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 예)[등산/산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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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고봉 엘브러즈 (러시아 5,642m ) 등반기
- 박 강덕 -
8/10 (금)
전일 오후근무를 마치고 집에 와서 (23:30) 마지막으로 짐 확인 후 잠깐 눈을 붙이고 03:30경 일어나 짐을 챙겨 들고 집사람의 배웅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콜택시로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 04:30발 인천공항 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요즘은 일기도 불순하고 작년 얼꾸낭산 등반 때 울산서 비행기로 출발하려다 김포공항의 안개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되어 마음 졸이던 생각에 이번에는 아예 시외버스로 인천공항까지 가기로 했다. (울산 - 인천공항 간 시외버스는 하루에 상 하행 각 6번씩 있으며 우등버스로써 요금은 39,500원이고 심야할증은 없다) 울산에서 출발할 때의 좋았던 날씨가 중부지방으로 오면서 잔뜩 찌푸려지더니 결국 인천공항 다 와서 한바탕 비가 쏟아지더니 이내 거친다. 인천공항 도착 (9:30) 후 집결 장소인 “H" 카운터 앞에 도착하니 시간이 일러 아직 우리팀이 아무도 없다. (집결 약속 시간 10:50분) 공항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자니 10:00 경부터 우리 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 두명씩 나타난다 (여행사 로고가 찍힌 카고백을 보고 우리팀 인지 안다) 곧이어 혜초 여행사의 가이드 (심 명기 차장)가 도착하고 우리팀 13명+1명 (심 명기 차장) 이 전부 집결. 둥글게 모여 간단한 인사와 자기소개를 한다. 이번 혜초 여행사의 엘브러즈 등반 팀 13명 정말 면면이 화려하다. 먼저 부산에서 올라온 ”숭악회“ (산을 사랑하는 부산지역 교사들의 모임) 4명- 몇년전 은퇴한 교장선생님인 고문님 (67세)외 50대 교장, 교감선생님 3명인데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종주했고 해외트레및 원정이 벌써 9번째란다. 다음 서울의 ”실다비“ 산악회 4명- 회장님(56세)과 30-40대 회원 3명, 회장님은 나이가 40대 후반 정도로 젊게 보이고 무슨 회사의 전무이사란다. 이 양반 역시 해외등반및 트래킹 경험이 많다. 다음 역시 서울의 ”7급“ 산악회- 고문 (40대 후반)과 20대 후반회원 1명 (우리 팀에서 제일 막내다)인데 이 고문님 역시 알프스의 마터호른 등 해외등반 경험이 많다. 덩치가 크고 근육이 발달한 반면 뱃살도 많은 스타일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참가한 사람으로 부산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치과의사 (68세) 우리 팀 최고령자로써 경남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치의대에 입학한 59년부터 산악활동을 했단다. 그러니까 내가 태어난 59년부터 산악활동을 했다니 그저 놀랄수 밖에. 아들도 치과의사로 병원을 아들에게 맡기고 오셨단다. 또 청주에서 혼자 올라온 아저씨(50세)- 무슨 건강보조 식품회사 사장이란다. 그리고 나, 이렇게 13명의 등반 팀이 모였다. 학력과 짬밥, 등반경력까지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드림팀이다 (나만 빼고). 곧이어 탑승 수속을 밟고 짐을 부친다. 항공규정상 1인당 부칠 수 있는 수화물의 무게가 20kg으로 한정 되어 있는 걸로 알고 또한 여행사에서 보내준 안내문에도 20kg을 초과할 경우 오버차지를 물게 되어 있다고해서 집에서 체중계에 20kg을 딱 맞춰서 왔는데 우리 여행사 가이드(심 차장) 말이 여기서 가져가야 되는 식량 등 준비물이 많아서 개인당 30kg으로 비행기표를 계약했단다. 즉 14명이니까 총 수화물의 무게가 (14명X30kg) 420kg 미만이면 O.K다. 우리 수화물의 총 무게가 300여kg 이니까 넉넉하게 통과다. (내 카고백은 부치면서 무게를 재어보니 20.2kg 이었다. 그리고 비행기 안으로 들고 들어 갈 수 있는 짐의 무게는 12kg ? 미만으로 알고 있다). 비행기에 탑승하기전 환전은 400불(379,100원)만 했다. 드디어 비행기 (SU 600)가 인천공항을 출발한다. (12:50) 이 Aero Flot (러시아 국영항공) 정말 후지다. 좌석번호가 등받이 뒤에 붙어있어 사람을 헷갈리게 하고 비행기 자체가 낡았고 음악시설이나 영화를 볼수있는 모니터 같은것도 없다. 그러니까 비행기 안 중앙 부분에 아무것도 없어서 훤하다. 여자 승무원들도 모두 아줌마들이다. 기내방송은 러시아어, 영어, 한국어 3가지를 하는데 한국말 발음이 완전 코시안 (Korean + Russian)발음이라 거의 못 알아듣는다. 승객의 90% 이상이 한국 사람이고 러시아 승객은 10% 미만인데도 한국 사람을 위한 서비스는 ”ㅈ“도 없다. 이런 비행기를 타고 9시간 이상 가야 한다(ㅆㅂㅆㅂ) 한 가지 좋은점은 앞뒤 좌석 간격이 우리 국적기 보다 쬐금 넓은 것 같다(한 2-3Cm 정도? 아무래도 러시아덩치들이 탈려면) 이런 불편과 불친절을 무릅쓰고 이 비행기가 만석에 가까운 이유는 단 하나 ”가격“ 때문이다. 싼 가격 때문에 유럽으로 가는 환승객들도 많다. (초중고 학생들과 40대 아줌마들이 환승객의 주종을 이룬다) 두번의 기내 식사와 자다깨다를 반복하는 지루한 비행 끝에 드디어 모스코바에 도착했다. (17:00-이하 러시아 시간- 우리나라와 러시아는 원래 6시간의 시차이나 러시아가 지금 썸머 타임 기간이라 5시간의 시차가 남. 그러니까 비행시간은 9시간 20분임) 공항을 빠져 나오니 모스코바 가이드(모스코바 시내만 안내하는 가이드. 이런 가이드는 전부 유학생이다) 가 반갑게 맞아준다. 모스코바에서 연극 연기를 전공하고 부전공으로는 뮤지컬을 공부하는 유학생이다. 러시아는 공연 예술 분야 및 항공 우주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당연히 유학생도 공연예술 분야와 항공우주 분야에 집중된다. 가이드가 다니는 대학은 우리나라의 동국대와 결연 되어 있어서 동국대 영화연극학과 출신들이 많단다. 영화배우 박 신양 씨가 자기가 지금 다니는 대학의 선배란다. 그러면서 직접 노래(뽕작) 도 한곡 들려주고 러시아 노래도 CD로 들려 준다 (모래시계 주제곡 등). 시내로 들어오면서 느낀 모스코바의 인상은 생각보다 도시가 쾌적하다는 것이다. 공기가 서울이나 울산보다 깨끗하고 무엇보다 녹지 공간이 상당히 많다. 건물을 신축할 때 녹지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았단다. 아마 내가 가본 도시중 녹지공간이 가장 많은 도시다. 시내 곳곳이 넓은 산책로와 가로수다. 가로수는 대부분 러시아의 국목(國木)인 껍질이 허연 자작나무이다. 이 자작나무에서 자생하는 것이 그 유명한 차가버섯이다. 우리팀에도 이 차가버섯 매니아가 한분 있어 이번에 꼭 시베리아 산 차가버섯(최고품)을 사가겠단다. 암 치료뿐 아니라 건강증진에도 그렇게 좋단다. 모스코바 시내의 주택은 모두 아파트이고 단독주택은 없단다. 아파트의 1층은 대부분 상가로 쓰고 있다. 여기도 주 5일제라(오늘 금요일 저녁) 길이 주말 농장(다차 라고 한다)으로 가는 차들로 정체 된다. 시내를 가로 지르는 모스코바 강변에는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러 많이 나와 있다. 저쪽 밑 강변에는 누드촌도 있다고 한다. 거리의자동차들 참 다양하다. 30년쯤 됐음직한 차부터 최신식 벤츠까지. 현대차도 자주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삼성과 LG 의 광고 간판도 심심찮게 눈에 들어온다. 일단 먼저 카지노가 딸린 호텔에 들러 한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19:00) 카지노를 즐기는 우리나라 사람도 제법 있다. 카지노의 환전소에서 10달러만 루불로 환전했다(252 루불) 저녁식사 후 숙소로 가는 차안에서 모스코바 가이드 학생이 간단한 러시아 말도 가르쳐 주고 러시아 역사와 국내 사정도 이야기 해 준다. 그중 러시아 경찰 이야기. 게을러터진 러시아 공무원 중에서 경찰이 제일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퇴근도 늦게하고 주말도 없이 이유는 간단하다. 위법자를 적발해서 돈을 뜯기 위해서다. 러시아 경찰의 월급이 한 달 에 30-40만원이다 보니 먹고 살기 위해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다. 예를들어 교통경찰이 신호위반 운전자를 적발했다 치자 일단 스티커를 발부한다는 명목으로 운전자를 경찰차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러면 운전자는 경찰차 안에서 지폐를 꼬깃꼬깃 접어 손바닥과 엄지 사이에 끼고 미소를 띠며 악수를 청한다. 그러면 경찰도 미소로 화답하며 악수에 응한다. 악수가 끝났을 땐 당근히 지폐는 운전자의 손에서 경찰관 손으로 넘어가 있다. 그런 다음 차 밖으로 나와 경찰: 조심해서 가시라 (속으로 ”어휴 한 건 했네“), 운전자: 계속 수고하시라 (속으로 ”씨부럴 씨부럴“) 인사하고 헤어지는 식이다. 우리의 70-80년대 ”오고 가는 현찰 속에 싹트는 부정부패“ 딱 그 식이다. 가이드 학생도 유학초기 많이 뜯겼단다. 따라서 여기서는 좌우간 경찰에게 꼬투리 잡히지 않는게 상책이란다. 2000년경부터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러시아 경제가 고성장을 거듭하자 러시아에 졸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이 졸부들 하는 행태가 꼭 우리나라 졸부들 그대로란다. 부동산 투기에 조기유학 조기 교육 열풍에 신분과시용 승용차 주택 구입 등. 그런 저런 이야기 끝에 차가 우리가 묵을 호텔에 도착했다(20:30) 호텔시설은 낡았으나 호텔이 숲 한가운데 있어 상당히 쾌적하다. 밤에는 호텔주변 숲에서 2군데나 파티를 한다. 술 먹고 춤추고 나중에는 폭죽까지 쏜다. 아마 결혼식 피로연인가 보다. 여기서는 낮이 길어 밤 10시가 넘어서야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8/11 (토)
기상(05:45). 밤에 날씨가 더워 창문을 열고 잤더니 새벽에는 제법 쌀쌀하다. 호텔을 출발(06:20)하여 국내선 공항으로 간다. 모스코바에는 공항이 국제선 3군데 국내선 2군데 5개가 있다. 그중 한 공항에 도착해 보니 우리나라 버스 터미널 같다. 그렇지만 검문은 입구부터 신발까지 벗으며 한다. 러시아 공항 대부분은 검문을 할 때 신발을 벗어야 한다. 비행기에 탑승(09:10)하니 바로 이륙하지 않고 활주로 입구에서 30분 씩이나 대기하다 이륙한다. 이 나라에선 뭐가 제대로 되는 게 없다. 미네랄리 보디 공항에 도착(12:10)해보니 이건 꼭 우리나라 시골 버스 정류장 같다. 공항을 빠져 나오니 우리의 현지 가이드 “이고르”가 맞아준다. 이 미네랄리 보디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등반하고 떠날 때 까지 함께할 가이드이다. 금년 45세의 자그마한 사나이로 염소수염을 길렀다. 전문 등반가이고 자기 부인도 가이드 겸 전문 등반가이다. 결혼은 일찍 해서 큰아들이 벌써 21세란다. 어수선한 공항을 빠져 나와 승합차 2대에 나눠 타고 출발(12:50). 바깥 날씨는 온도도 습도도 높지 않고 바람이 시원해 그리 더위를 느끼지는 않는 날씨다. 이동 중 허름한 식당에 들러 닭고기 튀김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박산” 계곡을 계속 거슬러 올라 테스콜 마을의 호텔(볼프람 호텔)에 도착(18:10)했다. 우리나라 모텔 정도의 수준이나 이 마을에선 제일 큰 호텔이다.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은 후 이고르 의 인솔로 호텔에서 10여분 걸어 내려가 장비점에 갔다. 작은 건물 안에 한쪽은 장비를 파는 집이고 한쪽은 중고장비 렌탈점 이다. 렌탈점에서는 중고장비를 렌탈및 구매 할 수도 있었다. 장비 판매점에서는 벌써 영업이 끝났으니 들어오지 말란다. “배부른 넘”들이다. 러시아 대부분의 상점들은 오전 10시쯤 열어서 오후 4시쯤 문을 닫는 것 같다. 국토가 넓고 부존자원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사회주의 영향인지 이나라 사람들 “만고”에 급할 게 없고 게으르다. 좌우간 모스코바 시내에 있는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 동상을 티타늄으로 만들 만큼 러시아는 티타늄 생산 1위국 이어서 티타늄으로 만든 제품 즉 아이스스크류가 싸다는 정보를 그 전에 들은 적이 있어서 중고 아이스스크류 가격을 물어보니 1-2 만원 정도 한다. 중고지만 싸다. 그러나 다른 제품은 별로 안 싸다. 어차피 등반 마치고 갈 때 또 이 장비점을 들러야 하므로 그때 사기로 하고 구경만 했다. 몇 사람은 등산화(가죽이나 플라스틱 이중화가 주종)와 크램폰(설상용)을 렌탈 했다. 4일간 렌탈(등산화+크램톤) 비용이 3-4 만원 정도 하는 것 같다.
8/12 (일)
일어나(06:30) 아침을 먹고(호텔 식당에서 현지 식) 짐을 챙겨 호텔을 출발(08:00) 차로 3분 정도 이동 위쪽 마을 이자 케이블카 출발지점인 아자우 마을에 도착.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 후 10:00경부터 엘브러즈 등반의 전진 기지인 가라바쉬 까지 두 번의 케이블카와 한번의 1인승 리프트로 이동한다. 리프트에서 내려 약 50여m 올라가 베이스캠프인 배럴(Barrel Hut) 에 도착했다(11:00).리프트 종점이 해발3750m이고 아자우 마을이 약2300m이니 해발 1500m정도를 1시간만에 쉽게 올라온 것이다. 배럴은 바람 및 눈의 저항을 적게 받기 위해 기름을 싣고 다니는 탱크로리와 같이 원통으로 생긴 숙소로 한 배럴 안에 좌우로 침대가 3개씩 즉 6인용 숙소이다. 이 베이스에는 이 배럴이 총 11개 있고 사각 콘테이너 가 2개 (등반 가이드 및 식당 아줌마 숙소) 그리고 식당으로 쓰는 콘테이너 가 1개 있다. 식당은 각 팀 별로 시간을 정해 사용하고 쿡 아줌마는 3명 정도 있으며 우리팀 담당 쿡은 “마리아”라 불리는 50대 아줌마이다. 4, 5번 배럴에 우리팀 각 6명씩 배정받고 3번 배럴에 나와 심 차장이 다른팀 4명과 같이 사용하도록 배정 받았다. 배럴 안에는 아직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나는 창으로 엘브러즈가 빤히 보이는 맨 안쪽 침대를 차지했다. 점심식사 후 약간 휴식을 취한후 퓨리웃 산장(4,200m) 까지 고소 적응훈련에 나섰다.(14:00) 퓨리웃 산장은 화재로 방치 되다가 최근에 바로 밑에 새로 지은 조그마한 산장이다. 빤히 보이는데도 걸어보니 멀다. 역시 고소지역이라 걸음이 힘들다. 배럴로 내려와(17:00) 휴식후 저녁 먹고(20:00) 일찍 잤다(21:00)
8/13 (월)
아침 식사후 09:00부터 파스트쵸브 바위 밑(해발4,500m) 까지 고소적응 등반에 나섰다. 어제 올라온 퓨리웃 산장 지나서 파스트쵸브 락이라 불리는 바위군 밑에 까지 고소적응 등반을 하는데 이 지점이 바로 내일 등반을 시작하면 설상차로 올라와서 하차하는 지점이다. 그러니까 내일의 실질적인 등반시작 지점까지 오늘 고소적응 등반을 하는 것이다. 역시 고소 등반은 힘들다. 오늘은 빨리 가려는 생각보다 고소에 적응 하겠다는 생각으로 올라갔다. 일행 중 빠른 사람은 역시 빠르다. 내 등반 속도는 우리 팀 중 중간 정도다. 올라가는데 3시간 정도 걸렸다. 바위지대에서 30분 쯤 휴식 후 내려오는데 1시간 30분 정도 소요 된다. 오늘처럼 한 낮에 등반 할 때는 안면모 등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게 더우므로 얼굴의 일부분을 노출하게 되는데 이때는 썬 크림을 철저하게 발라 주어야 한다. 약간의 틈새 사이로도 얼굴이 타고 피부가 벗겨진다. 나는 자외선 차단 지수(SPF) 41인 제품을 썼는데 효과가 좋았다. 당근 썬글라스 나 스키고글은 설맹 방지를 위해 필수다. 나는 시내를 오갈때나 산에서 고소적응 등반을 할 때는 산악용 썬글라스를 썼고, 정상 등정 때에는 스키용 고글을 사용했다. 14:00경 배럴로 하산하여 15:00경에 늦은 점심을 먹고 내일 새벽 정상 등정을 위해 모두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0:00경 심 차장이 저녁 먹자고 깨워 할수없이 일어나 저녁을 먹고 또 잤는데 잠이 잘 온다. 여기서는 모두들 낮이고 밤이고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잔다. 고소 지역이라 쉽게 피곤해지고 잠이 잘 올뿐더러 체력비축을 위해서도 많이 자 두는 것이 좋다.
8/14 (화)
새벽 02:00에 일어나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날진 1리터 병에 뜨거운 물을 담고 보온 커버를 씌우고 또 0.47리터 보온병에 뜨거운 물 담고 0.5리터 정도 되는 락앤락 통에 미숫가루 넣고 물 부어 보온 커버 씌우고 행동식 등 나머지는 어제밤에 배낭에 다 챙겨 넣었다. 심 차장이 주먹밥 하나씩을 나눠 준다. 03:00 드디어 정상을 향해 출발. 30분쯤 설상차를 타고 어제 고소적응 등반한 파스트쵸브 바위지대 밑 4,500m 지점에서 설상차에서 내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03:30) 등반행렬은 일단 현지 가이드 이고르가 맨 앞에 서서 모든 걸 지휘하고 그 뒤로 우리 팀 13명이 일렬로 서고 맨 뒤에 심 차장이 서고 등반 가이드 3명은 중간 중간에 열 바깥에 서서 가는 식이다. 등반 속도 및 방향, 휴식 등은 선두 이고르가 정 하는데 등반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가 않고 따라 갈만 하다. 1시간 정도 올라가고 5분 정도 쉬고를 3번 정도 했나? 새벽 출발 때는 별이 띄엄띄엄 보일 정도로 괜찮았던 날씨가 아침 동 틀 때쯤부터 요상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해발 5,200m 지점까지 올라간 07:30분경 몇 번의 휴대전화 통화 끝에 마침내 이고르가 하산을 결정한다. 나는 내심 강행하기를 바랐는데... 해발 5,200m 지점까지 올라 와서 돌아가기가 억울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해발 460m 만 더 올라 가면 정상인데. 지금 올라온 것의 1/3만 더 가면 정상인데 하는 생각에... (뒷날 여기서 부터가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게 밝혀지지만) 우리 팀 뿐 아니라 그 날 등반에 나섰던 모든 사람들이 안전지대까지 하산한다. 올라 갈 때는 오늘 정상 등반객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내려오면서 보니 꽤 많다. 100명은 훨씬 넘는 것 같다. 눈보라가 이제는 번개와 천둥까지 더해지고 시야는 10 - 20m 정도로 앞사람 등만 바라보고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이 사람을 가만히 보니 번개가 번쩍 할 때마다 재빨리 몸을 숙이거나 엎드린다. 나는 번개에 아랑곳 하지 않고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보무도 당당하게 내려가는데 가이드 한 명이 다가와 뭐라고 막 나무라는 말투로 이야기한다. 아마 번개 칠 때 왜 몸을 낮추지 않는가 하는 말인것 같다. 그렇게 하는게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어 몸을 낮추는 시늉만 하면서 내려갔다. 우리 팀 몇몇 사람의 요청으로 이고르가 설상차를 불렀다. 설상차는 4,500m 지점까지 못오고 그 몇 백m 밑에 까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상차를 타고 다시 배럴로 복귀(10:30) 후 언제 재 등반 하느냐 논의 끝에 내일까지 휴식을 취하고 모레 재 등반 후 바로 가라바쉬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몇 사람은 정상등반을 포기 하겠다고 했다. 다시 저녁에 회의를 한 결과 내일은 일기가 좋다고 하니 내일 바로 재등정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각 산악회별 회의 결과 3명은 재등정을 포기했다. 우선 제일 연세(68세)가 많으신 치과의사 선생님. 두 번째(67세)로 많으신 숭악회 고문님 (정년퇴임한 교장 선생님). 그리고 이 배럴에 올라온 날부터 컨디션 난조에 빠진 50세의 청주에서 오신 건강식품 사장님. 이렇게 3명은 포기하고 나머지 10명은 내일 재등정에 나서기로 하고 젖은 옷을 말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8/15 (수)
새벽 02:00에 일어나 먼저 하늘부터 보았다. 별이 총총하다. 이 정도면 오늘 정상까지 가는 동안은 날씨가 괜찮을 것 같다. 다들 오늘은 광복절이니 만큼 꼭 정상에 서자고 서로를 격려한다. 간단한 스프로 아침을 대신하고 어제와 같이 03:00에 설상차를 타고 03:30분부터 본격 산행에 들어섰다. 연일 계속 되는 등반이라 체력이 어떨까 내심 걱정 했는데 오히려 어제보다도 컨디션이 좋은 것 같다. 등반 속도도 레스트 스텝(한발 올리고 뒷다리에 체중을 실어 아주 잠깐씩 쉬며 걷는 방법) 하기에 알맞고 호흡도 평소 훈련대로 (두 번 짧게 들어 마시고 한번 길게 내 쉬고) 잘 되어 진다. 어제 눈이 와서 러셀을 하며 올라가는데도 그리 힘들지 않다. 07:30쯤 어제 하산 지점인 해발 5,200m를 통과할 즘에는 우리보다 1시간 (02:00) 일찍 출발한 다른 한국 원정팀(“오지 탐험” 여행사에서 온 9명, 우리와는 가는 비행기부터 오는 비행기까지 거의 같은 스케줄이었다) 을 추월 할 만큼 순조로웠다. 해발 5,300m 쯤의 동봉 트레버스 구간을 통과하여 안부 (5,350m)에 도착하여 휴식 후 배낭을 여기에 벗어 놓고 가잔다. 모두들 카메라와 산악회 깃발 등만 챙긴 후 서봉을 트레버스 하는데 이 구간이 이번 산행의 가장 힘든 구간이다. 급경사 사면 길을 가로 질러 가기가 진짜 장난이 아니다. 미끄러지면 저 밑 안부까지 떨어질 것 같다. 다른 등반 팀들과 달리 우리팀은 모두 피켈 없이 워킹 스틱만으로 오른다. 활락제동을 할수있는 피켈이 있든지 아니면 고정로프나 안자일렌을 하고 가든지 해야 되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 여행사에서는 오히려 짐이 된다고 해서 아무도 피켈을 가져오지 않았다. 할수없이 어제 내린 눈을 러셀해가며 스틱만을 사용해 조심조심 나아간다. 나는 다행히 아이젠이 잘 먹어준다. 프랑스제 (살레모제) 구식 아이젠이라 무겁고 신고 벗기가 불편했지만 성능은 아주 만족이다. 트레버스 구간을 통과하니 이제 경사가 완만한 설원을 가로 질러 가는 구간이다. 트레버스 하면서 체력을 많이 소비한 것 같다. 서서히 체력이 딸리기 시작하나 정상을 향한 투지는 아직 그대로이다. 설원을 오른쪽으로 쭉 가로 질러 가서 체력이 거의 바닥날 즈음 20m 쯤 되는 야트막한 둔덕이 나타나고 그 위가 바로 정상이다.(10:40) 선두 이고르가 정상에 올라오는 사람 한명씩 포옹하며 축하해준다. 두어명은 체력이 바닥났는지 아님 너무 감격스러운지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드러누워 버린다. 정상은 별로 특징적인 것은 없고 조그만 화산석 하나와 깃발 몇 개가 있고 동전과 지폐 몇장이 기념으로 박혀있다. 오늘은 우리 팀이 두번째로 정상에 오른 팀이다. 우리팀보다 10여분 먼저 정상에 오른 유럽 원정 팀이 우리 팀이 올라오자 정상을 양보하고 하산한다. 정상을 오르기 한시간 전부터 안개가 끼었다. 개었다를 반복하더니 우리가 정상을 오를때쯤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바람이 드세게 불기 시작한다. 모두들 사진을 찍는다고 복잡하다. 나는 준비해간 회사 로고와 산악회기를 들고 사진 두장씩만 찍고 정상에서 한발짝 물러 나왔다. 정상에서 오래 머물수가 없어 정상쪽을 다시 한 번 눈 여겨 보고 하산하기 시작했다(11:00). 하산길 역시 그 서봉 트레버스 구간이 제일 힘들다. 조심조심 트레버스 구간을 지나 배낭을 벗어둔 곳에 도착하니 서너명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간식을 먹으며 20여분 휴식을 취하니 정상을 밟고 왔다는 생각에 이제야 조금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체력도 조금 회복된 것 같다. 거기서 우리 팀 들이 거의 다 모인 다음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오면서 안부쪽에 보니 체력이 바닥난 사람들이 더 이상 정상으로 가지 못하고 정상에 간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여기저기서 쉬고 있다. 하산도중 들어보니 우리와 같이 온 “오지탐험”팀은 총 9명중 3 -4명만이 정상에 올랐단다. 반면 우리 팀은 10명이 출발하여 10명 모두 정상에 올랐으니 대단하다면 대단한 기록이다. 그래서인지 심 차장은 상당히 기분이 좋다. 나 역시 엘브러즈를 좀 만만하게 봤는데 역시 고도가 있어서인지 그리 만만한 산은 아니다. 즉 “누구나 오를 수는 있지만 아무나 오를 수 있는 산은 아니다.” 4,500m에 있는 설상차 종점까지 걸어 내려와 설상차를 타고 배럴로 귀환.(14:50) 드디어 등반완료다. 바로 옷을 갈아입기 아쉬워 그 상태로 사진을 두 장 찍고 배럴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휴식을 취했다. 오후가 되니 또 날씨가 오락가락 한다. 이곳 날씨는 진짜 조삼모사 하다. 몸은 피곤 하지만 오랜 숙제를 푼 듯 마음은 개운하다. 심 차장이 추가비용을 알려 주어서 바로 계산해 주었다.(1인당 일백 삼십 몇 달러) 추가비용의 내역은 14일 날 바로 정상에 못 갔으므로 그 후 발생된 비용이다. 즉, 14일 하산 때의 설상차비 200유로(25만 4천원). 등반 가이드비 200달러(하루)X2명 =400달러(39만원). 등을 10명이 나누어 내는 것이다. 등반가이드는 등반객 3명당 1명씩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되어 있다고 했으나 이건 어디까지나 외국 원정대에 해당하는 말이고 현지 사람들은 단독 등반이든 삼삼오오나 팀별 등반이든 등반 가이드 없이 자유로이 등반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베이스 역할을 하는 이 숙소 (Barrel Hut) 도 외국 원정대나 여유가 있는 현지 등반객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전부 텐트를 치고 등반한다. 즉 이곳 배럴(3,800m)에서 정상(5,642m)까지의 중간(4,500 - 4,800m정도)에 어택 캠프가 있어야 하나 어택캠프를 생략하고 4,500m까지 설상차로 오른 다음 정상에 올라가는 방식이다. 반면 현지인들은 일단 케이블카로 올라와 배럴에서 조금 떨어진 곳 (3,800 - 3,850m)에 텐트를 치고 또 다음날 파스트쵸브 바위 사이사이 (4,500 - 4,800m)에 어택캠프를 치고 다음날 아침 정상에 올라가는 방식이다. 일부 짠돌이 짠순이는 아예 아자부 마을(2,300m) 에서 케이블카와 리프트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올라온다. 돈이 조금은 등반을 편하게 하는 것이다. 내가 정상에 올랐다는 기분에 추가비용이 그리 아깝다는 생각이들지 않았다. 원래 계획은 오늘까지 배럴에 머물고 내일 현지호텔로 내려가게 되어 있으나 다들 이제 정상도 올랐으니 오늘 현지호텔로 내려갔으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4일 동안 통 씻지를 못했다. 양치질은 PET병에 식수를 받아 몰래 살짝 하고 얼굴은 물티슈로 닦아 내는 정도다. 숙소 뒤편으로 개울물이 흐르고 있으나 눈 녹은 물이라 얼마나 차가운지 손을 잠시도 담구기 힘들 정도니 세수나 머리 감을 생각을 못한다. 나는 하루만 머리를 안 감아도 가렵고 비듬이 생기는데 여기서는 어찌된 일인지 4일 동안 안 감아도 머리카락만 좀 뻣뻣할 뿐 전혀 머리가 가렵거나 비듬이 일지 않는다. 더구나 등반할 때 내내 모자를 썼는데도, 기후 탓인가? 무엇보다도 고역은 화장실 사용이다. 재래식 화장실이 두 칸 있는데 엄청 지저분하고 냄새도 지독하다. 그래서 일부 남자들은 소변은 몰래 숨어서 살짝 해결하고 대변만 화장실을 이용한다. 여자들 경우야 말할 필요도 없고 이리 저리 전화를 해 보던 심 차장과 이고르가 호텔방이 모자란단다. 일부만 내려 갈수 도 없고 할 수 없이 원래 계획대로 오늘 하루 더 자고 내일 내려가기로 한다. 며칠 계속 된 등반으로 내가 좀 피곤하긴 했나 보다 초저녁에 자기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거의 12시간을 잤다.
8/16 (목)
하산하려고 짐을 챙겨보니 우리 개인 짐은 올라 올 때와 별반 차이가 없으나 공동 짐(대부분 식량) 은 거의 소비를 다하고 없다. 여행사에서 여기에 아예 압력솥을 맡겨 두고 올 때 마다 그것을 이용해 밥을 한다. 그래서 서울에서 올 때 쌀을 비롯한 부식들을 많이 가져 왔기 때문에 그 덕을 많이 본 것 같다. 고소에서 입맛이 한참 없을 때 그래도 몇 숟갈 억지로라도 먹었으니까. 그러나 가지고 올라 올 때는 너무 무거워 속으로 욕을 많이 했다. 남은 식량과 식자재를 우리 담당 쿡 “마리아” 아줌마한테 선물하니 좋아서 입이 째진다.(일회용 장갑이나 비닐 봉투를 특히 좋아 한단다) 아침 먹고 하산 시작.(10:00) 11:00쯤 아자우 마을로 내려와 케이블카 승강장 밑 조그만 재래식 시장(주로 모피나 털모자 제품을 팔고 양고기 꼬지 구이를 즉석해서 구워 파는 가게 등이다)에서 기념품 가게에 들러 엘브러즈 등반 지도 한 장을 40루불(1,500원) 주고 구입했다. 현지 호텔에 도착.(11:30) 우선 씻고 체겟봉 (3,050m) 트래킹 하러 호텔에서 10여분 걸어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장비점 에 들러 렌탈 했던 사람들은 장비를 반납하고 신상품 파는 장비점에 들어가 가격을 보니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다. 비슷하거나 겨우 몇 천원 싼 정도다. 중고 렌탈점에서 아이스스크류 신품 같은 중고 2개를 약 2만8천원 정도 에 구입했다. 역시 싸다. 그리고 그리벨 제품인 중고 피켈의 가격을 물어 보니 약 8만원 달란다. 좀 깎아 달라고 하니 안 된다고 해서 피켈은 구입을 포기했다. 체겟봉 트래킹이란 리프트를 두 번 갈아타고 체겟봉 바로 밑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주변을 조망하는 것이다. 리프트 승강장 입구 조그만 동네에는 작은 기념품 시장이 있고 양고기 등을 구워 파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다. 그중 한 식당에서 닭고기 꼬지를 점심으로 먹었다. 이곳 역시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쓰이는데 지금은 한 여름이라 몇 사람이 산악 자전거를 가지고 리프트를 타고 올라와서 스키슬로프를 신나게 내려간다. 일행 중 산악자전거 전문가에게 들으니 저건 산악자전거 중에서도 다운 힐 전용 자전거란다. 전망대에서는 엘브러즈를 비롯한 주변 산봉우리들과 박산계곡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기념사진 몇 장 찍고 내려와 기념품 시장 구경에 나섰다. 기념품은 러시아 전통 인형인 마트로시카(일명 알까기 인형) 와 러시아 전통 털모자 양털로 짠 모자, 옷, 그리고 엘브러즈가 프린트된 기념 티셔츠 등이다. 시장을 쭉 한 바퀴 둘러 보고 끝부분에 있는 가게에서 엘브러즈 모양이 들어있는 털실로 짠 모자(비니) 한개를 100루불(3,800원) 주고 샀다. 일부는 호텔로 걸어서 올라가고 나를 비롯한 8명은 다시 근처 꼬지 구이 집에서 양고기 꼬지를 안주 삼아 술을 한잔 더 걸친후 걸어가기 싫어 미니밴을 대절해서 타고 호텔로 왔다. 호텔에서 다들 저녁 먹을 생각이 없다고 하자 심 차장이 여행사에서 준 여비비로 자기가 한 잔 쏘겠단다. (아마 사전 계획에 있었던듯) 그리하여 모두 다 윗마을 아자우로 가서 케이블카 승강장 바로 밑 술집으로 갔다. 술집에 도착하니 몇 몇 등반 팀들이 먼저 와서 술을 한잔씩 하고 있었다. 양고기 꼬지 안주에 보드카와 맥주가 한 순배씩 돌자 제일 노장(68세) 인 치과 원장님부터 일어나서 이번 원정의 소감을 한마디씩 이야기 한다. 이어 현지 가이드 이고르가 등반 증명서를 한 장씩 나눠준다. 한사람씩 이름을 불러 증명서를 주고 악수하며 포옹하고 다들 박수를 치는 식이다. 정상을 못 밟은 3명에게도 5,200m까지 갔다는 증명서를 나누어 준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가고 옆 테이블의 한 러시아 아가씨가 일어나 춤을 추는 것을 시작으로 이제 술판이 춤판이 된다. 집 나서면 여자가 더 적극적인 건 여기도 마찬가지. 주로 여자(대부분 아가씨)가 춤을 권하고 남자(대부분 아저씨)는 마지못해 응하는 식이다. 유럽, 러시아, 한국의 남녀 노소가 한데 어울려 한바탕 신나게 춤판을 벌인후 호텔로 돌아와 또 몇 몇 주당들(나를 포함) 은 한방에 모여 양주와 맥주를 마시고 한 사람이 완전 K.O된 12시가 훨씬 넘어서야 각자 방으로 돌아가 잤다.
8/17 (금)
오늘은 여기를 떠나 모스크바로 가는 날이다. 비행기 시간이 저녁이라 여기서 점심때까지는 개기고 있어야 한다. 느즈막이(08:00)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짐정리를 한 다음 조금 휴식을 취하고 11:00경 낚시도 하고 점심도 먹으러 가잔다. 호텔에서 10여분 걸어 내려와 어느 자그마한 송어 양식장에 도착해서 비치되어 있는 낚시대로 삶은 옥수수알을 미끼로 해서 송어를 낚는 것이다. 7 - 8 명이서 낚시를 했다. 어떤 사람은 한 마리도 못 잡고 어떤 사람 은 연신 낚아 올린다. 특히 7급 산악회 고문님은 10여 마리나 낚은 것 같다. 다들 7급 산악회를 7급 낚시회로 바꾸란다. 1시간 정도 낚시하여 15 - 25Cm 송어 20 여마리를 낚은 것 같다. 이 송어를 쇠꼬챙이에 끼워 숯불에 구워준다. 그 송어구이를 반찬 삼아 점심식사를 했다. 맛은 별로다. 호텔로 돌아와(13:00) 마지막 짐 정리를 한 후 호텔을 출발했다.(14:10)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 길에서 파는 수박을 한 통 사서 아주 맛있게들 먹었다. 2,000원 정도면 아주 크고 맛있는 수박 1통을 살 수 있다. 미네랄리 바디 공항에 도착(17:00) 공항입구 식당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공항청사로 들어갔다. 올 때나 갈 때나 이 공항 시설 후지고 복잡하다. 옆에 새로 청사를 지으면 좀 나아지겠지. 일주일가량 동고동락 했던 현지 가이드 이고르 와 작별 인사를 하고 20:35분 이륙하여 23:05분 모스코바 공항에 도착했다. 모스코바 공항을 나오니 모스코바 유학생 가이드가 바뀌었다. 첫날 유학생은 급한 볼일이 있어 자기가 대신 나왔단다. “전 씨” 종가집의 4대 독자라는 조그마한 청년이다. 역시 연극 연출을 전공 한단다. 첫날 묶었던 그 숲속의 호텔로 가면서 이 학생 역시 러시아 역사, 문화 등을 이야기 한다. 국제유가가 급등한 2,000년 이후에 러시아에서는 졸부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모스코바에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졸부들을 꼬시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원들이 성업 중 이란다. 하기야 어딜 가나 여자란 그저 빤쭈 한번 잘 내리면 인생 끝나는 거지 뭐...
8/18 (토)
오늘은 모스코바 시내 관광을 하고 야간에 비행기로 모스코바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07:00에 일어나 아침 먹고 09:00쯤부터 시내관광에 나섰다. 러시아는 아시다시피 국토가 엄청 넓고 큰 전쟁과 혁명을 여러 번 겪어서 그런지 많은 문학가를 배출했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등 그 중 러시아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문학가는 단연 시인인 “푸시킨”이다. 왜 우리 어릴 때 책상머리에 붙여 놓던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어쩌고 하던 그 시인이다. 모스코바의 “아르바트” 거리에는 이 푸시킨의 신혼집이 있고 그 앞에 그와 그 부인의 결혼식 동상(부인이 러시아의 대표적인 미인 이였단다) 이 있다. 또한 이 아르바트 거리에는 러시아를 크게 융성시킨 유일한 여자 황제인 예카트리나 황제의 황금 동상도 있는데 그 동상 뒤에 대낮부터 취해서 헤롱 거리는 젊은이도 눈에 띈다. 또한 이 거리에는 반체제 락 가수로써 젊어서 죽은 한국계 3세 “빅토르 최” 와 관련된 낙서벽도 있고 뭐 다른 등등도 있다. 거리의 한 가운데는 역시 노점상들인데 마트로 시카(알까기 인형) 를 하나 사려다 부르는 가격의 2/3를 깍아야 제 가격에 사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아예 사는 것을 포기했다. 모스코바의 자랑인 그 유명한 지하철은 노선이 8 - 9개 정도 되는데 서울의 2호선처럼 순환선도 있다. 1,000원 조금 안 되는 표 한장을 사면 시내 어디든지 갈수 있고 환승도 마음대로다. 즉 들어 갈 때 만 개찰구가 있고 나 갈 때 는 개찰구가 없다. 1935년 후르시초프가 스탈린의 특명으로 만든 이 지하철역은 그 화려함이 듣던 그대로다. 1995년 새로 만든 지하철역들은 전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다만 지하철을 타려면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지하 200m까지 내려가야 한다. 아마 방공대피소 개념으로 지하철을 만들었나보다. 러시아 사람들은 유럽을 두 번이나 해방 시킨 것, 즉 나폴레옹을 물리친 것(나폴레옹은 모스코바까지 왔지만 39일 만에 퇴각했다)과 2차대전에서 독일을 물리친 것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941 - 1945년 까지 1417일간 독일과 싸워 이긴 기념으로 전승공원의 분수도 1,417개고 기념탑 길이도 141.7m다. 2차대전 중 엄청난 인명 손실(2,500만명. 비공식으로는 2,800 - 3,000만명으로 추정) 을 입어 독일이란 나라와 독일 국민들을 아주 싫어 하지만 벤츠가 독일 다음으로 많은 나라가 바로 러시아이다. 독일은 싫어 하지만 튼튼하고 품질 좋은 독일제품은 선호하는 것이다. 일본을 미워하면서도 일본제품에는 사족을 못 쓰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전승기념 공원. 다음 무명용사의 묘에서 근위병들의 교대식에서 그 특유의 뻗장다리 걸음을 보고. 그 밖에 크레믈린 궁전, 붉은 광장과 레닌묘, 성바실리 성당, 굼 백화점 등등은 사진으로 보고 말로 전해 듣던 그대로이다. 한 가지 인상적이라면 모스코바 시내 중심에 한국. 특히 LG나 삼성 간판이 흔하다는 것이다. 즉 크레믈린 궁으로 들어가려면 LG다리를 건너야 하고 붉은 광장을 가려면 삼성 다리를 건너야 하는 식이다. 우리나라에서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에 제일 먼저 진출하여 시장을 개척한 기업은 “대우”다. 그 대우 덕택에 오늘날 우리나라 기업들이 러시아 및 동구에 성공적으로 정착했으니 그 대우라는 기업과 김우중 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우리나라 경제에 끼친 공도 크고 과도 크다. 붉은 광장에 있는 굼 백화점은 러시아 국영 백화점인데 아이쇼핑객이 95% 이상이고 실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은 5%도 안 되는 것 같다. 물건값은 우리나라 보다 20 - 30%정도 비싼것 같다. 모스코바 대학 가는 길에 사과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모스코바 대학의 상징이란다. 이 대학은 과거 사회주의 시절에는 세계 10대 대학에 들 정도로 좋았으나 지금은 위상이 조금 떨어져 있다. 학생이 3만명에 교수가 8천명 이란다. 노벨상도 여러 번 수상했고... 참새언덕(구 레닌언덕)은 그리 높은 지대는 아니다. 모스코바 시내 자체가 워낙 평지여서 여기서 보면 모스코바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신혼여행객들의 단골방문지라 긴 리무진 차가 많이 주차되어 있다. 러시아에서는 결혼하면 이 리무진을 타고 보통 2 - 3개월씩 여행을 다닌단다. 그래서 그 동안 모은 돈 다 쓰고 빈털터리로 새로 시작한단다. 미친 년 놈들... 모스코바 시내 관광을 다 마치고 복잡한 시내를 통과해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밟는데 이 또한 고역이다. 뚱뚱한 40 - 50대 아줌마들 일 처리가 얼마나 굼떤지... 결국 비행기는 1시간이상 연착이다. 여기서는 한 두 시간 연착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가 보다. 귀국용 비행기도 러시아 국영항공인 에어로 플로트인데 300명 이상 타는 엄청 큰 비행기이다. 유럽에서 귀국하는 환승객들이 많아서인가 보다. 이 비행기도 기내시설이랑은 출국할 때와 똑같다. 면세품도 카다로그를 보여주고 파는 게 아니라 직접 카트에 담아 끌고 다니면서 판다. 최고급 양주는 없고 고급양주는 있는데 그나마 용량이 작은 것(0.5L 0.2L) 들이다. 몇 병 샀다
8/19(일)
. 출국 때와 마찬가지로 두번의 식사와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11:50, 이하 한국시간, 비행시간은 8시간10분으로 출국 때 보다 1시간 적게 걸린다) 했다. 짐을 찾자 곧 카고 백에서 휴대폰을 꺼내 집에 도착사실을 알리고 일행들 모두 모여 마지막 단체사진 찍고 서로 작별 인사를 하고 팀별로 뿔뿔이 헤어진다. 나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공항버스를 이용 울산으로 출발(13:10) 했다. 버스에서 우리 회원들과 지인들에게 등반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울산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18:30) 바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와서 (18:50) 그 긴 여행을 마쳤다. 마치 긴 꿈을 꾼듯한 10일간의 엘브러즈 원정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것이다. 내일부터 야간 근무다.
첫댓글 이글의 주인공은 우리산악회 산행대장님 이 십니다.훌륭한 분이지요. 산지식많이 얻으세요.
박총무님~어려운 원정산행을 수고를 했군요`축하를 드립니다,,,
박광덕 대장님 수고 하셨습니다 저임복규입니다
글을늦게읽었는데 정상에서기직전에 강덕형님의 거친숨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자랑스럽고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