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일본 열도의 남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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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439,913명 (2016 추계) |
면적 | 2,281.12㎢ |
대륙 | 아시아 |
국가 | 일본 |
요약: 일본 최남단의 현. 현정 소재지는 나하이며 류큐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해안에는 산호초가 발달했고 감청색 바다와 흰 모래밭이 특징이다. 15세기에 류큐 왕국이 수립되었다가 메이지 시대 일본에게 강제로 복속되었다. 주요경제활동으로는 다랑어잡이•목축업•제당업 및 파인애플 통조림 제조업이 있다. 오키나와 섬은 태평양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 중 하나로 1945년 4월 미군이 합동 상륙작전을 감행했고, 일본군이 이에 대해 강력한 방어전을 벌여 3개월 동안 일본군 10만 명이 전사했다. 종전 후에 미국이 계속 통치하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됐으나 광범한 미군시설이 계속 주둔하면서 양국간의 현안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오키나와는 일본 남쪽에서 타이완 동쪽에 이르는 동중국해상에 160개 이상의 섬으로 구성된 류큐 제도(琉球諸島)로 이루어져 있다. 류큐 제도에서 가장 큰 오키나와 섬은 길이 112㎞, 너비 11㎞, 넓이 1,199㎢이다. 아열대와 열대 기후에 걸쳐 있으며 해안에는 산호초가 발달했고 감청색 바다와 흰 모래밭이 특징이다.
오키나와는 선사 시대에서 10세기까지 사냥과 어업, 채집 생활로 생활했으나 12세기에서 15세기까지 구스쿠 시대에 농업을 중심으로 산업이 바뀌면서 인구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13세기에는 지역마다 정치 세력이 발달하면서 북산, 중산, 남산의 삼산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들어 명나라, 고려 등 이웃 나라들과 교류가 시작되었다.
삼산시대에 이어 1429년 통일 정권인 류큐 왕국이 수립되었다. 류큐 왕국은 일본, 중국, 조선, 루손(필리핀), 샴(태국) 등 주변의 아시아 국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했으며, 이때부터 류큐 왕국의 존재가 유럽까지 알려졌다. 1591년 일본 사츠마(현 가고시마)가 류큐 왕국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1606년부터는 사츠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반 속국으로 전락했다. 1875년 일본의 메이지 정부가 류큐 왕국의 폐지와 중국에 대한 조공 관계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고, 1879년에는 일본에 복속되어 오키나와 현이 설치되었다.
오키나와 섬은 태평양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 중 하나다. 1945년 4월 미군은 오키나와에 대한 육군•해군•공군 합동 상륙작전을 감행했고, 일본군은 이에 대해 강력한 방어전을 벌였다. 미군은 이 섬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3개월 동안 벌인 전투에서 전사 1만 2,000명, 부상 3만 6,000명의 피해를 입었고, 일본군은 10만 명 가량이 전사했다. 이후 미국은 오키나와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했으나 광범한 지역에 설치된 미군 기지가 여전히 주둔하고 있어 양국 간에 현안 문제로 남아 있다.
주요경제활동으로는 다랑어잡이•목축업•제당업 및 파인애플 통조림제조업이 있다. 고구마•쌀•콩 등도 재배하며 직물•사케(일본 청주)•칠기를 생산한다. 앞바다에서는 원유를 생산한다. 현청 소재지는 나하다. 2개 국정공원과 아열대라는 기후조건이 독특한 전통적인 문화유적과 어우러져 관광산업이 급신장했다. 2000년에는 ‘류큐 왕국의 구스쿠 및 관련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