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에 대한 우리의 태도 (수정본) -- 최승묵 씀
이 이야기는 창조론을 부정하지 않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진화에 대한 종교적 의미를 서술했다.
성경에 따르면 분명히 하나님은 태초에 시간을 두고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 시간 개념이 현재의 시간과 같은 개념이냐? 라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성경은 창조가 동태적(dynamic)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창조는 정태적(static)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창조가 일순간 모든 것을 이룬 것이라면 정태적인 의미를 내포할 수 있겠으나 성경을 따른다는 것은 창조가 동태적인 의미를 가지고 이루어졌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동태적 창조의 의미는 창조가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시간을 거슬러 가지 못하는 우리는 과학의 지식 또한 순차에 기초하여 얻는다.
우주의 생성을 과학적으로 대충 보면 energy -> matters & anti matters -> particles-> 수소-> 헬리움->등 등 등의 순서로 되어있으며 이런 절차는 우주를 직접 관측함으로서 설명되고 있다. 수소 이전의 것은 가설에 가깝지만 최근에는 신의 입자 (Higg's particle)를 발견함으로서 어떻게 하나의 입자가 mass를 얻게 되고 중력을 갖게 되는지 설명한다. 과학은 실험을 통해서도 수소들이 어떻게 모여 별을 만들고 별의 생명이 다 하는 날 수퍼노바 또는 하이퍼노바가 일어나 새로운 원소들을 만들어 내는지도 밝히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 우주의 아주 작은 티끌에 속한다.
순차적 창조란 무엇인가?
바로 진화를 의미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다만 이것을 설명하기 전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진화라고 해서 태양계의 형성과 지구상에 생명출현 과정을 우연이라고 보는 것은 논리적일까? 그 과정을 보면 그 절묘함이 극에 이르고 그 과정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한다면 그 누구도 감탄을 금할 길이 없을 것이다.
진화의 과정 자체가 과학의 논리로서 설명이 되더라도 그 과정은 무한히 경이롭기 때문이다. 이 경이로움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하기에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그것이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런 경이로움이 가끔 수그러지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태양계는 무한한 우주의 일부이며 아직도 우주에는 수백억 개의 다른 태양계가 생성되고 소멸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특히 더욱 그렇다.
혹자는 이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고 반박할지 모르겠으나 이 생성 과정은 우리의 눈으로 과학적 방법에 의해 목격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우주에 지구와 같은 다른 태양계가 있을 확률이 거의 100%에 가까워진다.
또 다른 지구가 존재한다면 인간 같은 사고를 하거나 비슷한 형태의 생물들이 다른 태양계에도 있을까? 나는 이 질문이 적어도 현재에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에 의한 창조의 목적이 인간창조라면 인간과 같은 사고의 생물이 다른 곳엔 존재치 말아야 할 것처럼 보이겠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과소평가 하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왜 하나님이 그 무한한 우주의 "티끌의 티끌"보다 작은 곳에서 인간창조의 목적을 이루려 하신 것일까?"라는 질문이다. 이 말의 이해를 위해 먼저 이야기를 생명의 창조•진화로 바꾸어 보자.
생명의 창조 또한 동태적 순차를 밟고 있다.
단순한 세포의 생명이 우주의 생성으로 새로이 만들어진 화학원소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이 결국 인간의 탄생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진화론의 키 포인트다.
진화가 창조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진화가 a에서 b, c,d 식의 일직선개념으로 봐선 안 된다. b의 종류로 진화하면서 a는 여러 행태의 가지를 친다. 예를 들어 인간 종류의 진화하는 과정을 보면 그 가지 수가 알려진 것만으로도 수십 종이 된다. 화석을 통해 진화적 문제를 연구하던 중 학자들은 최근 현대인간과 같은 사고방식의 인간종류들이 5만 년 전까지 만해도 살았고 적어도 4종의 인간종류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현재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만이 존립하는데, 진화를 부정할 경우 다른 인간종류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받아 드리게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인간창조 과정에 실수를 많이 했다는 우스운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아니면 화석의 분석이 틀렸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과학의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 과학을 부정하는 모순에 빠지게 한다.
하나님의 생명 창조 방법이 동태적인 방법이란 점에서 지금도 우리는 진화하고 있으며 진화하여야 한다. 필자는 이 진화의 과정 자체가 의도된 창조수순이라고 보는 것이다. 무신론자는 진화를 무작위 현상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음식을 만들 때 무작위식 요리는 요리가 되기 힘들고 우연히 만들어진 음식이 맛을 내는 경우의 수가 있을지라도 같은 맛의 음식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지기는 더욱 힘들다. 로또에 한번은 당선될 수 있어도 계속해서 로또를 맞춘다는 건 확률로도 설명이 불가능 하다. 진화론을 이해하려들지 않는 혹자는 이 음식 예를 보곤 그 성분에는 변화가 없으므로 진화가 아니라고 주장도 한다.
원래 슈퍼 박테리아가 있었는지는 모르나 일반 박테리아가 항생제에 내성을 키우는 슈퍼박테리아로 바뀌었다면 이것은 진화가 아닌가? 물론 다 같은 박테리아 류 라고 주장 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소멸한 인간 류 들도 (우리 호모사피엔스와 다른 점이 genome연구로 밝혀졌는데 사고하는 면에서는 같으나 그 성장 면에서 너무 빨라 지적발전에 문제가 있음) 현대의 인간과 같은 인간이라는 모순에 다시 빠진다.
우리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상의 절대적 승자가 된 것은 머리의 진화역할이 가장 크다. 그렇다면 진화를 통한 창조는 끝이 났는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기대가 그 보다 훨씬 크다. 하나님은 인간이 우주의 절대적 승자이기를 기대하신다. 우리는 앞으로 끝이 날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로 나가 생존해야하며 이는 두뇌의 진화를 요구한다. 이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는 언제 끝이 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영혼과 연계된다.
우리의 관심사인 영에 관해 짧게 설명해보자. 하나님은 동태적변화에 따른 인간진화에 정태적인 개념인 영의 일부를 주셨다. (필자는 정태적이란 개념을 시간이 멈춘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시간의 개념을 뛰어넘는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는 죽더라도 영은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으로서의 영에 대한 이해는 동태적 시간개념에서 해석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그 영에 대한 개념을 현실 환경에서 해석하고 현실은 시간에 의해 이해되기 때문이다. "육체가 죽어도 영은 산다."라는 말에 "산다"는 것은 동태적 개념이다. 동태적인 상황은 시작하는 것(시간개념)이 있으면 그 끝이 반듯이 있다. 우주는 아주 먼 이야기지만 그 끝이 있다. 우리 태양계의 경우, 태양이 생명을 다하는 날 태양계의 끝이 있음은 과학적으로 증명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주는 그 끝이 있는가?
동태적 개념아래에서는 반듯이 그 끝이 있다. 끝이 있다면 그 끝은 과연 무엇인가? 필자는 우주창조의 시작부터 그 끝 자체를 정태적 개념으로 해석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 한 순간을 정태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전체를 정태적 개념으로 필자는 해석한다. 우주가 끝이 나게 되면 우리 모두는 창조의 끝에 서게 되고 물질적 존재는 그 의미가 없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영으로 돌아가게 되며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을 초월한 정태적 조우를 하게 될 것이다. 그 조우는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의 순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듯 하나님은 이 우주를 인간이 지배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이 지구에서 살다 죽으라는데 있지 않다. 우주의 끝 날까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쫓아 지식을 늘리고 사라질 현재의 태양계를 떠나 하나님이 지금도 창조하시는 또 다른 태양계를 지배하시길 바란다. 우리의 자식들이 똑똑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똑똑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를 바라신다. 수동적 인간이 아닌 능동적으로 적응해가는 즉 진화해가는 우리를 원하신다. 우리가 우주를 지배하고 하나님의 우주 창조와 생성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우주도 그 끝에 있을 것이고 우리는 영을 통해 하나님과 조우하게 된다.
그 궁극적인 조우 목적의 비밀은 무엇일까?
즉 창조의 목적이 무엇일까?
불행히도 우리는 하나님과 조우의 순간까지 절대로 하나님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한 시간의 테두리에서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참 뜻은 우주의 마지막 날 인간이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고 영적인 정태적 상태로 돌아갔을 때 이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겐 신앙과 관련하여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나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의 의도대로 열심히 그를 쫓아 진화하여 우주의 끝날 까지 항해하며 하나님과의 조우를 할 것인가? 아니면 진화를 하나님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하고 진화를 부정하며 현재의 인간이 창조의 완제품으로서 주어진 대로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현실에 만족하며 하나님의 마지막 결정 순간만을 기다릴 것인가?
하나님의 축복은 전자에 속할 것이며 후자는 목적을 잃어버린 착한 아들로 선택되어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을 보기에 부끄럽고, 자랑스럽지 못 한 태도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대로 우주지배를 위해 무단히 노력하며 진화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p.s. 이 글의 주목적은 과학발전의 참 뜻이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자자손손 젊은이들이 과학발전 에 공헌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하나님의 믿음이 우리의 진화를 막아서는 일이 되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