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오래전 예기인지라 확실한년도는 기억에 흐미하나 1984_5 년 그쯤이나 되었을것이다
전라남도가 순환엽장 허용년도였다 수렵이 시작되는 첫달이니까 초겨울이의 이야기다
그때 나는 진도로이사온지 사오년되는해인것같다 임회면고산리 고재꼴이라는 마을에서도
좀 떨어진 한적한곳에서살엇다
엄마도없는 어린아들딸들을데리고 아무연고도 없는 진도섬
으로 이사와 생계유지가 어려운 힘든 생활을하든시기였다
그래도 사냥개 한마리는 키우고
있었는데 이름이좋아 사냥개이지 당시로 볼때는 노루새끼나몇마리 잡아본 개로서 사냥개
라고 내세우기에는 크게 각광을 받지못하는쪽의 개였다
그런 백구를 데리고 바로집앞의
들녁개울가로 구식펌프식 공기총 한자루들고 오리사냥을하고 있었는데 개울건너 마즌편
들녁에 엽총을든 두사람의사냥꾼과 뒤따라온듯한 한사람과 모두 세사람이 무언가를 잡을
려고돌아다니는것이 눈에띠엇다
그걸 보는순간 나도서울에 살때는 저사람들 못지않게 엽총
들고 탄알꽂은 붉은쪼끼입고 허리춤엔 사냥칼차고 여주 나 진천쪽으로 엽사몇이서 당시
유행하던 군에서불하받아 검은색칠한 찦차로 사냥다니던 생각이낫다 그때 나는 개울건너
편에있는 사냥꾼들에게 소리쳐물어봤다*뭘잡으러오셨어요*
하고 말을건네자 그들도흔쾌히
*오리잡으러 왔어요* 하고 대답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또한마디 노루잡으러 가지 않겠
느냐고 물어보니 그들또한 흔쾌히 그러자는 것이였다 뜻이맞은 우리들은 서로만나 악수
하고 인사소개 나누는데 이들또한 점잔은 분들로 한분은 광운대 체육교수 였고 한분은
홍익회 회장님이였다 교수님은 몸이 건장하셧고 회장님은 병약해 보엿다 두분은 친구사이
인데 회장님의 체력단련을위해 사냥을오셨다는게다
인사나누고보니 우리셋은 나이도 오십 대가 막되는 거의 동배였다 교수님은 나보다 한살이 위여서 형님동생하기로하고
노루있을 만한 곳으로 가던중 나는한마디했다
그 엽총 내가들고가면 않되겟냐고 물으니 흔쾌히 그 러라고하며 엽총을내게로 건네주엇다
그때 등뒤에서 낮으막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분을 모 시고온 자가용 운전기사였는데 비아냥거리는 소리였다
*촌놈이 뭘한다고 총을주라는거야*라고 하는것이다 그러나 나는 못들은체햇다
그도 그럴것이 그때내옷차림은 허름한 잠바차림의 완전한 시골뜨기 농부로 보였을테니까 그러나
나는 비아냥거리는 운전기사의 소리는 뒤로 남긴채 산허리넘어 음지쪽으로 네려갓다
*노루는 습성이 겨울에는 양지쪽보다는 음지쪽 에 잘붙는다 원래 노루의몸은 열이많으므로
서늘한음지쪽에사방도 잘보이는 숲속에 몸을숨기 고 누워있는 습성이있다*
그런데 산밑의 농로길을 걸어가는데 커다란 장꿩한마리가 내위로 날아오르는게아닌가 나는순간 쏘아서는
않된다는 생각이 떠올랏다 총소리에놀란 노루란놈 이 도망칠수도 있다는 생각을한거지 이때나는 교수님 일행보다는
십미터전방에서 백구를앞세 우고 나가고있었다 그런데 앞서가던 백구가 갑작이 산으로 쏜살같이 올라가드니 약 20 미터
전방에서 노루를일으켜 바로 물듯이 지르려는 찰나였다 여기서 나는 몸에익은 사격솜씨가
포물선을그리며 도약하는 노루를향해 방아쇄를 당기니 노루는 그자리에 떨어지고 바로뒤
따르던 백구는 노루를물고 느러지고 잇고 뒤따르던 교수님일행은 그 광경을 모두 지켜본
것이다 가쁜숨을 몰아쉬던 교수님은 나에게 흫분한 목소리로 *와__우리동생은 서부사나이야*
하고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며 내등을 두들기는 것이다 그러는동안 우린이미 노루를물고있는
백구에게로 다가가 노루를빼앗고 아직도 살아있는 노루를 교수님어께에 걸쳐메고 좀전에 넘
어왔던 산허리를 지나자 노루를메고오든 교수님은 갑작이 노루를잡은채로 땅에네려놓트니
등산화신은발로 탕 하고 노루 목아지를 냅다밟아버리드니 *하는말이*/가만잇지 힘들어죽겟네*
하는것이아닌가 그때 옆에서 지켜보든 일행들은 나오는 웃음을 참을수없어 모두들 박장대소
하였다 노루뼈는 원래 딱딱함을 많이느끼게하여 우리의 건장한 교수님께서도 그무거운 노루를
살아잇는채로 높은산허리를 들쳐메고 넘어왓으니 손아귀도 아프고 얼마나 힘들었을것인가
그렇게고생하며 집까지 당도한 교수님은 무척이나 피곤하셨으리라 그러나 교수님일행에게는
좀처럼 체험하기 어려운 길이남을 추억일것이다 방에들어간 일행이 환담을 나누는 동안
나는 동네청년과함께 노루가죽벗기고 허벅지 통통한살로 육회치고 시골막걸리 받쳐들고
교수님일행앞에갓다놓으니 그야말로 둘이먹다가 하나죽어도 모를 기맠힌 맛이였을게다
집에가실때 갖어가라고 좋게도려낸 등심살과 다리한짝을 잘포장하여 보냈는데 그로부터
열흘후에 사냥하던날 기념으로 찍은사진을 보내왓다 그런데 지금은 그사진이없다 혹시
우리 둘째에게는 잇을런지도 모르겟다 이이야기는 벌서 옜날이야기가됐다 이런글 올리는
것도 미안한 생각이든다 요즘세상엔 어려운 일이지만 그때그시절은그런 시절이였다
재미도 없는 옜날이야기해서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