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33.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17zKS%26fldid%3D7k13%26dataid%3D1%26fileid%3D1%26regdt%3D20061228212047%26disk%3D43%26grpcode%3Dgallerybresson%26dncnt%3DN%26.jpg)
김관대 , One Night , 2002.
그녀의 가슴 속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한 이미지가 새겨졌다. 그 이미지에 대해 생각할 때면 그녀는 한편으로 수치심에 얼굴을 붉힘과 동시에 또 한편으로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그녀의 의식 속에는 앞으로 다가올 굴욕의 시간에 대한 인식이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스스로를 연민의 대상으로 간주하면서 1인 2역의 삶을 살았다. 그녀의 빈정거림은 깊은 경멸감을 드러낸 것이었다. 매춘부라는 겉모습을 가진 사랑의 천사는 육체의 역할, 즉 영혼의 면전에서 몸뚱이에 의해 행해지는 파렴치하고 증오스러운 역할에 대해 경멸감을 느꼈다. 그녀는 관객인 동시에 배우였고 재판관인 동시에 피고였다. 그녀는 <아라비안나이트>의 경이성을 이해했다. 이들 이야기에는 거의 언제나 타락한 겉모습 뒤에 숭고한 존재가 감추어져 있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존재의 상징이 되는 인물인 네부샤드네자르는 책 중의 책인 성경에도 나와 있다.
- 발자크, '고급 매춘부의 영화와 비참', '인간희극'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34.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17zKS%26fldid%3D7k13%26dataid%3D1%26fileid%3D2%26regdt%3D20061228212047%26disk%3D34%26grpcode%3Dgallerybresson%26dncnt%3DN%26.jpg)
정영혁, The Couple, 2003
거세 콤플렉스의 지배를 받기 전부터, 즉 어린 아이가 아직도 여자를 결여된 존재가 아니라 완전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을 때부터, 어린 아이는 보고자 하는 매우 강렬한 욕망을 드러낸다. 이것은 본능적인 성적 행동의 하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성기를 보기를 원한다. 처음에는 아마 자기 것과 비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린 아이는 어머니에게서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까닭에 어머니의 성기를 원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어머니의 성기가 남근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후에 그는 여자에게는 남근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신이 어머니의 남근을 간절히 원했다는 사실 때문에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즉 어린 아이는 여자를 혐오하게 되고 사춘기에 이르면 성불구나 여성 혐오증을 나타내기도 한다. 더러는 평생 동안 동성애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때 여자의 남근을 강렬히 원했다는 사실은 어린 아이의 정신에 지울 수 없는 자취를 남겨 놓는다. 여자의 발과 신발에 대한 물신적 숭배는 바로 남자가 여자의 발을 존재하지 않는 남근, 즉 한 때는 숭배했으나 결국에는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하는 여자의 남근을 대체하는 상징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즉 머릿단을 자르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성의 성기를 거세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 프로이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그의 어린 시절의 추억'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35.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17zKS%26fldid%3D7k13%26dataid%3D1%26fileid%3D3%26regdt%3D20061228212047%26disk%3D34%26grpcode%3Dgallerybresson%26dncnt%3DN%26.jpg)
이용훈, 순애보, 2001-2004
당신의 세계와는 다른 어떤 세계의 형태가 조화로움을 가진 나의 이브는 어쩌면 당신에게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환기시켰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문명화된 개념으로서는 이브는 당신과, 또 우리 모두에게 여자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당신은 내 화실에서 태고의 이브를 보고 기겁을 하였지요.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 미소가 그렇게 쓰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올 지도 모릅니다. 퀴베이르도 또한 어떤 식물학자들도 다시는 발견할 수 없는 그 세계는 낙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낙원의 희미한 윤곽밖에는 스케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스케치와 꿈의 실현 사이의 간격을 얼마나 큰지! 그렇지만 상관없습니다. 행복을 한 번 얼핏 엿보기만이라도 하는 것. 그것은 이미 열반을 미리 맛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그린 이브는(그리고 그녀만이) 논리적으로 우리들의 눈앞에 나체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브는 이렇게 소박한 생태로는 결코 수치감 없이 떳떳이 걸어다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이브는 죄악과 고통의 상징이 되기에는 너무 아름답습니다.
- 폴 고갱, 1895년 2월 5일 스트리드베리에게 보낸 편지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ds36.cafe.daum.net%2Fdownload.php%3Fgrpid%3D17zKS%26fldid%3D7k13%26dataid%3D1%26fileid%3D4%26regdt%3D20061228212047%26disk%3D10%26grpcode%3Dgallerybresson%26dncnt%3DN%26.jpg)
임안나, 밤 11시 49분이다, 2004
에로티스즘에 관한 작품은 모두 남녀 게임의 파트너가 각기 정상 상태에 있는 폐쇄된 존재의 타파를 원칙으로 삼는다. 결정적인 행동은 벌거벗기는 것이다. 나체는 폐쇄된 상태, 다시 말해 단절된 존재 상태와는 정반대되는 상태다. 나체가 되면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다. 나체는 폐쇄된 자신의 존재를 넘어 존재에 가능한 연속성을 탐구한다. 우리에게 음란한 느낌을 주는 이 비밀스런 길때문에 육체는 연속성에 열려 있다. 외설은 그들 자신을 소유하고 있는 육체의 상태, 지속적이며 긍정적인 신분의 소유 등을 어지럽히는 문제다.
- 조르쥬 바타이유, '에로티시즘'
김남진 엮음, 몸이 내게 말하다, 눈빛,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