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
김영삼 전대통령이 좋아하던 휘호(揮毫)에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게 있습니다. 이 말은 송나라 때 임제종 양기파 스님인 무문선사(無門禪師)가 자신이 찬(撰)한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간칭 <무문관>) 서문에서 한 말입니다.(아래 본문 참조)
‘대도무문’이란 ‘대도(大道)는 곧 무문(無門)’이란 말로서, 즉 '큰 길에는 문이 없다.’‘란 말입니다. 길은 곧 깨달음으로가는 길을 말합니다.
큰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는 특별한 문이 있는 게 아닙니다. 의역하면 선종불교에서 추구하는 진리에 이르는 길이란, 반드시 선종(禪宗)불교의 학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도 됩니다.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혹은 기타 다른 철학이나 종교든 모든 길을 통해 다 도달 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선종불교에서는 다른 불교종파나 종교를 존중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기독교의 배타적 태도와는 확연히 다르지요. 이것이 제가 선종불교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아무 길로나 가서 그곳에 도달하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선사(先師)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면 한결 쉽겠지요? 그 발자국이 바로 무자화두입니다.
대도무문은 또 '큰 도에 이르려면 무(無)라는 문(門)을 지나야 한다.'거나 ‘무(無)라는 문(門)을 통해 큰 도에 이르렀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문혜개스님이 ‘무(無)의 참구(參究)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기’때문입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무문혜개(無門慧開)선사(禪師)는 남송(南宋) 효종(孝宗) 순희(淳熙 ; 연호) 10년(1182년) 항주 전당에서 태어나, 여러 스승을 찾아 불법을 공부하다가 월림사관(月林師觀 1143-1217)아래서 무(無)자(字) 화두를 끌어안고 6년간을 참구(參究)한 끝에, 점심 공양을 알리는 북소리를 듣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어 일대사(一大事)를 마쳤다고 합니다.
青天白日一声雷 (청천백일에 우뢰소리 한 번 울리니)
大地群生眼豁开 (대지 군생들의 눈이 확 떠진다.)
万家森罗齐稽首 (만가의 삼라가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须弥勃跳舞三台 (수미산이 벌떡 일어나 삼대에서 춤을 춘다.)
이는 무문혜개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뒤 읊었다는 오도송(悟道頌)입니다. 수미산부터 세계 곳곳(萬家)의 삼라만상까지 모든 대지의 군생들에게 향해 있는 복잡한 의문(疑問)들이 한꺼번에 깨끗하게 해결되어 크게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대자유(大自由)를 얻은 무문혜개는 당장 스승인 월림선사에게 달려가 자신의 게송(偈頌)을 보여줍니다. 선가(禪家)에는 이렇게 스승에게서 깨달음을 인증 받는 관례가 있습니다. 월림은 혜개의 글을 보고 칭찬하기커녕 크게 화를 내고 나무랍니다.
“너 이놈 어디에서 귀신놀음을 하느냐?”
여기서 여러분에게 한 마디 묻습니다. 여러분이 고심 끝에 얻은 지혜를 부모님이나 친구한테 말했더니, ‘그거 다들 알고 있는 거 아냐?’하거나, ‘아니 그게 아닌데...’ 혹은 ‘이 바보야 그건 틀렸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만일 화가 나서 돌아선다면 그건 깨달음이 아닙니다. 과연 혜개는 스승에게 지지 않고 “할(喝)”을 외칩니다. 월림이 그런 혜개를 향해 가람이 울리도록 마주 외쳤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기가 죽을 만큼 큰 소리입니다. 확신이 없다면 자신이 틀렸을지 모른다고 움찔 했을 겁니다. 그러나 혜개는 두려운 기색 없이 여전히 월림을 향해 더 큰 소리로 할을 외쳤습니다. 그제서야 월림이 혜개를 안고 하하 웃었다고 합니다. 깨달음을 인증한 것입니다.
무자(無字)화두에 대해서는 차후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우선 무자 화두가 가진 의미를 간단히 말씀 드리면, 이는 기본적으로 ‘구별(區別)이 없다’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선악(善惡)과 호오(好惡), 생사(生死)와 화복(禍福)의 구별이 없다는 말입니다. 당연 사제(師弟)는 물론 오(悟)와 미오(迷悟)의 구분도 없습니다. 그러니 스승앞이라고 어려울 일도 없고, 스승이 깨닫지 못했다고 욕해도 화낼 일도 실망할 일도 없습니다. 스승의 시험이 어린애 장난처럼 훤히 보입니다.
하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면 필경은 어린애 장난 같은 스승의 시험에 걸려서 넘어질 것입니다. 월림이 시험한 것은 이것이지요. 혜개가 걸려서 넘어지나 안 넘어지나 한 번 시험해 본 것입니다.
무문혜개는 월림 아래에서 깨달은 후 이를 대기대용(大機大用)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바에 선(禪)의 기요(機要)에서 벗어남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남송 영종(寧宗) 가정(嘉定) 11년(1218년)부터 안길산(安吉山) 보국사(報國寺)를 중심으로 강소(江蘇)와 강서(江西)일대 사찰에서 홍법(弘法)활동을 전개하여 그 명성을 크게 떨쳤습니다.
그러다가 남송 이종(理宗) 순우(淳佑) 6년(1246년) 봉지(奉旨)하여 인왕사(仁王寺)를 개창하고, 이곳에 주석(駐錫)설법하면서 공안(公案) 48칙(則)을 엮어 <선종무문관>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이종의 4번째 즉위일에 맞추어 이를 바치고 황제에게도 법요(法要)를 강설(講說)했다고 합니다.
혜개는 무자화두를 통해 개오(改悟)했기 때문에 특별히 이 화두를 중시하여 책 이름을 무문관이라 했음은 물론, 그 서문에 아래 서문(序文)과 같은 언급을 하였고, 조주구자(趙州狗子) 공안을 제 일 칙으로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혜개가 그랬듯이 우리들 또한 무자(無字)화두를 통해서 육조(六祖) 혜능(慧能)선사(중국 선종을 부흥시킨 선사)의 “무념(無念) 무상(無相) 무성(無性)”의 사상(思想)요지(要旨)를 심득(深得)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선종무문관> 첫머리에 있는 무문혜개대사의 자서(自序)입니다.
佛语心为宗,无门为法门。
부처의 말 중에 ‘마음’이 핵심이다. 그러나 그 법(法)으로 통하는 길에는 문이 없다.
动工是无门,且作么生透?
문이 없는데 어떻게 나갈 것인가?
岂不见道:从门入者,不是家珍;从缘得者,始终成坏。
이런 말을 듣지 못했는가. ‘문을 통해 드는 것은 진귀한 것이 아니요, 인연을 따라 얻은 것은 마침내 부서지고 말 것이다.’
恁么说话,大似无风起浪,好肉剜疮!
사실 이런 말도 바람이 없는데 파도를 일으키는 것이요, 멀쩡한 살에 종기 째는 칼을 들이대는 것이다.
何况滞言句、觅解会?
그러니 말과 글에 매달려 있어봤자 뭘 찾을 수 있겠는가?
掉棒打月,隔靴爬痒!有甚交涉?
이는 막대기로 달을 후려치는 것과 같고, 신발 위로 가려운 곳을 긁는 것과 같다! 어찌 깊이 법을 통하겠는가?
慧开绍定戊子(1228)夏,首众于东嘉龙翔
혜개가 소정 무자년 여름에 동가의 용상사에서 수좌로 있을 때
因衲子请益,遂将古人公案作敲门瓦子,随机引导学者,竟尔抄录,不觉成集,初不以前后叙列,共成四十八则,通曰“无门关”。
납자들의 부탁으로 조사들의 공안을 ‘문을 두드리는 기와조각’으로 삼아 학인들을 인도하며 초록하다보니 어느새 책 한 권 분량이 되었다. 처음부터 순서를 생각한 것이 아니다. 모아보니 모두 48칙이라 이를 모두 <무문관>이라 칭한다.
若是汉,不顾危亡,单刀直入,八臂哪吒拦他不住,纵使西天四七、东土二三,只得望风乞命!设或踌躇,也似隔窗看马骑,眨得眼来,早已蹉过!
만일 대장부처럼 위험을 돌아보지 않고 칼 하나에 의지하여 곧바로 뛰어들면, 팔비나타라도 그를 막지 못하고 서역 스물여덟 조사와 중국의 여섯 조사들도 목숨을 구걸할 것이다! 설역 주저하는 사람이라면 문틈으로 달리는 말을 보듯 눈깜박할 사이 이미 틀려지고 말 것이다!
颂曰:
大道无门,千差有路。(큰 길에는 문이 없다. 하지만 길은 또한 어디에도 있다.)
透得此关,乾坤独步. (이 관문을 뚫고 나가면 온 천하를 당당히 걸으리라.)
팔비나타는 중국 고대 신화인 <봉신방>에 나오는 영웅이름입니다. 서역 스물여덟조사는 석가여래부터 달마선사 이전까지 선(禪)을 전래한 조사들(석가모니 - 가섭 - 아난 - 상나화수 - 우바국다 - 리다가 - 미서가 - 바수밀 - 타난리 - 복마밀 - 협 - 부나야치 - 마명 - 비라 - 용수 - 가나리바 - 라후라 - 승가난리 - 가야사다 - 구마라다 - 도야다 - 바수반두 - 마나라 - 학륵 - 사자 - 바사시다 - 불여밀다 - 반야다라 - 보리달마)을 말하고 중국의 여섯 조사란 달마 이후 혜가 - 승찬 - 도신 - 홍인 - 혜능을 말합니다.
무문혜개 선사의 계보를 밝히면 혜능 - 남악 - 마조 - 백장 - 황벽 - *임제 - 흥화 - 남원 - 풍혈 - 수산 - 분양 - 석상 - *양기 - 백운 - 법연 - 개복 - 월암 - 노납 - 월림 - 혜개가 되니, 혜능 이후 20대가 됩니다. 이 때문에 혜개를 임제종 양기파라고 부릅니다. 혜개 선사의 조대(祖代)에 속하는 혜능 남악 마조 백장 황벽 임제 풍혈 양기 법연 등은 앞으로 자주 이름이 언급되는 모두 유명한 선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