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사사 편찬후기
삼성 60년사
사사편찬팀은 1996년 4월 1일 구성되었다.
각사에서 엄선된 7명은 ‘읽히는 사사’를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세 종류의 사사를 내기로 결정했다. 첫째는 정사이다. 통상적 사사이다. 둘째는 사진집이다. 사진의 시간적 배열을 통해서 파노라마를 보듯 60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팁 스토리를 곁들임으로써 흥미를 유발하고자 했다. 셋째는 CD 롬 타이틀이다. 정사와 사진집의 내용을 다 넣었다.
이 책은 제1권과 제2권으로 나누었다. 제1권은 10년 전에 발간된 ‘삼성50년사’를 축약하면서 내용의 일부를 보충했다. 이 일은 소설가 장형규 선생이 수고했다. 제2권은 이건희 회장 시대부터의 역사이다. 제2창업 5년과 신경영 5년, 모두 10년의 역사이다. 이 시대는 신경영의 물결이 도도히 흐른 신경영의 시대였다. 이 부분은 아주대 조영호 교수가 집필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문건 상무와 류한호 부장, 육현표 차장, 승근녕 과장, 그리고 인사팀의 조윤영 이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신경영이 제대로 표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초창기 시절의 이야기와 자료에 대해 조언해준 성우회 신훈철 회장 이하 회원들에게 감사드린다. 전체 문장을 훑어봐준 중앙일보 정규웅 논설위원에게도 감사드린다. 마무리를 보진 못했지만 깊은 관심을 보여준 에스원의 엄주혁 이사, 제일기획의 강진기 부장에게도 감사드린다.
편집회사 비파의 채희문 사장, 삼성인쇄의 채대기 상무, 황동식 스튜디오 대표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삼성60년사’는 한국경제사, 한국기업사, 한국산업사에 다름 아니라는 책임감이 내내 중압감이 되긴 했지만, 이번 기회에 수집한 자료와 사진들을 모두 70년사, 100년사를 편찬할 이들에게 고스란히 바칠 수 있는 것을 큰 보람으로 간직할 수 있어 우리 모두는 행복했다.
1998년 3월 삼성 60년사 편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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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50년사 - 도전 50 도약 50
그룹 차원에서 처음 시도된 기업사 편찬작업은 논의의 출발부터 지난 반세기의 역정 정리만이 아니라 향후 50년도 조망해야 하는 두 가지의 필요충분조건의 과제를 안고 시작되었다.
1994년 실무팀을 가동, 편찬작업을 본격화한 후 사사 발간을 마무리하기까지는 3년 반이라는 기간이 소요되었다. 실로 역사서 편찬의 어려움을 실감한 시간이었으며, 무엇보다도 LG 임직원이 기업의 뿌리를 함께 인식하고, 새로운 경영가치를 공유해 나갈 수 있는 에너지의 집약에 집중된 기간이었다.
특히 LG의 기업사 편찬이 무한경쟁시대로 요약되는 21세기를 앞두고 이루어져 그 의미를 새롭게 하고 있다. 한 세기를 매듭짓고 새로운 시대를 구상하기 위한 작업으로서 사사편찬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편찬목표에 충실하기 위해 제호도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아 ‘도전 50년, 도약 50년’으로 정하고, 부제로 ‘LG 50년사’를 사용했다.
「LG 50년사」는 기업의 역사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가감없는 리얼리티의 확보에 주력했다. 이같은 기술태도를 견지함으로써 과거의 발자취를 명확히 하는 동시에 미래경영에 관해서도 예측가능한 경영자료가 되도록 노력했다. 역사의 경험을 통해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안으로는 LG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밖으로는 우리 사회와 세계에 대해 기업이 해야 할 역할과 기여를 조명할 수 있는 기업문화의 지표로서 그 가치를 담고자 했다. LG의 기업문화는 경영성과에 못지 않은 무형의 경영자산이기 때문이다. 특히 LG 50년의 역사는 기업의 공익성을 최고의 경영가치로 구현해온 창업정신과 기업이념, 경영철학이 LG의 기업문화를 성숙시킨 기반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제작형태에 있어서는 읽히는 사사, 활용되는 사사, 새로운 사사편찬을 지향하여 경영규모에서 오는 방대한 분량을 압축 표현하고자 연혁 중심의 성장사편과 화보편을 별책화, 2권으로 발간했다. 연혁편 서술은 백화점식 나열을 탈피해 경영사적 의미의 발견에 집중했으며, 화보집은 경영사의 시각적 표현에 중저믈 두었다. 또 미디어의 발달을 수용하기 위해 별도로 CD롬을 제작, 사사편찬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한국산업 50년을 돌아보면 기업의 부침사라고 할 만큼 수많은 기업들이 생성했다가 흔적도 없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갔음을 읽게 하고 있다. 「LG 50년사」는 단순한 LG만의 성장궤적을 정리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재계사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경제의 부침과 대응과정을 정리함으로써 우리 재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끝으로 「LG 50년사」에는 바쁜 업무 중에서도 각종 자료제공 및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임직원 여러분의 도움과 실무 담당자의 땀이 배어 있음을 밝힌다. 특히 정성을 다해 집필에 참여해주신 분의 노고 또한 컸다. 이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1997. 9 「LG 50년사」편찬위원장 회장실 사장 이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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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 90년사
창립 90주년이 되는 1988년 6월 발간을 목표로 가칭 「두산그룹 90년사」를 편찬키로 한 것은 1985년 6월이었다. 이 결정에 따라, 창업 이래 그룹의 성장과정을 담은 ‘그룹 통사’와 계열사의 성장사를 한 데 엮은 ‘그룹 계열사사’를 발행하고, 그룹 통사는 외부 작가가, 그룹 계열사는 사내에서 집필한다는 사사편찬의 기본 방향이 수립되었다.
1985년 8월에는 이러한 기획안을 토대로 각 사 대표이사를 위원으로 하는 편찬위원회와 각 사 담당 중역을 위원으로 하는 실무위원회가 조직되었고, 그룹 통사의 자료수집과 각 계열사사의 원고 감수 및 제작 일체를 총괄 진행할 그룹사사 편찬실이 조직되었다. 아울러 각 사에서는 자료수집과 원고 집필을 담당할 전담자와, 전담자의 집필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해 줄 전담부서장으로 사사편찬팀을 구성했다. 이와 같이 계열사사를 20여 명의 아마추어 사가(史家)들이 동시 집필하고 이를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발행한다는 기획은 국내 사사 발간 사상 유례없는 일이었고, 그만큼 위험부담이 큰 것이었다.
1985년 9월부터 연표작성이 시작되었다. 그룹 전산팀의 일원이었던 그룹자재 코드팀은 이 연표를 시대순별․경영 항목별․사업 분야별로 분류 가능케 함은 물론, 각 사의 터미널을 이용해 필요시에는 언제든지 수정․등록․출력이 가능하도록 프로그래밍하여 사사 작업 진행에 큰 도움을 주었다.
연표 작성에 이러 자료카드가 작성되었고, 이를 1986년 1월에 1차로 사사편찬실로 수합,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알맹이 없는 자료가 태반이었다. 역사가 오래된 회사는 6.25와 4.19를 거치면서, 나머지 회사는 수해 등의 천재지변으로 많은 자료가 망실되었으며, 또한 각 사 공히 문서이관 등을 거치면서 사사에 필요한 자료가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인터뷰였다. 창업 이후 각 사에 근무한 구 사우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음은 다행이었다. 이들은 체험담뿐만 아니라 업무용 수첩․사령장․사진․판촉물 등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자료 부족을 메워주고 본 사사의 흐름을 바로잡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어 가목차 작성을 시작한 것은 1986년 4월이었다. 가목차 작성시 주안점은 경영․영업․생산․조직․재무 등의 경영 분야별 서술을 지양하고 회사의 총체적인 모습이 드러나게끔 흐름을 잡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대를 경험하지 못한 사사 전담자들이 그나마 부족한 자료 중에서 자료를 취사선택하여 역사의 줄거리를 엮는다는 것은 힘겨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4개월여에 걸친 가목차 작업 끝에 1986년 8월부터 초고 작성에 들어갔다. 사사편찬실은 이미 초고작성에 대비, 산돌 타이포그래픽스에 사사의 기본체제 구성을 의뢰하는 한편, 동아출판사 전산 조판실의 자문을 받아 새 원고지를 제작, 전담자들에게 배포했다. 이후 PC 이용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한 사사편찬실은 동아전산 조판실과 협의, PC 이용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따라 모든 초고는 PC로 작성되었다.
그러나 가목차 작업에 들인 공에 비해 각 사가 제출한 초고는 자료의 부족과 사료 판단의 미숙 등으로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거나 반복된 부분이 많았다. 초고에 대한 사사편찬실의 분석을 토대로 목차 및 내용에 대한 수정작업이 진행되었다. 사사편찬실은 수정 및 보완 사항을 담은 원고 분석안을, 전담자는 이에 따른 새로운 원고를 계속 작성해야 했다.
전담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능력의 한계를 절감케 하는 집필작업의 어려움으로, 사사편찬실은 끝없이 반복되는 원고의 검토로 탈진상태에 빠진 듯했다. 이는 업무 진행에도 영향을 주어 당초의 계획보다 일정이 다소 늦어졌다.
분위기 일신을 위해 1987년 2월, 강원도 낙산에서 실시한 6박7일간의 합숙과정은 모든 사사 담당자들에게 청량제 역할을 했다. 심리적인 안정 외에 타사의 원고를 돌려읽음으로써 각자 자신의 취약점을 발견하고 보완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소득이었다.
1987년 10월, 일부 회사가 확정고를 제출하기 시작했고 이해 연말에는 대부분의 회사가 흐름을 제대로 잡은 원고를 탈고하였다. 연표 작성 이후 2년여 만의 일이었다. 그간 각 사마다 평균 10여 회의 개고(원고수정)가 이루어졌고 작성한 원고만도 십수만 페이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확정원고에서도 원고 회람을 통한 검증 작업을 거쳐야 했다. 두 회사 이상에 연관된 동일 사항의 서술이 다르고 용어의 불일치 등이 발견된 것이다. 확정원고의 회람과 함께 사진 원고 수집과 원고 집필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동양맥주 서울공장에 위치한 사사편찬실과 각 사를 오가며 숨바꼭질하던 원고가 동아인쇄에서 1차 교정쇄로 나온 것은 1988년 4월의 일이었다. 그러나 교정을 보는 단계에서도 상호의 변경, 신규사업의 추가, 타 회사로의 합병 등 만부득이한 수정사항이 발생하여 제작 담당자들을 애먹였다. 더욱이 20여 개사 각각의 사사에 독립성을 부여하는 한편, 상․하권으로 발행해야 했기 때문에 목차 구성․화보편 구성․페이지 작업 등에도 어느 책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무리한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준 산돌 타이프그래픽스와 동아인쇄 담당자, 그리고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그룹 사보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흔히 책자의 발간을 산고(産苦)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사사 발간까지 3년여의 기간은 사사 담당자들에게 외롭고도 지루한 시간이었다. 특히 자료수집․원고 집필․원고 검증 일체를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몇 전담자는 회사를 떠나기도 했고, 일부는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사사편찬실은 계열사가 각사 나름의 특징과 아울러 그룹 공통의 통일성을 갖추도록 하고자 전담자 전원이 참석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학계 인사 및 그룹내 임원의 강연을 듣는 전담자 회의를 25차례 개최했다.
박승직상점의 결산서와 거래처 명부, 창업주의 자필기록 등 70여 년 전의 자료가 손상없이 보존돼왔다는 것 또한 사사 편찬에 있어 큰 행운이었다. 이 자료들로 인해 그룹의 창업연대가 당초의 1898년에서 2년 앞당겨진 1896년으로 확정됐다는 것을 밝혀둔다. 자료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본보기가 되리라 믿는다. 아울러 본 사사와, 사사 발간을 위해 수집한 2만5천여 건의 자료카드가 그룹 100년사 및 150년사의 기초자료로서 재활용되어 본 책자의 미흡함을 덜어 주었으면 한다.
끝으로 책 발간을 못보고 유명을 달리 한 고 엄기병 사우의 명목을 빈다.
1989년 2월 사사편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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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백년사
우리나라의 근대기업사는 산업화 후발국으로서 선진국에 비할 때 일천하나, 역사적 부침이 극심했던 우리의 지난 1세기의 역경 속에서 한 기업이 창업 100주년을 맞았다는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두산은 이를 사실대로 알리고 자료로 남기기 위해 ‘두산 100년’의 역사를 알기 쉽게 축약해서 책으로 만들기로 하고 지난 1994년부터 이 작업을 시작해서 2년여에 걸쳐 마치게 되었다.
이미 지난 1987년 ‘두산 90년사’가 자료중심의 방대한 정사로 발간되었기 때문에 이번 100년사의 체제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가는 두산의 제2창업 의지에 부응하여 기획되었으며,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료들을 발굴하여 새로운 내용과 사진 등을 대폭 추가하되 쉽게 널리 읽힐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또한 이번에는 새로운 시도로 두산 100년 가운데 핵심적인 사건들만 쉽게 연결하도록 노력했으며, 분량도 읽는 데 부담감이 없도록 대폭 줄이는 데 힘썼다.
이밖에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거나 오도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부 극적인 사실들에 대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논픽션이지만 소설적 형식을 가미한 점도 기존의 틀을 깬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나름대로 의미있는 사실들이 중요도의 우선순위에서 밀려 간략하게 다루어지거나 생략될 수밖에 없었던 점, 그룹의 사업영역과 경영규모가 비약적으로 확대된 80년대 이후의 일부 내용이 구성상의 한계에 부딪혀 극적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 감이 없지 않은 것 등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러한 어려움과 아쉬움은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수정․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기업 100년을 기념하고 후세를 위한 기록으로 남긴 이 조그만 책이 널리 읽혀져 두산의 이름과 한국근대기업 100년의 역사가 더욱 빛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그 동안 원고집필을 총괄해주신 소설가 김주성 교수의 협조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두산 관계사 임직원 여러분,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사료와 각종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모든 노력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두산동아 편집진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1996년 12월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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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50년사
그야말로 눈코뜰새 없는 2년이었다.
지난 1993년 4월 실무팀이 작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기존의 45년사가 있으니 그 말미에 5년치만 추가하면 되겠지 하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일이 흐르면서 실무팀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45년사에서 불 수 없었던 새로운 사료들이 쌓이고, 반세기 기아사의 결정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감이 실무팀의 가슴을 옥죄었다.
벅찬 작업량도 힘겨웠지만, 50년사는 기존의 45년사보다 더 완벽하고 더 훌륭해야 한다는 정신적 부담은 차라리 45년사가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하였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50주년 기념 화보집까지 겹쳐 실무팀의 작업은 밤낮을 가릴 겨를이 없었다. 20개월 동안에 무려 2백자원고지로 1만 5천 장이 넘는 원고와 각종 자료, 1만점에 이르는 사진과 씨름을 해야 했다.
1994년 세밑에 이르러 작업의 대미를 거두고 총 1,056쪽의 「기아 50년사」를 펴내게 되었다.
마침내 큰일을 해냈다는 자부심과 함께 보람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아쉬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반세기의 발자취를 가능한한 빠짐없이, 정확하게 수록하고자 했으나 미흡한 점이 없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능력이 의욕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점 많은 해량 있기를 기대한다.
그동안 실무팀의 작업에 직접 간접으로 협조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1994년 12월 사사편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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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 50년사 (이 책을 모든 금호인에게 바치며)
2년여의 산고 끝에 드디어 「금호 50년사」가 빛을 보게 되니, 실무진 일동은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다.
1993년 4월 회장부속실에서 사사 편찬사업 전담팀이 발족되었으나, 기본자료 수집과 인원 보강, 가목차 작업 등을 거쳐 본격적인 작업 채비가 갖춰진 것은 1994년 6월이었다.
그러나 출판 역량이 없는 가운데 2년이 채 못되는 기간 동안 「금호 50년사」와 창업회장님의 전기, 「금호 50년사 화보집」 3종의 집필․편집․제작을 완료해야 한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중압이었다.
더욱이 기계에 재료를 넣으면 제품이 나오듯 자료를 모아 집필자에게 넘겨주기만 하면 사사가 씌어져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착오였음이 드러나면서, 1955년 초부터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시피 작업방식을 재조정해야 했다.
계열사는 물론 신문사와 관공서 자료실의 먼지더미를 뒤져 수만 건의 사료를 수집했으며, 취약부분의 보강을 위해 500여 회에 이르는 전현직 임직원 인터뷰를 실시했다. 그것을 토대로 10여 개월 동안 무려 200자 원고지 1만5천장 상당의 초고가 편찬팀 내부에서 작성되었으며, 다시 팀장과 집필자가 참석하여 초고의 문제점을 낱낱이 재검토하는 12, 13시간씩의 마라톤회의를 50여 회 이상 가졌다. 그야말로 밤낮이 따로 없는 강행군을 거쳐, 1996년 1월초 비로소 200자 원고지 6천5백장 상당의 사사 가제본이 이루어졌다.
돌아보면 2년여의 편찬 기간 동안 우리는 그룹의 50년 역정을 한꺼번에 치르고 지나온 느낌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은근한 자긍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50년의 우여곡절이 책 한 권에 온전히 축약되기란 어려운 것이며, 따라서 보는 각도에 따라 미비한 점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진한 부분은 「금호 100년사」의 영광을 완성시켜나갈 후배들이 장차 메꾸어줄 것으로 믿는다. 다만 이 50년사가 ‘금호그룹 역사의 원형’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금호 50년사가 무사히 완성되기까지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최고 경영진과 기념사업 추진위원, 바쁘신 가운데도 흔쾌히 자료요청과 인터뷰에 응해주신 전현직 사우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집필자를 비롯하여 편집․제작상의 노를 마다하지 않으신 많은 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금호그룹 반세기의 자랑스런 역사를 일구어낸 전 금호인에게 오늘의 기쁨과 공로를 돌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1996년 4월 사사편찬팀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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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그룹 40년사
역사란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파악되어지는 동태적 개념이다. 회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사사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동태적 개념이다. 따라서 사사는 기업의 과거 기록 차원에서 벗어나 현재의 자리매김,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의 발전을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동양그룹 40년사」는 바로 이러한 역사의 동태적 개념에 입각하여 만들어졌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과거 30년사에서 다룬 부분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재조명하여 약술하는 동시에 최근 10년간의 발자취를 첨가하여 현재 우리 그룹의 위상을 살펴보았으며, 이에 바탕하여 다가오는 21세기 미래 비전까지 제시해 보았다.
「동양그룹 40년사」는 전문화된 현대사회의 조류에 맞추어 그 현황과 미래를 살펴봄에 있어 복잡한 기업체계를 전문화된 부문별로 나누어 살펴봄으로써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보다 유용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사사가 되고자 했다.
또한 단순한 기업사의 나열이나 대외과시용으로의 편중된 사사가 아닌 미래 발전의 도약대, 그리고 경영지침서로서 활용될 수 있는 사사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 그 내용 면에서 형평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방대한 조직체계를 서술함에 있어서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과 사료의 유실 등으로 인한 미비점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지난 40년간 동양인들이 보여준 땀과 웃음, 그리고 눈물 등을 다 담기에 이 책은 너무나 작았다. 허나 이러한 미비점과 아쉬움들은 앞으로의 지속적인 사사작업을 통해 충분히 보완되리라 믿으며, 후배들의 못으로 남긴다.
이제 산고의 아픔 이후의 기쁨, 보람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지난 40년간 동양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
바쁜 중에도 원고집필 및 자료요청에 협조를 아끼지 않은 각 계열사 편찬위원 및 실무위원들께 감사드리며, 원고집필을 맡아 주신 최성각 선생님, 꼼꼼한 교열을 봐주신 심애니 선생님, 그리고 좀더 나은 책을 만들기 위한 편찬실의 욕심에 따른 무리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 제작을 위한 편집에 심혈을 기울여 주신 비파의 채희문 사장님 이하 직원분들과 삼성인쇄주식회사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끝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동양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을 동양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1997년 6월 사사편찬팀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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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 40년사
1957년 합섬사업을 시작으로, 한국 경제발전에 주춧돌 역할을 해온 코오롱이 1997년 창업 40주년을 맞아 사사편찬작업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마침내 「코오롱 40년사」를 발간하게 되었다.
「코오롱 40년사」 편찬작업은 1997년 1월, 사사편찬조직의 구성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1997년 6월 사옥이전과 더불어 과천 코오롱타워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지난 1977년 20년사가 제작된 후 20년 간의 공백을 깨고 시작한 이번 사사편찬 작업은 시작에 앞서, 시사편찬위원회에서 오랜 시간의 숙의를 거쳐 ‘창업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성장 발자취를 회고함으로써 오늘의 코오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도약의 미래상을 정립한다’는 편찬의 기본방향을 정했다. 이러한 편찬방향에 입각하여 우리는 「코오롱 40년사」를 크게 서편, 연혁편, 부문편, 현황편 및 부록으로 구성하고 사료로서 가치가 있는 사사, 화보를 통한 시각적 효과에 초점을 둔 사사, 미래 경영지침서로서의 활용도가 높은 사사, 나아가 한국의 화섬산업 발달 및 21세기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특히, 기존 사사의 형식을 탈피하여 2단 편집디자인과 하단부에 요약을 곁들이는 등 감각적이고 화려한 편집 및 디자인을 시도하였으며, 이는 앞으로 만들어질 사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사사를 펴내는 과정에서 지방 사업장 등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던 각종 자료를 수집하면서 의외로 보존되어 있지 않은 사료가 많아 노심초사하기도 했지만,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료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방대한 조직체계를 서술함에 있어서 제한된 여건과 한계 등으로 미비점도 많으리라고 생각된다. 허나, 이러한 미비점과 아쉬움들은 다음에 만들어질 50년사에서 충분히 보완되리라 믿으며, 금번의 40년사가 앞으로 발간될 사사들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불혹의 역사를 남긴다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편찬된 「코오롱 40년사」가 모든 코오롱 가족과 고객 여러분께 지난 40년간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계기가 되고, 코오롱의 미래상을 정립하는 데 다소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사사가 나오기까지 많은 관심과 도움을 주신 코오롱 가족과 바쁘신 가운데에도 인터뷰에 응해 주시고, 귀중한 사료를 제공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린다.
1998년 4월 12일 사사편찬위원회 간사 이사 장 원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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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그룹 50년사
기업은 이 세상과 스스로의 삶을 더불어 풍요롭게 만들어 나가고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따라서 기업의 역사는 사람의 역사이다. 「아그룹 50년사」는 동아그룹을 만들기 위해 땀과 정성을 쏟은 모든 사람의 기록으로 만들고자 방향을 정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70년대 이전의 기록이 전무하여 이를 정확하게 복원하는 일이 불가능했으며, 체제상의 형평성 유지 때문에 그 다음 시대의 기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또한 그룹사가 지닌 범위의 광대성 때문에 구체적인 사실과 인물들의 활약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고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공사 및 사건들만 추출하여 기술하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같은 점은 장차 계열기업사들의 개별적인 사사를 통하여 보완 극복되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 동아그룹의 기업집단 구성상 특징 때문에 50년 역사의 흐름을 동아건설 중심으로 엮게 된 것도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 계열기업의 역사가 충분하게 천착되지 못한 결함이 있으나 이 역시 개별기업사의 정리를 통하여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50년사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최근 1995년 7월까지의 사실을 수록코자 욕심을 내는 바람에 제작에 큰 무리가 있었다. 이같은 무리를 무릅쓰고 심혈을 기울여 제작에 임해 주신 비파와 삼화인쇄의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1995년 8월 20일 사사편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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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60년사
무릇 60년이란 햇수는 어찌보면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미 어느 부분은 빛이 바래져 희미해지고 또 어떤 부분은 아예 지워져버려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유난히 우리 기업의 역정에 풍상풍우가 심했었기 때문일 터이다. 처음 「대림 60년사」 자료 발굴에 나선 편찬팀은 어디서부터 삽질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초창기 사업의 터전을 일군 이들 중 거개는 타계했거나 생존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기억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60년이란 기간은 짧으면서도 긴 세월이었다.
통사적 방법으로 대림의 성장과정을 구분하여 기술하면서 어느 한 개인이나 기업이나 간에 결국은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민족과 그 부침을 함께 하며 나라의 성장 발전에 따라 궤적을 같이함을 볼 수 있었다. 나라가 잘 되어야 백성이 잘 살고 기업이 번영하고 개인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진리였다. 대림은 창업 초기부터 오직 근면의 땀과 성실한 노력으로 항상 나라와 겨레를 위한 일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보다 더 큰 보람과 기쁨이 있겠는가.
당초 대림으로서는 60년 만에 처음 갖는 기록인 만큼 1․2권 분량으로 설계하여 집필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림 60년사」야말로 한국 경제사, 나아가 한국 건설사의 흐름에 다름 아니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앞으로 있을 ‘대림 100년사’ 편찬의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혀 1권으로 남게 된 아쉬움이 남지만 그동안 편찬과정에서 여러 모로 도움을 베풀어주신 많은 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로 추억될 것이다.
아래에 대림을 퇴직하신 가운데에서 직접 자료를 챙겨 주셨거나 도움말을 주신 이들의 성함을 명기해 둠으로써 그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한다. (원동은)
1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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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 80년사 / 두루 읽히고 널리 활용되는 사사로
삼양 50년사, 삼양 60년사, 삼양 70년사에 이어 삼양 80년사를 편찬했습니다.
〈삼양 80년사〉는 앞서의 사사와 달리 그룹사 형태의 편찬체제를 갖추어 지난 80년의 정확한 기록뿐 아니라 역사서의 교훈도 함께 조명한다는 데 가치를 두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2002년 실무팀을 가동시켜 사사 발간을 마무리하기까지는 2년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역사서 편찬의 어려움을 실감한 시간이었지만, 작업을 하는 동안 우리 삼양의 뿌리를 확인하고 수당 선생의 창업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삼양 80년사〉는 기업의 역사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가감 없는 리얼리티 확보에 주력했습니다. 이같은 기술태도를 견지함으로써 과거에 걸어온 발자취를 명확하게 하는 동시에 미래경영에 관해서도 예측 가능한 경영자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또한 안으로는 삼양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밖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역할을 조명할 수 있는 기업문화의 지표를 담고자 했습니다.
제작 형태에서는 읽히는 사사, 활용되는 사사를 지향하여 본문편과 화보, 부록편을 나누어 2권 체제로 구성했습니다. 80년이란 연륜과 사업영역에서 오는 방대한 분량을 압축 표현하고자 시대별로 사업분야의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서술은 나열 중심에서 탈피하여 경영면에서의 의미 발견에 역점을 두었으며, 성취의 역사뿐 아니라 과오나 실수에도 접근하여 반면교사로 삼고자 했습니다. 또 단순한 삼양의 성장궤적 정리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 경제의 부침과도 함께 살펴 시대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끝으로 〈삼양 80년사〉 집필을 해주신 이관순 교수님의 노고를 치하드리며, 바쁜 업무 중에서도 각종 자료의 제공과 생생한 증언을 아끼지 않으신 전현직 임직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이 책에는 실무 담당자들의 수고와 땀이 배어 있음을 밝히며 실무작업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삼양 80년사 편찬위원장 박종헌
20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