽에서는 문서로 이 땅에 복음을 전하는 대표적인 선교기관으로, 다른 한 쪽은 몰몬교로 알려져 특히 젊은층들에게 인기있는 종교로 자리한 훈련센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 법화경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중생을 교화한다는 ‘관음종 총본산 낙산 묘각사(妙覺寺)’ 번잡한 종로구, 동대문구 일대를 돌아서려 할 때 우리의 눈길을 잡아끌었던 이정표가 하나 보였다. ‘관음종 총본산 낙산 묘각사’라는 현판이었다. 불교의 주류인 조계종, 태고종 소속의 절은 많이 봐왔지만 ‘관음종’이라는 종단은 매우 낯설었기 때문이다. 인왕산, 남산과 함께 산신제를 지냈다는 낙산(駱山) 바로 밑에 자리한 묘각사는, 달동네 수준의 지역 분위기와 사뭇 다른 꽤 규모있는 절의 외형을 갖추었다. 절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풍수지리를 잘 모르는 문외한의 시각으로 얼른 보아도 그야말로 놀라운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지형을 잘 살리는 건축으로 산신각이 지어진 꼭대기에는, 서울 장안 동북부 일대를 바라보는 형상의 부처가 세워져 있다. 마침 우리가 갔던 날은 관음종 총무원장이며 주지라는 홍파 스님이 부재, 사무실의 비구니승과 보살로부터 절의 내력에 대해 잠깐 듣는 기회를 갖게 됐다. “1930년에 태허 홍선대종사님이 창건하여 법화경을 중심으로 수행과 대중불교운동을 지향하면서, 지금의 위치에 풍수지리설에 의해 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청정법신의 구원불을 봉안하고 보살의 어머니격인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는데, 화재로 절이 소실되었다고 재작년에 7년만에 새롭게 절을 완공하게 됐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관음종에 대해 잘 모르시는데,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불교의 맥을 이어 대승불교 이념 가운데 1965년에 불입종(拂入宗)이란 종명으로 창종하였다가, 나중에 관음종으로 개편하였습니다. 지금은 약 5백여개의 종단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비구니승의 설명이다. 다른 불교와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법화경 사상’이라는데. “법화경이란 부처님 일대 50년 중 40여년은 방편교를 말하였으며, 나머지 10년 동안 설한 교법으로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절대 진실이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우리 관음교는 이 변하지 않은 진실을 강조하면서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이지요.” 이 비구승은 이 절의 영험함에 대해, 다른 절과 차별되는 점 몇 가지를 설명해주었다. 7년에 걸쳐 절을 지으면서, 모든 건축을 부처의 가르침 그대로 따랐다는 것. 또한 현존하는 대광명전과 천수관음이 봉안된 관음전, 석굴암, 산신당, 선방은, 그래서 다른 절과 조금 다른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달에 두 번씩은 주지 홍파 스님이 반드시 설법을 하고, 낙산의 산신제를 묘각사가 그대로 이어받아 섣달과 그믐달에는 철야정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마침 우리 취재팀이 나가면서 마주친 절의 여신도들은, 상당히 부유층으로 보이는 40대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갈수록 화려해지고 친밀해지며, 가까운 곳에서 포교활동을 하는 절의 포교활동은, 절의 규모와 비례관계를 이루는 듯 했다. ◆ 장충단(長忠壇)과 불교 재단의 동국대학교 퇴계로에서 남산 힐튼호텔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오랫동안 서울 시민들의 공원의 하나로 사랑받는 장충단 공원과 불교 재단의 동국대학교가 우뚝 서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공원으로만 알려진 장충단은, 1900년 고종 때 을미사변으로 순국한 여러 장병들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제를 지낼 때 군악을 연주하고 군인들이 조총을 쏘았다는 기록이 남아있기도 하다. 한편 바로 옆에는 불교 재단의 동국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1906년에 호국불교의 이념 가운데 세워진 불교 재단의 학교로 역사가 깊다. 기독교 이념으로 세워진 많은 학교들이, 갈수록 종교적인 색채를 잃어가고 있는 현상과 달리, 동국대학교는 학교 중앙 광장에서부터 불교 분위기가 선명했다. 학교를 상징하는 교패에는, 불교에서 받들어 사용하고 있는 법륜을 의미한다는데, ‘법'은 부처의 교법과 진체를 뜻하며, ‘륜'은 진리의 원만성과 진취성을 뜻한다. 따라서 법륜이란 석가모니 부처의 원만한 진리가 공간과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굴러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부처의 가르침이 동국대학교로부터 이루어진다는 큰 뜻을 나타내었다는 것. 여기에 학교를 상징하는 동물로는 코끼리이고, 학교를 상징하는 꽃은 연꽃이다. 코끼리가 학교 중앙 광장에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더욱이 동국대에는 이 학교 출신의 연예인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 이들이 학교 홍보 활동을 할 때, 불교가 꼭 함께 선전된다고 한다. ◆ 통일교 재단의 리틀엔젤스회관, 한국 문화계 엘리트를 키우는 선화예술중 · 고등학교, 중곡동 대순진리회 본부 서울 광진구 화양동, 중곡동 일대를 말해보자면, 한 마디로 ‘원수의 적지’라는 표현 그대로이다. “아차산 자락의 한 끝으로 인구밀도가 높고 토박이 보다 외지인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지역입니다.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흑암세력이 세서 목회가 잘 안되는 지역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중곡동은 대순진리회측에서는 마치 성지와 같은 곳입니다. 본부 뿐만 아니라 많은 지회 건물들이 세워지고, 심지어 건물만 생기면 모두 사들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젊은이들을 훈련시키는 미션홈 형태만 해도 수십개나 된다고 해요. 어떤 교회가 공개적으로 대순진리회와 영적 전투를 벌이자 대순진리회에서 그 교회를 빙 둘러 땅을 사들이면서, 교회가 안보일 정도가 됐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훈련을 받으러 오는 지 모릅니다. 게다가 지역의 시장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자주 제사의식을 치르다 보니 아예 주변 시장에서 트럭으로 과일을 사들일 정도입니다.” 중곡동에서 오랫동안 영적 전투를 벌이고 있는 온누리교회 김한곤 목사의 말이다. 이들은 24시간 릴레이 기도, 교리 공부, 현장 전도 등을 통해 점점 세를 넓혀가고 있다고 한다. 너무 놀라운 점은, 대순진리회 본부를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살벌할 정도로, 본부에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마치 조직폭력배 집단을 연상하듯이 삼삼오오 경비를 서고 있다. 내부를 보고 싶은 욕심에, 본부를 병풍처럼 둘러선 산꼭대기로 올라갔을 때, 우리는 너무나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경계선으로 철조망을 쳐놓고, 심지어는 그 꼭대기에 감시탑을 세워 수시로 주변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대순진리회에 대한 교리는, 전국 영적 현장르포-광주 지역을 탐방하면서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이 지역의 또 하나의 흑암 세력은 통일교이다. 화양리 서울대공원 옆에 자리한 리틀엔젤스회관과 우리나라 문화계 엘리트를 양성하고 있는 선화예술고등학교가 바로 통일교 재단에서 세운 곳이다. 특히 우리나라 큰 문화예술 행사, 최근에는 연예계의 각종 시상식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10여년 동안 공을 들여 지상 4층 규모로 1981년에 개관, 오페라하우스 풍의 격조높은 공연장으로 음악, 연극, 발레 등 공연예술 및 만찬회장, 국제회의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리틀엔젤스 회관과 건물 자체가 연결,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과정으로 음악, 미술, 무용 등에 뛰어난 자질을 보이고 있는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선화예술중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는데. 최고의 시설과 교수진으로, 이 학교를 졸업한 이들 중에는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재원들이 많다는 것. 아닌게 아니라 리틀엔젤스들의 다양한 활동들이 학교 구석구석마다 사진으로 전시돼 있었는데. 하지만 외부인에 대한 폐쇄성이 엿보였는데, 재단에 대한 홍보 자료 등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든 세계복음화 언약 속에서, 21세기를 살릴 5가지 기도제목-산업선교, 렘넌트운동, 문화 사역, 엘리트운동, 치유사역-을 붙잡고 있는 우리에게 20여년 전부터 전략화하고 있는 통일교의 앞서감이 놀라울 뿐이다. 엄청난 도전의 현장이기도 한 셈이다. 이밖에 이 지역 주변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국립정신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 아차산 입구의 영화사, 유치원 및 노인복지 시설 규모 엄청나 강동 지역의 영적 흐름의 배경이 되는 아차산 입구에는 오래된 고찰로 알려진 영화사가 자리하고 있다. 신라 시대에 창건, 1907년부터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고, 현재의 사찰 모습은 1997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영화사는 특히 관음기도 도량으로 유명, 더욱이 조선시대 세조가 지병을 치유하기 위해 미륵석불전에 기도하여 성취한 영험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 영화사 위치 자체가 산 밑에 자리하면서, 사람들이 모여사는 주택지에 가까이 자리한 때문인지, 불교 신자이든 아니든간에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불교와 영화사를 소개하는 설법이나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탱화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을 정도였다. 어슴푸레 저녁 시간에는 주변에서 기도를 하기 위해 올라오는 신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웅전 이외에, 108개로 이루어진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게 되면 석불 입상인 미륵부처가 모셔진 미륵전이 나온다. 기도 도량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불교신자들이 이곳 미륵전에서 기도, 정진을 많이 하는데, 미륵전 천일 기도 및 백일 기도가 계속 이어지는 곳이라고 한다. 영화사의 일반 사람들을 위한 중요한 포교활동으로는 입구에 마련한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진 영화사 유치원이다. 인근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치원으로 알려졌다는 것. 또한 일반 사람들을 위해 불교대학이 개설, 또 하나의 복지 전략의 노인들을 위한 복지센터를 한창 건립 중에 있었다. ◆ 성동구 성수동 외국인 산업 현장 우리나라 외국인 근로자들이 군락을 이루는 지역 중의 하나가 성동구 성수동 일대라고 한다. 성수동은 조그만 규모의 공장들이 밀집돼 있는 지역이었다. “이들이 참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복음이 제대로 전해진다면, 최고의 선교가 될 것입니다. 이들 가운데는 그 나라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온 이들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오랫동안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해왔던 송성현 전도사(임마누엘 서울교회)의 말이다. 특히 동남아시아 모슬렘 노동자들이 많아서인지, 이 지역에도 모스크가 자리하고 있다는데. 송 전도사의 안내로 찾아간 모스크는 한 건물 지하에 임시로 마련된 곳이었다. 정시기도 처소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숙식이 불안한 이들의 임시거처이면서 모임의 장소로 역할을 하는 듯 했다. 이불과 옷 따위가 한쪽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던 것. 하지만 얼른 보아도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려운 한국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엿보이는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한국에 온 지 7년, 한국인 남편과 살면서 외국인들을 위한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는 필리핀인 마릴린 씨. 세 아이를 낳아 한국 여자처럼 살고 있다는 마릴린 씨는, 원래 통일교 신자였다가 지금은 천주교 성당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곳 슈퍼는 외국인들의 연락처이면서 고향의 식료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장소였다. 르포 팀의 정현국 목사(수원 임마누엘교회)는 마릴린 씨가 하나님 자녀로써 축복된 삶을 살도록 기도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 불암산(佛巖山), 불암사, 석천암, 천보사, 밑자락에 자리한 태릉과 삼육대학교 불암산은 서울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군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가 508m이다. 불암산이라는 명칭은 큰 바위로 된 봉우리가 마치 송낙을 쓴 부처의 형상이라 하여 붙여졌다. 서쪽으로는 북한산을 마주보고, 북쪽으로는 수락산과 이웃하여 있다. 한나절이면 오르는 산이지만, 산의 형상이 예사롭지 않은 듯 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금강산의 한 부분이었는데 한양의 남산이 되려고 서울의 근교로 걸어왔다가 이미 다른 산이 자리를 잡고 있어 돌아가지 못하고 토라져 등을 뒤로 하고 지금의 위치에 자리했다는 것. 또 하나의 전설에 의하면 북한산은 현재의 임금을 지키는 산이고, 불암산은 돌아가신 임금을 지키는 산이라고 한다. 따라서 불암산 남쪽 아래에 태릉이 있고, 주변에는 동구릉, 광릉 등 많은 왕릉이 있다는 것이다. 불암산이 천보산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신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산이었다고 한다. 부처의 형상과 관련된 산이라서 그런 지, 산 구석구석에는 불암사, 천보사 등 크고 작은 절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불암사는 조선시대부터 유명한 사찰로 이름나 있었으며, 세조가 한양 외부 사방에 왕실의 발전을 기원하는 사찰을 하나씩 뽑을 때 동쪽 사찰로 뽑혀 동불암(東佛巖)이라고 불렸다. 이때 서쪽에서는 진관사, 남쪽에서는 삼막사, 북쪽에서는 승가사가 함께 뽑혔다고 한다. 서울 강북, 동북부를 향해 있는 불암산은, 지금껏 모든 지역의 영적 현장이 그러했듯이, 중요한 영적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곳인 셈이다. 등산은 어느덧 영적 전투 현장르포의 정례 코스가 되었는데, 기도하며 올라가는 불암산 등반 중에는 어김없이 만남들이 있었다. 한 등산객이 잠시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가 하면, 나영이라는 초등학생과 엄마가 영접을 했다. 한편 정상 근처에 자리한 석천암은 조그마한 암자로, 규모는 작지만 바위에 새겨진 불상과, 바위 틈 사이로 흘러내려오는 물이 유명하다. 이곳에는 법명이 성의라는 스님 혼자 수행하는 곳인데, 잠깐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40살 전후반이라고 밝힌 이 스님은, 한 쪽 귀가 안들리는 병을 얻어 굉장히 고통을 겪고 있다는 말을 했는데. 자신의 육신적인 문제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이 스님에게 잠깐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가졌지만, 복음을 종교로 생각하는 보편적인 생각이 복음을 듣는 귀를 닫아버린 듯 했다. 그러면서도 낯선 사람들에게 쌍화차를 대접하면서 “깊은 산사인지라 직접 끓인 쌍화차를 대접받는 것이 쉽지 않은데, 당신들이 복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는 말을 해왔다. ‘복중의 복’을 받은 우리들을 알아보다니…. 우연이든, 아니든 영적인 느낌은 다 하나인 모양이다. 불암산 밑자락에는 유명한 기관들이 많다. 태릉선수촌, 육군사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삼육대학교 등등이다. 이 지역을 보통 일컬어 태릉(泰陵)이라고 부르는데. 태릉은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와 명종을 모신 강릉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또한 바로 이웃해 있는 삼육대학교는 제7일 안식교에서 세운 종합대학교로, 일반인들에게 ‘삼육두유’로 유명한 학교이다. 서울 시내의 다른 학교에서 보기 쉽지 않은 넓은 캠퍼스, 녹지 환경을 갖춘 삼육대학교를 보면서, ‘렘넌트 공동체’를 기도하는 우리에게, 너무나 부러우면서 꼭 성취되어야 할 현장임을 새삼 확인했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이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창6:12) 세상은 발전해간다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 원인과 결과는 어떤 것일까. 6백년 역사의 서울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며, 흑암세력 역시 하루가 다르게 그 힘을 더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우리들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과 그 결과를 알기에 오늘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생명운동의 대열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마라나타! /서울특별시 동북지역=특별취재반 [특별취재반: 정현국 목사, 이은희 · 송성현 · 전갑숙 전도사, 오윤정 · 김경수 기자] |
현 시대 흑암문화 대표하는 이단들의 아지트 지역 1. 서울 동대문에 자리한 동묘의 전경, 중국 등에서 신성불가침의 우상이 된 관우를 제사하는 사당이다. 2. 동대문구 용두동의 선농단, 조선시대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곳이다. 3. 종로구 숭인동 낙산 밑자락에 자리한 관음종 총본산 묘각사에는, 동북부 지역을 바라보는 부처 형상이 세워져 있다. 4. 법화경의 가르침을 받아 중생교화를 하고 있다며, 묘각사에 대해 설명하는 비구승의 모습. 5. 불교 재단에서 세워진 동국대학교 전경. 6. 불교 학교 답게 학교 중앙광장에는 학교의 상징인 부처와 코끼리 동상이 세워져 있다. 7. 서울 광진구에 자리한 통일교 재단의 리틀엔젤스회관, 선화예고 이사장인 박보희 씨가 리틀엔젤스 단원들과 함께 한 기념 사진. 8. 광진구 아차산 자락에 세워진 고찰 영화사의 영화 유치원 전경. 9. 서울 중곡동에 자리한 대순진리회 본부의 모습. 중곡동을 내려다보는 지역에 위치, 일반인들에게는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다. 10. 서울 성수동 외국인근로자들의 모여사는 곳에 슈퍼를 운영하는 마릴린 씨의 모습. 11. 석천암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성의 스님의 모습. 12. 불암산 밑자락에 자리한 고찰 천보사 대웅전 내부의 모습. 13. 서울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군 경계에 있는 불암산, 큰 바위로 된 봉우리가 마치 부처의 형상이라고 한다. 14. 불암산 정상 즈음에 자리한 석천암 전경. 15. 서울 노원구에 자리한 태릉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