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의 유래 1620년 12월21일 영국의 청교도들을 태운 180톤의 선박 메이플라워 호가 65일 간의 항해 끝에 마침내 신대륙(아메리카) 플리머스 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배엔 영국 국왕 제임스1세의 종교탄압을 피해 이주를 결행한 개척자 102명이 타고 있었다. 배가 도착했을 때 감격의 찬송이 선실에 울려 퍼졌다 배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배를 확보하려고 7년동안 런던 버지니아 회사에서 일을 하기도 했으며 또한 그들이 미국에 도착해서 제일먼저 한 일은 교회를 건축하는 일이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시급한 일이 성전을 건축 하는 일이었듯이 이들에게도 교회를 건축하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도 시급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교회는 이들에게 믿음과 꿈을 주었다. 그동안 풍토병 과 식량부족 그리고 악천후로 인해서 44명이 사망했다. 그래도 이들은 믿음으로 하나되어 모든 위협적인 요소들을 극복하며 삶을 개척했고 드디어 1621년 가을 첫 수확을 거두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나 추수감사의 효시는 구약시대에 모세가 백성들에게 농사를 마친후에 초막절을 가지라고 한 명령에서 찾을수가있다 (신명기 16장 13-17). 개척자들의 감사축제는 일주일간 이어졌으며 축제 기간 중에는 인디언들도 초대 되었다고합니다 그들은 한때 서로의 생존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했던 사이이기도했다. 그런데 옥수수 재배가 화해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또한 초청받은 인디언가운데 한명이 총을들고 새를잡으려다 뜻밖에도 야생칠면조를 잡았고 그 야생칠면조를 축제 음식물로 내 놓게 되었으며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까지도 그들의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요리가 나온다고합니다. 1789년 미국의 초대대통령인 조지 웨싱톤 국가적으로 추수감사절을 제정하기도 했으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추수감사절을 구시대의 왕정시대의 악습으로 규정해 폐지해버렸다. 그러다가 1863년 에이브러함 링컨 16대 대통령이 당시 레이디스 매거진의 편집자이자 시인이었던 세라 조세파 헤일여사에 의해서 시작된 켐페인을 받아들여서 다시 추수감사절을 제정했는데 그때는 11월 넷째주 목요일날로 제정했으며 때마침 그때는 미국의 남북 전쟁중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하루만큼은 전쟁도 중지되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된 것은 1904년 제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공회때 서경조 장로의 제의에 의해서였으며 처음에는 11월 셋째주 수요일었으며 그러다가 1914년 이후 11월 셋째주이로 확정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