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azunov - Concerto for Violin in a minor Op.82
글라주노프 -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 Op.82
Aleksandr (Konstaninovich) Glazunov [1865 ~ 1936]
Leila Josefowicz (violin)
Orchestre Symphonique de Montréal
Charles Dutoit (conductor)
전악장 연속듣기
1악장 Moderato
2악장 Andante
3악장 Allegro
글라주노프(Aleksandr Konstaninovich Glazunov) 1865. 8. 10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1936. 3. 21 프랑스 파리
러시아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뒤를 잇는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 M. A. 발라키레프에게 피아노를 배운 글라주노프의 어머니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아들을 자기 선생에게 데리고 갔다. 글라주노프는 그의 권고로 1880년부터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배우게 되었다. 1882년 발라키레프는 글라주노프가 작곡한 교향곡 1번을 연주했고 1886년 백만장자 목재 상인인 M. P. 벨랴예프가 그 수정본을 출판했다. 벨랴예프는 또한 자신의 이름을 따서 유명한 음악 출판사를 세웠는데 글라주노프가 나중에 그 운영을 도왔다.
2개의 현악4중주곡과 그리스 민요에 의한 서곡, 교향시 〈스텐카 라진 Stenka Razin〉을 작곡한 데 이어 1886년에 교향곡 2번을 완성했다. 당시 그는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가들의 계승자로 인정받았으며, 그들과 같은 양식으로 작곡했다. 또한 1884년 바이마르에 있는 리스트를 방문하여 그의 영향을 받았고, 그밖에 특히 바그너와 차이코프스키의 영향도 뒤에 나타난다.
교향곡 4번·5번·6번과 발레곡들인 〈레이몬다 Raymonda〉·〈사랑의 술책 Ruses d'amour〉·〈사계 Les Saisons〉 등 대부분 주요 작품들은 1890년대에 작곡되었다. 1904년에 〈바이올린 협주곡 A단조〉를 썼고, 1906년에 마지막 교향곡인 제8번을 완성했다. 1905년에는 자신이 1899년부터 가르쳤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원장이 되었다. 1906년 이후에 쓴 주목할 만한 작품은 2개의 피아노 협주곡(1911, 1917), 2개의 현악4중주곡(1920, 1930),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토발라타 Concerto-Ballata〉(1931), 색소폰·플루트·현을 위한 협주곡(1934) 등이 있다.
그는 러시아 혁명(1917) 후 1928년까지 상트페테부르크 음악원 원장으로 있다가 고립감을 느껴 결국 소련을 떠났다. 그후 미국에서 순회공연(1929~30)을 했으나,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그뒤로는 파리에 정착하여 여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음악하기전에는 불가리아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법률학도 였다. 어떻게 하다가 불가리아의 왕의 기념식자리에서 노래를 불러렀는데 그의 소리를 들어본 불가리아의 왕이 그의 소리에 탄복하여 그를 이태리로 유학을 주선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입문시기는다소 다른 대가들 보다 다소 늦게 입문하였다. 그는 28살에 데뷔하여 2차대전을 거쳐 보다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레이라 조세포비치(Leila Josefowicz)
캐나다 태생의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무대에 오르면 불꽃처럼 열정을 피워내는 연주자로 청중을 사로잡는 바이올리니스트 레일라 조세포비치는 1977년 10월 20일,캐나다의 온타리오주(州) 토론토에서 폴란드계 아버지와 잉글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엔젤레스로 이사를 가서 3살 반 때부터 스즈키 교수법으로 바이올린을 배웠다. 다섯살 때 이델 로우(Idel Low)로부터 정식 레슨을 받았고,여덟살 때 콜번 연주학교(The Colburn School)에서 로버트 립세트(Robert Lipsett) 교수에게 바이올린을 사사했다. 재능있는 어린이를 다수 육성해서 이름이 높았던 립세트교수의 지도를 받는 동안 레일라는 미국과 영국의 여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다.
그녀는 이미 11살 때부터는 실내악에도 참여해서 연주했고,10살 때 “미국의 밥 호프”라는 TV 쇼에 출연해서 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13살때 필라델피아로 이사를 하였고,그녀는 명문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하여 제이미 라레도(Jaime Laredo), 조셉 긴골드(Joseph Gingold), 야사 브로드스키(Jascha Brodsky) 등에게 바이올린을, 펠릭스 갈리미어(Felix Galimir)에게 실내악을 사사하였다.
1994년, 레일라는 가장 뛰어난 청소년 아티스트에게 주는 “에이버리 핏셔 케리어 그랜트 상”을 받았다. 같은 해 16세의 나이로 카네기 홀에서 네빌 마리너가 지휘하는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와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을 협연하면서 데뷔한 레일라는 이때 이미 음악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인 보스톤 교향악단, 시카고 교향악단, 클리브랜드, 필라델피아 교향악단, LA 필하모닉, 라이프찌히 게반트하우스,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 베를린 도이치 오케스트라, NHK 교향악단 등과 협연했다. 물론 그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지휘자들도 정상급의 마에스트로들이었다.
그녀는 또한 오사카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순회공연을 가졌으며 이때 동경과 오사카 공연이 전석 매진되기도 하였다. 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 협연하였고, 뵐저-뫼스트의 지휘로 런던 필하모닉 데뷔를 하였다. 1995년 가을, 조세포비치는 세이지 오자와가 이끄는 보스턴 심포니와 첫 공연을 하였고, 바로 이어서 그들과 카네기홀에서 다시 연주하였다. 또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도 재공연을 가졌다. 리사이틀도 활발하게 가져서 그동안 샌프란시스코, 뉴욕, 피츠버그 등지에서 가졌다.
2002-2003 시즌엔 헐리우드 볼(Hollywood Bowl), 라 호야 쳄버 페스티벌(La Jolla Chamber Music Festival), 뉴욕 현악합주단과 카네기 홀에서 연주하는 등 수 많은 콘서트와 실내악 무대에 등장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많은 오케스트라들과 연주하고 있고,아시아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극동지역을 순회공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던 레일라는 방송 출연도 누구보다도 다양하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The Tonight Show'를 비롯해서 수많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2002년에 BBC 교향악단과 존 아담스의 협주곡을 링컨센터에서 연주할 때는 BBC방송망을 통해서 유럽에 중계되기도 했다.
레일라 조세포비치는 1739년산 “에버솔트” 과르네리 델 제수로 연주한다.
그녀는 명 지휘자 네메 예르비(Neeme Jarvi,1937- )의 아들인 지휘자 크리스티안 예르비(Kristjan Jarvi,1972- )와 결혼하였으나 이혼하였고, 그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 루카스와 현재 뉴욕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